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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로서의 성취의 시간들 … 잊을 수 없는 두 가지 에피소드
학자로서의 성취의 시간들 … 잊을 수 없는 두 가지 에피소드
  • 김일평 코네티컷대 명예교수
  • 승인 2013.04.29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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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평 교수 회고록(44) 인디애나대에서의 교수 생활 2

인디애나대에서의 5년간 (1965~70)의 교수생활은 나의 개인적인 성장 면에서나 또 나의 전문직 수행에 있어서도 하나의 시금석이 됐다. 그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PC)가 없었기 때문에 매뉴얼 타자기 혹은 전기 타이프 라이터로 논문을 쳐서 콜럼비아대 대학원에 제출해야 했다. 그렇게 늦게나마 박사학위 논문을 끝마칠 수 있었던 것이 학자생활을 출발하는 데 초석이 됐다. 또한 이 시기에 우리집의 둘째 딸이 블루밍턴에서 출생했고, 또 나의 처 정현용은 인디애나 대학원에서 도서관학 석사학위를 받은 것도 무엇보다 뜻 깊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인디애나대에서 가르칠 때 월남전이 확대돼 대학생들의 군복무 면제가 없어지고 이들도 증집대상이 됐다. 때문에 대학생들 사이에 월남전 반대시위가 더욱 확대 됐으며, 이로 인해 사회적 혼란도 증가했다. 나는 월남전에 관한 특강을 많이 했는데 「현대아시아의 문제 (Contemporary Problems of Asia)」의 강의에는 한 학기에 100여명의 학생들이 등록할 정도였다. 내가 미국 정부의 아시아에 대한 정책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월남문제에 관한 강의시간에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월남전을 반대하는 여론이 조성됐다. 나는 이들 미국 대학생들이 미국정부의 아시아정책을 왜 그렇게 열렬하게 반대하는지 그들의 의견을 직접 듣고 싶었다. 자연히 토론이 전개됐다.

월남전 반대하는 학생들과 토론

대부분의 학생들은 월남전을 일으킨 것은 월맹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말했다. 나의 입장은 월남의 게릴라들은 월맹(North Vietnam)에서 내려온 첩자들이 아니라 월남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난 베트콩이 월남정부를 타도하고 공산정부를 수립하려는 것이 그들의 목표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월남에서 토지개혁과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더 많은 젊은이들이 월남정부를 전복시키는 베트콩 운동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그와 같은 사회개혁을 막는 것은 월남의 지주와 지배계급이 아니라 그들의 후원자인 미국이기 때문에 월남의 개혁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었다.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사회개혁이냐 아니면 위로부터 즉 상층 사회로부터 시작하는 개혁이냐가 대학생들의 관심사였다.

나의 분석은 ‘워싱턴의 고위급 관료와 정책결정자들은 월남에서 베트콩을 소탕하고 토지개혁을 시작해 소작농민이 자기들 자신의 토지(자영업용 토지)가 있고, 또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베트콩이 농촌에 침투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정리됐다. 그러나 사회개혁이나 농촌의 토지를 빈농에게 분배하는 것보다 월남에 무력을 증강하고 군사원조를 증가하는 것이 베트남전에 승리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정책 결정자 내부에서 우세해짐에 따라 월남전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호치민이 이끌고 있는 월맹군이 혁명으로 승리했다.

월남전은 어느 면에서 중국대륙에서 국민당 정부가 자본주의로 부패했기 때문에 공산당의 사회혁명 운동을 막지 못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보고 분석할 수 있는 전쟁이었다. 그 당시 워싱턴의 시각은 월남의 현지상황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으며 현지의 상황판단에 오류가 있었다. 이런 미국의 잘못된 정세 판단에 따라 월남전은 월맹의 승리로 이어졌던 것이며, 미국은 결국 패배당하고 후퇴를 거듭했으며 월남에서 철수 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미군 장교들 대상으로 특강하기도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후반에 나는 종종 특강을 했다. 인디애나폴리스 북방에는 미육군부관학교(U. S. Army Adjutant General School)과 국방정보학교 (U. S. Defense Information School) 가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나는 매년 특강을 했다. 부관학교는 주로 월남에 가서 사무직에 종사하는 장교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군사학교였다. 한 클라스에 40~50명의 위관급 장교들과 극소수의 영관급 장교들이 월남전에 파견되기 전에 교육을 받는 곳이었다. 이들은 주로 행정업무를 교육받고 현지에 파견되는 장교들이다.

