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평_『다른 과학은 가능하다 느린 과학 선언』] 과학을 느리게 한다는 것은 과학자들을 ‘문명화’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 문명화란 과학이 전문 분야가 아닌 일반인도 충분히 이해하고 비판하며 반론을 펼 수 있게끔 상대적이고 실용적인, 그러나 수준 높은 용어로 과학을 이야기하는 능력을 말한다. 문명화된 과학자는 지식의 소유자가 아니라 가치 형성의 참여자다. 그들은 혁신의 결과를 사회와 함께 평가하고, 그 의미를 사회 속에서 다시 물을 줄 아는 존재다.

[과학서평_『기술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의 아버지 제프리 힌턴은 얼마 전 구글을 떠나며 기술 개발에 투신했던 시간을 후회했으며, 챗지피티를 만든 샘 올트먼 역시 자신이 개발한 인공지능 때문에 일어날지 모를 대규모 사회적 재난을 심각하게 우려한다는 인터뷰를 최근 내놓았다. 기술 개발이 아니라 규제와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뒤늦은 메시지들이다. 과거 자신이 만든 원자폭탄의 위력을 확인하고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며 고뇌를 드러냈던 오펜하이머의 자책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과학서평_『짐승과 인간』] 그전까지 철학자들이 전통적으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동물종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징에 집중했다면, 미즐리는 동물행동학의 최신 성과들을 철학 연구의 장으로 들여와 인간과 동물의 유사성을 탐구했다. 1960∼1970년대에 인간 본성이라는 게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사회과학자와 동물행동학자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 미즐리는 그 둘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노력한 몇 안 되는 학자였다. 인간 본성에 대한 그녀의 비판적 연구는 인문학을 과학의 시녀로 삼으려는 환원주의와 과학만능주의의 허식에 경고를 던짐과 동시에, 플라톤에서 사르트르에 이르기까지의 전통 철학과 심리학이 인간의 본성을 얼마나 왜곡하고

[과학서평_『과학 용어의 탄생』] 조선에서는 ‘과거 시험’을 의미했고, 일본에서는 세분화된 ‘분과 학문’을 가리키던 ‘과학(科學)’이라는 용어가 격물치지의 줄임말인 ‘격치(格致)’를 비롯해 이학, 박학, 격물학 등 다양한 후보를 물리치고 영어 ‘science’의 번역어로 채택됐다. science의 어원인 라틴

[저자가 말하다_『마지스테리아』] 과학과 종교는 경쟁적이면서도 동시에 상보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둘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복잡하게 얽히며 발전했다. 저자는 둘 사이 충돌이 일어날 때 그 양상을 결정지은 것은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권력 구조의 문제였다는 점 또한 지적한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라는 도전에 대한 종교의 시대착오적 억압이 역사를 통해 줄곧 충돌해왔으며 불필요한 희생과 문명의 후퇴를 유발했다는 현대의 서사는 억지로 만들어 낸 신화에 가깝다고 강조한다. 다윈의 불독이라 불렸던 토머스 헉슬리도 말년에 남긴 글에서 “과학과 종교 사이의 반목이란 내게는 순전히 꾸며낸 것처럼 보인다”라고 썼다.

[과학서평_『마이크로키메리즘』] 태아의 줄기세포는 엄마의 뇌로 들어가 엄마의 신경조직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아들을 낳은 엄마들이 어째서 행동과 성격이 남자처럼 변하는지, 어째서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각종 자가면역질환에 자주 시달리게 되는지 이제 이해될 법도 하다.

[과학서평_『호르몬은 어떻게 나를 움직이는가』] 부신피질 호르몬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선천성 부신과형성증으로 남성의 외모를 갖게 된 최초의 여성 교황 요한나의 비극, 임신하지도 않았는데 뇌하수체에 생긴 종양 때문에 배가 불러오고 젖이 나왔던 영국의 여왕 메리 1세의 소동, 애디슨병 때문에 냉전 시대 중요한 외교협상을 그르칠 뻔한 케네디 대통령의 이야기 등. 이 책은 임신과 출산에서 시작해 아이가 영유아기, 사춘기를 거쳐 성인이 되고 노년이 될 때까지 인생의 모든 단계를 지휘하는 주요 호르몬의 정체와 역할을 흥미로운 역사적 에피소드와 함께 하나하나 소개한다. 평생에 걸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의 종류는 무려 80여 가지에 이른다. 이들 중 하나라도 잘못 작동한다면 누구든 심각한 고통을 겪을 수 있다.

[과학서평_『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이 책의 원제 ‘헬골란트(Helgoland)’는 독일어로 ‘성스러운 섬’이라는 뜻이다. 독일의 북쪽 해안가에 위치한 이 작은 섬에 어째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몰라도 실제로는 나무 한 그루 없이 척박한 섬이다. 꽃가루 알레르기로 고생하던 젊은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요양 차 방문한 이곳에서 원자 속 전자의 기이한 움직임을 설명할 수식을 생각해냈다. 그에게는 세계의 비밀을 꿰뚫어 보게 한, 말 그대로 ‘성스러운’ 땅이다.

[과학서평_『재난에 맞서는 과학』] 가습기살균제 참사처럼 가해자가 명확한 상황에서도 책임을 묻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이것이 환경의 문제냐 제품 안전의 문제냐를 따지며 법적 소관을 회피하려는 경우도 흔하지만, 사고의 원인이 유해성 평가의 방법론적 미흡 때문인지 고의적 조작에 의한 것인지 가려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과학은 특정 물질이 유해함을 입증하는 데 쓰이며, 또 다른 과학은 그것이 결코 유해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데 쓰인다. 어떤 과학이 맞는 걸까? 과학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확실한 증거, 확실한 방법론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과학서평_『기계 속의 악마』] 누구나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을 직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생명체와 생명이 없는 물질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씨름해왔음에도 생명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표준 정의 같은 것은 여전히 만들어지지 못했다. 19세기 말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은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엔트로피를 낮추기 위해서라고 말했는데, 후에 에르빈 슈뢰딩거는 그의 이론을 채용해 생명을 ‘음의 엔트로피를 먹고사는 존재’라고 규정했다. 물리학자가 본 생명은 열역학법칙을 거슬러 일하는 기계와 같은 존재인 셈이다.

[과학서평_『보이지 않는 질병의 왕국』] 항생제와 백신의 개발로 인해 감염성 질환은 거의 자취를 감춘 반면, 이제 현대인의 질병은 주로 면역계와 신경계 조절장애나 과민성 증후군과 같은 자가원인 질환으로 대표된다. 외부로부터의 침입자와 전투를 벌이는 게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내부의 스파이와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이 스파이는 물리쳐야 할 적인가, 아니면 나 자신인가? 피아식별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병의 원인을 찾아 박멸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음을 깨닫게 된다.

[과학서평_『웃음이 닮았다』] 유전자가 이기적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유전자가 들어있는 DNA는 독특한 화학 구조를 가진 분자에 불과하다. 그 자체가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지니고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DNA는 놀라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것을 가지고 태어난 생명이 먼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에 대한 역사 기록이다. 유전자는 개인의 본질을 결정짓는 구성물에 그치지 않고, 오랜 세월 연대기적인 사건을 겪은 복잡다단한 역사의 퇴적물이자 산증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