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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유지 혹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드는 의례문화
사회 유지 혹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드는 의례문화
  • 서경원
  • 승인 2023.08.2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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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49 한국사회 의례문화의 질적 연구
서경원 전북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천하제일연구자대회’ 시즌2를 시작하며_우리 학술장의 ‘소통 공간’ 함께 키워 갑시다)

 

 

의례는 사회통합적이고 기성 체제를 유지·재생산하는 역할을 하지만, 
사회에 잠재된 갈등을 가시화하면서 기존 사회 체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사회적 재난으로 발생한 죽음에 대한 애도 의례는 
그 죽음의 원인이 되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가시화하고 
대안을 강구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가핑클의 민속방법론에서 위반실험이 잘 보여주듯, 사회적 규범을 인위적으로 깨뜨리지 않는 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당연시 여겨왔던 규범이 얼마나 우리의 행위를 제약하는지 알지 못한다. 질적연구라는 방법으로 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성찰할 수 있다. 나는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의례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에 밀착한 질적연구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죽음 기억과 죽음의례, 의례의 수행과 기억

살아 있는 생명이라면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인 죽음은 인간이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문화적 현상이 된다. 특히 연구자로서 내가 주목한 것은 의례를 통해 부여된 죽음에 대한 의미이다. 죽음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죽음에 대한 다양한 경험의 재현으로 부여된다. 한국전쟁 당시 좌우 이념의 대립이 심했던 한 농촌 마을에서 상반된 경험을 가진 구술자와의 만남으로부터 죽음에 대한 경험의 재현이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았다.

한국사회에서 죽음의 의미가 가장 극명하게 발현된 사건 중 하나가 바로 한국전쟁이다. 전시 상황에서는 일상적 의례를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쟁에서 발생한 수많은 죽음을 애도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한국전쟁에서 발생한 죽음에 대한 기억은 다양한 양상을 담고 있다. 

죽음에 대한 원초적 기억은 단순히 ‘누가 죽었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다. 아무런 기억의 변형을 거치지 않은 원형의 기억이 된다. 그러나 원형의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게 된다. 즉 죽음 이후 그 죽음에 대한 기억은 변형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때 죽음에 정상/비정상, 공식/비공식 등의 의미와 가치가 부여된다. 여기서 의례의 수행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컨대 한국전쟁 당시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공동체의 내부자로 여겨진 국군과 우익세력 주민의 죽음은 상대적으로 의례를 잘 수행할 수 있다. 그래서 정상적이고 공식적인 의미가 부여되었다. 반면에 공동체 바깥 외부자로 여겨진 인민군과 좌익세력 주민의 죽음은 의례를 수행할 수 없었고, 대부분 비정상적이고 비공식적인 의미가 부여됐다.

다른 한편으로 죽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 죽음을 애도·기념하는 의례의 방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대체로 ‘정상적인’ 의미가 부여된 죽음은 유교식 상장례나 국가의례와 같은 공식적 의례를 통해 애도·기념된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의미가 부여된 죽음은 부수적으로 무속의 천도굿이나 불교의 사십구재와 같은 비공식적 의례를 통해서 애도·기념한다. 아예 의례를 수행하지 않고 잊혀지기도 한다. 예컨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의 죽음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현충일 기념식과 같은 공식적인 의례를 통해 애도·기념된다.

반면 그 당시 국가 체제에 반하였던 좌익세력 주민과 ‘빨갱이’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부정되고 낙인이 찍혔다. 또한 국가 폭력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애도·기념할 수 없었고 유가족의 사적인 차원에서 행할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례를 통해 죽음의 감정이 특정하게 배치되는 작업은 유교 상장례의 곡(哭)에서 잘 드러난다. 사진은 조문하는 모습이다. 사진=국립민속박물관, 경남 창녕, 1993년.

죽음의례를 통한 ‘죽음 감각’의 배치

죽음의례는 죽음의 감각, 즉 ‘정동’을 배치하고 형식을 부여해 죽음이라는 비정상적인 사건의 무질서를 바로 잡고 정상화시킨다. 죽음의 원인을 특정하게 갈무리함으로써 사회적 갈등과 투쟁을 잠식시키는 의례적 봉합이 이뤄진다.

그러나 봉합된 죽음 기억은 언젠가 다시 돌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잠정적으로 통합된 기억이다. 얼마든지 망각된 기억을 다시 되살려 애도·기념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기도 한다. 한국전쟁 당시에 의례를 수행하지 못해 망각된 좌익세력 마을주민과 ‘빨갱이’의 죽음에 대한 기억은 언제든지 그 후손들이 기제사나 추도식 같은 의례를 수행함으로써 되살아나고 애도·기념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죽음의례를 통해 죽음의 감정이 특정하게 배치되는 작업은 유교 상장례의 곡(哭)에서 잘 드러난다. 안동 지역에서 상업화된 장례식이 등장하기 이전에 마을 공동체와 함께 의례를 수행할 당시 곡의 기본적인 언표는 ‘아이고’, ‘애고’, ‘어이’로 나누어져 있다.

산 자와 망자의 관계가 혈연 또는 비혈연인지에 따라서 슬픔의 감정이 특정하게 형식화되어 있다. 보통 ‘아이고’라는 언표는 부모와 자식을 중심으로 한 직계 가족 간에 슬픔을 표현할 때 쓴다. ‘애고’라는 언표는 형제자매, 백부모·숙부모와 조카 사이와 같이 방계 가족 간에 슬픔을 표현할 때 사용됐다. ‘어이’라는 언표는 비혈연관계에 있는 조문객들이 사용했다.

