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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동자를 집으로 돌려 보내라’…누가 아이를 키울 것인가
‘여성 노동자를 집으로 돌려 보내라’…누가 아이를 키울 것인가
  • 김란
  • 승인 2023.06.28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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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43 보육을 둘러싼 ‘한·중 가족주의’ 비교 연구
김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천하제일연구자대회’ 시즌2를 시작하며_우리 학술장의 ‘소통 공간’ 함께 키워 갑시다)

 

 

한국에서는 아이를 적게 낳으려는 1950년대의 의지가 
21세기에는 출산 거부의 의지로 전화된 것이 아닐까. 
중국은 개혁개방기 이후 여성 노동자를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부녀회가’(婦女回家)를 시도했다. 
1980년대에 부상한 ‘과학 육아’ 담론도 그 연장선에 있다. 
아이 양육에 올인하는 엄마를 ‘이상적인 엄마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엄마들이 ‘녹색어머니회’라는 깃발을 들고 등교 지도를 한다. ‘어머니’란 표현을 쓰는 것도 어색하다. 실제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많이 보인다. 깃발을 대신 들어줄 알바를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사실 등교 지도는 학교나 경찰이 책임져야 하는 것인데 왜 일하러 나가야 하는 엄마들이 해야 하는 걸까? 아마도 과거에는 엄마들이 대부분 전업주부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일을 엄마와 가족이 감당하기 쉽지 않다. 결국 녹색어머니회는 일종의 문화지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성 노동자와 전업주부, 그리고 저출산

지금처럼 많은 여성이 대학에 진학하여 고등교육을 받는 시대에 여성이 노동을 통해 자기실현을 하는 것은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당연한 규범이 되었다. 그러한 규범의 변화가 제도적 변화로 잘 뒷받침되는지 따져보는 것은 학술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여성과 청년 여성의 규범은 변화했을지 모르겠다. 이를테면 가정(결혼과 양육)보다는 일을 중시하는, 또는 둘 다 중시(워라벨)하는 관념이 정착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노동을 통한 자기실현을 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높은 벽에 부딪힌다.

여성 청년들의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매우 부정적 응답(이른바 결혼과 출산 거부)은, 아마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규범과 미래에 겪게 될 여성으로서의 삶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에 대한 ‘합리적’ 반응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가장 큰 벽은 출산과 양육이다. 흔히 이야기하듯 이러한 벽이 지금의 초저출산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자란 유아 시절, 나의 아버지는 아주 먼 지방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단위(국가가 관리하는 작업장)에서 일했다.

어머니는 출근하면서 나와 내 동생을 건물 내에 있는 단위 탁아소에 맡기고 근무 중에도 수시로 와서 수유하거나 돌볼 수 있었다.(중국에서는 1950년대에 기혼 여성 20인 이상 직장이면 탁아소와 수유실 설치가 의무화되었다.) 물론 회식이나 출장은 거의 포기했다. 힘들긴 했지만, 경력 단절 없이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다. 

‘엄마는 마음놓고 생산하러 간다’는 내용의 1953년 선전화. 작가= 張樂平

그런 경험 덕분에 나는 중국이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기의 보육과 연관된 역사적 유산이 궁금해졌다. 1950년대에 국가 지도자들이 여성을 노동자로 호명하고, 가정주부를 ‘기생충’으로 비난하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여성 노동자 정체성이라는 중국 사회의 역사적 유산이 매우 독특한 것이며 현재까지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1980년대에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노동유연화가 진행되면서 일종의 장기 육아휴직인 ‘단계성 취업’을 도입하려던 시도가 있었다. 여성들은 잠깐 쉬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 많이 쉬면 경력 단절이 된다면서 장기 육아휴직을 거부했다. 결국 이 조치는 시행되지 않았고, 역설적이게도 여성들은 ‘해고’되거나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아직도 중국에는 출산휴가만 있고 서구와 한국에서 긍정적으로 간주되는 장기 육아휴직이 존재하지 않는다.)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동아시아 가족주의

나는 박사논문으로 여성들이 경험하는 가장 중요한 벽이라 할 수 있는 출산과 보육 문제를 탐구하기로 했다. 살펴보니 한국의 기존 저출산에 관한 연구와 정책은 서구와 북유럽 모델의 수용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서구와 유럽은 아시아와 많이 다르다. 나의 어린 시절 경험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중국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통계만 놓고 볼 때, 과거의 공적 탁아소가 거의 사라진 중국이 상대적으로 무상보육이 달성된 한국보다 여성 취업률이 높고, M자 곡선도 나타나지 않는다.

