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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정현용과 자매들 이야기 … 레어드 선교사가 책으로 소개
아내 정현용과 자매들 이야기 … 레어드 선교사가 책으로 소개
  • 김일평 코네티컷대 명예교수
  • 승인 2013.04.15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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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평 교수 회고록(42)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에서 연구생활 3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에서 연구생활을 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나왔기 때문에, 이야기가 조금 겹치는 부분은 있지만 아내 정현용을 비롯해 가족과 관련된 내용을 잠시 더 소개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정태시 총장의 장녀인 정현용은 이화여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문학 서적이 필요하다면 내가 사서 아버님(정태시 총장) 편에 보내 주기도 했다고 앞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정현용은 대학 친구들에게 나에 대해 펜팔(서로 편지 쓰며 생각을 나누는 친구)이라고 소개했다. 펜팔로 시작해 몇 년 동안 연애편지를 쓰고 난 뒤, 그녀가 뉴욕주립대에 유학 오면서 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연애를 할 수 있었다. 뉴욕시내의 극장구경도 많이 갔으며 또 박물관도 관람했다. 그런 연애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1963년 하와이로 가기 전에 뉴욕 리버사이드 교회(Riverside Church) 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아내 정현용의 여자 형제는 현용을 포함해 모두 다섯이었다. 그들 다섯 자매에 대한 일화도 없을 수 없었다. 그 중 미국선교사 에스터 레이어드 선생이 기록한 책을 여기 소개한다.

레어드 선교사가 쓴 자매 이야기

원주에 감리교 선교사로 나와 있던 에스터 레어드 선생은 정현용과 네 동생 즉 이들 다섯 자매의 어린시절 사진을 주제로 『The Five Little Chungs』(by Ester J. Laird) 라는 책자의 원고를 집필한 후 작고했다. 레어드 선교사의 전기 『한국을 위해 몸바친 나 애시덕 선교사』를 집필한 최종수 목사는 영문으로 된 책자를 그대로 나 선생 전기에 포함시켰다. 그는 이 책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1982년 여름 나 애시덕 선생님에 관한 자료를 얻기 위해 선생님의 고향인 오하이오 주 훼어헤븐(Fairhaven)에 갔을 때, 선생님의 고향에서 가까운 캠든이라는 곳에 살고 있던 여동생 베라(Mrs. Vera Booker)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때 베라가 언니 에스터의 원고라고 하면서 이 遺稿를 주기에 가져왔다.”

 

선교사 에스터 레어드 여사가 정현용 자매를 모델로 쓴 책. 정태시 선생의 가족사진을 표지 모델로 했다.

『The Five Little Chungs』라는 영문 원고는 1952년경에 쓴 것으로 나 선생님이 손수 타자기로 친 원고였다. 선생님 자신은 원고 쓴 날짜를 적지 않았으나, 이 이야기에 넣을 삽화를 그려준 마리 쇼안(Marie Shawan)이라는 분이 그림을 그린 뒤 자기 이름을 서명하는 동시에 연도를 ‘52’ 라고 적었다.

 

그런데 이 책의 표지에 실은 정태시 선생의 가족사진에 대해 정현용은 6·25 전쟁이 나기 직전인 1950년 봄 4월 경에 강원도 원주의 간재에 소풍 갔을 때 찍은 사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사진 필름을 현상(Develpe)하지 않고 갖고 있다가 6·25 동란 중 미국에 돌아가서 현상했다고 하며 또 『The Five Little Chungs』의 원고를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선생은 장녀인 현용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경자로 하고, 둘째 딸은 명자, 셋째 딸은 은자, 넷째 딸은 현자 등 모다 ‘子’를 돌림자로 사용했다. 나 선생은 원고를 1950년에 쓰기 시작해서 1952년에 끝마치고 마리 쇼안 (Marie Shawan)에게 삽화를 부탁한 것이라고 정현용은 생각했다.

정태시 선생 가족은 1950년 6월 25일 한국동란이 일어난 직후인 6월 29일 처남이 육군 대령으로 복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용 트럭으로 충주로 남하했다. 이후 戰勢가 더욱 나빠지는 바람에 이들 가족은 부산을 거처 거제도로 내려갔다. 그 뒤 다시 부산에 와서 살면서 부산에서 이화여중에 입학했다가 전쟁이 끝난 후 서울에 올라와서 정착한 후 이화여고를 거쳐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정현용의 말에 따르면,『The Five Little Chungs』의 내용은 장녀 정현용부터 5녀 정혜용에 이르기까지 다섯 형제를 소개하면서 한국의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문화를 미국의 아이들에게 소개하는 책이라고 한다. 레어드 선교사의 전기를 쓴 최종수 목사역시 이 책 속의 이야기가 정 선생 댁 다섯 자매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레어드 선교사가 쓴 이 책은 정 선생님의 가정생활을 통해 우리나라 세시풍속과 예의범절, 역사와 문화를 미국사람들에게 재미있게 소개하는 데 의미를 뒀다고 볼 수 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정 선생을 두고 친구들이 ‘정태시 선생은 딸 부자’라고 놀려 주었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정 선생은 딸 다섯을 모두 이화여중, 이화여고, 그리고 이화여대학에 보냈다. 그런 사연이 있어서인지 이화여대의 김옥길 총장은 이화여대를 사랑하고 빛내준 정태시 선생과 매우 가깝게 지냈다.

