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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이 아닌 질병‘들’, 어떻게 보고 어떻게 돌볼 것인가
질병이 아닌 질병‘들’, 어떻게 보고 어떻게 돌볼 것인가
  • 장하원
  • 승인 2022.09.28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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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25 질병과 장애를 다루는 과학기술학 연구

<교수신문>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연재를 시작하며: 새 세대 한국 인문사회 연구자를 만난다

 ‘과학방역’이 소리 높여 요청되는 시대에, 질병에 대한 ‘좋은’ 돌봄은
 완벽한 과학기술로부터 자동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연루된 사람들과 사물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조정해가는 과정에서 
국소적으로 실현되는 것임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는 물리적 실재로서의 질병을 전제하지 않은 채 
다채롭게 행해지는 질병‘들’을 기록하는 현장연구가 더 많이 필요하다.

 

나의 전공이나 연구 분야,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간결하게 설명해야 할 때면 항상 어려움을 느낀다. 질병과 장애를 다루는 과학기술학(또는 과학학) 연구자라고 소개할 수 있겠지만, 생소한 분야명 때문에, 그런데도 과학에서 비켜난 의료 영역의 실천을 다루는 것에 대해 다소 장황한 설명이 필요해진다.

또 과학기술학으로 묶이는 여러 연구의 방법론적 차이에 대해서도, 질병과 장애를 함께 보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할 거리가 차오른다. 한마디로 정리해버리기에는 아깝고 복잡하고 중요한, 과학기술학자로서 몸의 문제를 탐구하는 방식에 대해 풀어서 써보겠다.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은 넓은 의미에서 문자 그대로 ‘과학기술에 대한 학문’으로, 역사학, 사회학, 인류학, 철학 등 다양한 접근을 통해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학제적 분야이다. 포괄적인 분야명보다는 그간 실제로 이뤄져 온 작업들이 과학기술학의 실제를 보여주는데, 크게 나누자면 과학기술의 사회적 영향이나 규제에 관해 다루는 연구들과 과학기술의 본성과 실행을 다루는 연구들이 주요 흐름을 이뤄왔다. 

한국에서는 주로 대학원을 중심으로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기술학, 과학기술정책 등의 전공이 운영돼 왔으며, 이때 ‘과학기술학’이라는 전공명은 사회과학에 속하는 상이한 이론들과 방법들에 기반해 과학기술의 문제를 탐구하는 연구자들을 묶어준다. 과학기술학의 명칭이나 발전 궤적이 과학기술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제한해주지 않는다는 점은 때로 연구자를 난감하게 하지만, 동시에 과학기술을 이해하기 위한 온갖 시도들에 열려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과학의 현장에서 ‘민족지’ 연구를 한다는 것

과학기술학 전공자로서 내가 주로 참고하는 연구자들은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나 아네마리 몰(Annemarie Mol) 등으로, 이들은 과학 활동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의 현장에 들어가 민족지(ethnography)를 수행해야 한다고 설파해왔다. 이들을 과학인류학자라고도 부를 수 있겠지만, 이들의 현장연구에서 독특한 점은 사람들의 행위와 사고, 세계관만이 아니라 사물들의 행위성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실험실이나 병원과 같은 현장에서 과학자나 의사는 주위의 사람들뿐 아니라 사물들과 ‘협상하느라’ 고군분투한다. ‘과학자 부족’의 일상은 현미경이나 입자가속기와 같은 기구들, 세균이나 실험동물과 같은 비인간 행위자를 적절히 다루어내기 위한 수많은 시도들로 가득 차 있고, 이러한 실천이 성공하지 않고서는 무언가를 새롭게 알아낼 수 없다.

