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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㊻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교수(신학대학원)] 생물학적인 성(sex)과 구분되는 것으로서의 ‘젠더(gender)’라는 개념은 성의학자(sexologist)인 존 머니(John Money)가 1955년에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젠더’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여성 운동과 페미니즘에서 사용하는 ‘젠더’로서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이 개념 확산에 중요한 기점을 마련한 것은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다. 1949년에 『제2의 성(The Second Sex)』이라는 책에서 그가 말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women are not born, but made)”라는 구절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자연적인 것의 ‘탈자연화’를 하도록 하는 혁명적 사건이 됐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바로 여성이 인류의 역사에서 부차적 존재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간결하게 드러낸다. 인류의 역사에서 여성은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 남성들의 분석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여성 스스로 자신에 대해 말하고 지식을 생산하는 ‘발화 주체(speaking subject)’가 되지 못했으며, 여성은 언제나 남성들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여성들은 언제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이 아니라, 가부장제적 사회적 관습과 남성들이 ‘허용하는 일,’ 즉 ‘여성으로서의 역할들’만을 수행하는 삶을 살아왔다. 이러한 정황에서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녀왔다고 절대적으로 믿었던 ‘여성됨(womanhood)’ 또는 ‘남성됨(manhood)’이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인식을 강조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젠더’라는 개념을 사용하거나 소개한 것은 아니지만, 젠더의 의미를 정확하게 담아내는 의미를 지닌다. 젠더 개념은 여자와 남자로 구분하는 성(sex)을 자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의 탈자연화(denaturalization)로부터 시작되면서, 매우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서 우리의 세계를 재구성하도록 촉구하게 된다.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 최승우 | 2024-07-05 09:00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㊺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과)] 탈근대 논쟁은 비록 그 자체로는 부실한 면이 있었으나, 중요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된다. 이 논쟁을 통해 근대성의 어두운 그늘과 그 속에 숨겨진 다양한 원천들을 다시 찾는 계기가 됐다. 근대와 탈근대 논쟁의 핵심에는 철학적 사유와 사회적 변화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있었다. 이러한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의 조건: 지식에 대한 보고』(1979)는 디지털 정보 사회와 인공지능 시대를 예언하는 듯한 통찰을 담고 있어 오늘날에도 큰 의미를 가진다. 『포스트모던의 조건』은 1979년에 발표된 리오타르의 저서로, 원래 캐나다 퀘벡 정부 대학협의회의 요청으로 제출된 보고서였다. 이 책의 연구 주제는 20세기 후반 선진 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이 갖는 성격·본성·역할이었다. 리오타르는 이 책에서 탈근대를 '메타 서사에 대한 불신과 회의'로 정의했다. 이 정의를 중심으로 한 탈근대 논쟁은 주로 모더니즘의 존폐 여부와 보편주의 담론의 거부를 둘러싸고 이뤄졌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탈근대의 진정한 의미와 이론적 깊이를 충분히 조명하지 못했다. 리오타르는 1950년대 후반부터 선진 사회에 나타난 두 가지 주요 경향을 언급한다. 첫째는 정보 처리 기계의 확산이며, 둘째는 컴퓨터 언어의 지배력 강화이다. 이 두 가지 경향은 '사회의 컴퓨터화' 혹은 '사회의 정보화'로 귀결된다. 현대 사회에서 지식의 본성과 위상이 과거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이유는 바로 이 정보화에서 찾을 수 있다. 지식은 더 이상 주체의 내면에 위치하지 않고, 외재화된다. 즉, 지식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저장 장치에 담겨 이동하는 것이 된다. 리오타르는 이를 지식의 '철저한 외재화'라고 설명한다. 이는 지식이 주체의 안이 아니라 바깥에 위치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탈근대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이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의 지식 습득(배움)이 인성의 변화와 함께 간다고 여겨졌던 전통적 관념과는 크게 다르다. 