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발이_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의 『직업으로서의 학문』(1919)은 100년도 더 지났건만 여전히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왜 학문을 하는가? 학문을 직업으로 택했다는 건 도대체 무슨 뜻인가?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고 인공지능을 편리한 도구로만 취급한다면 학문 직업이 소멸할 수 있다. 지식 생산의 중심이던 교수라는 직업도 마찬가지다. 베버는 직업(Beruf)을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닌 삶을 거는 소명으로 인식했다.근대 사회를 ‘탈주술화된 세계’로 규정한 베버는 학문을 예언자의 자리에서 끌

[딸깍발이_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 동의과학대 교수] 전국 대부분의 전문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와 청년층 유출, 고령화로 인한 지역소멸 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 제조업·서비스업·요양·운송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현장 전문인력 부족이 심화되고 있지만, 지역대학, 특히 전문대학은 내국인 신입생만으로는 충원율과 인력양성 체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 교육 품질을 유지하고 성장과 발전을 지속한다는 것은 ‘헛된 꿈’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학들은 해외 유학생 유치를 확대하고, 이들을 지역이 필요로 하는 전문기술

[딸깍발이_ 이우진 편집기획위원 / 공주교대 교수] 어느새 쌀쌀한 계절이 다가왔다. 그러나 이 시기가 되면 언제나 그렇듯 한국의 교육은 뜨겁다.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1993년 8월 수능의 도입은 ‘지식량’과 ‘암기’ 중심의 학력고사 체제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 전환이었다. 그 이름처럼 수능은 ‘대학에서의 학업 수행 능력’을 공정하게 측정하고,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단순 암기에서 벗어나 ‘사고력’과 ‘지식의 활용 능력&

[딸깍발이_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 카이스트 교수]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10월의 노벨상 노메달 소식과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노메달 분석 기사·칼럼들이 거의 사그러들었다. 노메달의 대표적인 원인은 눈부신 경제성장과 기술발전에도 불구하고 기초연구가 약하다는 것인데, 사실 이건 분석이 아니라 동어반복이다. 기초연구를 강화하기 위한 해법도 원론적으로는 다 안다. 도전적이고 창의적 연구를 해야 하는데, 이런 연구의 특징인 불확실성 감내, 장기간의 몰두, 틀에서 벗어난 사고 등이 우리나라 연구 생태계에서 싹을 틔우기 매우 어렵다는 것도 다 안다. 다 아는데 왜 못 고치는 걸까

[딸깍발이_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토플 점수, 토익 점수, 인턴십 이력, 아르바이트 경험, 각종 자격증, 공모전 수상 실적에 이르기까지 이력서를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에 스스로 질문을 던질 것이다. 모든 스펙을 다 모으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이 저절로 열릴까? 대학생들은 졸업 전에 어떻게든 좋은 스펙(Spec, Specification)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이 땀 흘려 얻은 값진 성과이므로, 여러 스펙을 쌓기 위한 노력 자체를 평가절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그럼에도 많은 학생이 스펙을 자산으로 오해하는 안타까운 현실 인식은 지적하고 싶다. 스펙은

대한민국 교육재정은 줄곧 초·중등에 쏠려 왔고, 그 그림자는 고등교육의 빈곤으로 이어졌다. 그 출발점은 1972년 제정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있다. 당시 정부는 산업화·도시화의 급속한 진전 속에서 초등학교 무상교육 조기 달성과 중학교 의무교육 확대를 국가적 과제로 삼았다. 지역마다 교원 인건비와 학교 운영비 격차가 심각했기에,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시·도교육청에 자동 배분해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는 방식이 선택된 것이다. 이 제도는 교원 급여와 학교 운영을 안정화시켜 초·중등

[딸깍발이_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 최근 교육부는 국정과제로 ‘AI 디지털 시대 미래 인재 양성’을 제시하였다. “대학생·대학원생 대상으로 AI 융복합 교육과정을 확산하고, AI 교육·연구 지원을 통한 전문 인재”를 육성하겠다고 한다. 대학들이 교육혁신을 말하며 AI 교육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그 맥락이다. AI 기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 21세기, AI에 먼저 해답을 구하는 환경에서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전수받는 교육은 적합하지 않다. 정보의 축적이나 지식의 암기보다 깊게 통

