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한국적 상징인 달항아리를 새롭게 해석한다. 사회적으로 ‘아름답다’고 규정되어 온 전통 이미지에 의문을 제기하며, 표면의 굴곡과 균열, 왜곡을 통해 강요된 아름다움이 아닌 살아 있는 아름다움을 제시한다.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진실한 이 항아리들에는 흙의 숨결, 불의 흔적, 작가의 호흡이 공존한다. 이는 전통의 부정이 아니라, 이미지의 해체를 경유해 본질을 되묻는 ‘파괴로부터의 학습’에 가깝다. 결국 이 전시는 흙이 기억하는 시간과 인간이 감각하는 순간이 만나는 경계에 서 있다. 흙의

[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68 삼중당의 『순교자』]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순교자들은 정말 신을 믿고 목숨을 바친 분들인가, 아니면 바람직한 신앙 영웅 이야기에 불과한가? 한국계 미국 작가 김은국이 영어로 쓴 소설 『순교자』(1964)에서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20주 이상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 후보, 한국계 최초의 노벨문학상 후보 지명 같은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구성한 미스터리 스릴러물인 동시에 신앙과 정치 문제를 섞은 독특한 조합 때문에, 해외 평론가들은 이 소설을 카뮈와

아날로그 영화필름은 과거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꿈, 갈등, 욕망, 사랑을 담고 있는 타임캡슐과 같다. 작가는 35mm, 16mm, 8mm 등 다양한 규격의 폐필름을 잘라내고 조합하여 좌우 대칭의 기하학적 패턴과 원형 구조 등 회화적 구성을 통해 평면에 고정시킨다. 물리적으로는 평면적인 필름 조각들이지만 배열과 중첩, 조명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입체적 층위와 시지각적 깊이를 만들어낸다. 이는 영화가 가진 시간성과 서사성에서 벗어나 기억과 감정을 정지된 조형언어로 변환하는 작업이다. 폐기된 필름이 회화적 언어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현

[김정숙의 그림으로 읽는 노장⑦ 『도덕경』이 전하는 만족의 철학] 행복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아마 불행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강연에서,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불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족이야말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부족함’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SNS 피드 속에서 비교로 인한 결핍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더 많이, 더 빨리’라는 구호는 생산성을 높였지만, 동시에 마음의 공허함도 함께 키웠다. 일찍이 노자는 이 같은 현대인의

[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67 한뜻의 『안데르센동화전집』] 최근의 동화를 읽어보니 줄거리가 잡히지 않는 동화가 너무 많았다. 섬세한 묘사도 중요하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어른도 알 수 없다면 어린이는 어떻게 이해할까 싶었다.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벌거벗은 임금님」,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잔잔한 감동과 깊은 교훈을 안겨준 안데르센 동화가 그리워졌다. 디지털 시대에 동화 작법이 달라졌다 할지라도, 덴마크의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의 이야기들은 여전히 동화의 원형질을 보여주는 본보기라 할 것이다.한뜻의 『안데르센동화전집』 광고에서는 7권 전집의 제목을

한진섭 작가의 손을 거친 돌은 속삭이고, 웃고, 때로는 장난스럽게 윙크를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무겁고 투박한 재료인 돌에서 섬세함을 발견한다. 작가의 손을 거쳐 간 대리석은 그 무게를 상실한 듯 깃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돌을 깎는 일은 곧 소거의 작업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가벼워질 때까지, 천천히, 하나씩,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을 내려두며 본질에 다가간다. 또한 이는 기술이 아닌 태도이다. 애정 어리고도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인간과 삶을 깎아내는 것. 이로써 작가는 복잡한 현실에서 순수한 감정을, 거

변선영 작가는 처음에는 정물화의 중심 대상만을 바라보았지만, 점차 벽지·레이스·달력·배경 같은 ‘가치 없다고 여겨진 것들’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가치 기준에 의문을 던지며, ‘가치의 정체성’을 전도하고 혼재시키는 작업을 통해 기존 인식 체계를 흔든다. 작품 속 명화, 정물, 패턴, 가구들은 시간과 문화를 넘나드는 혼성적 존재로 작가는 이들을 공들여 그리며 ‘무가치한 것의 미학’을 탐구한다. 세밀하고

