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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 효율적 정치공학의 도구…역차별이 낳은 교훈
증오, 효율적 정치공학의 도구…역차별이 낳은 교훈
  • 김일년
  • 승인 2022.04.2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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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⑦ 미국 공화당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는가?

<교수신문>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연재를 시작하며: 새 세대 한국 인문사회 연구자를 만난다

 


증오는 무서울 정도로 효율적인 정치공학의 도구다. 
역차별이라는 교묘한 레토릭이 차별의 정당성과 승리의 방법론을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무서운 도구를 함부로 휘두르는 일은 예외 없이 사회에 치명상을 남긴다. 
이것이 미국 공화당의 역사가 작금의 우리에게 들려주는 하나의 정치적 교훈이다.


1968년 10월,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리처드 닉슨의 선거팀은 패닉에 빠졌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대선 승리는 따 놓은 당상으로 보였다. 민권운동에 대한 보수적 백인들의 반발과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진보적 유권자들의 실망으로 인해 민주당 출신 현직 대통령 린든 존슨의 지지율이 바닥을 쳤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변화하고 있었다. 닉슨의 오른쪽에서는 앨라배마 주지사 조지 월러스가 노골적인 인종주의 레토릭을 동원하며 보수적 백인들의 표를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왔고, 그의 왼쪽에서는 민주당 후보 휴버트 험프리가 베트남 전쟁에 실망한 진보 성향 유권자들에게 그래도 어떻게 공화당을 뽑겠냐고 호소하며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투표일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 선거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박빙으로 접어들었다.

리처드 닉스 대통령의 1968년 당시 선거 유세 모습. 사진=AP

1932년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뉴딜을 외치며 대통령에 당선된 이래, 공화당은 지난 35년 간 패배에 패배를 거듭했다. 이번 대선에서마저 진다면 공화당은 도대체 언제 만년 야당의 신세에서 벗어난다는 말인가? 불안과 공포 속에서 무의미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바로 이 순간 닉슨의 선거팀으로 한 통의 보고서가 배달되었다. 그것은 향후 수십 년 간 미국 정당 질서의 지형도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어 놓을 하나의 정치 혁명을 예고하는 문서였다.

“공화당, 백인 보통사람을 위한 정당으로 변신하라”

케빈 필립스가 레너드 가멘트에게 보낸 ‘1968년 남부전략 보고서’.
향후 수십 년간 미국 정당 질서의 지형도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어 놓을 정치 혁명을 예고하는 문서였다. 사진=리처드 닉슨 도서관

「월러스, 험프리, 그리고 닉슨의 반격」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이번 대선을 넘어서서 향후 공화당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할 필승의 전략을 제시했다. 그 전략이란 유권자들에게 공화당이야말로 ‘보통 미국인들’의 대변자라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보통 미국인들은 건국 이래 미국에서 시종일관 최대의 유권자 층을 형성해 왔던 집단, 바로 백인 노동자와 농민이었다. 그렇다면 공화당은 어떻게 이들을 포섭할 것인가?

그들의 불만을 부추겨라. 보고서는 이렇게 조언했다. 미국의 일반 백인들은 한편으로는 북동부의 부유한 산업 및 금융가들에 대한 계급적 적개심을 표출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흑인 민권운동을 향한 인종적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공화당은 탐욕스러운 북동부 기득권과 선을 긋는 한편, 민권운동이 낳은 역차별을 공격함으로써 묵묵히 일하는 일반 백인들의 지지를 확보해야 할 것이었다.

말이야 쉬웠으나 실천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공화당의 정체성 그 자체에 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창당 당시부터 공화당이란 정당은 북동부 경제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던 휘그당과 남부의 노예제 폐지를 요구했던 노예해방주의자들의 결합으로 탄생한 정치적 혼종이었다. 노예해방의 업적은 남북전쟁 이래 100여 년 동안 이 ‘링컨의 당’을 지탱했던 도덕적 자산이었고,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한 자본주의 육성은 당대 유명한 표현처럼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당으로서 그들이 가진 존재의 이유였다.