미군 국방 정보학교 특강에 대한 공로패-1967년 8월 15일에 받았다.

대부분의 정훈장교와 정보분석장교들은 고등교욱을 받은 장교로서 ROTC 출신이 많았다. 나의 강의는 주로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국제관계를 분석해서 월남에 대한 정훈장교들의 상식을 높이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나의 특강은 대학원 학생들의 수준으로 진행됐다. 정훈장교들이 알고 싶어한 것은 중국의 영향력과 중국의 영향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였다. 내가 블루밍턴의 인디애나대에서 동남아시아의 국제관계를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들은 매우 흥미 있게 배웠다고 강의를 평가했다. 그 때문에 국방정보학교는 나에게 감사패를 증정하기도 했다. 1967년 8월 15일이었다.

인디애나대에서 가르칠 때 잊지 못할 일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한국기자들의 방문이었다. 신방과의 프로이드 알판 (Floyd Arpan) 교수는 국무성과의 계약으로 미국에 방문하는 한국인 저널리스트를 접대하고 또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주한 미국대사관의 문정관이 선발해 미국에 보내는 한국인 저널리스트(주로 KBS와 MBC에 근무하는 저널리스트) 2~3을 영접하고, 이들을 다른 국가의 저널리스트들과 함께 10여명 규모로 트레이닝(교육) 시키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경제적인 부담은 미국정부 국무성에서 지불했다. 저널리스트들은 인디애나대가 소재한 블루밍턴에 와서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을 일주일 받고 2~3명씩 조를 만들어 각 도시와 지역을 10여일 시찰하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을 관광하는 프로그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알판 교수는 우리 부부에게 한국 기자를 초대해서 점심 혹은 저녁을 대접해 주기를 기대했다. 나의 처는 인디애나 대학원에서 도서관학으로 석사학위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녁 식사는 주로 중국식당에 나가서 함께 먹고 집에 와서 식후 과일을 먹는데 약주를 좋아 하는 신문기자들은 술을 좋아했기 때문에 스카치를 한 병씩 사다 놓고 대접했다. 신문기자들은 대부분이 술을 많이 마시기 때문에 술에 취해 다음날 일어나서 그날 프로그램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알판 교수는 우리 집에서 너무 후하게 식사와 술대접을 해서 한국인 기자들을 스포일(나쁜길) 시켰다고 조롱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게 후하게 대접하는 게 한국의 따뜻한 정의 문화임을 알판 교수는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딸 잘 가르쳤다” 찾아온 어떤 학부형

인디애나대 시절과 관련, 또 하나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일이 있다. 어느날 인디애나폴리스 (인디애나 주의 수도)의 생명보험회사에 중역으로 근무하는 학부형이 나를 찾아 왔다. 나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그는 나의 연구실에 들어와서 자기의 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기 딸 주리는 매우 착한 아이였는데 엄마가 암으로 사망한 후 방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국제정치 원론을 배운 후 아주 달라졌다는 것이다. 나도 기억하는 여대생이었다.

그녀는 재능 있는 학생이었다. 그런 그녀가 ‘텀페이퍼’(과제물)를 작성할 때 매우 힘들어 했기 때문에 나는 조원도 해 주고, 또 무슨 책을 보라는 말도 했다. 또 “너는 더욱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왜 활용하지 않느냐”라고 용기를 북돋워주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용기를 내서 매우 훌륭한 과제물을 작성해 ‘A’ 학점을 받았다. 인디애나 대학 학부에 들온 후 처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졸업한 후 취업을 했는데 미국의 유명한 시사 주간지 <타임>에 취직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 내가 그의 딸을 도와주고 격려해 준 덕택이라고 하면서 점심에 초대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시간이 맞지 않아 그의 제안을 사양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면서 인디애나폴리스로 돌아갔다. 인디애나대에서 가르칠 때 있었던 매우 뜻 깊은 에피소드의 하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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