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2:45 (목)
비판적 재난 연구, 함께 연구할 연구자를 찾는다  
비판적 재난 연구, 함께 연구할 연구자를 찾는다  
  • 박상은
  • 승인 2023.06.14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하제일연구자대회 41 비판적 재난 연구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천하제일연구자대회’ 시즌2를 시작하며_우리 학술장의 ‘소통 공간’ 함께 키워 갑시다)

 

 

세월호 참사에 관한 공동의 사회적 기억이 형성되지도 않았는데 
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선박 침몰과 압사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재난이지만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공통점 때문에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참사를 소환했다. 
세월호 참사 조사 과정을 연구했다는 이유로 
나도 갑자기 전문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한국의 비판적 재난 연구의 척박함을 보여주는 일이다. 
함께 할 연구자 동료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연구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2015년 가을, 4·16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안전사회과 조사관이었던 나는 몇몇 과학기술학 과 사회학 전공자를 모아서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었다. 보고서팀을 구성할 때 몰래 품은 희망이 있었다. 여기 모인 연구자 중 누군가는 계속 세월호 참사를 연구해 내가 궁금한 것을 해명해주지 않을까? 세월호 참사가 사회에 미친 영향, 생산된 자료 등을 생각하면 단순히 활동가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감’이 있었다. 

연구자에게 과업을 넘기고 사회운동으로 돌아가자. 그러나 항상 그랬듯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2018년 여름 선체조사위원회에서 두 안으로 나뉜 종합보고서를 발간했을 때, 본의 아니게 일하던 사회단체에서 나오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 조사 실패와 갑작스러운 진로 고민이 맞물렸고, 재충전도 하고 세월호 참사 조사 과정도 정리할 겸 대학원에 진학했다. 혼란스러운 생각과 마음을 논문으로 정리하고나면 정말 세월호 참사와 이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별은 무슨. 2023년, 나는 ‘천하제일연구자대회’ 원고를 쓰고 있다. 

재난 인식론과 재난 조사의 정치

재난은 여러 연구 주제를 파생시킨다. 재난관리체계 개선과 같은 실용적 연구부터 피해자들의 활동과 트라우마, 정부의 대응, 담론의 변화 등 재난 이후의 사회적 현상에 대한 분석까지 연구해야 할 주제는 다양하다.

나는 특히 사회가 어떻게 재난을 만들어내는지 알고 싶었다. 몇몇 개인이 아니라 사회, 즉 우리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개입해 조직해 낸 세계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재난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는 작은 여러 선택과 결정이 어떻게 재난으로 이어지는가? 사후적으로는 충격적인 선택으로 보이는 것이 왜 당시에는 합리적인 것으로 보였는가? 세월호 참사 직후에는 그런 질문이 별로 독특하게 보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1~2년 사이에 발표된 논문 중 상당수가 ‘재난을 탄생시킨 사회 구조’의 문제를 다루거나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2016년 참사 2주기를 기점으로 그런 연구는 눈에 띄게 줄었다. 피해자와 특정 지역의 사회운동을 대상으로 한 몇몇 유의미한 연구가 있었지만, 아무도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과 그 결과로 탄생한 재난조사위원회를 다룰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2018년 여름 선체조사위원회에서 두 안으로 나뉜 종합보고서를 발간했다.

2018년 여름, 선체조사위원회가 결론에 합의하지 못하고 내인설, 열린안이라는 두 편의 종합보고서를 내고 종료한 후, 학계에 대한 양가적인 마음이 들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에는 논문을 쏟아내던 학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하는 원망, 조사위원회가 공적 설명을 제공하지 못해 연구도 곤란에 처했겠다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누군가는 재난조사위원회라는 블랙박스를 열어야 한다. 이 제도를 탄생시킨 사회운동도 함께 시야에 넣어야 한다. 그렇게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와 선체조사위원회라는 두 개의 조사위원회, 그리고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을 연구 대상으로 논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가 시작하면 누군가 곧 이 연구를 딛고 더 좋은 연구를 해주리라는 기대와 함께.

재난조사가 정치적·사회적 과정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보는 사회학·과학기술학의 연구 전통과 더불어 실라 재서노프의 ‘시민 인식론(civic epistemology)’ 개념이 논문의 분석틀을 구성하는데 아이디어를 주었다.

재서노프에 따르면 “모든 사회에는 어떤 주장이 신뢰성 있고, 어떻게 표현되어야 지지를 받는지에 관한 공유된 이해 방식”이 있다. 재서노프는 각국의 지배적인 시민 인식론을 분석한 국가 비교 연구를 주로 했지만, 복수의 시민 인식론 경합 연구도 가능하다. 나는 세월호 참사 조사위원회들이 겪은 혼란과 실패를 ‘재난에 관한 시민 인식론’의 경합 과정으로 이해해보려고 했다.   

그렇게 2021년 2월에 완성된 석사논문은 2014년 세월호 특별법 제정운동부터 2018년 8월 선체조사위원회 종료까지의 시기를 세 유형의 재난 인식론, 기술적 관점과 사법적 관점, 구조적 관점의 경합 과정으로 분석했다.

세월호 참사 조사에서는 특히 사법적 관점과 구조적 관점 간의 경합이 두드러졌다. 사법적 관점과 구조적 관점은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는 대체로 균형을 이루고 있었으나 점차 전자가 후자를 압도하게 되었다. 구조 실패에 대한 국가의 법적 책임을 묻는 데 계속 실패하면서 책임자 처벌에 대한 열망은 더욱 강해졌다.