저출산에 진입하고 있지만 중국이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높다는 점도 의아했다. 이는 나를 비교역사사회학이라는 방법론으로 이끌었다. 

한국과 중국 사회를 비교하는 기존 연구는 ‘탈사회주의’ 관점과 ‘유교 가족주의’ 관점이 지배적이다. 탈사회주의 시각은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자본주의 사회와 동일한 경로로 나아간다는 것을 전제한다. 따라서 개혁개방 이전의 역사는 대체로 간과하고, 개혁개방 이후에 비로소 현대화가 시작되는 것처럼 여기면서 20세기 후반의 근대화 이론과 유사하게 사회발전의 단계를 상정한다.

유교 가족주의 관점에서는 한국과 중국을 지나치게 유사하게 본다. 한국과 중국은 핵가족과 확대가족의 차이만 있을 뿐 유교적이고 가부장적 가족주의는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가족주의가 유사하다는 전제를 가지면 국가별 차이를 보기 힘들어지고, 역사적 맥락을 고찰하기 어려워진다. 이를테면 동북아시아는 모두 조부모 보육을 많이 하므로 다 비슷하다는 식이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봐도, 자본주의 체제인 대만에서는 가족주의가 강하지만,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여성의 경제활동 비율이 높고 경력 단절도 한국보다 훨씬 낮아 M자 곡선도 형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거시적인 체제나 이념보다는 각 나라의 ‘중범위적(middle-range)’ 제도의 구체적인 진화 과정을 설명하는 비교역사적 설명이 필요하다. 특히 역사적으로 형성된 인과성을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 첫 여성 트랙터 운전사 량쥔이 운전법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인민화보> 1950년 2기 수록

가족이 여성 노동을 지탱하는 ‘역설적 공공성’

이런 문제의식과 시각에 따라, 나는 박사논문에서 ‘보육체제’ 분석틀을 구상했다. 1950년대 이후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보육체제 변동을 각각 형성기·이행기·저출산기 3시기로 구분해 분석했다. 보육체제에서 핵심 분석 대상은 ‘여성 보육부담’이었다. 사회제도와 보육실천이 얼마나 여성의 부담을 줄여주느냐를 분석의 포인트로 삼았다. 

앞서 제기한 질문인, 왜 중국이 한국보다 여성 취업률이 높고, 경력 단절이 낮은가란 질문을 중심으로 간단히 소개해보겠다. 중국은 보육체제 형성기인 1950년대~1970년대까지의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기에 여성도 직장을 갖도록 하되 단위탁아소(직장탁아소)의 구축을 병행하였고 이것이 문화적으로 여성 노동자 정체성과 맞벌이 부부 모델을 형성하였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행기에 공보육 체제가 와해되면서 중국은 조부모 보육으로 여성 노동자 되기를 유지하고 있다.

조부모 보육은 보육리스크 사사화(privatization)의 극단적인 예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역사적 해석을 추가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기의 여성 노동자 정체성이라는 역사적 유산이 아직 남아있는 상황에서 가족주의와 ‘연동’되어 보육실천이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여성들은 전업주부가 아니라 여성 노동자로 지내는 것을 규범적으로 당연시한다.

따라서 결혼 후 며느리는 조부모에게 “자신이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자녀를 돌봐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는 개인 수준의 요구라기보다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규범이다. 사실 중국의 시어머니들도 젊었을 때는 노동자였다. 그래서 손자녀를 돌보지 못하는 중국 조부모들은 손자녀 양육비를 부담하기도 한다.

이처럼 여성 노동자 정체성과 부계 중심의 가족주의가 결합되어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지탱되는,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을 지탱하는 ‘역설적 공공성’이 작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가족이 여성 노동을 지탱하는 그야말로 역설적인 공공성이며, 위태로운 공공성이다.

최근 들어 중국에서는 공공탁아소도 거의 사라졌고, 여성을 가정주부로 ‘회가(回家)’(여성 노동자를 집으로 돌려보내라)시키려는 압력이 강화되고 있다. 중국도 이제 저출산 시대에 접어들고 있으며, 그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이 역설적 공공성이 얼마나 더 갈지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다. 

‘탁아소 잘해서 여성노동력 해방하자’는 내용의 1958년 선전포스터. 작가=黄中胄

여성 노동자 정체성과 맞벌이 부부 모델

한국의 경우, 무상보육이 실현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여성의 보육 부담을 확연히 줄이지는 못하고 있어서 ‘보충적 공공성’이라고 규정하였다. 여성 노동자 정체성이 역사적으로 정착하지 못해 실제로는 맞벌이 부부가 많은데도 남성 외벌이 규범이 강력하다.

