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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화시대 여성의 의미도 바뀌고 있다…‘자유’를 넘어 ‘보편’으로
금융화시대 여성의 의미도 바뀌고 있다…‘자유’를 넘어 ‘보편’으로
  • 김주희
  • 승인 2022.04.06 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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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④ 동시대 복잡성을 인식하는 ‘여성학 연구’ 

 

<교수신문>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연재를 시작하며: 새 세대 한국 인문사회 연구자를 만난다

 

“지난 40년간 여성학 연구는 ‘한국 여성의 현실’에 관한 현장 발굴과 이론화에 몰두했다. 
향후 여성으로서 보편적 해방을 도모하기 위해, 
변화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여성학적 비판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바야흐로 페미니즘이 대중화의 전기를 맞이하였다. 이때 ‘대중화’는 페미니즘과 관련한 양적이고 질적인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용어이다. 2015년 이래 수많은 여성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했다. 국내 20대 여성 2명 중 1명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인식한다는 조사도 있다. 성평등을 핵심적 사회 정의로 수용한 이들은 이번 대선을 지나며 정치 운동의 주체로 더욱 가시화되었다. 

페미니즘의 대중적 물결과 ‘백래시’

이들은 이전 시대 여성학 연구자, 활동가들이 만든 토대에서 등장했으나 동시에 이러한 토대를 깨고 나왔다. 이들은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받았고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법·제도적으로 금지된 사회에서 성장했으나, 생활세계에서 취업 및 승진 차별, 성폭력, ‘독박육아’ 등을 경험하거나 목격하게 되었다.

여성들은 상식적인 개인 사이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 왜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관계에서, 혹은 성별의 외피를 입을 때 발생하는지 사회규범과 문화를 근본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이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조건과 분리될 수 없음을 깨달은 이들은 페미니즘을 학습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출판 시장 불황기에도 페미니즘 관련 도서는 활발히 출판되어 읽히며 여성학 관련 학술대회에는 연구자들의 분석을 경청하고 토론하고자 하는 이들로 붐빈다. 대학 내 여성학 수업과 전공을 확대, 개설해달라는 요구도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페미니즘을 학습하는 청소년 인구를 고려한다면 이러한 경향은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성학을 성차를 생산하는 지식과 권력, 이와 결합한 인간의 경험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때, 이들은 동시대 성차 생산의 핵심 장소로 온라인, 단톡방 등 디지털, 비대면 세계에 더욱 주목했다. 오랜 시간 리벤지 ‘포르노’, ‘몰카’ 영상 등의 단어로 사소화된 문제는 이제 ‘불법’ 촬영물, 디지털 성‘범죄’라고 불리게 되었다.

대중화 시대 페미니스트들은 다양한 세미나팀을 조직하고 시위에 나서며 법과 제도, 정치의 엄정한 재편을 촉구했다. 지금 페미니즘은 변화된 시대와 미래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이들의 인식론적 나침반이 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대선을 지나오며 더욱,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적 경향이 포착되고 있다.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페미니즘이 남성 몫을 침해한다며 거짓 선동에 나서고 있다. 분석과 감시의 범주인 ‘성인지예산’에 대해 별도 편성된 예산인 것처럼 날조하더니 국민 통합을 운운하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성별에 따른 정책 효과를 고려하자는 주장을 ‘여성 우대’로 인식하는 무능함을 스스로의 정치적 전략으로 삼고 있다. 그간 여성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통해 기득권이 유지되었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모양새가 아닐 수 없다. 소수자와 약자의 생존 투쟁을 개인의 의자 뺏기 게임 정도로 취급하는 정치인의 태도는 사회의 미래를 사유하지 않는 직무유기일 뿐 아니라 혐오와 차별의 대상을 언제든 그렇게 취급해도 된다고 용인하는 폭력이 아닐 수 없다. 

여성의 타자화…여성학 지식의 몰역사화

사실, 정치인들이 내뱉은 성차별적 ‘망언’은 오랜 시간 돌림노래처럼 이어져 왔다. 서구에 대한 오랜 열등감에 시달려온 한국에서 이는 종종 ‘서구’를 경유한다. ‘한국 페미니즘은 서구와 달리 변질되어 문제’라는 진단과, ‘한국 페미니즘은 서구적이기에 문제’라는 진단이 공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전혀 다른 이러한 두 개의 주장은 한국 페미니즘이 ‘올바른 페미니즘’이 아니라는 공통의 훈계에서 만난다. 한국을 역사 없음의 장소로 보는 식민주의의 시각과 자국 여성을 종속화하며 서구를 견제하는 ‘식민지 남성성’의 태도가 공명하고 있다.

