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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대중화 이후의 페미니즘, 공존사회를 모색하다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의 페미니즘, 공존사회를 모색하다
  • 엄혜진
  • 승인 2022.07.06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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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17 포스트페미니즘 시대의 페미니즘 지식

<교수신문>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연재를 시작하며: 새 세대 한국 인문사회 연구자를 만난다

 


“포스트페미니즘의 주창과 달리 인간 해방의 기획으로서 
페미니즘의 자기 역할은 소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적 수준의 불평등을 넘어서 풍요로운 공존 사회에 대한 전망을 모색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지식 자원이 바로 페미니즘이라는 점을 
사회적으로 기입할 수 있는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다.”

얼마 전 대학과 정책연구기관에서 일하는 40대 페미니즘 연구자들과 작은 모임 하나를 만들었다. 여성학 교양과목이 대학에 처음 개설된 해가 1977년이니, 여성학이 막 제도화되기 시작할 무렵에 태어나, ‘민주화 이후’ 시대인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이른바 ‘영페미니스트’로 불린 주체들로서, 여성학의 위기가 일컬어지던 2000년대에 대학원 공부를 했다는 코호트를 공유했다.

유행하는 세대론으로 보자면 2030과 5060 사이에 어색하게 걸쳐 있어서일까? 앞 세대, 뒤 세대와는 다른 경험이 동질감을 형성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를 첫모임부터 단박에 응집시켰던 소실점은 충분히 질문되지 못하고 있는 페미니즘의 과제들이었다.

누군가는 ‘여성혐오’, ‘백래시(backlash)’ 등의 개념이 오늘날 젠더 불평등의 구조를 적절하게 설명하는 지에 대한 이론적 점검이 소홀하지 않느냐고 했다. 다른 이는 페미니즘 지식이 다양성 가치나 일반적 인권 담론 이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무겁게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성평등 기구에 대한 제도적 관심과, 변화하는 젠더 관계에 호응하는 성평등의 사회적 의미를 이끌어 내기 위한 수고 사이의 불균형을 지적했다. 페미니즘 연구와 운동 간의 원활한 긴장 관계가 아쉽다는 데에도 입을 모았다.

가령 오래전부터 페미니즘 인식론의 일부였던 교차성(intersectionality) 논의가 마치 신생 개념인 양, 페미니즘 실천장에서 벌어지는 이슈에 정치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담론으로 소용되는 경향 같은 것이다. 요컨대, 페미니즘의 지식 생산 구조가 젠더 정의에 입각한 사회 전환 기획과 어떻게 조화롭거나 어긋나 있는지 따져볼 때가 됐다는 것이다. 

유사한 관심사를 따라 크고 작게 모여 공동 연구를 도모하는 일은 연구자들의 습관 같은 것이니, 모르긴 몰라도 우리보다 앞서 이미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고 있는 페미니즘 연구자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럴만한 집합적 동기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2015년 이후 페미니즘은 그야말로 달리는 기차에 실려 왔다. 잠정적으로 ‘페미니즘 리부트’ 혹은 ‘페미니즘의 대중화’로 불린다. 누군가에게는 페미니즘의 원체험이었을 이 시간의 의미를 묻는 작업이 시작되고 있고, 이는 최소한 2000년대 이후 페미니즘의 역사적 전개 과정과 그 현재성을 되짚는 일이 될 것이다.

페미니즘 지식의 대중화와 그 속성

개인적으로도 2015년은 신자유주의에 관한 젠더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분기점이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페미니즘 논의가 구조조정의 젠더 편향과 그 효과에 대한 주목을 넘어, 근대적 젠더 관계를 재구성하는 정치경제적 양식과 여성의 새로운 주체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일 때였다. 후기 근대적 한국 사회의 복합적 변동 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가장 젠더화된 장소로서 대치동이 적합한 연구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이를 위한 파일럿 연구로 계획한 여성 자기계발서 분석으로 논문을 갈음해야 했다. 1990년대 이후 성공과 성취를 독려하는 자기계발서에 대한 여성들의 탐독 현상에 주목해서 여성 자기계발 담론을 역사화한 내용이었다. 