서사의 위기와 복귀 리오타르는 탈근대 사회에서 '거대 서사의 후퇴'와 '서사의 귀환'을 강조한다. 거대 서사는 모든 지식 담론을 하나로 통합하고 정당화하는 철학적 서사이다. 그러나 탈근대 사회에서 지식은 이러한 정당화 서사가 필요 없게 됐고, 따라서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거대 서사가 남긴 빈자리는 수행성 서사와 작은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수행성 서사는 과학에 개입하는 기술과 자본, 그리고 관료의 논리를 따르며, 작은 이야기들은 과학의 현장에서 창의성을 다투는 연구자의 논리를 따른다. 탈근대 사회는 정보의 외재화와 함께 연구와 교육의 방식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희망과 위험을 맞이한다. 수행성 서사가 지배력을 더해갈 때 나타나는 닫힌 사회의 가능성과, 작은 이야기들이 만들어갈 열린 사회의 가능성이 그것이다.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 최승우 | 2024-06-28 10:03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㊹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전 세계는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필요한 자원 확보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제력과 기술력을 갖춘 강대국과 풍부한 자원을 가진 자원 보유국들이 저마다 자국 우선주의와 자원의 무기화를 내세우고 있다. 자유와 연대·공존을 강조하는 순진하고 소박한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대한 기대는 엄혹한 국제 사회에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화려한 인류 문명을 가능하게 해준 자원이 이제는 국제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는 고질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도 예외가 아니다. 연탄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해마다 연탄 파동에 시달렸고, 1970년대에는 두 차례에 걸쳐 극한적인 석유 파동을 경험했다. 2019년 7월에는 일본의 갑작스러운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국가의 핵심 산업이 통째로 멈춰 서게 된다는 위기감에 시달렸고, 2022년 중국의 갑작스러운 수출 규제로 촉발된 요소수 대란도 심각했다. 우리의 경제적·기술적 능력은 크게 개선됐지만, 자원 빈국의 현실은 여전히 위태롭다. 중동·대만·남중국해의 국제 정치적 불안으로 석유의 안정적인 확보도 불안해지고 있다. 가장 신뢰하는 우방인 미국의 과격한 우선주의도 걱정스럽고, 유럽연합의 낯선 환경주의도 만만치 않다. 첨단 소재를 틀어쥐고 있는 일본의 눈치도 봐야 한다. 특히 지난 20여 년 동안 급격하게 높아진 중국 의존도가 상황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지리적·역사적으로 가까운 우리에게 탈중국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 최승우 | 2024-06-21 10:27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㊸ 조규봉 서강대 교수(화학과)] DNA가 같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효과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아마도 DNA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일란성 쌍둥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일란성 쌍둥이는 하나의 세포에서부터 유래한다. DNA 서열 이외에 다음 세대로까지 유전될 수 있는 유전 정보는 후성유전학(後成遺傳學)이라고 부르며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됐다는 의미에서 21세기 생명과학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후성유전학은 인간의 성장과 노화 현상을 설명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나의 수정란에서 출발한 우리 몸의 세포들이 신체의 다양한 세포로 분화된다는 것은 세포의 입장에서 볼 때 모두 같은 DNA를 가지고 있지만 엄청나게 다른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태어나서 지금까지 성장과 노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몸은 정말 다양한 형태로 변화돼 왔지만 모두 같은 DNA 서열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후성 유전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이뤄지고 특히 젊음에 대한 후성 유전 정보를 이해한다면 우리의 몸을 젊었을 때로 돌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고 영원한 삶에 대한 오랜 염원이 해결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 최승우 | 2024-06-14 10:20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㊷ 오명돈 서울대 의대 교수(감염내과)]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체는 그린란드의 35억 년 전 화석에서 발견됐다. 최근 연구는 이보다 앞서 41억 년 전에 형성된 서부 호주의 지르콘에서 생명체가 발견됐다고 한다. 