기혼 여성 노동자의 소득이 어느 정도 되지 않으면 “집에서 아이를 보는 게 낫지 않겠냐”는 지적을 받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거절 못 하는 ‘친정엄마’에게 양육을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육 기관과 초등학교 모두 하원과 하교 시간이 아직 맞벌이 모델에 제대로 맞추어져 있지 않다. 육아휴직을 둘러싼 기업의 보수성과 과로 문화도 문제다. 

중국과 한국의 강력한 가족주의는 유사한 조건이다. 나는 가족주의라는 매우 모호한 관념의 차이보다는, 유사한 가족주의라도 여성 노동자 정체성과 맞벌이 부부 모델이라는 가족 모델의 차이가 가족과 보육의 실제적인 작동에 차이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양국의 비교는 저출산 문제를 보는 시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성 보육 부담을 줄이는 정책이 여성 노동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서 나오느냐, 저출산 극복을 위해 나오느냐에 따라, 보육체제를 ‘여성 노동 중심 모델’과 ‘저출산 중심 모델’로 유형화하기도 했다.

여성 노동 중심 모델은 남성 외벌이 문화를 변형시키기 때문에 가족 모델을 일정 정도 맞벌이 모델에 가깝게 변형시킨다. 반면 저출산 중심 모델은 ‘모성’보호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가족주의는 손대지 않고 가임 여성의 출산 여부에 집중한다. 

여성 불도저 운전사의 모습니다. <인민화보> 1951년 4기 수록

역사적 비교를 통해 현재의 차이를 보다

사실 공식적으로만 비교하면 여러 면에서 중국의 제도적 상황이 한국보다 훨씬 열악하다. 앞서 여성 취업률과 경력 단절에 관한 질문도 잘 해결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비교해야 현재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비교역사사회학으로 보육체제를 비교하는 시각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사고 전환의 또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중국의 여성 청년들에게는 아직 결혼과 출산 거부 문화가 한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는 중국 여성들의 가족관이 보수적이라기보다는, 결혼과 출산이 부담의 시작이라는 인식이 약하기 때문일 수 있다. 다시 말해 결혼을 해도 여성이 일을 그만두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것이다.

한국 여성 청년들은 결혼이 경력 단절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인식도 한국 여성들이 개인화되었다는 증거라기보다는 외벌이 가족 규범의 압력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정밀한 논증을 위해서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 한국은 한국전쟁 후 전쟁미망인 등이 늘며 기혼 여성 노동자가 급증했다.

하지만, 이들의 자녀 보육에 국가와 사회가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기혼 여성 노농자들은 이중삼중의 부담에 시달렸다. 그래서 당시의 한국 여성들은 1960년대에 시행된 산아제한을 환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를 적게 낳는 것만이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이를 적게 낳으려는 1950년대의 의지가 21세기에는 출산 거부의 의지로 전화(轉化)된 것이 아닐까하는 질문을 해본다. 

나는 보육을 둘러싼 가족주의 문제를 비교역사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중국 개혁개방기 이후 중국 정부와 기업, 사회가 어떻게 ‘부녀회가’를 시도했는지 그 담론과 정책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탐구했다. 기업들은 직장탁아소가 기업의 이윤과 생산성에 도움이 되지않고 부담이 된다며 탁아소를 없애고 여성 고용을 줄이기 시작했다. 

또한 중국에서 1980년대부터 부상한 ‘과학 육아’ 담론을 <부모필독>이라는 중국 대표 육아 저널을 통해 분석했다. 과학 육아 담론은 서구육아법을 표방하면서 아이 엄마가 보육의 일차적 책임자임을 끊임없이 주장하기에, 이행기 부녀회가라는 큰 흐름 속에 있다. 그러면서도 이 잡지는 애매하게도 여성이 전업주부로 지내야 한다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성이 바깥에서 일하면서 잡지가 요구하는 과학 육아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결국 과학 육아 담론은 아이 양육에 올인하는 엄마를 ‘이상적인 엄마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인 셈이다. 나는 앞으로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은 중국 사회의 보육, 가족과 관련된 제도의 형성과 현재 모습을 주로 연구하면서, 중국의 문화와 청년 등 중국 사회의 현안 문제도 지속적으로 탐구할 생각이다.

김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2022년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현대 한국과 중국 보육체제 변동에 관한 비교연구: 보육공공성과 가족주의를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2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박사논문상을 받았다. 가족과 보육, 청년, 문화 등에 대한 한국과 중국사회 비교연구 작업에 주력하되, 특히 생활세계와 연관된 양국의 제도적 차이에 관심이 많아서 중국을 주요 대상으로 동아시아 사회를 비교역사적으로 연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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