여성 자기계발 담론에 관한 연구는 필연적으로 페미니즘 지식과 대중 담론의 결합 양태에 관심을 갖게 했다. 페미니즘 지식과 여성 자기계발 담론은 여성 자아 기획에 관여한다는 점에서 공유점을 갖는다. 여성 자기계발서는 시장 체제에 완벽하게 부응, 적응할 수 없는 여성의 위치와 지위를 해명하고자 하는데, 바로 여기에 페미니즘 자원이 활용된다. 성평등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차별의 의미를 개인화(“구조적 성차별은 없다”)하여 신자유주의적으로 전환시키는 경향적 사조를 포스트페미니즘이라 정의한다면, 자기계발서는 이를 가장 노골적이면서도 유혹적인 언어로 포장한 전시장이기도 했다.

마침 페미니즘 담론장과 실천장이 확장되면서, 페미니즘 지식이 다뤄지는 제도와 현장에 참여하거나 주의 깊게 관찰할 기회가 많아졌다. 페미니스트 주체가 다기하게 형성되고 페미니즘 의제가 사회적으로 거대한 진동을 일으킨 이면에 우려스러운 면도 포착됐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페미니즘 지식이 편향적, 선별적으로 유통되고, 젠더 관점을 얄팍하게, 심지어는 왜곡해서 안내하는 출판물이 봇물처럼 터져 나와 호응을 얻는 현상 같은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사회적으로 저변화된 페미니즘 관련 교육(대학 여성학 강의, 성평등 교육, 성인지 교육, 성희롱․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예방 교육 등)은 상징적이면서도 징후적이었다. ‘젠더’, ‘(양)성평등’, ‘성인지 감수성’ 등의 개념을 교양이자 상식으로 만들고, 페미니스트 주체가 형성되고 성장하는 현장이었다. 여기서 성과뿐만 아니라 당혹스러운 현실을 확인해야 했다.

페미니즘 지식이 사회적 삶을 풍부하게 해석하고 성평등의 의미를 사유하는 자원이 아니라, 개인의 태도 변화에 긴박된 문제 해결식 매뉴얼로 가공, 구축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젠더는 정서적 반향에 치중된 ‘감수성’ 개념으로, 성평등은 성별 고정관념을 벗어나기 위한 개인의 의지 문제로, 성폭력에 대한 사유는 피해자, 가해자를 판단하는 수준으로 다뤄지는 식이다. 

페미니스트 페다고지(feminist pedagogy)라는 이름으로 수행되어온 페미니즘 교육에 관한 이론적 성과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는 지식의 사회적 상호작용과 불평등한 젠더 관계를 재생산하는 체제에 대한 구조적이고 비판적 숙고를 강조한다. 인식론적으로는 주지주의와 반지성주의를 동시에 경계하며, 방법론적으로는 교육자와 학습자가 함께 만드는 지식의 생성적 과정을 중시한다. 페미니즘 연구의 역사적 전개와 병행하여 페미니스트 페다고지의 쟁점도 변화해왔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논의가 대중 교양 지식 및 교육 담론과 적절하게 순환하지 않은 원인은 모호했다. 단지 성평등 의제의 제도화 및 대중화에 따른 부수적 효과인지, 보다 근본적으로 페미니즘이 이 시대에 소구되는 일단의 구조인지를 해명해야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한 십여 명의 동료들과 페미니즘 교육을 연구 의제로 삼는 연구소(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를 만들었다. 2017년 창립할 때만 하더라도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연구가 국내에서는 학술적 사각지대였다는 점은 인지했지만, 페미니즘 교육 철학 빛 방법론에 관한 논의를 초과한다는 감각은 충분하지 않았다. 페미니즘의 핵심 지식을 역사적으로 검토하고, 나아가 오늘날 페미니즘 정치 구조의 성격과 결합해 분석해야 하는 작업으로서, 이는 흥미로우면서도 도전적인 과제였다.