[김정숙의 그림으로 읽는 노장⑥ 침묵, 말 없는 가르침] 2015년 6월 17일, 미국 찰스턴의 한 흑인교회에서 백인우월주의자 청년이 난사한 총에 목사를 비롯한 9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장례식에 참석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미국 사회의 오래된 인종(race) 갈등에 관한 언급 대신, 은혜(grace)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게다가 연설 도중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기까지 했다. 6초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침묵은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고개를 든 오바마 대통령은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부르기 시작했다. 추모를 위

작가는 옻칠이라는 전통재료를 기반으로 물질과 정신, 시간과 기억의 층위를 탐구하는 독자적 언어를 구축해 왔다. 옻칠을 덧입히고 갈아내는 반복적 과정은 단순한 물리적 흔적의 축적이 아니라, 기억이 퇴적되고 시간의 심연이 드러나는 일종의 실존적 수행이다. 그의 화면은 단색의 평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흔적이 압축된 ‘형상’으로 이는 곧 존재의 본질을 가시화하는 정신적 이미지라 할 수 있다. 그의 옻칠 회화는 한국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단순한 재료 실험에 머물지 않는다. 사포질의 반복 속에서 드러나는 우연적

[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66 한길사의 『고백록』]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 고백을 할 때처럼 떨리는 순간이 또 있을까만, 다른 차원의 떨림은 또 있다. 다들 사랑 고백은 해봤겠지만 죄의 고백이나 신앙의 고백은 모두가 해보지는 않았으리라. 죄나 신앙을 고백할 때는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다 보여줘야 하니까 훨씬 떨리고 심지어 숭고하기까지 하다.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루소의 고백록, 러시아의 소설가 톨스토이의 고백록과 더불어 세계 3대 참회록으로 알려진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고백록(Confessiones)』은 참회의 기록이자 사랑의 전도서이다. 자전적 고백 문학의 효시로도

작가는 ‘지각의 추상’을 통해 보이는 세계 너머의 감각적 진실을 탐구한다. 회화는 순간적인 인상과 내면의 정서를 교차시키며, 감정의 구조를 화면 위에 드러낸다. 35년간의 작업을 통해 축적된 깊이와 밀도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인식의 과정을 회화로 번역한다. 색과 선, 여백은 감정의 지형이자 기억의 흔적이며, 붓질은 존재를 확인하는 행위가 된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작가는 인간의 감각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떨림과 따뜻한 불완전함을 회복시킨다. ‘지각의 추상’은 결국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도 여

한국학술출판협회(회장 박찬익)는 6일 국회 도서관 대강당 지하 1층에서 ‘디지털 출판물 불법복제 개선 방안 모색’을 주제로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는 김교흥 위원장(더불어민주당)과 정연욱 의원(국민의힘)이 공동 주최, 한국학술출판협회가 주관했으며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한국대학출판협회가 공동 참여했다.토론회에서는 학술, 교양, 웹소설 등 다양한 출판물의 디지털 불법복제 현황과 이에 대응하는 전략이 논의되었다. 불법 스캔본과 텔레그램 PDF방, 에브리타임 커뮤니티 등 폐쇄형 채널에서 무

