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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국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미국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는 걸까?
  • 김일평 코네티컷대 명예교수
  • 승인 2012.11.24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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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평 교수 회고록(22) 애스베리대에서의 강의와 역사 공부4

미국이라 하면 우리 한국인은 누구나 다 매우 가까운 나라인 동시에 아주 먼 나라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가까운 나라이지만 거리상으로는 매우 먼 나라이다. 미국은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던 1945년부터 군정을 실시한 나라,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한국전에 참전해 북한군을 격퇴시키고 휴전협정을 맺은 후 60여 년간 한국에 주둔하고 있으며 우리의 안보를 지켜주는 나라로밖에 더 많이 아는 것은 없다. 해방 후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에 여행을 다녀 온 한국인은 수십만명에서 백만명이 넘었고, 또 유학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하며 생활해 본 사람도 수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미국을 정말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미국유학과 역사의 교훈

그러나 미국에 대한 우리들의 선입견이라 할까? 미국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좋지는 않다. 미국은 경박하고 돈에 야박한 물질문명의 나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5천년의 찬란한 역사와 빛나는 전통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 민족과 미국은 비교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 미국은 200년의 짧은 역사와 자본주의적 물질의 부를 축적한 나라이지만 정신적 가치를 확립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나라, 미국은 기계의 노예가 됐고, 문명은 있어도 문화가 없는 나라라고 외국인들의 비판을 받는 미국. 미국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는 과연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그러나 그런 미국에 대한 동경심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깊이 잠재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젊은 세대 중에는 미국식 생활방식(American Way of Life)을 동경하며 아무런 위화감도 없이 미국의 생활풍속에 심취돼 있는 사람도 있다. 미국영화를 매우 즐겨보고, 미국의 팝송을 즐겨 부르며, 미국에서 유행하는 것이라면 그대로 따라 행동하고, 미국이민과 미국유학을 꿈꾸는 젊은 세대는 미국의 젊은 세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미국을 싫어하고 미국을 비판하는 반미적인 한국 지식인들 중에는 아메리카 사회와 문화 속에는 정신문화가 없다는 것을 예로 들어가며 거리감을 두고 있는 이들도 많다. 미국에는 물질문명은 많이 발달해 있으나 정신문화는 매우 빈곤하다는 예의 비판이다. 과연 그런가 한번 검토해 볼 과제중의 하나이다(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내가 풀브라이트 장학 기금으로 1991년부터 1992년에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강의할 때는 한국의 젊은 학생들 사이에는 반미감정이 매우 고조돼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한국 젊은 세대의 반미감정을 실감 할 수 있었다).

미국의 역사는 매우 짧다. 유럽인의 식민지역사로부터 설명을 시작해도 4백년에 불과한 역사다. 미국이 식민지에서 독립된 후의 역사를 말하면 200년에 불과한 짧은 역사다. 우리나라의 5천년 유구한 역사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되는 짧은 역사다. 그러나 대서양을 건너온 사람들은 유럽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계승한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영국과 유럽 (구라파) 사람들의 정신문화의 순수하고 유구한 역사전통을 이어받은 퓨리턴(청교도)이 신대륙의 문화적 정신적 초석이 됐다는 사실은 미국 정신문화의 바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물질문명 뒤에 놓인 유럽적 정신문명

서기 1630년 매사추세츠 항만의 식민지건설의 지도자 존 윈트로프(John Winthrope)는 미국대륙에 상륙하기 전에 「그리스도 사랑의 모델」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면서 자기들이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를 건설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주위사람들이 우러러 볼 수 있는 광명 즉 세계의 모델이 될 수 있는 나라를 세우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들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번영이 넘치는 크리스챤의 이상국가를 머리속에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식민지에 사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이상뿐만 아니라 경제적 또는 사회적 목적도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정신적 무장도 잘 돼 있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언덕 위의 마을(Village on the Hill)’ 정신은 미국의 역사가 흐르면서 또 상황이 변화해 감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해가면서 나타났지만 미국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 우리 한국에서는 미국사람들의 정신적 기반은 보지 못하고 미국의 물질문명만 보고 논쟁을 벌이고 싸우는 때도 종종 있었다.