그런 공화당이 이제 와서 부유층과 흑인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선거의 측면에서도 좋을 것이 없어 보였다. 민주당 루스벨트가 미국 전역을 싹쓸이했던 1936년 대선에서조차 북동부의 메인과 뉴햄프셔만은 공화당 최후의 보루로 남아 있었지 않았던가? 도덕적 자부심과 경제적 이해관계, 선거의 텃밭, 역사적 정체성까지 모두 내던지면서 공화당이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남부를 얻는 자, 미국을 얻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보고서의 답은 명쾌했다. 남부, 바로 그곳에 공화당의 미래가 달려 있다. 북동부의 상실은 민주당으로부터 그들의 남부 텃밭을 빼앗음으로써 상쇄되고도 남을 것이다. 남북전쟁 이래 남부가 지금까지 민주당에 몰표를 던진 이유는 북부와 흑인의 정당인 공화당에 맞서 남부 백인들의 수호자인 민주당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 흐름이 변하고 있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이 민권법과 투표권법을 연달아 통과시키며 흑인 민권운동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하자, 민주당에 대한 남부의 반동(backlash)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민주당을 탈당해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우며 독자 대선 출마를 감행했던 월러스가 그 명백한 증거였다.

나아가서 남부라는 지역은 과거 노예제를 옹호했던 주들의 영역을 넘어서서 급격히 팽창하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미국 시사용어사전에 영원히 남을 하나의 신조어가 탄생한다. ‘선벨트(Sun Belt)’ 애틀랜타에서부터 휴스턴과 댈러스를 지나 캘리포니아의 LA까지 이어지는 이 지역은 쇠락하는 북부 공업지대를 대신해 미국의 새로운 산업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었다.

백인 보통사람의 마음을 얻는 자 남부를 얻을 것이요, 남부를 가진 자가 곧 선벨트를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이 운명의 땅 선벨트 쟁탈전에서 승리한 당이야말로 미국의 미래를 지배할 것이다. 닉슨으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소위 ‘남부 전략(Southern Strategy)’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될 공화당 필승의 비법은 이렇게 탄생했다.

남부 전략, 공화당 우위의 시대를 열다

남부 전략은 이후 미국 정치를 총체적으로 재편했다. 1968년 닉슨의 당선 이후 2008년 북부 출신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당선될 때까지 미국의 모든 대선에서는 예외없이 남부, 그것도 선벨트 출신의 후보가 승리를 거두었다. 로널드 레이건의 근거지는 캘리포니아 남부 LA였으며, 부시 대통령 부자는 모두 텍사스에서 정치 경력을 쌓았다. 이는 민주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지미 카터의 정치적 고향은 조지아의 애틀랜타였고, 빌 클린턴 역시 남부 아칸소 주지사 출신이었다. 이 40년의 기간 동안 민주당이 고작 12년 간 집권한 데 반해 공화당은 무려 28년이나 백악관을 차지했다. 

이데올로기의 각도에서 보면 공화당의 흥기는 더욱 분명해 진다. 닉슨에서 레이건, 부시를 거치며 공화당의 보수주의는 더욱 짙어져 갔고, 그에 맞추어 남부는 점점 더 확고한 공화당의 아성으로 자리 잡았다. “링컨의 당”으로서의 과거는 이제 잊힌 역사가 되었다. 이에 더해 남부 백인의 정체성을 강조했던 카터부터 대놓고 남부 촌뜨기임을 자처했던 클린턴까지, 민주당 대통령들마저 순한 맛 보수주의를 표방하며, 공화당의 뒤를 좇아 남부 백인들에게 구애를 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이로써 1968년 대선 과정에서 닉슨에게 배달되었던 한편의 문서는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성공한 예언서가 되었다. 이듬해 그 문서가 출판되어 나왔을 때, 책의 제목은 예언서의 그것으로 손색이 없었다. 『떠오르는 공화당 우위의 시대 The Emerging Republican Majority』(왼쪽 사진)

프랑켄슈타인 박사, 자신이 만든 괴물에 대한 통제를 상실하다

케빈 필립스

이것이 과연 남부 전략이 꿈꾸었던 미래였을까? 적어도 그 전략의 입안자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1968년 남부 전략을 처음 입안했던 당시, 케빈 필립스(Kevin Phillips)는 하버드 로스쿨을 갓 졸업한 스물여섯 살의 젊은 평당원이었다. 그는 사실 북동부인 뉴욕 출신이었고 남부 백인들의 노골적 인종주의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의 전략에 따라 공화당의 주인공으로 등극하게 되는 남부의 보수적 백인들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인물이었다.