법적 과실 인정 여부를 재난의 인과 관계로 인식하는 사법주의가 강화되고, 침몰 원인 가설도 이 기준에 따라 선택적으로 지지되었다. 개인에 대한 법적 처벌의 형태로 참사의 원인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는 ‘책임의 인격화’가 세월호 참사 조사의 고유한 난점을 구성했다. 

출처 :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2022) 진실의 힘, 156쪽

사회운동·책임·재난의 탄생 

석사 논문을 책으로 출간하면서, 여러 활동가·연구자와 토론할 기회가 생겼다. 그 과정에서 후속 연구과제도 생겨나고 있다. 먼저 세월호 참사에 대응한 사회운동 내부의 차이에 주목한 연구가 필요하다. 석사논문에서 나는 사회운동 내부의 차이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대체로 단일한 세력으로 사회운동을 분석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대응 운동은 누군가에게는 정권 퇴진 운동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안전사회 운동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피해자 권리 운동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 부여가 어떻게 가능했는가? 이들은 재난의 어떤 측면에 주목했으며, 각각의 운동이 강조한 프레임과 전략은 무엇이었는가? 

재난과 책임 문제도 여전히 중요하다. 논문과 책에서 밝혔듯이, 여러 행위자가 얽혀있고 때로는 선의나 실수가 중요한 요인이 되는 재난의 성격과, 높은 지위에 있는 공직자들에게 큰 책임을 물으려는 대중의 요구 사이에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딜레마가 있다.

책임의 형태를 법적 책임으로 한정할 때, 조사과정은 법정에서 유리한 증거를 찾기 위한 것으로 좁아지고 다른 질문들은 후순위가 된다. 책임에 관한 어떤 관점과 실천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이는 논문과 책의 결론에서 던진 질문이기도 하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붙잡고 있는 고민도 있다. 노동자들의 사고는 재난의 전조이며, 산재와 재난 양쪽의 원인은 공통적이라는 문제의식을 수용해 노동안전 연구와 재난 연구를 연결하는 것이다. 두 영역 간 이론적 기반과 연구의 맥락이 상당히 다르고 처음 생각과 다르게 교집합의 영역은 작아 보인다. 의미 있는 교집합의 영역, 연구의 영역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재난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구체적 과정을 드러내는 것도 여전히 큰 욕망이다. 어떤 사회 구조, 조직의 관행이 재난을 탄생시키는가? 법적 규정과 실제 관행의 차이는 어떤 이유로, 어떻게 발생하는지, 사후적으로는 명확해 보이는 위험을 왜 당시에는 인지하기 어려웠는지, 당시에는 합리적으로 보였던 의사 결정이 어떻게 재난의 씨앗을 품게 되는지…. 큰 윤곽이 아니라 구체적인 분석을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의 자료와 관행이 공개되어야 한다. 현재는 자료의 제약이 있지만 한국에서도 그런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리라.  

세월호 참사에 관한 공동의 사회적 기억이 형성되지도 않았는데 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사진은 지난 5월 세월호 선체 방문 모습이다. 사진=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홈페이지

비판적 재난 연구의 척박함

사회학자 다이앤 본은 대표작인 『챌린저호 발사 결정』(1996)의 이론화 과정을 돌아보면서 ‘챌린저호 연구를 마무리하면서 또 다른 사고를 예견했지만, 그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지 못했다’고 썼다. 2003년 2월 1일, 나사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폭발하면서 챌린저 연구는 본을 다시 소환했고, 그녀는 두 번째 나사 사고에 대해 상담할 전문가가 되었다고 한다.

비극적이게도, 나에게 또 우리에게, 다음 참사가 너무 일찍 왔다. 세월호 참사에 관한 공동의 사회적 기억이 형성되지도 않았는데 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선박 침몰과 압사는 전혀 다른 유형의 재난이지만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일어났다는 공통점 때문에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참사를 소환했고, 세월호 참사 조사 과정을 연구하고 책에서 해외의 재난 사례를 조금 다뤘다는 이유 때문에 나 같은 사람마저 갑자기 전문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현실이 한국의 비판적 재난 연구의 척박함을 보여준다. 학문 장에서의 역할을 한정하고 연구를 시작했으나, 계속 더 역할을 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재난이라는 객체(object) 자체에 주목하고, 사회운동까지 연구 대상으로 삼아 비판적으로 분석할 연구자 동료가 절실하다. 세월호 참사 연구에서 후자를 어려워해, 결과적으로는 활동가의 스피커 역할에 머무른 연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활동가로서 내가 필요했던 것은 당신의 운동이 의미 있다는 응원이 아니라, 사회운동의 딜레마와 아포리아를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지적이었다. 활동가가 논문을 찾아 읽는 것은 칭찬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다. 이를 이해하고 함께 할 연구자 동료를 찾고 있다.  

박상은 충북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연세대 사학과 졸업 후 약 10년을 사회운동단체 상근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등으로 일했다. 충북대 사회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에 진학해 위험과 재난을 연구하고 있다. 플랫폼C라는 사회운동단체에서도 활동한다. 저서로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이 있다. 논문으로 「통제적 규제와 외주화의 위험 전가 정치」, 「왜 세월호 참사 조사는 종결되지 못하는가?」 등이 있다. separkjuly@gmail.com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