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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한민족 위한 ‘민족대학설립’ 구상했으나 결실 맺지 못해
해외 한민족 위한 ‘민족대학설립’ 구상했으나 결실 맺지 못해
  • 김일평 코네티컷대 명예교수
  • 승인 2013.06.17 1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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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평 교수 회고록(51) 새로운 고향, 코네티컷주립대 시절 6

나는 1987년부터 해외 한민족에 대한 관심을 갖고 해외한민족 현황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76~1977년에 풀브라이트 교환교수 장학금으로 도쿄대에서 1년동안 연구하면서, 또 국제기독교대학에서 국제정치학 강의를 하면서 재외동포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구체화된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현지의 韓人과 일본인들로부터 자주 들어왔던 ‘재일동포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작용했다. 일본에는 60만의 한민족이 동등한 대우도 받지 못하고 외국인으로서 살면서 자녀교육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우수한 재일교포의 자녀가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일본의 도쿄대나 일류 대학을 졸업해도 일본학생이 받는 것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차별을 받는다는 사실을 나는 매우 안타깝게 여겼다.

전세계에 ‘디아스포라’로 있는 해외한민족 문제에 대해 나는 미국대학의 교수직에서 은퇴한 후 연구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우선 해외 한민족의 역사부터 연구하고 해외한민족의 미래에 대한 연구는 국제문제의 일환으로 다루기로 구상해 보았다. 그리하여 뉴욕에서 사업을 하는 안충성 박사와 상의했다. 안충성 박사는 내가 1965년 하와이 동서문화센터(East-West Center)에서 연구교수(Research Associate)로 근무할 때 만난 인물로, 이후 보스톤의 MIT로 전학해 해양과학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민족포럼과 MIT 안충성 박사와의 만남

안 박사는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후 現代 그룹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기 때문에 한국의 실정에도 매우 밝은 사람이었다. 우선 ‘한민족 포럼’이라는 회합을 시작하고 학술회의에서 발표되는 논문은 ‘한민족 포럼’이 간행하는 잡지에 게재해 발행하기로 했다. 나는 <월간 한민족>의 창간호에 ‘한민족재단 공동의장’으로서 「뉴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는 세계속의 한민족」이라는 ‘신년 권두사’를 썼다. 십수년이 지난 오늘 다시 읽어 보아도 나는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나는 최근 한국에서 실시된 여론조사를 보고 놀랐다. ‘통일문제 전문가의 77.7%가 2020년 이내에 한반도가 통일된다’고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월간 한민족>에 발표한 당시 글의 일부를 보자. “그것은 세계화의 추세로 나아간다면 국가와 국가 사이의 장벽이 무너지고, 세계는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되기 때문이다. 아직 2020년이 되기에는 10년이나 더 남아있다. 그러나 중동지역에서 볼 수 있는 민족주의의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과연 2020년대에 민족국가는 해체되고 하나의 평등한 세계연합이 전개 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21세기에는 국가는 통합되고 무너져서 하나의 세계공동체로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1세기는 통합의 세기이기 때문에 한반도의 휴전선도 무너지고, 남북의 분단도 통일의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정세 변화를 예측한 바 있다. 그러나 안 박사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전혀 다른 해양사업에 종사함으로써 뉴욕의 ‘한민족 포럼’은 중단됐고, 뉴욕 후러싱의 ‘한민족연구소’도 문을 닫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남 안충성 박사는 강원도 횡성의 두메산골에서 출생해, 많은 고생 끝에 미국의 명문대학 MIT에서 해양공학 박사학위( Ph. D.)를 받았다. 해양공학 분야에서는 한국의 권위자로 한국인의 긍지를 지켰다. 그는 現代에 재직하면서 우리나라의 산업발전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의 대통령 출마를 도우면서 부산 초원복집 사건에 연류돼 해양공학의 열정과 경험, 그리고 학문을 한국에서 다 펴지 못하고 뉴욕에 와서 새로운 변신을 하던 중이었다. 그는 조국을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님을 위해 무엇인가 보람 있는 일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원대했던 민족대학 설립 구상

그는 한민족의 인재육성 사업, 특히 21세기를 대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정보기술 분야에 역점을 두고 있었다. 그는 성공한 한인 비즈니스맨으로서 뉴욕 상공회의소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리고 550만 해외 한민족을 위해-민족정론지 <월간 한민족>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한민족재단 이사장으로 미주한인동포와 지구촌 한민족 사회 발전을 위한 각별한 기여를 하기로 약속하고 주어진 미국의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나의 후배였다.  

김일평 교수 등이 구상하던 민족대학 설립을 보도한 <조선일보> 1997년 9월 4일자 기사.

