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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비정규직·인맥이 아닌 연구로 해방되려는 몸부림
정규직·비정규직·인맥이 아닌 연구로 해방되려는 몸부림
  • 장수희
  • 승인 2022.03.30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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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③ 안녕하세요? 신진연구자입니다만

<교수신문>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연재를 시작하며: 새 세대 한국 인문사회 연구자를 만난다

 

“일본군‘위안부’ 연구를 하는 선생님들을 만날 때에도 
‘바람의 연구자’라는 정체성이 주는 해방감 같은 것이 있었다. 
이 정체성은 한국이라는 국가에 있는 어떤 학교의 누구라는 정체성보다 
훨씬 나를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주었다.”

 

졸업 후 연구지원을 받기 위한 여러 개의 연구계획서를 써 냈다. 그리고 내가 갈 수 있을 만한 최대한 멀리에 있는 대학까지 이력서를 쓰고 또 써서 냈다. 그렇게 연구계획서와 수업계획서, 자기소개서 쓰기를 계속하면서 내가 무엇을 위해 계획서를 쓰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즈음, 꼭 해보고 싶은 학술대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꼭 해보고 싶은 학술대회가 떠올랐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선정하지 않은 연구들을 발표하는 학술대회. 한국연구재단이, 국가가 지원을 배제한 연구가 사실은 얼마나 세상에 필요한 연구인지, 정말로 소중한 연구가 무엇인지 발표하는 천하제일연구대회! 이미 주제를 잡고 열심히 연구해온 사람들의 역사와 시간에 대해서 누구도 함부로 선정과 탈락을 얘기할 수 없는 그런 학술대회를 해보는 것이다.

사실 많은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를 안정적으로 꾸려가기 위해서지, 한국연구재단의 인정을 받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연구재단이 지원을 하든 안 하든 연구는 연구자들이 지금까지 해온 것이고 지금부터 또 해 나갈 것이다. 그래서 사실 연구지원을 한다는 사업 공고문을 볼 때마다, 연구계획서나 연구보고서 따위를 받지 말고 “당신들이 지원을 해주든 안 해주든 난 연구를 할 테니 그냥 돈 줘!”라고 말하고 싶었다. 

천하제일연구대회는 제일 잘난 연구와 똑똑한 연구자를 선정하는 대회가 아니다. 스스로 잘난 것을 증명하는 연구를 하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참여하는 연구자들이 자신의 삶의 이력과 연구를 기반으로 세상을 향해 입장을 드러내어 진리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이 대회는 논문 축적으로 점수를 매기는 곳이 아니며, 돈을 쟁취하기 위해 토너먼트 배틀을 하는 곳도 아니다. 연구자들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치기 해서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트랙 위를 노예처럼 달리게 하는 곳도 아니다. 

천하제일연구대회는 연구자의 목소리보다는 연구자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노동자든, 여성이든, 청년이든, 오타쿠든, 일본군‘위안부’이든 연구자가 만나오고 규명하고 싶었던 존재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그리하여 천하제일연구대회에서 천하제일은 연구자가 아니게 된다. 연구자가 잘나지 않아도, 정규직으로 보답(?)받지 않아도, 천하제일연구대회는 연구자인 나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함께 해방되는 곳이다.

이들의 삶도 나의 삶도 틀리지 않았음을 같이 증언하는 연구, 그 연구를 해서 오히려 내가 해방되는 그런 연구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연구자는 천하제일이 될 수 없다. 사람에 대한 연구, 사람의 연구 속에서 오히려 연구자가 해방되는 그런 장이 바로 천하제일연구대회이기 때문이다.(‘천하제일연구대회’라는 명칭은 <바람의 연구자>부터 연재를 한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의 천하제일연구대회 편을 참조했다.)

연구자 생활정보지 <바람의 연구자>는 2013년 8월 창간전호를 시작으로 매달 정기 간행되다가 2018년 8월, 43호 이후 휴간 상태다. 그동안 연구자의 신년계획·바캉스·쇼핑·강의·핸드폰·연구공간 등을 다뤄왔다. 사진=<바람의 연구자> 페이스북 페이지