이렇게 보면 과학에 대한 민족지 연구는 과학적 대상과 그에 관한 지식이 만들어지는 현장에서 그 속의 사람들과 사물들의 관계들과 사건들을 포착해 기술하는 작업이다. 나는 이러한 과학기술학의 현장연구 방식을 좇아 우리 사회의 질병과 장애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질병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질병이나 장애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 자체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의료인류학, 의료사회학 등의 분야가 따로 정립될 만큼 사회과학의 전통에서 질병과 건강의 문제는 활발히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회과학 연구들에서는 생물학적 실체로서의 질병(disease)과 그러한 질병을 지니는 환자의 경험이나 의미로서의 질환(illness)을 분리하고, 전자는 자연과학과 의학의 영역에 맡긴 채 후자만을 다루어왔다. 생물학적 차원의 질병 ‘외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사회학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온 것이다. 질병에 대한 당사자의 이야기는 질병이라는 생물학적 실체에 대한 환자의 주관적인 해석과 감정들, 그로 인한 일상과 정체성의 변화와 같은 사회적 실재에 대해 말해준다. 

일군의 연구자들은 한발 더 나아가 자연과학과 의학에서 질병을 다루는 방식과 그 결과 또한 사회적인 구성물이라고 주장했다. 환자의 해석과 마찬가지로 질병에 관한 의학 지식도 특정한 전문가 집단이 그 질병에 대해 공유하는 관점에 의거한 하나의 해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어떤 증상이나 몸의 차이가 어떻게 특정한 질병이나 장애로 인식되는지에 대해서는 보여주지만, 몸의 차이는 전제된다는 점에서 질병의 물리성은 분석되지 않은 채 남겨진다.

나는 바로 이 지점을 문제 삼으며, 민족지학적 연구를 통해서 질병 그 자체가 존재하는 양식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러한 기획은 네덜란드의 과학기술학자 아네마리 몰이 2002년에 쓴 『바디 멀티플: 의료실천에서의 존재론』이라는 책에서 시작됐다.

몰은 이 책에서 네덜란드의 한 병원에서 다양한 분과의 의사들과 환자들이 ‘동맥경화증’이라고 불리는 대상을 다루는 의료적, 일상적 실천을 살펴보면서, 마치 진단이나 치료와 같은 사건 ‘이전에’ 그 자체로 실재하는 듯 보이는 질병이나 몸의 차이라는 것이 사실은 특정한 장소와 상황에서 벌어지는 실천들을 ‘통해서’, 그 속의 사람들과 사물들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환자는 의사를 방문하기 전까지는 동맥경화증을 지닐 수 없으며, 환자의 몸 없이 의사는 동맥경화증을 진단할 수 없다. 

또한 질병은 환자나 의사와 같은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행위자들에게도 의존하는데, 예컨대 병리학자가 동맥경화증을 다루기 위해서는 현미경, 칼, 염료, 테크닉 등이 필요해진다. 질병은 독립적으로 실재한다기보다는 그것을 식별하고 치료하고 관리하는 구체적인 사건들 ‘안에’ 존재하며, 따라서 어떤 질병이 ‘무엇’인지, 즉 우리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답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다루는 갖가지 실천들과 그 속의 사람들과 사물들을 따라가 봐야 한다.

진료실 바깥에는 일상적인 돌봄 속에서 매순간 새롭게 감지되고 해석되고 돌보아지는, 진료실에서 진단된 자폐증과는 언제나 얼마간 다른 자폐증‘들’이 있는 것이다. 사진=영화 「말아톤」 스틸컷

현장의 질병들을 보기/돌보기

그렇다면 질병에 대한 민족지 현장연구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의 자폐증(의학에서의 공식적인 명칭은 자폐스펙트럼장애이다)에 대해서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자폐증에 대한 그간의 과학학 연구들은 특정한 증상을 자폐증으로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들을 밝혔다.

