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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퀴어 연구는 젠더를 어떻게 다시 질문하는가
트랜스젠더퀴어 연구는 젠더를 어떻게 다시 질문하는가
  • 루인
  • 승인 2022.05.25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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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⑪ 트랜스젠더퀴어 연구

<교수신문>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연재를 시작하며: 새 세대 한국 인문사회 연구자를 만난다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과 죽음은 트랜스젠더퀴어 연구가 
오랫동안 던진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진다. 
왜 남성과 여성이라는 범주는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범주를 지속하는 행위는 
가부장제, 결혼제도, 이성애규범성, 한국의 군사주의와 병역제도, 주민등록제도에 기반을 둔 
모든 시스템, 의료 시스템을 비롯하여 화장실과 기숙사를 포함한 
모든 건축물의 구성과 공공 장소의 이용 조건 등을 포괄하는 
사회 전반적인 체제의 토대처럼 기능한다. 

 

지난 2월 27일, 서울 신촌에서 변희수 하사 1주기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과 죽음은 트랜스젠터퀴어 연구가
오랫동안 던진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진다. 사진=루인

2022년 2월 27일, 서울 신촌에서는 변희수 하사의 1주기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변희수 하사는 2020년 1월 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하고 여성 군인으로 계속 복무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육군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긴급구제를 결정하고, 성소수자 단체를 비롯한 많은 인권 단체의 규탄과 비판에도, 변희수 하사의 성전환 수술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지 6일 만에 강제 전역을 결정했다.

이후 강제 전역 취소를 위한 소송이 진행되었는데, 재판 진행은 지지부진했다.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던 2021년 2월 27일, 변희수 하사는 세상을 떠났다. 변희수 하사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재판이 시작되었고 최종적으로 전역 처분은 취소되었다.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인 1주기 추모제에서는 활동가와 지인 등의 발언과 추모 퍼포먼스가 있었고, 변희수 하사의 죽음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육군, 국방부, 그리고 정부의 태도를 규탄하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그 행사에 참여했던 나는 이 행사가 한국 사회에서 젠더를 둘러싼 논의의 지형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변희수 하사 추모제로 시작한 이 글은, 변희수 하사를 통해 제기된 수많은 고민거리 중 극히 일부, 젠더 범주 혹은 젠더를 둘러싼 이해·인식의 정치를 중심으로 현재 한국 사회의 젠더 논의 지형을 살피고자 한다. 이를 통해 질문을 재구성하는 작업의 중요성과 함께, 죽음을 피해자 되기의 증거나 어떤 도구로 이용하기보다 분노와 변혁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정동의 집합으로 논하고자 한다.

트랜스젠더퀴어를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

통상 트랜스젠더퀴어는 개인의 젠더 정체성으로 이해되고, 그래서 정체성 혹은 정체화한 개인을 지칭하는 정체성 정치의 언어, 타고난 본질적 정체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트랜스젠더퀴어와 관련한 논의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미국에서는 1990년대 들어 트랜스젠더를 정체성이기보다 정치적 분석 범주로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한국 역시 최소한 2000년대 중반 즈음부터 정체성 정치의 의미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정치적 범주로 사용하는 흐름이 등장했다. 트랜스젠더퀴어를 정체성으로 이해하는 방식보다 정치적 범주, 즉 지배적 젠더 규범과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이들의 실천과 논의 및 이들을 향한 사회적 주목, 규제, 비난 등을 사회 구조적 의제로 이해하는 방식은 트랜스젠더퀴어와 관련한 논의 지형을 바꾸는 토대가 된다.

이런 변화는 현대 트랜스젠더퀴어 연구의 초석이 된다. 트랜스젠더퀴어 개인의 개별적 경험을 설명하는 작업으로 논의가 제한된다면, 그것은 트랜스가 남성이거나 여성일 정당성을 논하는 작업으로 국한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범주로 사유한다면, 트랜스젠더퀴어를 비규범적, 이상한, 특이한 존재로 상상하는 바로 그 사회적 태도를 문제 삼을 수 있다. 인간은 왜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만 존재한다고 상상하는가? 인간을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만 상상하는 태도는 정말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존재 양식인가? 아니면 인간을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만 존재하도록 강압하는 사회적 장치가 자연질서처럼 작동하고 있는 것인가? 인간이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만 존재하도록 하는 인식은 인간 다양성을 매우 단순하고 간편하게 분류할 수 있고, 지배와 피지배, 권력과 억압의 이원 체제로 관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범주에 속하지 않는 모든 범주는 위협, 기이함으로 추방함으로써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만 존재하도록 하는 공포를 생산할 수 있다. 이것은 트랜스젠더퀴어를 정체성으로 한정하기보다, 정치적 분석 범주로 다시 설명할 때 질문을 완전히 바꾸고 사회 체제를 새롭게 인식·포착하는 방식이 된다.

