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가 말하다_『에듀테크, 교육에 좋은가?』] 익숙하지만 낯설다. 이 책이 기술과 교육을 다루면서 보여주는 두 모습이다. 익숙한 이유는, 세상이 ‘그렇다’와 ‘그렇지 않다’라는 이분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과 교육의 관계는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지저분하기도 하다.

[저자가 말하다_『역관 일지』] 조선 시대에 사관(史官)의 사명과 기개가 대단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반면에 역관(譯官)은 주로 중인 출신이 맡았고, 그들의 역할이나 자긍심은 대체로 미미했다. 따라서,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번역 작업에 종사하는 어떤 인물이 자신을 ‘역관’이라 칭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자조적인 멸칭일 가능성이 많다. 그는 우리 사회의 현상이나 변혁에 대한 절실한 관심이나 책임감은 없이 그저 자신의 본분인 번역작업에나 충실하고자 노력할 개연성이 많다

[저자가 말하다_『천황제 일본고대국가』] 천황가라는 혈통의 절대성·신성성은 기타 씨족이 넘볼 수 없는 영역이었다. 조칙을 통한 천황의 명령권, 관인의 임면권, 사성 정책을 통해 관료사회를 지배해 나갔다. 천황을 정점으로 한 관료제 율령국가의 운영시스템은 일본고대국가의 이상이 반영된 도달점이었다. 천황제 국가가 추구하는 이념은 신통 관념이었고 일본열도의 유일한 통치의 법통이라는 인식이었다. 건국신화에 반영되어 있는 황조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로부터 내려오는 왕통의 연속성, 정통성, 만세일계 사상은 신성불가침하여 다른 왕조국가에서 나타나는 역성혁명은 원천적으로 봉인됐다.

[저자가 말하다_『오늘의 세균』] 몇 권의 책을 쓰면서 미생물, 그중에서도 세균 얘기를 많이 했다. 많은 병원균 중에서도 특히 일부 세균과 감염질환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주로 역사적으로 중요하거나, 혹은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만한 세균을 골랐다. 그런데 게 중에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했고, 정말 많은 사람을 죽인 세균이지만, 이제는 (상대적으로)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세균도 있다. 이를테면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살상한 질병 중 하나인 페스트를 일으키는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 같은 세균이다. 물론 지금도 페스트균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지금 이 세균을 직접 관찰하거나 한 의사는 드물 것이다.

[저자가 말하다_ 『철학이 이끄는 삶: 윤병렬 선생의 삶과 사상』] 이 책은 우리 시대를 살다간 한 철학자의 고독한 삶과 지적 모험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한 정신적으로 궁핍한 시대를 살다 간 흙 수저 출신의 한 비주류 철학자의 삶과 사상에 관한 평전이다. 그의 전 생애는 소위 ‘철학이 이끄는 삶’의 모범을 보여줬다. 우리의 주인공은 한국 철학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수 있고, 후대에도 읽힐 수 있는 중량감 있는 독창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저자가 말하다_『묵경에 대한 철학적 이해』] 이 책은 고대 중국(대체로 기원전 4~3세기)의 사상가들인 후기 묵가의 『묵경』을 철학적으로 이해해 보려는 목적하에 쓰였다. 『묵경』의 내용을 포함하여 묵가 사상은 중국의 지적 전통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전국 시대 겸애나 비공과 같은 묵가의 윤리적 혹은 정치적 주장이 잠시 주목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묵가의 사상은 진(秦)의 중국 통일과 함께 역사 속에서 빠르게 사라졌고, 이후 동아시아에서 묵가는 그저 이단의 대명사로 잠깐잠깐 언급되었던 적이 다였다.

[저자가 말하다_『생산적 금융』] 이 책은 3년 전 윤석열 정부의 출범 이후, 직전 정부(문재인 정부)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연구 모임인 ‘포럼 사의재’에서 진행된 금융정책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던 2010년대 중반 많은 전환기적 현상이 나타났다. 고용 없는 성장, 생산성 둔화와 구조적 저성장, 청년 실업의 증가와 사회적 불만의 확산,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과 부의 불평등 확대 등은 대표적인 사례였다.

[저자가 말하다_『2040 대학의 해체』] 우리는 2040년 대학을 다시 정의해야 하는 시대에 서 있다. 더 이상 대학은 캠퍼스 벽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없으며 교수는 알고리즘과 협업하고 학생은 교실 대신 메타버스에서 토론하며 커리큘럼은 뇌파로 개인화되어 원자화된 개별 학습이 이루어진다. 이 모든 변화 속에 질문은 단 하나이다. ‘대학은 어떤 모습으로 왜 존재해야 하는가?’이라는 질문이다.

[저자가 말하다_『말과 글의 풍경』 한성우 지음│알렙│304쪽] 주인공인 우리 모두가 매일 그려내는 말과 글의 풍경을 스스로 돌아보며 더 아름답게 그려나가기를 바라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눈을 뜨면 보이는 글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귀를 열면 들리는 말을 찬찬히 들어본다면 그것들의 아름다움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주인이 되어 만들어나가는 것임을 알게 된다면 그것을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렇게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화가가 되어 함께 만들고 그려나가는 말과 글의 풍경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역자가 말하다_『1828/29년 헤겔 미학강의』] 이 책은 1828년 10월 27일부터 1829년 4월 2일 사이에 헤겔이 베를린 대학에서 실시한 미학 강의를 독문학자 아돌프 하이만(1880∼1962)이 수강하면서 기록한 노트를 빌헬름 핑크 출판사에서 출간한 단행본의 우리말 번역이다. 여기서 말하는 ‘강의’(Vorlesung)란 강의자가 원고를 미리 작성하여 수강생 ‘앞에서(Vor-) 읽기(-lesung)’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을 뜻한다.