자매들이 걸어온 길 

둘째 명자는 이화여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는데, 그녀는 수재라는 말을 듣곤 했다. 아마도 그의 아버지의 천재적 머리를 닮은 것 아니냐고 가까운 사람들은 농담삼아 말하곤 했다. 그녀는 이화여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미국의 뉴욕주립대에 와서 1년간 영어를 더 배운 후 뉴저지주립대인 럿거스대(Rutgers University) 에 진학해 도선관학으로 석사학위를 끝마치고 도서관에서 근무하다가 유종수 박사와 결혼했다. 그는 전북의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 상과대학에서 장학금으로 공부했던 인물이다.

유 박사는 뉴욕 빙햄턴에 있는 뉴욕주립대 경제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캐나다의 국립대학인 알고마대서 교수생활을 사반세기 동안 했다. 유종수 박사는 동생이 3명 있는데 다음 동생 유종근은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특보도 했고 또 전라북도 도지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의 형 종수는 은퇴한 후에는 캐나다의 수도 토론토 부근에서 살고 있다.

셋째 딸 은자는 나 애시덕 선생이 이름을 혼동해서 첫째 딸로 착각해 그의 책에는 첫째 딸로 기록돼 있다. 은자는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와서 펜실베니아주립대 (Pennsylvania State Univesity) 대학원에서 스피치를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펜 스테이트 대학에 가서 스피치를 전공하게 된 것은 이승만 박사의 고문이었으며 영문연설을 집필하는 스피치 라이터였든 로버트 오리버(Robert Oliver) 박사의 영향이 컸던 탓이다. 정태시 선생은 세계교육자 대회에 참석했을 때 오리버 교수를 만났다.

오리버 교수는 이승만 박사의 고문인 동시에 스피치 라이터(Speech Writer)라는 직책으로 이승만 박사의 모든 스피치를 영문으로 작성했던 인물이다. 그는 미국에서도 알려진 스피치 학자이기 때문에 미국 스피치 학회의 회장도 역임했다. 또한 그는 미국스피학회에서 발행하는 <긴요한 스피치(Vital Speech)> 라는 격주간지에 이승만 박사의 3·1절 스피치 혹은 8·15 스피치 등 대통령의 모든 스피치를 영문으로 작성하고 또 스피치 학회 기관지인 에 실었던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대학에 다닐 때 그 저널을 대학도서관에서 종종 읽었으며, 그 덕분에 스피치를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넷째 딸 은용 역시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영양학과에 진학해 영양학을 전공했다. 미국에 유학을 와 뉴저지주립대인 럿거스대(Rutgers State University of New Jersey) 에서 영양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 Ph. D.)를 받았다. 그는 뉴욕시의 연구소에서 5년간의 연구결과가 매우 좋아서 미국 국무부(U.S. Department of State)의 경제원조처(U.S. Agency of International Development) (AID)에서 전문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다섯째 혜용은 이화여대 아동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코네티컷주립대(University of Connecticut)의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서부의 유타주에서 연방정부의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다음 사진은 2010년 6월 3일 나의 8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을 때 함께 찍은 사진이다. 현용의 다섯 자매가 모두 같이 사진을 찍었다.

정현용의 자매. 오른쪽에서부터 정혜용, 정현용, 정경자, 정명자, 정은용(2010).

 

장녀의 진로와 선택

한편 우리의 장녀 애련이는 한국에 계신 할머니 품에서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잘 자라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하와이에서 2년간의 연구임무를 마치고 인디애나 브루밍턴에 있는 인디애나대(Indiana University)에서 동아시아 정치를 담당하는 교수로 채용됐다. 나는 캔사스주립대서도 초빙하겠다는 초청장을 받았는데 캔사스주립대에는 도서관학 대학원(Graduate School of Library Science)이 없었기 때문에 인디애나 대학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아내 현용이 도서관학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했던 게 이유다.

현용은 인디애나대에서 2년 동안 도서관학으로 석사학위를 끝마치고 정식으로 도서관에서 전문직으로 일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받았다. 그리고 애련이도 4세 때 한국에서 돌아와서 인디애나 주 브르밍턴에 있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애련이는 부르밍턴의 중학교에 다니다가 내가 코네티컷주립대로 옮기는 바람에 스토어스(Storrs, Connecticut)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코네티컷주립대 부설 고등학교(E. O. Smith High School)를 졸업했다.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부 장관이 졸업한 웰스리대(Wellsley College)의 영문학과 에 입학해 4년간 영문학을 전공하고 졸업했다.

 

 

큰 딸 애련이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 영문학과에서 창작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작가가 되기를 희망했으나 부총장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보좌관으로 채용됐다. 큰 딸은 버클리대에서 특수프로젝트로 카네기재단에 연구기금을 신청을 해 일1억2천만 달러($120 Million) 이상의 보조금을 받아낸 공로를 인정받아서 버클리대 부총장보(Assistant Vice Chancellor)로 일약 승진했다.

우리의 손주 ‘타이(Tyrus)’는 재롱이 많고 매우 귀엽게 자라고, 성장이 빨라서 금년 가을이면 초등하교 1학년에 입학한다. 지금까지의 유치원은 사립 유치원을 다녔는데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사립학교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버클리의 공립학교는 배우는 수준이 매우 낮고, 또 새로 이민 온 소수민족의 아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배우는 수준이 매우 열등하다는 것이다. 남미에서 새로 이민 오는 소수민족의 어린이들의 교육문제는 캘리포니아주의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뉴욕과 다른 큰 도시에도 큰 문제로 제기되고 있었다. 그런 이유에서 나의 외손자 타이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수업료는 대학수준으로 비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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