[딸깍발이_ 이우진 편집기획위원 / 공주교대 교수] 우리는 지금 몇 개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을까? 예전에는 기억력도 좋지 않은 나도 수십 개의 전화번호를 머릿속에 저장하며 살았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 직장 동료들의 번호까지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생존을 위한 마지막 전화번호’라고 해야 할까? 아내의 번호 하나만 겨우 기억하는 실정이다.사실 이는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인간 기억이 외부 도구로 이전되는 ‘인지적 외주화’(cognitive offloading)의 결과이다. 우리의 두뇌가 스마트폰이라는 외부 저장소에 기억 업무를 맡기고

몰디브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수백 개 리조트와 별의별 관광 옵션으로 정보와 선택지가 너무 많아 몰디브 대학을 졸업했다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 백내장 수술 역시 정보가 많아 가히 백내장 대학인데, 근 1년을 끌다 최근 수술을 받고 나도 백내장 대학을 졸업했다. 덕분에 안과의 역사는 백내장 수술의 역사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무려 기원전 1550년경에 제작된 파피루스에 최초로 백내장 증상이 언급되는데, 백내장 수술의 시초는 기원전 600~800년경 인도에서 행해진 ‘발와술’로 혼탁한 수정체를 구부러진 바늘로 눈

[딸깍발이_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 서원대 교수] 과거에 집착하다 보면 미래는 점점 멀어진다. 학생들은 아직 어리니까 그렇다 쳐도 교수들조차 이처럼 단순한 진리를 망각할 때가 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내일을 향한 꿈을 키우라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교수 자신은 과거의 이런저런 일들에 집착하면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분도 있다. 이미 흘러간 지난 학기의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련의 포로가 된 학생도 있다.미련(未練)이란 품었던 감정이나 생각을 깨끗이 잊지 못하고 끌리는 데가 남아 있는 마음 상태를 뜻한다. 미련이 과도하면 교수와 학생의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할

[딸깍발이_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 동의과학대 교수]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가 전반에 숨 가쁜 변화가 일고 있다. 국민으로서 향후 5년간 국정운영과 개혁이 순조롭게 진행되길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불평등 심화에는 교육 불평등과 지역 간 교육격차가 큰 원인으로 작용해왔기에, 새 정부는 이에 대한 근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123개 국정과제 중 교육 분야에서는 ‘AI 디지털 시대 미래인재 양성’, ‘공교육 국가책임 강화’, ‘학교자치와 교육 거버넌스 혁신’, ‘

[딸깍발이_ 신희선 숙명여대 순헌칼리지 교수] “레벨0 등급을 받은 한국 학술지가 123개에 달한다.” 노르웨이 고등교육역량위원회, 핀란드 출판포럼이 전 세계 학술지를 평가하며 제시한 ‘레벨0’은 연구 결과를 공식 인정하기 어려운 부실 학술지를 의미한다. 학술지 평가 결과만 문제가 아니다. 대학이 부정으로 병들어가고 있다.최소한의 검증과 원칙이 없이 권력과 인맥에 휘둘렸던 대학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몇몇 사례만 떠올려도, 부끄러움은 국민 몫이었다. 제자 논문에 이름을 올려 논란이 되었던 이진숙 교육부장관 후보, 석·박

[딸깍발이_ 이우진 편집기획위원 / 공주교대 교육학과 교수] 지난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이 여러 논란 끝에 철회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교육부장관의 지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 그 이름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감히 미리 인사말을 올립니다. 축하의 말씀과 함께, 교육 현장이 처한 위중한 현실을 전하고자 합니다.지금 한국의 학교는 존재론적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 증거는 통계 속에 차고도 넘치고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은 18세 미만 아동·청소년 수는 2020년 13만 명에서 2024년 27만 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순수함과 호기심으로 채워져야 할

[딸깍발이_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 카이스트 교수] 오랜만에 학과 교수회의에 참석했다. 학교 보직을 맡은 이후 일정이 겹쳐 학과 행사에 자꾸 빠지다 종강 식사를 겸한 회의에서 다 같이 만나니 간만에 회포를 푸는 느낌이었다. 선배 교수들은 어느덧 은퇴를 얘기할 나이가 되었고, 후배 교수들은 언젠가 대학원생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더 이상 어중간한 낀 세대가 아니라 은퇴를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걸 깨달았다.사실 은퇴하면 뭘 할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한 것은 한참 전이었다. 우연히 학내 은행에서 대기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던 부총장님과