이같이 나는 죽음의례의 연구를 통해서 주로 의례의 사회통합적 기능뿐만 아니라, 어떻게 자의적인 사회문화적 경계가 만들어지는지도 주목하였다. 예컨대 죽음의례에서는 의례의 수행 기준으로 의례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 되지 못하는 사람, 의례를 치를 수 있는 정상적인 죽음과 치를 수 없는 비정상적인 죽음이 나누어졌다.

즉 의례를 통해 죽음에 대한 의미가 위계화되고 그 속에서 의례의 대상에 대한 포함과 배제가 이루어졌다. 마찬가지로 현대 결혼의례에서도 이러한 의례의 수행을 둘러싼 대상의 포함과 배제가 오늘날 지배적인 가족 규범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나타나고 있다.

제도화 의례로서 결혼식과 정상가족 규범

피에르 부르디외는 의례를 통해 부여되는 사회적 경계선의 자의적 속성에 관심이 있었다. 이를 제도화 의례 또는 신성화 의례라고 정의했다. 예컨대 의례를 수행한 사람과 수행하지 못한 사람 간에 차이가 만들어지고 사회적으로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학위를 취득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들 수 있다. 

한국사회의 결혼의례에서는 의례를 수행하는 데 적합한 조건을 갖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정당화되는 문화가 있다. 우리 사회는 통상 두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정상적인 가족으로 정당화하고 이 경우에만 의례를 수행할 조건이 충분히 갖춰져 있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외 다양한 형태의 경우에는 비정상적인 가족으로 여겨지고 의례를 수행할 조건이 불충분한 것으로 본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정상적인’ 가정환경이라는 조건은 마치 상징자본처럼 기능하면서 결혼식이라는 핵심적 사회 의례 속에서 ‘가족 시연(Displaying families)’을 통해 드러내 보여주어야만 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상징자본은 개인과 가족의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고 사회적 인정을 얻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는 이혼율이 증가하면서 한부모가정, 재혼가정, 조손가정 등 부모의 존재가 결핍된 형태의 가족과 함께 다문화가정, 동성가족 같은 매우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결혼의례를 통해 정당화되고 있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그 속에 포함되지 못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배제하고 소외시키는지에 대한 문제를 따져 보는 일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특히 결혼식의 혼주를 누구로 정할 것인지의 문제는 누가 나의 진정한 가족인지를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보여주고 인정받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정상가족 규범에 따르면 두 부모가 혼주가 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지만, 조손가정, 친척가정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들에게 진정한 가족으로 여기는 대상이 부모가 아니라 부모 역할을 대신 해줬던 조부모나 친척 어른이 될 수도 있다. 또한 한부모가정, 이혼가정에서는 사이가 좋지 않은 두 부모 사이에서 또는 각자 부모가 재혼했을 경우 그 파트너와 친부모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할지가 딜레마가 되기도 한다. 

의례의 사회적 기능과 의미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일생에 중요한 사건인 죽음의례와 결혼의례는 각기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갖는다. 죽음의례의 연구에서는 죽음이 야기하는 사회적 혼란과 불안을 의례가 어떻게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고 죽음에 대한 특정한 감각, 즉 정동을 배치하여 규율하는지를 분석하였다.

결혼의례 연구에서는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 중심의 정상가족 규범이 의례를 통해 제도화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의례가 기존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와 규범을 어떻게 재생산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의례는 사회통합적이고 기성 체제를 유지 재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사회에 잠재된 갈등을 가시화하면서 기존 사회 체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사회적 재난으로 발생한 죽음에 대한 애도 의례는 그 죽음의 원인이 되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가시화하고 대안을 강구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결혼의례에서도 최근 물질적이고 과시적이며, 불평등한 젠더 관계를 재생산하는 관습적인 결혼식 문화에 저항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의례를 수행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두 의례의 연구를 통해서 기존 사회 체제가 재생산되는 과정과 다른 한편으로 그 안에서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가 길항하고 사회문화가 변화할 가능성이 생겨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는 한국사회의 미시적 생활세계의 재생산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또한 그 안에서 변화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 나는 오늘날 결혼의례의 연구를 통해서 현대 한국사회에서 가족관계가 어떻게 전통적인 규범 속에 정형화되어 있으면서도 가족협상을 통해 역동적인 변화과정을 경험하는지 분석할 예정이다. 이는 그동안 결혼의례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던 의례적 행위를 실천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경원 전북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안동대 민속학과(현재는 문화유산학과로 명칭이 변경됨)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쳤다. 민속학은 민중들의 생활풍습을 연구하는 분야로 의식주 문화, 민속종교와 의례, 민속예술과 놀이, 설화와 민요 등 연구하는 영역이 폭넓고 주로 구술사 연구를 기반으로 한다. 이 덕분에 학부 때부터 농촌 마을에 들어가서 마을주민과의 면담을 통해 그들의 구술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현재는 전북대 사회학과에서 미시적 결혼의례 과정의 역동성을 포착하는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석사학위논문을 요약한 「죽음의례의 문화적 기억과 정동의 배치: 한국전쟁에서 발생한 죽음 기억을 중심으로」(2021)와 「한국 결혼식 문화 속에서 개인과 가족의 인상 관리와 감정 수행성 체계: 온라인 커뮤니티 사례를 중심으로」(202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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