자폐증 진단을 가능하게 하는 질병 분류 체계와 진단 기준이 확립되고, 자폐증 진단을 북돋는 보험과 교육 제도가 생기고, 한편으로는 아동기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간 잘 드러나지 않거나 다르게 지칭되었던 사람들을 자폐증으로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폐증은 진단 기준이나 진단명뿐만 아니라 그것에 반응할 수 있는 몸들에 의존하며, 그것을 매순간 책임지고 다루어내는 의료적, 일상적 실천들 가운데 존재한다. 진료실에서 자폐증은 진단 기준에 의해 자동으로 ‘발견되는’ 자명한 실체라기보다는 의사 주도로 이루어지는 아동과의 상호작용과 보호자 면담 등의 실천을 통해서 사회성 발달의 문제로 가시화되는 사회-기술적 결과물이다.

하나의 자폐증이 확고하게 진단되기까지, 의사가 체화한 지식뿐 아니라 의사의 몸이 필요하며 당사자와 보호자의 몸, 이들 사이의 언어적, 비언어적 소통이 필요하다. 또한 장애가 진단되는 곳에서 흐르는 감정들과 책임들을 조절하는 실천들도 필요해진다.

또한 진료실 밖에서 자폐증은 다른 사람들과 사물들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다중적으로 존재한다. 일례로, 자폐증을 지닌 아동을 돌보는 가정이라는 현장에서 자폐증은 그것을 이해하고 잘 관리하기 위해 발달장애에 관한 각종 지식과 정보를 체화하는 보호자의 실천과 그로부터 함양된 감각이 없이는 감지될 수 없으며, 자폐증이라는 진단명의 무게에 눌려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은 채 다양한 치료를 시도하고 평가하고 더 좋은 개입으로 만들어가는 여정 가운데 존재한다. 진료실 바깥에는 일상적인 돌봄 속에서 매순간 새롭게 감지되고 해석되고 돌보아지는, 진료실에서 진단된 자폐증과는 언제나 얼마간 다른 자폐증‘들’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질병이 단 하나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물리적 실재가 아니라 다양한 실천들 가운데 다중적으로 존재한다면, 이렇게 행해진 질병‘들’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질병을 더 적절히 행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자폐증을 가시화하려는 의사의 직업적 실천이 자녀를 ‘문제’로 보지 않으려는 보호자의 양육 실천과 충돌은 어떻게 완화될 수 있을까? 자녀의 장애를 조기에 포착하는 ‘민감한’ 엄마 되기와 자녀의 속도를 ‘기다려주는’ 엄마 되기 사이의 갈등은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까? 특정한 치료법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정서적, 윤리적 부담을 덜기 위해 어떤 실천들이 필요한가? 진료실 안의 자폐증과 진료실 밖의 자폐증을 조화시키기 위해서 어떤 사건들이 더해져야 하는가?

자폐증을 돌본다는 것은 특정한 증상을 관리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의존하는 다양한 형태의 지식과 몸의 감각들, 감정들과 책임들 사이의 모순과 충돌을 조율해가는 과정을 포함한다.

‘과학방역’이 소리 높여 요청되는 시대에, 질병에 대한 ‘좋은’ 돌봄은 완벽한 과학기술로부터 자동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연루된 사람들과 사물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조정해가는 과정에서 국소적으로 실현되는 것임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는 물리적 실재로서의 질병을 전제하지 않은 채 다채롭게 행해지는 질병‘들’을 기록하는 현장연구가 더 많이 필요하다.

장하원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서울대 생물자원공학부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고,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현재 과학학과로 변경)에서 과학기술학을 전공했다. 우리 사회에서 자폐증이라는 발달장애가 감지되고 진단되며 치료되는 실천들에 대한 민족지학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 적을 두고 코로나19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새로운 감염병이 경험되는 방식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코로나19 데카메론2』(2021), 『겸손한 목격자들: 철새·경락·자폐증·성형의 현장에 연루되다』(2021), 『감염병의 장면들: 인문학을 통해 바라보는 감염병의 어제와 오늘』(2022) 등이 있다. 좋은 과학, 좋은 의료, 좋은 돌봄을 만들기 위해 질병과 장애에 관한 현장연구를 계속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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