하나의 꼬투리가 길을 열어주었다. 성평등을 다루는 교육 콘텐츠와 대중서들이 성평등의 의미를 “‘남자답게’, ‘여자답게’가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성적 차이와 성적 욕망에 관한 지식을 다루는 학문이자, 평등한 젠더 관계를 사회적으로 기획하는 사상으로서, 지속적으로 변화 발전해온 페미니즘의 지적 위상이 이완되어 있다는 증거였다. 나아가 차별과 불평등을 개인의 자기계발과 자기 관리 대상으로 치환하는 포스트페미니즘의 간섭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난 3월 11일 오전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페미니즘의 위기’는 무엇을 남겼나 

포스트페미니즘은 제2물결 페미니즘의 파고가 가라앉은 후, 이론과 운동으로서 페미니즘의 시효가 만료되었다는 주창과 그 인식을 반영한 제도적, 문화적 실천을 일컫는 표현으로 등장했다. 성평등은 이미 달성되었다는 근거로 성평등 제도와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군가산점제도 폐지로 탄력받아 2000년대부터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포스트페미니즘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여성 주체와 페미니즘 의제를 신자유주의적 논리로 가공하여 옹호한다는 점이다. 시장 규범에 따른 ‘공정한’ 경쟁을 통해 여성의 욕망뿐만 아니라 권리를 실현하라는 것이다. 2000년대 여성 자기계발서들이 ‘신데렐라’를 영민한 전략가로 표상하여 여성의 이상적인 모델로 복권시키면서, 여성 개인의 사회적 성취를 여성 해방과 등치시키는 담론을 생산한 사례가 전형적이다.  

페미니즘 내부적으로는 ‘여성학의 위기’, ‘페미니즘의 위기’로 호명, 진단되었다. 구체적 계기는 2000년대 들어서 대학들이 경쟁력을 이유로 여성학 및 협동과정을 앞 다퉈 폐지한 것이었다. 여성학 교양 강좌수가 대폭 줄어들고, ‘여성의 직업과 경력 개발’, ‘여성 비즈니스 스킬’과 같은 취업 경쟁력을 도모하기 위한 실용강좌들로 대체되었다.

여성학이 제도화된 이래, 학문의 위상과 지위를 둘러싼 부침을 거듭해 왔고, 그에 따라 위기 담론 역시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2001년 여성부 설치를 전후로 하여 젠더 주류화가 국가 정책 및 제도 정치에 뿌리 내리는 과정과 맞물려 페미니즘의 탈정치화가 촉진되는 환경이었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언제나 복수의 페미니즘이 존재해 왔지만, 불평등한 젠더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조할 수 있는 사회의 재조직화에 대한 지적, 정치적 사유는 포기된 적이 없다. 여성학을 흔히 ‘실천학문’이라 부르는 이유다. 마땅하게도 ‘페미니즘의 위기’는 이 정체성을 토대로 경고되었고, 여성학과 페미니즘 의제의 제도적 안정화뿐만 아니라, 사회 개혁의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성공적이진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2000년대는 페미니즘의 이론적 전환과 학술적 진일보가 뚜렷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여성이라는 고정 범주를 이론적으로 해체한 젠더 개념의 전회를 기반으로, 여성의 차이와 그 복잡성에 대한 존중이 연구의 기초 관점으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한국 여성학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데 기념비적인 역할을 한 텍스트들(대표적으로 조한혜정의『탈식민지 시대의 글 읽기와 삶 읽기』(1992, 1994), 조순경의 「한국 여성학 지식의 사회적 형성: 지적 시민성 논의를 넘어서」(2000) 등)이 이끌어 낸 성찰이 성과로 나타났다. 서구적 지식 체계와 학문의 식민지성을 벗어나기 위한 여성학의 전략을 탐문하고, 한국 사회와 역사에 천착한 페미니즘 연구가 확산된 것이다. 한국 근대 여성사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다양한 분과 학문에서 젠더 연구가 확산, 교류되면서 학제 간 연구로서의 특징도 십분 발휘됐다.