[딸깍발이_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 서원대 교수] 수국(水菊)을 보러 갔다가 교육 문제를 생각했다. 수국은 가지마다 다른 색깔의 꽃을 달고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지척의 땅에서 함께 자라는데도 꽃 색깔이 왜 다를까?전문가의 글을 검색해보니, 수국은 토양의 산성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산도(酸度)의 지표인 페하(pH) 5.5라는 경계를 기준으로 5.5 미만이면 푸른색, 5.5 이상이면 분홍색 꽃을 피운다고 한다. 페하(pH)가 산도를 뜻하니 숫자가 클수록 강한 산성일 듯싶지만 반대로 숫자가 작을수록 산성이 강하다. 음식물을 녹이는 위액은 산도가 페하1~3이고, 물과 혈액은 중성인 페하

[딸깍발이_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 동의과학대] 전 지구적으로 심화되는 기후 위기와 정치·경제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 침체 등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청년 세대의 미래 불확실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수도권으로 진출한 제자들의 삶을 통해 들여다본 현실은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이나 미래 계획조차 불투명하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이며, 그 핵심은 교육과 직업의 불일치, 특히 지역에서의 고등직업교육 약화에서 비롯된다.이러한 시점에서 새 정부가 내놓은 ‘서울대 10개

[딸깍발이_ 신희선 숙명여대 순헌칼리지 교수] “공존과 통합의 가치 위에 소통과 대화를 복원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정치를 되살리겠다.” 6.3 조기 대선 결과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분열의 정치를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새 정부 출범으로 12.3 계엄 이후 반년 가까이 국민의 일상을 뒤흔든 정치적 불안을 마감하게 되었다. 혼란했던 대선 과정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으로 진행된 세 차례의 후보자 토론회를 지켜보며, 최근 진행했던 교내 토론대회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이제는’ 진짜 토론과 진짜 정치가 필요

[딸깍발이_ 이우진 편집기획위원 / 공주교대 교육학과 교수]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호는 거대한 암초에 부딪혔다. 비상계엄이라는 이름의 그 암초 앞에서 민주주의의 돛대가 꺾이는 듯했다. “반국가 세력에 의한 국정 마비를 막기 위한 헌법상 조치”라는 명분이 내세워졌으나, 그 실상은 권력 유지를 위한 헌정 파괴 시도, 즉 친위 쿠데타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그 순간, 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들이 움직였다. 계엄군이 국회를 봉쇄하려 하자 시민들은 한겨울의 칼바람을 가르며 거리로 나섰다.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계엄군의 총부리에 맞서며, 국회가 계엄 해제를

[딸깍발이_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 카이스트 교수] 작년 이맘때 어쩌다 참여하게 된 해외연수 프로그램으로 보스턴 근처 플리머스에 들른 적이 있다. 1620년 종교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들이 처음 정착한 곳이다. 애초에 17세기 초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박해를 피해 자신들만의 신앙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청교도들이 이주한 곳은 미국이 아니고 네덜란드였다. 그러나 이질적인 경제 기반으로 어려움을 겪고 아이들도 점차 영국 관습과 문화를 잊어버리면서 다시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오래전 역사 교과서에 한두 줄로 읽었던 청교도의 신대륙 이주의 실상은 참혹

[딸깍발이_ 김병희 편집기획위원·서원대] 한때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엄마들이 아이 머리가 좋아지라며 처음에는 아인슈타인우유를 주다가, 중고생이 되면 서울대에 가라는 염원을 담아 서울우유를 주고, 생각대로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연세우유를 준다는 것. 나중에 가서는 그래도 인 서울은 하지 않겠나 싶어 건국우유를 주다가, 정말로 안 되겠다 싶으면 재수하는 것만은 피하라는 뜻에서 저지방우유를 준다는 것. 대학 서열화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서글픈 농담이 아닐 수 없다. 지방(地方)이란 말은 서울 중심주의의 산물로 오랫동안 작동해 왔다. 취업 면접관이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