지구의 나이가 45억 년이니, 지구 탄생의 초기부터 생명체가 지구에 살기 시작한 셈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구에 나타난 최초의 생명체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단세포 생물)이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는 지구상에 새로운 생물이 나타날 때마다 이들에게 '감염'을 일으키며 지난 35억 년에 걸쳐서 진화를 거듭해 오고 있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박쥐 바이러스나 원숭이 바이러스는 적어도 수천만 년 동안 포유류에 적응하며 살아남은 생명체이다. 사람에게 감염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대개 다른 동물에서 유래한다. 사람에게 침입한 미생물이 어떤 운명을 맞느냐는 유래 동물의 체내 환경이 사람의 체내 환경과 얼마나 유사한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예를 들면, 철새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키려면, 섭씨 5도가 더 낮은 온도(조류 체온 41도-사람 체온 36도)에서도 증식할 수 있는 적응력이 필요하다.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 최승우 | 2024-06-07 09:44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㊶ 남성현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 최근 기후 변화·기후 위기·기후 비상·기후 재앙·기후 붕괴·기후 정의·기후 행동·기후 소송·기후 리스크·기후 플레이션 등 ‘기후’라는 단어가 붙은 신조어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지구의 기후는 더 이상 지구환경과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듯하다. 그동안 과학자들이 국제 사회에 ‘지구 온난화’라는 자연 현상을 알리며 적절한 대응을 촉구하기 시작한 지가 매우 오래됐음을 생각할 때, 기후 변화 문제가 최근 몇 년 사이 새삼스럽게 다시 부각되는 것은 다소 의아하다. 더구나 이제는 기후 변화를 기후 위기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오랜 기간 지구 온난화로 부르던 지구 평균 온도의 상승을 이제는 지구 가열화·지구 열탕화로 부르기까지 한다. 처음부터 대다수 과학자들이 기후 변화로 나타나고 있는 지구 온난화의 원인으로 인간 활동을 지목한 것은 아니었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던 과거에는 기후 변화가 발생하는 원인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990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1차 평가 보고서」 발표 당시만 해도 관측상의 한계로 기후 변화의 원인이 인간 활동 때문이라는 주장을 검증하기 어려웠으며, 향후 10년 동안은 그 판단이 어렵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5년 만인 1995년, IPCC 「제2차 평가 보고서」에서는 지구의 기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간 활동이 있음을 시사했고, 특히 피나투보 화산 폭발 이후의 기후 변화는 인간 활동 영향임을 확신하며 그 입장을 변경해야 했다. 인간 활동으로 인해 대기 중 온실가스가 집적되며 온실 효과 강화에 따라 지구 온난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현재의 과학적 패러다임이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통해 정립된 것은 2007년 발표된 IPCC 「제4차 평가 보고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 최승우 | 2024-05-31 09:06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㊱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융합교양학부)] 전쟁과 기술이 긴밀한 관계를 맺은 것은 오래된 일이다. 사전적으로 전쟁은 국가와 국가, 또는 교전(交戰) 단체 사이에 무력을 사용해 싸우는 것으로 정의된다. 전쟁의 본질에 대해 널리 알려진 통찰은 19세기 프로이센 왕국의 군사 사상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사후에 출간된 『전쟁론』에 나온다. 이 책에서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란 다른 수단을 이용한 정책의 연장이다”라고 썼다. 전쟁이 개시되기 이전까지 국가는 자신의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양한 수단, 즉 외교와 경제적 압박·정보의 활용 등을 활용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먹혀들지 않을 때 그 외의 '다른 수단을 이용해' 의지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활동이 바로 전쟁이라는 것이다. 전쟁에 필요한 무력을 제공하는 핵심 가용 자원으로 기술이 활용됐고, 그 중요성은 근대 이후 과학적 지식이 기술과 결합하면서 더욱 증대됐다. 물론 전쟁을 위한 파괴력은 인류가 기술이라는 수단을 활용해 이루고자 하는 것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기술'이라는 말은 자연 상태의 물질에 인간이 개입해 변화시키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편의를 증진시키는 다양한 방법의 총칭이라고 대략 정의할 수 있다.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 최승우 | 2024-04-19 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