변희수 하사가 남긴 질문을 연구에서 수용하기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과 죽음은 트랜스젠더퀴어 연구가 오랫동안 던진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진다. 왜 남성과 여성이라는 범주는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범주를 지속하는 행위는 가부장제, 결혼제도, 이성애규범성, 한국의 군사주의와 병역제도, 주민등록제도에 기반을 둔 모든 시스템, 의료 시스템을 비롯하여 화장실과 기숙사를 포함한 모든 건축물의 구성과 공공 장소의 이용 조건 등을 포괄하는 사회 전반적인 체제의 토대처럼 기능한다.

다른 말로 남성 아니면 여성이라는 인간 분류 체계를 지속하는 행위는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현재 한국 사회의 논의 체계, 사회 체제, 차별과 억압 구조 모두를 재생산하고 지속시키는데 공모하는 것과 같다. 누가 여성이고 누가 남성인가라는 질문은 누가 병역 의무에 적합한 몸이며, 누가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몸이며, 누가 성별이분법으로 분명하게 나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몸인가를 질문하도록 한다.

다시 이 질문은 어떤 몸 경험을 보편적 경험으로 가정하고, 이 가정은 다시 어떤 몸 경험을 특이하거나 특수한 상황으로 추방하는가를 질문하도록 한다. 사회 제도만이 아니다. 설문지를 통해 연구를 진행할 때면 첫 번째 질문은 보통 성별 구분이다. 그 구분은 남성 아니면 여성의 양자택일로 구성된다. 이와 같은 설문지의 구성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인간의 조건을 규정하고, 이 연구가 가정하는 인간의 범주, 인간의 조건을 이미 선언한다.

나를 비롯한 많은 트랜스젠더퀴어는 이 설문지의 첫 번째 문항을 접하는 순간 설문에 참여하기를 포기한다. 내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 연구가 가정하는 인간의 범주가 매우 협소하고 이분법적 세계관, 이원 젠더 체제에 기반을 둔 인간관을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퀴어 연구가 계속해서 문제 삼는 것은, 단순히 트랜스젠더퀴어도 포함시키라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논의의 전제가 어떤 식으로 구축되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질문하자는 것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설문지의 성별 분류에 ‘남성, 여성, 트랜스젠더’와 같이 단순한 추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후 나오는 모든 설문 내용, 즉 연구 질문을 상상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질문을 상상하는 방식, 즉 인간의 존재 방식, 인간 몸을 사유하는 방식을 계속해서 변경할 때 새로운 연대를 만들고 교차하는 질문을 만들 수 있다.

고인을 애도하는 방법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기는 쉽다. 한국의 한 지자체장은 해당 지역에서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되는 것을 지속적으로 방해하고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으며, 재판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변희수 하사의 죽음에는 애도를 표했다. 그 애도는 변희수 하사의 삶과 죽음이 제기하는 질문을 수용하기보다, 영원한 죽음으로 추방하는 행위에 가깝다. 그래서 그 지자체장의 애도는 대단히 모욕적이고 분노를 야기했다.

변희수 하사의 추모제가 제기하는 질문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누가 여성인가. 그러니까 젠더 연구에서 젠더 개념은 어떻게 구축되어야 하는가. 젠더가 사회적 구성이라면 그 구성에 개입하는 요소들을 어떻게 더욱 정밀하고 정교하게 탐문할 것인가. 인간의 몸-경험을 남성 아니면 여성의 것으로 환원(규정·전제)해야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남성과 여성의 경험을 이해하는 것인가, 남성과 여성의 경험으로 치환해서 본질화하고 이 이분법을 재생산·재강화하는 작업인가.

젠더 연구는 젠더 개념 자체를 더욱 정교하게 탐문하는 것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세상을 떠난 고인을 애도하면서 고인이 제기한 문제의식, 고인의 삶을 불가능하게 만든 사회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이는 애도라기보다, 사유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일 수밖에 없다. 고인의 문제 의식을 더 깊이 고민할 때 그때 비로소 트랜스젠더퀴어 연구는 더이상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논쟁할 수 있는 논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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