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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디자인 파노라마 ⑯_오창섭 건국대 예술디자인대학 교수] 벤치가 달라졌다. 어디를 가든 아름답고 세련된 벤치들이 우리를 반긴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재료나 모양이 다른 벤치들을 꽤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무인 척하는 콘크리트 벤치도 그중 하나다. 두 개의 짧은 콘크리트 기둥 위에 두꺼운 나무판 모양의 콘크리트 덩어리를 얹혀놓은 벤치 말이다. 나무인 척하는 콘크리트 벤치에 앉을 때면 콘크리트 고유의 서늘함이 느껴지곤 했다. 그렇다고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나무인 척하는 콘크리트 벤치도 벤치로서 기능을 훌륭히 수행했고,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서 기후 변화나 반달리즘에 강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어디서나 쉽게 그 벤치를 볼 수 있었던 건 그런 장점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무인 척하는 콘크리트 벤치는 왜 나무를 흉내 냈을까? 아마도 콘크리트의 차갑고 삭막한 느낌을 익숙하고 따뜻한 나무 이미지로 완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와 유사한 모습을 초창기 전자제품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나무 가구를 흉내 낸 콘솔형 TV가 대표적 사례다. 이 제품이 나무로 된 가구의 외관을 하고 있었던 건 기술의 한계나 제작비용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신기술로 만들어진 제품을 낯설게 느끼지 않도록 하려는 디자인적 조치이기도 했다.

디자인 파노라마 | 오창섭 | 2022-05-06 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