그의 자전적 에세이 『보이는 곳까지 뛰어라 그러면 또 보인다』를 한민족포럼에서 출판한바 있다. 안하남 박사, 시카고의 김원삼 목사와 나를 포함해 우리 세 사람은 함께 힘을 모아서 세계 한민족의 역사연구와 미래에 대처할 구상도 해 보았다. 바로 이 구상이 ‘민족대학’을 뉴욕에 설립하는 것이었다. 위의 사진은 안하남 박사와 시카고의 김원삼 목사와 함께 민족대학의 설립을 구상할 때 조선일보의 우태영 기자가 쓴 당시 기사의 일부다. 20여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내 기억에는 생생하게 남아있다. 당시 우리가 구상하고 있던 ‘민족대학 설립 취지서’를 덧붙여둔다.

 

民族大學 설립 취지서

미주대륙에는 벌써 150만 명이 넘는 우리 韓民族이 이주하여 살고 있습니다. 韓民族의 이민역사도 100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미주대륙에는 우리 민족의 얼을 심어주고 민족문화를 가르쳐 줄 수 있는 民族大學이 없다는 것은 우리 韓民族의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21세기를 대비하여 민족대학의 설립을 절실하게 요청받고 있습니다. 세계각지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우리 韓民族은 500만이 넘었으며, 우리 민족의 문화를 계승하고 보존하며 세계문화를 창조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우리 韓民族은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에 대하여 긍지를 갖고 있으며 미주대륙에도 우리민족의 문화를 가르치고 또 전세계에 확산시킬 수 있는 교육사업이 절대로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韓民族은 우리의 민족문화와 서양문명을 융합하고 세계문화를 창조하는데 공헌할 수 있는 民族大學이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21세기의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韓民族은 21세기에 대비해 새로운 세계문화를 창조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민족대학이 필요한 것입니다.

民族大學은 미주대륙에 정착한 한민족의 후세와 한국의 신세대를 교육시킬 수 있는 교육기관으로서 비영리적인 교육사업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곳에서 출생하여 성장한 제2세대 동포와 미주대륙에 산재하여 살고 있는 韓民族에게 민족의 얼을 심어주고 민족문화를 가르쳐 그들이 세계문화 창조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고 선구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미주대륙에 이주하여 살고 있는 韓民族은 직장생활에 분주하고 자녀들의 교육을 위하여 많은 희생을 했습니다. 民族大學은 그들의 경험을 평가하고 국내에서 받은 교육도 참조하는 동시에 새로운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학사(B.A.), 석사(M.A.), 박사 (Ph. D.)학위를 받을 수 있는 평생교육제도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입니다.

民族大學의 교육방법은 전통적인 교육제도와 방법을 초월하여 새로운 교육방법인 통신교육, 전자매체교육, 장거리교육(Distance Learning)등 새로운 교육기법을 사용하고, 첨단교육기술을 개발하는 동시에 세계적 추세인 교육개혁에도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서울의 YMCA가 최근 수도권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차기 대통령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로 교육문제 해결과 부정부패 척결을 성대적으로 높게 꼽았습니다, 한국에서는 매년 2조원(미화 22억 달러) 이상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것이 교육문제로 부상되었습니다. 21세기를 대비하여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육개혁이 불가피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의 교육개혁은 조기유학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며, 한국에서 오는 조기유학생과 연수생을 위하여 민족대학은 어학교육은 물론 새로운 교육과제도 개발하여 유학생들의 모든 편의를 도모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유학생과 연수생을 위한 교육도 민족대학이 담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민족대학의 설립을 위하여 교육문화재단을 을 조직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비영리재단으로 등록하면 민족교육에 헌금하는 금액은 세금의 면세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거액을 희사하는 사람은 재단이사로 영입하여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고, 또 대학부지 와 시설을 확충할 때 헌금하는 유지와 명사들에게는 그들의 명예를 길이 보존하기 위해 그들의 성명을 따서 기념관을 설립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입니다.

미주대륙에 이주하여 사업에 전념하는 바람에 고등교육의 기회를 놓친 실업가에게는 명예박사학위를 수영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실업가뿐만 아니라 종교계, 의학계, 문화예술계, 사회사업가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며 많은 공헌을 하고 한국을 빛낸 韓人실업인에게는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는 제도를 민족대학은 설정할 것입니다. 민족대학의 등록명칭은 한민족국제대학(韓民族國際大學, International University of Overseas Koreans) 또는 東西大學 (Eastwestern University), 또는 세종문화대학 등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997년 내에 민족대학 설립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민족대학설립재단을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민족대학의 개교식은 1999년 9월에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1997년 7월 17

民族大學설립준비위원회 위원장 김일평 박사

민족대학 설립교육재단 이사장 김원삼 목사

 

그러나 안충성 박사는 새로운 해양사업을 개척하기 위해 동남아시아의 싱가포르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결국 민족대학의 설립은 실현되지 못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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