미국 정신문명의 한 축을 만들어내는 청교도주의. 청교도의 금욕적 생활방식이 이후 부의 축적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전형적인 퓨티턴 여성의 모습이 이 사진에 잘 나타나 있다.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은 영국의 종교적 탄압에서 벗어나고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혹은 사회적으로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국 신대륙에 이주한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따라서 그들이 가슴속 깊이 지니고 있었던 정신적 진취성은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을 비판하고 싫어하는 (반미감정을 품은)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미국인들은 물질문명은 있어도 정신문화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사람들의 정신적 바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종교의 자유는 미국사람들의 독립정신을 불러 일으켰으며, 아직도 그네들의 마음속에는 개인의 자유와 독립정신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미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모든 동전과 화폐에는 ‘In God We Trust’ 라는 글씨가 새겨져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 그들이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와 같은 고상한 이념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미국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1950년의 한국전쟁에서 나는 이를 목격한 바 있다. 그리고 1991년에 시작한 중동전쟁에서도 나타났다. 또 부시 대통령이 시작한 이라크 전쟁에서는 무엇보다 미국은 하나님(신)의 편에 서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전쟁은 성스러운 전쟁(Holy War), 즉 십자군의 성스러운 전쟁과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합중국’이란 국가를 만든 힘

미국사람들은 물질적 성공에 집착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들이 이룩한 경제적 성장은 그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 가치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민이다. 미국국민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독립국가로 형성되기 이전에 벌서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매우 이질적인 종족들이 미국대륙의 13개주 식민지에 널리 흩어져 살고 있었다. 이 13개주의 식민지를 통합해 미국합중국을 수립했다는 사실은 이질적인 인종들이 정신적으로 단결할 수도 있다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후 세계의 각 나라에서 여러 종족이 미국으로 이민 와서 한 지역에 모이고, 경제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민족국가를 형성했다. 미국사람들은 광대한 미국대륙의 신천지를 자유롭게 이동해 다니면서 많은 농토와 농장을 개척했다. 따라서 미국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개척정신이 항상 약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인종이 하나의 민족국가를 형성하고, 부유하게 잘 살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많이 볼 수 없다.

미국사람들이 사용하는 돈에는 ‘e pluribus unum’(다수가 하나를 이룬다)라는 표어가 새겨져 있다. 미국은 국민국가(Nation State)로서 국민과 국가를 하나로 결집시키는 힘이 필요했다. 미국의 독립선언, 합중국 헌법, 그리고 성조기와 國歌는 제도적으로 또는 상징적으로는 미국의 다양한 인종으로 형성된 國民을 國家와 일치 되게 통합하는 힘의 역할을 했다. 미국의 정신을 나타내는 높은 자유주의 이상과 민주주의 이념은 미국의 國家와 국민을 결합 하는 중요한 가치다. 따라서 미국은 현실적으로 살아서 뛰고 약동하는 국가라고 말 할 수 있다.

미국 1달러 주화에 양각된 'e pluribus unum'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현실은 그의 이상과 이념을 문자 그대로 실현시켜온 것은 아니다. 미국의 고상한 이상과 이념이 오히려 저속한 문명을 창출해 놓은 결과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국의 위선적인 태도와 정책 가운데 한국에 잘 알려진 것도 있었다. 반미감정의 근원이 되고 있는 태프트-가츠라 비밀조약이란 무엇인가? 미국이 필립핀을 점령하고 식민지화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고 식민지화하는 것을 묵인해 주겠다는 비밀조약이다.

미국의 두 얼굴

그러나 미국이 오늘날 당면하는 여러 가지 문제 중의 하나는 정신적인 요소가 결핍하고 물질적 문명만 흥행한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정신적인 요소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미국사람들은 이상과 이데올로기를 너무 신봉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 중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독선적이고 자기는 하나님 편에 서있다는 행동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 한편에서는 제도와 풍습이 다른 외국 국민에 대해서는 정직하지 못하고 교활하게 외교협상에 임할 때도 종종 있다. 이른바 한미방위조약 또는 주한미군의 주둔협정 등 한미교섭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미국의 교활성과 우월성의 예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고 여러 종족이 복합적으로 구성돼 있고 능동적인 발전을 이뤄 놓았기 때문에 미국의 문화와 미국의 사회 속에는 보편성을 함유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하나님은 선택받은 청교도만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자유와 평등은 모든 인종과 종족이 공평하게 누릴 수 있다는 신념이 미국사람들에게 널리 유포돼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미국의 대중문화와 정신문화가 세계 각국에 전파되고 있는 것은 미국문화의 보편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문화같이 단일민족의 단일문화는 세계의 모든 종족에게 보편화되기는 매우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문화가 지닌 특수성은 오히려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전달되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우리 한국문화의 특수성과 미국문화의 보편성을 비교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는 미국의 대중문화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사람들은 개인주의적인 문화의 보편성을 믿고 있다. 그와 같은 미국사람들의 신념은 종종 인접국가와 외국인에게 자국의 가치체계를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경향도 볼 수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표현욕이 너무 강해서이기도 하지만, 우월주의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사회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실험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강한 의지 와 의욕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사람들은 많은 실패와 여러 가지 차질을 거듭하면서 대담한 개척의 길을 열어 가면서 발전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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