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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처리 기술, 집단적 기억상실증과 정신 조작의 문화 장치
쓰레기 처리 기술, 집단적 기억상실증과 정신 조작의 문화 장치
  • 임태훈
  • 승인 2022.09.07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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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23 쓰레기의 기억학, 인류세 문학의 기록

<교수신문>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연재를 시작하며: 새 세대 한국 인문사회 연구자를 만난다

 

쓰레기장은 소비 대중의 집단적 기억상실증을 고질화하고 
소비주의적 일상에 쉽게 몰입하게끔 면죄부를 주는 장치다. 
실내와 거리에 비치된 크고 작은 쓰레기통부터 
광역시마다 거느린 거대한 부지의 쓰레기 매립장에 이르기까지 
기억상실증과 사유의 중단을 활성화하는 장치들에 현대인은 에워싸여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가 사용하고 있는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는 2025년 8월에 사용 종료된다. 수년 내에 대체 매립지가 정해지더라도, 5년 평균 연간 300만 톤에 달하는 쓰레기를 처리하려면 쓰레기 매립지 수요는 앞으로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주요 광역시와 지방 중소도시의 쓰레기 문제 역시 심각하다.

불법 폐기물로 뒤덮인 쓰레기 산의 숫자는 전국에 327곳이나 되고, 해마다 100곳씩 늘어나고 있다. 겹겹이 쓰레기로 덮인 인류세의 지층 위에서 소비 대중의 일상은 계속된다.

이 사회의 인간을 정의하는 척도, 쓰레기

쓰레기 문제는 현재 진행형의 대재앙이지만, 소비 대중의 쓰레기에 대한 인식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안일하다. 쓰레기를 쉽게 잊어버린다. 이 기억상실증은 만성적이며 집단적이다. 단언컨대, 이 사회의 인간이 무엇인가를 정의할 가장 적나라한 척도는 ‘쓰레기’다.

한 인간의 신체와 정동에는 거주 공간과 에너지, 생산과 소비, 쓰레기 배출로 이어지는 도시 물질대사의 구조적 변화가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쓰레기와 인간을 묶는 정신분석이란 유물론적일 수밖에 없다. 무의식 역시 유무형 장치들의 연쇄와 작용의 총합에서 생겨나는 외부화된 의식성을 통해 발견된다. 무엇인가를 쉽게 잊을 수 있다는 것은 개개인의 의지나 기질의 차원에서 좌우되는 문제가 아니다.

광역 쓰레기 매립장과 하수종말처리장, 종량제 봉투와 분리수거장, 화장실 배수구와 정화조는 집단적 기억상실증과 사유의 중단을 활성화하는 장치들이다. 이것들의 배치와 구성은 어떻게 기억과 망각의 회로를 이루고, 한 시대의 인간형 구성에 개입될까? 이것이 이 연구의 핵심 질문이다. 

이 연구는 1978년부터 현재까지의 쓰레기 처리 제도의 변화와 소비 대중의 기억 문화가 재구성되는 원리를 밝히려 한다. 그래서 생활 개선론에 머물러 있는 계몽적 쓰레기 담론의 비판적 갱신을 목표로 한다. 적어도 이 연구에선, 불성실한 분리수거를 문제 삼는다거나 무단 쓰레기 투기를 비판하는 일은, 쓰레기 버리기의 일상적 기쁨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우선될 수 없다.

모든 사물은 기억·망각을 매개하는 장치가 될 수 있으며, 도시 물질대사의 흐름 속에서 쓰레기로 처리된다. 종량제 봉투, 분리 수거장, 하수구와 정화조, 쓰레기통에는 도시 대중의 집단적 기억·망각이 구성되는 특유의 Siganal 대비 Noise(S/N)의 비율이 작용한다. 문학은 이 현상을 관찰한 임상 기록으로 재발견된다. 