포스트페미니즘과 맞물린 집합적 사회 개혁 전망의 부진과 페미니즘 연구의 질적 도약이라는, 바로 이 결절에 주목하게 된다. 1990년대 말부터 심화된 불평등의 기저에는 젠더 관계의 구조적 변동이 깊게 연루되어 있었다. 재화, 노동력, 사회적 재생산을 둘러싼 젠더 배치와 그 정당화 방식이 변모하고, 남성과 여성으로 살아가는 데에 따른 보상 체계도 달라졌다는 의미다.

이 변화를 설명해왔지만, 대안적 패러다임을 제안하는 이론의 개발이 여성학의 제도적 불안정성과 축소된 정치장으로 인해 다이나믹하게 결합되지 못했던 것이다. 2015년 이후 페미니즘은 어쩌면 이 기반 속에서, 또한 이 모순을 폭로하면서 등장한 것이다.  

해방의 기획으로서 ‘페미니즘의 지식’ 역량이 발휘될 때

최근까지 페미니즘 연구는 새로운 페미니스트 주체의 목소리를 경청해 왔다. 2015년 이후의 페미니즘은 불평등과 각자 도생의 생존 불안을, 여성은 남성과 다르게 경험하고 있으며, 불편부당한 경쟁장은 신화라는 점을 절박한 언어로 환기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페미니즘에 대한 요청을 거짓과 기만으로 공격하는 사회적 실체를 드러내는 데도 주력해 왔다. 젠더 관계의 변화를 남성 피해 서사로 구축해온 공론장을 수동적으로 방치하거나 ‘청년 세대 문제’, ‘젠더 갈등’이라는 이익 충돌 문제로 적극 정치화해온 과정과 배경을 비판한 것이다.

다른 한편 여성 연대와 페미니즘의 의제화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적 개입을 해왔다.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동일성과 정체성의 정치로 귀속되지 않는 여성 연대의 가능성과 급진성을, 2000년대 이래 줄곧 탐색돼온 페미니즘 정치학의 논의를 기반으로 제안해 왔다. 또한 포스트페미니즘 담론을 경유하여 공정한 경쟁이라는 신화를 평평한 경쟁장에 대한 요구와 여성 개인의 성취로 해체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경계해 왔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과제가 남아 있다. 포스트페미니즘의 주창과 달리 인간 해방의 기획으로서 페미니즘의 자기 역할은 소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적 수준의 불평등을 넘어서 풍요로운 공존 사회에 대한 전망을 모색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지식 자원이 바로 페미니즘이라는 점을 사회적으로 기입할 수 있는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평등, 연대 등의 사회적 가치를 젠더 정의에 입각해 재구성하고 돌봄 사회의 비전을 구체화해왔던 작업이 빛을 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엄혜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조교수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대표도 맡고 있다.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에서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의 자기계발 담론에 나타난 여성 주체성과 젠더 관계: 1990년대 이후 베스트셀러 여성 자기계발서 분석을 중심으로」(2015)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는 「성차별은 어떻게 ‘공정’이 되는가?: 페미니즘의 능력주의 비판기획」(2021), 「여성의 자기계발과 페미니즘의 불안한 결속: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비판적 담론분석을 중심으로」(2021), 「페미니즘 교육은 (불)가능한가?」(2019), 「여성의 자기계발, 소명의 고안과 여성성의 잔여화」(2016) 등이 있다. 공저로 『페미니즘 교육은 가능하가』, 『그럼에도 페미니즘』, 『페미니즘의 개념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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