실제로 필립스는 1968년 대선 직후부터 모종의 위기감을 느꼈다. 그가 보기에 공화당은 백인 보통사람들을 위한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인종주의를 동원해 그들의 표를 챙기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동시에 뒤로는 부유층과 기득권을 위한 정책들을 추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닉슨 당선 이후 채 한 해가 지나기도 전에, 그는 중간계급에 대한 복지 혜택의 축소를 비판하며 공화당을 탈당했다.

필립스는 이후 자신이 만든 전략에 따라 전성기를 누리던 바로 그 정당과 맞서 싸우는 데 남은 생애를 바쳤다. 그는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중간계급의 붕괴와 빈부의 양극화를 낳았다고 맹렬하게 비판했고, 아버지 부시의 재임기 동안 공화당이 부유층을 위한 “금권정치”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1992년 클린턴의 당선을 보며 그는 자신의 예언이 드디어 효력을 다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안타깝게도 공화당의 승승장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아들 부시의 당선은 재앙 그 자체였다. 그래도 캘리포니아 출신이었던 레이건은 중도 유권자들의 눈치라도 볼 줄 알았지, 텍사스 출신의 저 카우보이는 노골적으로 기독교 근본주의와 인종주의를 동원해 부유층을 위한 정책들을 옹호했던 것이다.

필립스의 투쟁은 괴물을 만들었으나 그것을 통제할 수 없었던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싸움과 닮았다. 그는 남부 전략을 만들었으나, 그것은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그의 통제력을 벗어났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결과를 정말 몰랐을까?

정치공학이 정치도의를 떠났을 때

필립스는 자신이 처음 남부 전략을 제안했을 때 그것이 낳을 결과를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에 따르면, 자신은 정치공학의 기술자로서 차가운 데이터를 가지고 유권자별 투표성향을 파악하고 그를 통해 선거 전략을 제시하는 데 관심이 있었지,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민권운동에 대한 남부의 반동은 이미 거부할 수 없는 추세였고, 자신은 그것을 효율적으로 활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가 바란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공화당의 승리가 “보통사람”의 승리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꿈은 바로 그 자신이 만든 공화당 승리의 비법, 남부 전략에 의해 판판이 깨어지고 말았다.

물론 ‘보통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는 노골적이면서도 과격한 백인 우월주의을 내세우며 그들을 역차별하는 기득권과 소수인종의 동맹을 타파하겠다고 외쳤다. 남부를 중심으로 미국 전역의 보수적 백인들이 그의 인종주의적 포퓰리즘에 열광했다. 이 모습은 반세기 전 필립스가 공화당에게 백인 보통사람들을 위한 정당이 되라고 조언했을 때, 결코 그가 원하지 않았던 잔혹한 결말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 결말은 처음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승리가 아무리 달콤해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고, 패배가 아무리 쓰라려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이를 우리는 정치도의라고 부른다. 1964년 린든 존슨 대통령은 민권법에 서명을 하며 주위의 보좌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방금 나는 남부를 공화당에 넘긴 걸세. 아마 우리 생전에는 되찾지 못할 것이야.” 존슨의 예언은 필립스의 전략만큼이나 정확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위해 패배를 감수했고, 다른 누군가는 승리를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증오는 무서울 정도로 효율적인 정치공학의 도구이며, 특히 다수가 소수를 향해 사용했을 때 더욱 그렇다. 역차별이라는 교묘한 레토릭이 차별의 정당성과 승리의 방법론을 동시에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증오라는 이름의 이 무서운 도구를 함부로 휘두르는 일은 예외 없이 해당 사회에 치명상을 남긴다. 그 상처의 깊이를 깨달았을 때 이미 치유가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미국 공화당의 역사가 작금의 우리 정치에게 들려주는 하나의 소중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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