사생활의 가장 내밀한 기록들

쓰레기는 더럽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지지 않는다. 이것들은 사생활의 가장 내밀한 기록인 동시에 누구도 기억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분류된다. 여기에는 개개인의 결정만이 아니라 사실상 사회 전체가 연루된다. 공공행정에서 관리하는 폐기물 처리 시스템은 배출자의 ‘외부화된 기억’을 익명화하고 눈에 띄지 않도록 처리해서, 일상적 망각이 반복적으로 완수되게 하는 공공 서비스이다. 이를 통해 소비 대중의 기억상실증은 고질화하고 소비주의적 일상에 간편히 몰입할 수 있게 된다.

한국 소비 대중의 기억 문화와 쓰레기의 상관관계에 접근하려는 이 연구에선, 거시적인 제도나 담론의 역사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장면, 개개인의 정동과 미시적 일상의 세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텍스트, 다시 말해 ‘문학’이 필요하다.

이러한 접근에는 쓰레기와 기억, 환경과 제도 변화에 연동되는 인간형의 재구성을 다룬 작품이 필요하다. 이 연구에선 이것들을 ‘인류세 문학’이라는 분류로 정의한다. 인류세 문학에는 메갈로폴리스 팽창기에 초대형 쓰레기 매립지의 탄생과 함께 구성된 인간형이 공통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이를 전제로 본 연구가 밝히려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의 탄생과 폐쇄까지의 역사(1978~1993)를 통해 직매립 쓰레기 처리 제도의 패러다임을 비판한다. 난지도는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 지정과 관리의 원형이기도 하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은 서울 시민의 거대한 타임라인이었다.

이 도시에서 아이가 태어나 청소년으로 자라고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족의 일상을 채웠던 일체의 사물이 난지도로 환류했다. 정연희의 『난지도』(1984), 유재순의 『난지도 사람들』(1985),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2011)을 중심으로, 쓰레기의 역사와 문학의 접점을 찾는 본 연구의 궁극적 목표를 분명히 설정한다.

쓰레기와 아파트, 저장강박증, 그리고 살처분

둘째, 쓰레기 처리 제도의 전환점을 가져온 에너지 소비 구조의 변화를 살펴본다. 연탄에서 LPG와 LNG 등의 대체 에너지 난방구조로의 전환은 새로운 폐기물 처리 정책인 ‘쓰레기종량제’를 가능케 한 전환점이었다. 1990년부터 1996년까지 매년 10만 호씩 건설된 아파트는 에너지 소비 구조와 쓰레기 정책이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던 주거 환경이었다. 변화된 주거 환경은 새로운 계급의식과 소비문화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전개된 소비 대중의 기억 문화 변동을 밝히고자 한다.

셋째, 쓰레기 종량제 시행 이후, 쓰레기와 아파트, 기억 문화의 상관관계를 고찰한다. 쓰레기 처리에 관련된 제도와 기술 일체는 집단적 기억상실증과 정신 조작의 문화 장치라는 것은 이 연구가 밝혀내려는 핵심 주장이다.

쓰레기장은 망각에 맞서 기억을 유지하고 의미를 탐구하는 장소가 아니라, 소비 대중의 집단적 기억상실증을 고질화하고 소비주의적 일상에 쉽게 몰입하도록 의식을 중단시키는 장소다. 실내와 거리에 비치된 크고 작은 쓰레기통부터 광역시마다 거느린 거대한 부지의 쓰레기 매립장에 이르기까지 기억상실증과 사유의 중단을 활성화하는 장치에 현대인은 에워싸여 있다.

종량제 봉투, 쓰레기 매립장, 분리수거장, 정화조 같은 것과 함께 동시대 한국 소설을 읽는 연구다. 누군가 쓰레기를 버리는 장면, 무엇을 쓰레기로 취급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를 눈여겨보는 독해가 중요하다. 이를 통해 한 시대를 특징짓는 인간형의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인간이란 무엇을 기억할 수 있고, 반대로 쉽게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눈에 안 보이면 마음에서 멀어지고, 쉽게 버리면 쉽게 잊을 수 있는 쓰레기 문화는, 자의든 타의에 의해서든 세계를 편집적으로 인식하는 요령이다. 한 인간이 안정감과 존엄을 경험하는 자아의 일관성 역시 묻어버리고 거리를 둔 사물의 절취선에서 획득된다. 함께 검토할 문학 작품으로는 하성란의 「곰팡이꽃」(1997), 「옆집여자」(1997), 황지우의 「물질적 남자」(2003)가 있다.