최근 ‘하버드 대학 출신’의 남성 정치인이 반페미니즘적 주장에 앞장서는 것은 이와 같은 측면에서 징후적이다. 국적도 인종도 성별도 계급도 초월한 보편의 얼굴을 (주장)하는 그는 한국 여성의 구체성을 호명하고 꾸짖으며 손쉽게 타자화한다. 한국사회의 여성혐오(misogyny)는 여성을 보편적 ‘인간’과 다른 존재로, 한국여성을 보편적 ‘한국인’과 구분되는 존재로 종별화하는 시각이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이들에게 한국 여성운동과 여성학은 언제나 역사 없이 새롭게 돌출된 목소리로 인식된다. 

여타 학문분과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여성학 역시 ‘서구’ 혹은 글로벌 지식장, 국제사회와 맺는 관계나 한국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학문적 토양을 재구축하고 갱신해왔다. 기원적으로 한국 여성학은 발전주의 프레임과 서구의 언어로부터 출발한 경향이 있다. 1975년 UN이 지정한 ‘세계여성의 해’의 영향으로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가 설립되고 이후 여성학 강좌와 학위과정이 개발, 개설된 것이 대표적이다.

동시에 이 시기는 전 세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2물결 페미니즘’의 성취와 업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시기이기도 하다. 이후 1984년 창립된 한국여성학회를 중심으로 한국여성학의 특수성과 보편성에 관한 토론이 거듭되었다. 여성학 지식의 범주, 이론틀, 소통과 도전 대상에 대한 자체적 검토와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민주화 시기와 냉전 종식기를 지나면서 풀뿌리 여성운동과 문화운동, 국제활동이 부상하였고 ‘한국 여성이 처한 문제’와 관련된 현장이 발굴되었다. 1990년대 이래 한국의 여성운동과 여성학은 대중화의 과업을 놓지 않았고, 때로 대중적 성공을 일구어냈다. 동시대 페미니스트들이 변화된 현실에 맞도록 재개정을 촉구하는 여러 여성 관련 법제들이 이 시기 기틀을 만들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전국 대학 여성학 전공자들의 논문을 통해 지구적 질서와 연동하는 한국의 여성현실을 만들어내는 환경, 구조, 권력에 대한 분석이 체계화되었다. 탈식민 지식으로서의 아시아여성학이 페미니즘의 서구 중심성을 비판하려는 시도로써 구축되었고 여성들 간의 다층적 차이에 기반한 교류와 상호참조를 만들어내는 주요 이론으로 활용되었다. 

탈식민 지식으로서의 아시아여성학은 페미니즘의 서구 중심성을 비판하려는 시도로 출발했고, 자신이 속한 사회와 문화에서 발생한 문제를 토론하고 해결하기 위한 창조적 네트워크로 발전해왔다. 사진은 2019년 12월 한국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아여성학회 국제학술대회의 모습이다. 총 18개국 250명의 학자와 활동가들이 6개 주제 44개의 세션으로 구성된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사회 변화와 다양한 여성 주체 연구

동시에 이 시기 아시아는 국가 파산으로 인한 개인들의 고통과 연관된 지정학적인 기표이기도 했다. 탈식민 아시아는 인식론으로서의 지위를 넘어 세계 경제에 의해 장악되는 경험적 범주로서 개인들의 생활세계 안에서 물질적으로 포착되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외환위기 직후의 시기는 ‘구조조정’이라는 단어가 대중의 일상 용어로 자리 잡은 때이다. 아르바이트와 등록금 투쟁이라는 실존적 양대 과제를 수행하면서도 끈끈하게 문제의식을 이어온 학내 페미니스트들 덕분에 여성학 지식과 실천이 ‘전수’되는 환경이 이어져 올 수 있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동맹 속의 섹스』,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용감한 여성들』, 『가출, 지금 거리에 ‘소녀’는 없다』와 같이 여성학 전공자에 의한 저역서가 출간되면서 글로벌 질서와 연동하는 한국 성산업에 대한 분석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또한 문화경제적 공통성에 대한 분석이자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문화연구가 부상한 배경에서 아시아 학자들의 연구가 널리 읽히고 인용된 시기이기도 하다. 아시아에서 ‘위기’ 이후를 경험한 청소년에 관한 연구가 증가하였고, 청소년 보호담론의 여성학적 전환이 만들어졌다. 2000년대 이후 변화된 사회를 횡단하는 다양한 여성 주체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배경을 지나 나는 ‘우리 사회에서 누가, 어떻게 성매매 여성이 되는가’라는 질문으로 10대 여성과 지역의 티켓다방에 대한 석사학위 논문을 작성하였다. 이를 통해 사적 보호망의 바깥에 놓인 10대 여성을 체계적으로 인입시키면서 분업적이며 위계적인 망을 형성하는 한국 성경제의 일면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후 2006년부터 기지촌 여성단체에서 현장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성매매특별법’의 제정으로 여성주의자들과 현장의 여성들이 만날 수 있는 시간과 예산이 가능해진 시기였다.