[김정숙의 그림으로 읽는 노장 ⑤ 여백의 미학] 존 케이지의 피아노곡 「4분 33초」는 연주자가 아무 음(音)도 연주하지 않고 있다가, 4분 33초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청중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른바 ‘침묵의 곡’이다. 「4분 33초」에서 존 케이지는 철저히 무위(無爲)의 자세를 취한다. 연주자는 연주하지 않고, 작곡가는 음을 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청중은 그 ‘하지 않음’ 속에서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 등 예측할 수 없는 소리를 경험한다. 그러니까 이 곡은 의도되지 않은 자연의 소리로 가득 찬 음악이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산 시간이 많지 않았던 작가에게 그림 속 오각형의 이미지는 곧 ‘아버지의 집’이었다. 방황하던 작은아들이 그리워한 그 집, 바로 아버지를 만나는 자리. 그렇게 시작된 ‘집’은 어느 순간 고향이자 안식처, 그리고 작가 내면의 풍경으로 확장됐다.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8년간 동판화로 작가 활동했다. 그 과정에서 익힌 긁기, 부식, 닦기 등 동판화 공정을 회화에 접목하고, 레진과 건축 재료 등 이질적 물성을 결합한다. 여러 번 바탕을 올리고 다시 긁어 색을 드러내며, 부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윤철호)가 위탁 운영하는 서울아트책보고에서 지난 24일 오후 4시에 기획전 오프닝 행사가 열렸다. 서울아트책보고는 국내 최초 아트북 기반 공공 복합문화공간으로 예술과 책 문화를 결합하는 공간이다. 이번 전시는 관람객이 ‘이야기하는 이미지’의 영역을 종합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웹툰의 스크롤과 일러스트 장면에서 느끼는 ‘시간의 정지’와 ‘낯선 세계로의 진입’ 경험을 물리적 공간

한국출판인회의(회장 이광호)는 ‘2025 아시아 북 어워드’에서 ‘올해를 빛낸 아시아의 책’으로 4종의 도서를 선정했다. 시상식은 11월 6일 창비서교빌딩 50주년 홀에서 열리는 ‘2025 아시아 퍼블리셔스 포럼’에서 진행된다.이번 ‘아시아 북 어워드’는 인문·사회과학·과학기술 분야에서 아시아와 관련된 책들 중 우수한 성과를 보인 도서와 현대사회를 독창적으로 조명해 언론과 독자에게 주목받은 도서를 선정한다. 올해 수상작은

한국출판인회의(회장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가 ‘2025 아시아 출판 주간’을 오는 11월 4일부터 7일까지 3박 4일간 개최한다. 이번 국제교류 행사는 아시아 각국을 대표하는 출판인을 초대해 ‘아시아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주제로 진행된다. 이번 행사에는 중국,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 9개국 출판인 14명이 참가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아시아 문학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국 출판사들은 문학 교류와 번역, 출간의 기회를 활발히 모색 중이다

[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65 가톨릭출판사의 『민들레의 영토』] 공원에서 발그레 홍조 띤 단풍을 보며 감탄하는 순간이 자기 삶의 발견이라면, 이제 갓 두 살 된 어린아이가 아장아장 걸으며 길가에 떨어진 솔방울을 가리키며 “열매, 열매”라고 말하는 순간도 경이로운 자기 세상의 발견이다. 밥 먹을 때도 기도할 때도 우리는 늘 뭔가를 깨닫고 발견한다. 365일 내내 단 한 번도 기도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 분들도 있는데, 기도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리라.기도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내가 종종 펼쳐보는 시집이 있다. 이해인(1945~) 수녀는 일찍이 민들레에

비평연대 주최,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후원으로 오는 11월 28일 오후 3시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에서 ‘퍼블리셔스 리버스 멘토링’ 컨퍼런스가 열린다. 이 행사는 코로나 이전 개최되었던 ‘출판경영자포럼’을 진취적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시킨 행사로 주목받고 있다.‘퍼블리셔스 리버스 멘토링’은 Z세대 젊은 비평가들이 출판산업의 현장 경험을 기성 출판 경영자들에게 전하는 형태의 강연이다. 이 행사에 출판계와 지성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비평연대는 2018년 김성신 출판평론

출판연구학교(위원위원장 조동욱)가 오는 11월 6일 오후 4시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스퀘어에서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이사장 김철미) 후원으로 ‘제1회 출판콘퍼스’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한국 출판의 새로운 시도’를 주제로 1인 출판사의 다양한 실험과 출판 기술의 진화를 다룬다.이번 콘퍼스에서는 1인 출판사들의 세계 시장 진출 전략, 새로운 출판 광고 방식,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마케팅 기법 등 급변하는 출판 환경에서 미래 출판의 방향을 모색한다. 사회 김성신 문학평론가, 주제발표자는 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