‘바람의 연구자’ 그리고 일본군‘위안부’ 연구

동료들과 연구자 생활정보지 <바람의 연구자>를 만들면서 만났던 여러 연구자들에게는 모두 간절하게 해명하고자 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들은 정규직, 비정규직, 학맥, 인맥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연구로 해방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연구를 지속하는 시간을 확보하고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가진 연구자들, 의미 있는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일까 고민하며 애쓰는 연구자들이 내게 나누어 주었던 에너지가 적지 않았다. 자신들의 연구주제를 마주하며 각자의 투쟁을 하고 있었던 ‘바람의 연구자들’을 만나면서 내게도 생기게 된 ‘바람의 연구자’라는 정체성이 학교나 전공을 통해 이어지는 정체성보다 연구를 지속하는 힘을 내는 데 훨씬 도움을 주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을 하는 선생님들을 만나거나 일본군‘위안부’ 연구를 하는 선생님들을 만날 때에도 ‘바람의 연구자’라는 정체성이 주는 해방감 같은 것이 있었다. 이 정체성은 한국이라는 국가에 있는 어떤 학교의 누구라는 정체성보다 훨씬 나를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주었다.

이것이야말로 <바람의 연구자>와 일본군‘위안부’ 서사 연구가 내게 준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바람의 연구자’들이 어딘가에서 안녕함을 알고 있는 것, 내가 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야말로 내 연구를 보듬어 안고 조금씩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졸업 후 부랴부랴 써냈던 연구계획서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연구계획서에는 한국의 일본군‘위안부’ 서사뿐 아니라 말레이시아, 필리핀, 중국 등 일본군‘위안부’ 피해가 있었던 여러 나라들의 일본군‘위안부’ 서사를 연구하겠다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일본군‘위안부’ 서사 연구를 하면서 느꼈던 해방감은 이런 것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부산 지역에서 연구를 하고 있지만, 나의 연구가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말이다. 

이어지는 자매로서, 미래로 기억을 전해줄 여성으로서

나는 대사관 앞 수요시위에 실제로 몇 번 참석했을 뿐이고 가끔 유튜브로 시위를 지켜보았던 부산 지역의 연구자이지만 내 연구와 피해자들의 증언과 이야기를 읽는 나의 행위가 지역을 넘고 국경을 넘어 동아시아 곳곳의 피해자들을 위한 활동 그리고 실천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일본군‘위안부’ 이야기가 곳곳에 살아남아 우리에게 읽힐 때까지 존재해 온 것처럼 내 세계가 국가와 민족의 진공상태에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이것이 내가 일본군‘위안부’ 서사 연구자로서 느끼고 감각했던 해방감이다. 물론 이 해방감은 이 계획서들의 선정 여부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오키나와 미야코지마에 있는 ‘여자들에게’ 비(碑) 모습이다. 일본군‘위안부’가 썼던 12개의 언어로 평화의 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사진=장수희

오키나와 미야코지마에 있는 ‘여자들에게’ 비(碑)에는 일본군‘위안부’가 썼던 12개의 언어로 평화의 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일본군에 의한 모든 성폭력 피해자들의 아픔을 나누며 세계에서 일어나는 무력 분쟁에 따르는 성폭행이 그칠 것과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가 오기를 염원합니다.” 처음 ‘여자들에게’ 비와 마주했을 때에는 이렇게 다양한 언어를 쓰는 여성들이 똑같은 폭력을 당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다양한 언어를 쓰고 다른 역사를 가지고 살아온 여성들이 서로 다른 폭력의 역사를 안고 ‘여자들에게’ 비에서 만난 것이구나라고 생각한다. 민족주의를 넘어선다는 것은 추상화된 민족주의를 말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국의 여성들의 경험과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게 하고, 연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과 운동이 해 왔던 일이기도 하다. 

오키나와 미야코지마에 있는 '여자들에게' 비. 사진=장수희

책을 읽고 논문을 읽을 때 언제나 나를 호출하는 문장이 있었다. 『탈제국주의 페미니즘을 요구하며』에서 “여기에서의 불충분한 완성을 보완하는 일은 이후 이어지는 자매들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다”라는 문장, 미야코 일본군‘위안부’ 추모비 건립위원회의 동경사무국 대표가 썼던 “일본군 성 노예 제도에 의해 희생당해 죽어갔던 여성들에게, 또한 지금도 아픈 기억을 끊임없이 증언하고 계신 여성들에게, 그리고 기억을 듣고 미래로 기억을 전해줄 여성들에게 이 비를 바친다”라는 문장을 보고, ‘와! 저요? 저 말씀이신가요?’라고 생각했었다.

내 앞에 먼저 나아간 동료 ‘바람의 연구자’들이 있었고,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나를 기다려 준 누군가가 있으니, 계속 연구하라는 목소리를 글로, 책으로 전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어지는 자매로서, 기억을 듣고 미래로 기억을 전해줄 여성으로서 일본군‘위안부’ 서사 연구를 계속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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