하지만 이때 진입한 기지촌 지역은 학부 시절 ‘기지촌 활동’을 통해 목격한 모습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한국 사회 전역이 글로벌 문화에 잠식된 때에 주한미군들은 더는 기지촌 지역에서 유흥을 즐기지 않았고 그 틈새를 이주노동자 남성들이 메웠다. 기지촌 지역도 예외 없이 부동산 투기의 광풍을 맞이하였고 여성들은 낙후성의 징표로 남아 ‘건물주’와 ‘포주’의 재개발 요구를 증명하는 이들로 전락하였다. 

사인 간 성매매를 문제화하는 것을 넘어 성매매 여성이라는 존재를 연쇄적으로 만들어내고 활용하는 특정 세력의 등장과 변화에 대한 분석이 필요해진 때였다. 한국의 공식경제와 연동하는 성산업의 금융화에 대한 연구로 2015년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한 배경이다. 이 논문은 지독하고도 유난한 한국 성산업의 특수성에 관한 연구라기보다 금융화된 자본주의 경제가 사회의 가장 취약한 이들의 삶을 탈취하면서 확대재생산되는 과정을 분석하고 드러내는 것에 주안점을 둔 연구이다. 

페미니즘 대중화 시대…여성학 연구의 과제 

인간의 삶을 불확실한 방향으로 만들어내는 사회적 변화에서 가장 먼저, 취약한 형태로 목격되곤 하는 이들은 여성이다. 이에 여성학 연구는 사회 변화와 연동하는 문제의 얽힌 매듭을 파악하는 강점이 있다. 빈곤의 여성화, 비정규직의 여성화와 같은 개념들이 상징적일 것이다. 동시에 차별과 억압을 몰역사화, 자연화하려는 시도에 맞서 역사적으로 여성이 호명되고 활용되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음에 날카롭게 주목해야 할 것이다.

특히 “생산 없는 이윤”이 만들어지는 시대에 자유라는 해방의 언표는 개인을 체제에 순응, 종속시키는 핵심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되고 있다. ‘여자라서’ 대출해주겠다는 대부업체의 전략을 떠올려 볼 수 있으며, 최근 드랙퀸(drag queen)을 대출상품 광고모델로 기용하여 “난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라는 대사를 노출하는 모습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부채를 통해 자신감 있는 자기실현을 하라는 메시지가 노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여성과 소수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페미니즘의 대중화 시대,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망언’을 정치적으로 규탄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동시에 여성의 임파워링이 선전되는 방식도 비판적으로 숙고해야 할 것이다. 여성을 긍정하는 정치를 선택하고 부정하는 정치를 거부하는 것을 넘어, 여성이 놓인 사회적 자리에서 정치를 만들고자 힘을 결집해야 한다. 그것이 여성으로서 보편이 되는 ‘강한 보편성’을 통해 해방을 도모하는 기획일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1970-80년대 좌파운동을 통해 뿌리를 내린 협동조합, 자영업자, 장인 연합 등이 신자유주의 시대를 지나며 위기에 처하자 “대중경제(popular economy)”라는 설명틀로 자신들이 처한 노동의 문제와 탈취의 현실을 설명하였다. 직불카드를 통해 지급된 국가보조금이 수많은 ‘신용을 가진 무임 인구’를 만들어내고 결국 금융의 지배력을 강화한 배경이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금융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은 개별적으로 생존을 모색하는 인구로 손쉽게 포획되어 삶을 뿌리뽑힌 채 이윤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에 페미니즘 대중화 시대를 지나며 대중 여성의 위치가 매개하는 근원적 질서에 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여성학자만의 과제를 넘어 체제가 지닌 모순을 해결하고 새로운 전망을 만들고자 하는 모든 지성과 실천이 결집해야 할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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