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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인문학’, 디지털스러움에 대한 지속적 실험
‘함께 하는 인문학’, 디지털스러움에 대한 지속적 실험
  • 류인태
  • 승인 2022.06.2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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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⑮ 새로운 학술운동과 ‘기초연구’ 채널로서의 디지털 인문학

<교수신문>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연재를 시작하며: 새 세대 한국 인문사회 연구자를 만난다

 

“디지털 인문학은 대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인문학 연구방법론으로 수용되지만, 
디지털 환경에 기초한 새로운 인문학술 운동이기도 하다. 
대량의 데이터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기술이나 프로그래밍 언어 
또는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새로운 연구방법론으로서 
디지털 인문학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이긴 하지만, 
디지털 환경이 제공하는 지식의 개방성과 확장성을 
인문학적 사유에 적극적으로 응용하고자 하는 능동적 움직임이야말로 
디지털 인문학의 본령에 가깝다.”


최근 대학 강단을 중심으로 디지털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디지털인문사회과학센터’를 설립하면서 인문·사회과학과 이공학 사이의 융합을 본격적으로 표방하기 시작한 카이스트, ‘디지털휴머니티센터’를 개소하면서 디지털 기반 융합연구 및 교육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 숙명여대, ‘디지털 인문학 입문’을 문과대학의 정규 교과로 지정함으로써 디지털 인문학 교육의 닻을 올린 고려대 등.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을 다루기 위한 대학들의 본격적 노력이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단기간 반짝하는 트렌드가 아니라 인문학 연구 환경을 혁신하기 위한 장기 호흡으로 디지털 인문학을 가져가기 위한 유관 교육과 실효적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참여·개방·공유, 그 디지털스러움의 골자

디지털 인문학을 이해하는 데는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그 첫 번째는 디지털 인문학에서 강조하는 ‘디지털스러움’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아날로그와는 다른 속성으로서 디지털스러움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역시나 가장 대표적인 것은 디지털 환경이 제공하는 ‘참여’와 ‘개방’ 그리고 ‘공유’의 가치이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서 웹이 제공하는 다양한 기술은 지식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에 입각한 참여와 개방 그리고 공유의 채널을 폭넓게 확대해가고 있다.

‘집단지성’이라는 말로 대표되긴 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웹상의 지식 생산·유통 환경은 오랜 기간 인문학 연구자들에게 오류가 많고 수정이 어려운, 그래서 전문지식을 확산하기에 부적절한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다. 한편으로 전문기관의 학술 아카이브와 데이터베이스가 연구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경우를 보면, 문제는 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계에서 이루어지는 지식 활동의 보편적 양태에 있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학술 Dataset 수집 및 검토를 위해 디지털 학술지 Journal of Slavery and Data Preservation을 창간한 디지털 인문학 프로젝트 사례다.  이미지=Enslaved

예컨대 현행 학술환경에서 인문학 연구자들은 개별 전공분야에서의 전문성을 인준하기를 끊임없이 요구받고 있다. 세부 전공에 대한 전문성을 인준하는 채널은 필연적으로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다른 연구자보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기 위한 과정에서, 누군가와 함께 지식을 편찬하고 자유롭게 논의할 여지는 거의 없다. 많은 숫자의 인문학 연구자들이 소통과 연대보다도 혼자만의 골방에 갇혀 외로운 연구에 몰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개인’과 ‘효율’이 강조되는 현행 학술 환경에서 지식을 편찬하는 데 ‘참여’하고 그 과정을 ‘개방’하며 결과물을 ‘공유’하고자 하는 지향은 통용되기 어렵다.

디지털 인문학의 ‘디지털스러움’은, 오랜 기간 연구자 개인의 전문성을 인준하는 데 주력해온 그래서 폐쇄성이 지속될 수밖에 없었던 아날로그 기반의 전통 학술 체제에서 벗어나, 집단지성으로서의 새로운 학술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연구자 개인이 기여할 수 있는 채널을 능동적으로 찾는 데 있다. ‘내가 발견한 지식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드러내는 데’ 애쓸 필요 없이 ‘모두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지식에 내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의 문제의식에 초점을 두는 것이 골자이다.

재즈 아티스트에 관한 Dataset 편찬을 위해 크라우드소싱 기반 데이터 편찬 플랫폼 ‘52nd Street’를 구축한 디지털 인문학 프로젝트 사례. 이미지=Linked Jazz

데이터 모델링, 데이터베이스 구축, 데이터 분석, 데이터 시각화 등 데이터 처리 기술을 매개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최근 디지털 인문학 연구의 추세는, 바로 그와 같은 ‘함께 하는 인문학’의 속성으로서 ‘디지털스러움’에 대한 지속적 실험에 가깝다. 개인 연구가 아닌 협업 연구가 디지털 인문학의 중요한 형식으로 논의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과물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각자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과 지점을 찾아 ‘참여’하고, 그 과정을 ‘개방’하고, 결과물을 ‘공유’하는 온전한 토대로서 디지털 환경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곧, 디지털 인문학이 내포한 ‘디지털스러움’의 골자에 해당한다.

