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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北工程 합리적 해결 위해 나선 국제한국학회
東北工程 합리적 해결 위해 나선 국제한국학회
  • 김일평 코네티컷대 명예교수
  • 승인 2013.07.29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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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평 교수 회고록(55) 국제한국학회(ICKS) 창립 무렵 3

필자의 오랜 학문적 관심 가운데 하나가 동북아지역 질서 문제다. 그래서 수년전 중국이 벌였던 역사왜곡도 깊은 관심을 갖고 생각해왔던 문제였다. 이른바 ‘동북공정’이라 불리는 중국의 동북아 과거 역사 연구는 훗날 발생할지도 모를 영토문제를 둘러싼 중국의 역사 정리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마침 수년전에 발표했던 작은 논설이 있어, 다시 생각의 단초를 잡아 보겠다.

동북공정이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輿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인 말로서 중국 동북 변경 지방의 역사와 현황에 대한 중국측의 일련의 연구 작업을 뜻한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 계획의 이 프로젝트는 중국 사회과학원 소속 변강사지역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 주관이 돼 추진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 한민족의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의 고구려 땅을 중국영토라고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 북한을 포함하는 우리 한국역사는 한족(朝鮮族)의 역사이지 중국 漢族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고구려 종족은 고대중국의 소수민족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따라서 동북지역에 존재했던 고구려 땅은 중국의 변경지역이라는 게 그네들의 ‘급조된’ 주장이다.

<보스톤 코리아>에 필자가 게재한 '중국의 동북공정이란 무엇인가' 평론.

위 사진 속의 평론 「중국의 동북공정 이란 무엇인가」는 미국 <보스톤 코리아(Boston Korea)>의 청탁을 받고 집필 한 글인데 ‘보스톤 전망대’ 코너에 게재했던 글이다 (2007년 8월 10일).

고구려사의 왜곡과 우리의 대응

중국이 고구려역사를 왜곡하고 고구려 땅을 중국의 영토로 편입시킨다는 소식은 한국인에게는 매우 충격적이다. 그리고 한국의 언론은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보도를 매일 하고 있으며 한중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다. 우리 한국인의 냄비 끓는 성격을 여실히 드러내며 아우성치는 모습을 중국은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우리가 감정을 앞세우고 중국과 싸울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무모한 일이다. 우리는 중국이 언제부터 왜 동북공정을 시작했으며 어떻게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할 것인지 지성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고대 조선역사의 고구려, 발해가 중국의 종속국이었다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2002년 2월에 사회과학원이 200억 위안(한화 2조여 원)을 투입하고 정식으로 시작한 국책 사업이다. 그러나 동북공정의 프로젝트는 실제로는 1983년에 벌써 시작됐다. 이런 사실을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는 1984년 8월 베이징의 민족대학 린 야오한 교수의 초빙을 받고 민족대학의 민족문제연구소와 연변대학에서 특강을 한 경험이 있다. 그 당시 중국은 외국인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었다. 중국정부기관이나 학술단체의 정식초청이 없으면 비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대학 초빙을 받아도 연변은 외국인 출입금지 지역이라 중국 공안부의 특별여행증을 받아야 갈 수 있었다.

민족대학의 일정을 마치고 연변대학 박문일 학장의 특별초빙으로 연변대학에서도 특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지린성사회과학원에 들렸다. 베이징에서 연변대학까지 나를 안내하고 동행한 황유복 민족대학 교수는 지린성사회과학원의 중국인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구려는 확실히 조선 땅이고 조선역사인데 어찌하여 중국역사에 편입시키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실토하는 것을 보았다. 중국은 1983년에 벌써‘동북변강의 역사와 그에 따라 파생되는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북공정 연구프로젝트는 중국의 고대역사학자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조선족 학자들에게도 매우 충격적이었다.