넷째, ‘저장강박증’에 사로잡힌 이들의 이야기를 고찰하려 한다. 쓰레기가 처리되는 장소와 사유 재산의 경계가 극단적으로 교란되는 사례다. 이 문제는 뜻밖에도 도시 재개발 사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규모 생활권이 쓰레기 취급을 받고 해체되어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되는 과정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반복됐다.

이 세계에서 생존하려면, 경제성에 따라 사물을 재빨리 판별하고 효율적으로 이윤 추구에 몰두하는 의식 체계에 익숙해져야 한다. 저장강박증은 이 문제에 대한 과잉 적응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해하는 저항이기도 하다. 관련 소재의 소설뿐만 아니라 최근 특징적으로 발표되고 있는 ‘특수 청소’와 관련 서사들도 비판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다섯째, ‘저장강박증’과 ‘도시 재개발’과 함께, ‘살처분’은 이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의 하나다. 우리는 감당하지 못할 것들을 쓰레기로 버리고 빨리 잊어버린다. 해마다 반복되는 가축들의 살처분도 그중 하나다. 코로나 팬데믹이 온 세계를 휩쓸었던 지난 1년 동안에도, 돼지열병과 조류 인플루엔자가 창궐했다. 병에 걸린 인간들의 숫자를 세는 일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탓에, 가축을 휩쓸고 간 죽음의 행렬은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상태로 방치됐다.

살처분 대상 가축의 상당수는 치료제를 쓰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생명이지만, 시장에 유통할 수 없는 상품이 된다면 살려둬야 할 이유가 없게 된다. 방역과 경제 논리 모두를 붙잡을 손쉬운 해결책은 모조리 쓰레기로 취급해 땅에 묻는 것이다. 불투명한 땅의 표면은 지하에 매장된 것들을 종량제 쓰레기봉투처럼 감춘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어디라도 기억상실증의 표면이 아닌 곳이 없다. 이런 현실을 애써 기억하려는 문학을 찾아야 한다.

인류세 문학은 현실과 불화하며 기록을 남긴다

쓰레기는 우리 시대의 몸과 마음, 환경에 닥친 총체적 위기다. 근본적인 해결이 더딘 이유는 집단적 기억을 교란하는 쓰레기 제도와 문화의 특징 때문이다. 망각은 대상과 사건의 소멸이 아니라 집단적 사고 중지에 불과하다. 파국은 오래전 닥쳤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사고 전환은 더디기 짝이 없다. 인류세 문학은 이런 현실과 불화하며 기어이 기록을 남긴다.

어떤 현재를 살아가든 과거로부터 켜켜이 쌓인 쓰레기 더미 위를 벗어날 수 없고, 우리가 손에 쥔 신상이 제아무리 고급스러워도 결국 쓰레기가 될 것에 불과하다. 소비의 기쁨은 과거를 단절하고 미래로부터 충분한 거리를 뒀을 때 한층 증폭된다. 우리가 욕망하던 것을 구입하고 밝게 웃을 때, 그 미소의 뒤편에 도사린 공허함을 쏘아보는 문학을 외면해선 안 된다.

쓰레기가 되어 외부화된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지면 아래에 뿌리처럼 붙어 다닌다. 그래서 어떤 일이 다가오고 있는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좋은 시절이 오긴 올까?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재앙이 쓰레기 취급을 했던 모든 것들의 귀환이라면, 그것으로부터 도망칠 방법조차 없다면, 지금 당장 할 일은 분명하다. 대체 이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제를, 지금을, 그리고 내일을 똑똑히 주시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임태훈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문학사의 접점을 연구하고 있다. 이 글에서 설명한 ‘쓰레기의 기억학’은 한국학진흥사업단 21세기 한국문화총서 선정 과제인 「쓰레기 기억상실증 : 인류세 문학의 기록 (1978-2025)」을 소개한 것이다. 대표 저서로는 『검색되지 않을 자유』, 『우애의 미디올로지』 등이 있고, 『기계비평들』,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를 기획하고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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