데이터로 질문하고 표현하기, 그 인문학다움의 발현

디지털 인문학은 그 특유의 ‘디지털스러움’으로 인해 ‘인문학답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예컨대 계량적 분석방법론에 입각한 데이터 분석 분야의 경우, 질적 연구에 대한 고려 없이 양적 차원으로 대상을 환원해 그 의미를 해석하려고 한다는 부정적 인상에 노출될 때가 많다. 대규모 텍스트 자료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분석 연구는, 전통적으로 이루어져 온 질적 연구로서 인문학의 외연과는 그 스펙트럼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오랜 기간 글쓰기를 중시해온 전통적 인문학 연구에서 데이터는 소위 ‘숫자(digit)’로서 양적 연구를 추동하는, 그래서 ‘인문학답지 않은’ 무언가로 비춰지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디지털 데이터는 양적 지표로서의 숫자를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도, 기본적으로 디지털 환경에서 유통되는 다양한 형식의 기초 자원을 가리킨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소장 도서들과 그에 남은 기록의 흔적을 데이터로 처리해 그의 고민과 사유를 살펴보고자 한 디지털 인문학 프로젝트 사례. 이미지=Derrida’s Margins

디지털 인문학 연구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디지털 데이터 처리’는 디지털 환경에서 가능한 최소한의 리터러시 형식을 익히는 것이며, 그러한 훈련은 데이터를 매개로 ‘질문’하고 ‘표현’하기 위한 과정에 해당한다.

연구 과정에서 생겨나는 여러 ‘질문’을 데이터로 디자인해 편찬하고, 해당 질문에 대한 답을 ‘표현’해나가는 과정을 데이터로 분석하거나 시각화하는 과정이 곧 디지털 인문학 연구의 핵심이며, 사실 그러한 절차는 매우 ‘인문학다운’ 것이다. 비판적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사유를 자유롭게 표현해나가는 데 있어서, 단지 글쓰기가 아니라 데이터를 다루는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전통적 인문학과의 차이일 뿐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데이터’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인문학 연구는 전공 간 장벽을 허물고 기초 연구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데이터 편찬 과정은 개별 전공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유지되어 온 학술 형식을 요구하지 않기에,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교류할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다. 편찬·분석·표현하고자 하는 데이터에 대한 이해만 공유될 수 있다면 전공이 무엇이든 연구 분야가 어느 지점이든, 함께 데이터를 다루는 연구를 기획·진행할 수 있다.

물론 전공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개별 영역의 전문성을 인준하는 학술 시스템은 존중하되,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폐쇄적 자장(磁場)을 보완하고 전공 간 연계와 교류를 유도할 수 있는 여지가, 데이터를 다루는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보면 된다.

다양한 전공의 인문학 연구자들이 모여 질문과 표현을 매개로 연구를 진행하고 그 결과물을 웹상에 구현한 디지털 인문학 프로젝트 사례다. 이미지=『지암일기』 연구

연구방법론 아닌 학술운동으로서 디지털 인문학

최근의 높은 관심과 별개로, 디지털 인문학은 여전히 학계에서 메인스트림이 아니라 마이너한 위치에 놓여있다. 관심에만 머무를 뿐 구체적 저변으로 확장되는 연구·교육 사례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단순히 새로운 인문학 연구방법론 정도로만 디지털 인문학을 수용해서는 곤란하다.

기술 환경의 관점에서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관점에서는 ‘출판물’에서 ‘데이터’로의 전환, 행위 주체의 관점에서는 ‘인간행위자-본위(human actors-dominated)’에서 ‘비인간행위자-협력(nonhuman actors-collaborated)’으로의 전환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와 같은 사회 환경의 입체적 전환이 초래하는 학술 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일 경우, 디지털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곧 거대한 문화적 움직임에 가깝다. 태풍의 눈 가운데서는 태풍을 인지할 수 없듯이, 어쩌면 우리는 이미 거대한 전환기에 들어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류인태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박사후연구원
한문학과 인문정보학을 전공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조선시대 양반의 생활일기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 인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선후기 한문 자료를 꾸준히 번역·연구하고 있으며, 인문학 데이터를 다루는 여러 디지털 인문학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문학·역사 연구와 디지털 기술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특수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대학(원)에서 디지털 인문학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디지털 인문학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형식의 학술 활동에 참여한다. 주요 저작으로는 「데이터로 읽는 17세기 재지사족의 일상」(2019), 「디지털 인문학은 인문학이다」(2020), 「데이터 기반의 고전 읽기 교육」(2021), 「쓰기 테크놀로지의 진화, 디지털 인문학」(2022), 『(윤이후의) 지암일기』(2020, 공역), 『한양의 중심 육조거리』(2020,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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