[저자가 말하다_『유럽의 국경사』] 서구의 민족주의는 내부적으로는 국민국가와 명확한 국경선을 정립하고, 외부적으로는 제국주의와 결합하여 비서구 세계의 영토를 임의로 분할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 지정학의 핵심적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전 지구적 국경선의 획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만들어낸 약탈적 영토 분할과 폭력적 국경 획정이 생산한 ‘모순의 공간’인 식민지 변방의 국경들을 비교사적으로 조명한다.

[저자가 말하다_『분단시대의 영화학』] ‘분단’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유효할까. 남북이 서로를 다른 국가로 인정하며 각자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지금, ‘하나의 나라가 둘로 갈라졌다’는 전제는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는다. 그러나 통일이라는 미완의 약속, 한반도라는 공동의 기억이 남아 있는 한, 분단은 여전히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언어다.

[저자가 말하다_『찰나의 기억, 냄새』]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후각 수용체 유전자’의 생리적 작동 원리를 규명한 연구에 수여됐다. 이렇게 다채로운 분야에서 인간의 후각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후각의 복합적 층위를 드러낸다. 이러한 연구들이 서구에서 전개됐다면, 이 책은 지난 100년간 축적된 한국 근현대 문학과 문헌의 후각 기록을 통해 동아시아적 맥락의 감각사를 구성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냄새의 기록은 수치화도, 표준화도 어렵다

[저자가 말하다_『쓰는 몸으로 살기』] 요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프롬프트 역량’이라는 표현이 일상 언어처럼 쓰인다. AI에게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얼마나 정교하게 질문을 설계할 수 있는가, 그 능력이 미래의 경쟁력이 된다는 말도 들린다(‘당신의 질문력이 곧 경쟁력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문장에는 놓친 게 하나 있다. 질문을 잘 던지는 능력이 곧 글을 잘 쓰는 능력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역자가 말하다__『죽음을 모른다고 걱정하지 마라』] “죽는 법을 모른다고 걱정하지 마라. 자연이 충분히 잘 알아서 가르쳐 줄 것이다. 자연이 당신을 위해 이 일을 빈틈없이 처리할 테니, 그 때문에 공연히 속 썩을 필요는 없다.”(제3권 12장) 몽테뉴가 『수상록』에서 그려 보인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더불어 그가 제시한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식은 적절할 수도 있고, 전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죽음에 대한 그러한 사고와 사색을 통해서 그 자신을 그토록 짓누르던 죽음의 중압에서 벗어나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역자가 말하다_『마음 기계』] 십여 년 전, 아마존의 관련 도서 목록에서 낯선 저자의 멋진 제목을 가진 심리철학 입문서를 보았고 바로 주문하여 책을 받았을 때 여러 가지 점에서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마음 기계』(The Mechanical Mind)라니, 얼마나 멋진 제목인가? 저자는 이런 제목이 마치 『버틀러가 범인이다』라는 제목의 추리 소설처럼 제목이 내용을 스포일링하는 셈이라는 친구의 말을 전하면서 한때 다소 걱정했던 모양이지만, 마음이 어떻게 하나

[저자가 말하다_『감정시계』] 이 책은 감정과 시간 그리고 ‘느끼는 몸’에 대한 이야기다. 서울대 정신과의학과 교수로서 몸이 아픈 만성통증환자에 대한 임상진료, 연구와 더불어 명상에 대한 체험과 연구 결과를 선구적으로 진행하고 결과를 접하면서, 현장에서 체득한 감정과 시간 그리고 느끼는 몸 직관을 ‘감정시계’라는 이야기로 풀어냈다.

[저자가 말하다_『AI 미디어 생태학』] 인공적인 것, 특히 기술과 자연적인 것의 배합 방식은 자연계(생명)뿐만 아니라 인간계(사회)에서 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간과된 주제이기도 하다. 예컨대, 우리 사회 인공지능(AI)의 자동화 논의를 들여다보자. 우리는 그 배합에서 AI에 인한 인간 노동의 완전한 대체를 상상하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AI에 의한 인간 노동 소멸에 대한 가설은 둘 사이의 적정 배합을 배제한다. 인공적인 것이 완벽하게 생명을 압도하는 미래를 가정한 숙명론의 소산이다.

[저자가 말하다_『불교를 미학하다』] 이 책은 불교 예술작품을 통해 불교미학을 ‘채굴’해보자는 마음으로 쓴 책이다. 이때 ‘미학’이란 예술작품에 대한 도상학이나 양식사 등의 연구, 혹은 흔히 미술사라고 불리는 연구와는 다른 것이다.

[저자가 말하다_『사소한 인류』] 여느 때라면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캠퍼스에서는 혼란과 위급한 상황이 계속되던 때였다. 크고 작은 불을 끄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던 시절에 사소한 일상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숨통이 트이는 것같이 신선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거대한 담론과 첨예한 갈등에서 한 걸음 물러나,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소한 세계에 집중하는 일이 일종의 정신적 도피처이자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