나는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동경을 거쳐 서울에 들렸다. 너무도 충격적인 중국당국의 역사 왜곡 사실을 서울에도 알리고 대응방안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대의 중국사 교수이며 친분이 있는 민두기 교수와 외교학과 은사인 이용희 교수에게 중국의 역사왜곡 사실을 전하고 대응방안을 촉구했다. 그리고 한국동란당시 육군통역장교 전우이며 미국유학 동기며 직업외교관 출신인 노신영 안기부장에게도 연변에 다녀온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변대학에 한국역사학자들이 쓴 책을 좀 보내주기를 부탁했다. 한국에서 출판된 학술서적 50여권을 연변대학에 보냈다. 2년 후 연변대학을 다시 방문했을 때 내가 보낸 한국 책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본 결과 대학도서관 ‘적성불온문서’방에 넣었기 때문에 일반에게는 공개할 수 없고 특별허가를 받아야 열쇠를 얻을 수 있고 열람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1980년대 광주사태’ 후 한국의 혼란한 정국은 중국언론에도 많이 보도됐으며 한국이 중국을 적성국가로 규정하고 중국에 대한 여행뿐만 아니라 모든 교류를 차단했고 외교통상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알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알려줘도 아무런 대책을 세울 여유도 없었고 또 관심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오늘 한국과 중국은 외교통상이 매우 활성화됐으며,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제일 교역국가로 부상했다. 그리고 중국의 한국유학생 수는 미국유학생 수를 능가했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었다. 이와 같이 한국과 중국은 상호의존국가로 부상했다.

그렇다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국수주의적이고 감상적인 접근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단순하지만 이것이 원칙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서로가 존중하고 진심으로 대하기만 하면 충분히 지혜를 갖고 관심사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말했다.

중국, 한국, 북한에는 고구려역사와 조선고대사를 연구한 학자들이 많이 있다. 한국에는 4~5명의 역사교수가 고구려사와 고대사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 북한, 중국의 고대사연구 학자들이 공동으로 고구려사를 연구하고 공동발표를 하는 동시에 3개 정부는 전문분야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수용한다는 협약이 필요하다. 북한의 학자와 중국의 고구려역사 전문가는 한국역사학자의 입장을 실증적으로 고증함으로써 우리의 고구려사는 조선고대사의 일부라는 정통성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큐슈대학에서 열린 학술대회

한국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할 수 있는 이론과 역사적 사실을 공개해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역사학자들이 공감 할 수 있는 이론과 역사적 근거를 내놓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학자와 북한의 역사학자, 그리고 한국의 역사학자를 초빙해 동북공정에 대한 학술적 토론을 개최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나는 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우선 미국의 우리 국제한국학회가 중심이 돼 동북공정에 관한 학술회의를 개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한국 측과의 연락은 서울대 정종욱 교수가 적극적으로 취진하기로 했고, 미국 측은 내가 맡았고, 중국 측과 북한 측은 국제한국학회의 명의로 초빙하기로 했다.

동북공정에 관한 학술회의는 중국 베이징이나 혹은 일본에서 개최하는 가능성을 검토해 보았다. 그리고 일본의 큐슈대학(九州大學)의 방문교수로 재직중인 이홍표 박사에게 연락했다. 일본의 후쿠오카 부근에 있는 큐슈대학은 일제시대부터 한국과 연관이 매우 깊었고 또 한국의 많은 유학생이 이 대학을 졸업하기도 했다. 큐수대학의 법정대학에서 강의하는 이홍표 박사와 연락을 한 결과 학술회의의 모든 경비를 우리 국제한국학회에서 부담하는 조건으로 큐수대학에서 ‘동북아시아 변경역사연구 국제회의’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2007720~21일 일본 큐슈대학(九州大學)에서 개최한 동북아시아 변경역사연구 국제회의를 끝마치고 찍은 기념사진. 오른쪽에서부터 정종욱 서울대 교수, 필자, 마쓰바라 타카토시(松原孝俊) 교수), 이홍표 교수.

그러나 학술회의를 개최하는데 드는 경비조달이 문제가 됐다. 서울에서 개최하면 경비 면에서는 일본에서 필요한 경비의 반액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오는 학자들과 북한에서 오기로 한 3명의 학자들의 입국절차가 매우 복잡해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큐슈대학의 ‘한국연구센터’에서 개최하면 중국과 북한의 학자도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중국의 사회과학연구원 그리고 북한의 사회과학연구소를 방문해야 했다. ‘동북공정’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중국 학자 4~5명과, ‘동북공정’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북한 학자 3명을 초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미국에서 동경을 통해 베이징, 장춘을 거쳐서 북한의 평양까지 갔다. 평양에서는 사회과학원의 曺喜承 박사가 두 명의 젊은 연구원을 데리고 큐슈의 동북공정 학술회의에 참석해 중국학자들의 동북공정에 대해 반론을 내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해서 2007년 7월 20일부터 이틀간 큐슈대학에서 ‘동북아시아변경 역사연구 국제회의’를 개최할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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