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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프로문학으로 계급과 민족을 ‘다르게’ 바라보기 
100년 전 프로문학으로 계급과 민족을 ‘다르게’ 바라보기 
  • 최은혜
  • 승인 2022.11.0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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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29 ‘프로문학 연구’의 후레자식 선언

<교수신문>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연재를 시작하며: 새 세대 한국 인문사회 연구자를 만난다

 

계급과 민족의 문제는 철지난 거대 담론이 아니라 현재를 구속하는 구성물이다. 
우리는 이 문제들을 화두 삼았던 100년 전의 프로문학을 통해 
오늘날의 현실을 통찰할 수 있다는 점을 새겨야 한다. 
새로운 프로문학 연구는 어느 지반 위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가. 
나는 그 근본적인 답이 그동안 프로문학 연구사를 이끌어온 세대적 장력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적 산출물로서의 연구 경향성에 대한 
자기객관화 작업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후래자삼배(後來者三杯). 뒤늦게 술자리에 도착한 사람이 연거푸 세 잔 술을 마셔야 한다는 이 말이, 먼저 취한 사람이 아니라 함께 취하고 싶은 사람에 의해 발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은 적이 있다. 2012년에 발표된 『프로문학의 감성 구조』의 서문을 읽으면서였다. 

1990년대 중반 대학에 입학한 저자는 식민지 조선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이하 ‘프로문학’)을 다루는 이유로 ‘후래자삼배의 감각’을 든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를 마르크스주의보다 미리 알았다는 사실이 주는 자격지심”, 혹은 “포스트○○주의를 먼저 접했기 때문에 ○○주의의 아우라를 영영 느껴보지 못할 것이라는 낙담”이, 1980년대 중후반 집단적 연구열의 대상이 되었던 프로문학 연구에 “한 번은 같이 취해보고 싶다는 욕망”(4쪽)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 학번인 나는 이러한 진솔한 고백의 언어가 와닿지 않아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성여야만 했다. 함께 취하고 싶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프로문학 연구사의 세대적 흐름

프로문학 연구는 해금 이후 학술운동세대를 통해 집단적으로 이루어졌다. 1980년대 후반 학술운동의 자양분이 됐던 변혁에 대한 급진적 상상력은 1920년대~1930년대 프로문학의 저변에 흐르던 해방의 정신과 맞닿아 있었으므로, 프로문학은 연구의 대상이기에 앞서 현재의 운동을 위한 전사(前史)일 수 있었다. 카프(KAPF)의 조직론과 그것을 중심으로 전개된 비평사가 연구의 중심에 놓였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1991년 5월 투쟁의 실패와 소련의 몰락 등이 보여주는 세계의 변화에 따라 프로문학 연구열은 급격히 냉각되었다. 운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던 연구가 운동의 쇠퇴에 직면해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카프와 프로문학으로 학위논문을 쏟아내던 학술운동세대 연구자들은 운동성을 제거한 학술적 관점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하며 프로문학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1920년 7월, 페테로그라드 광장에서 열린 코민테른 제2차 집회의 장면. 레닌이 연설하고 있는 가운데, 사진의 우측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사진=Victor Buhler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중진이 아닌 신진 연구자들에 의한 프로문학 연구가 속속 진행되었다. 이 연구들은 다양한 줄기로 뻗어 올라갔지만 희미하게나마 공유하는 지점이 있었다. 운동론이나 논쟁사가 놓치고 있던 사회주의 문학의 내적 동인, 이를테면 감정, 감성, 정동, 낭만성 등을 밝혀내려는 기반 위에 서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조직과 구조가 아닌 인간학적 조건들에 보다 집중하려는 이러한 경향은 후래자가 선택할 수 있는 반편향의 길이기도 했다. 단일한 이념적 좌표가 사라진 시대에 개별 인간의 ‘윤리’가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요컨대 프로문학 연구는 세대에 강하게 결박된 채 진행되어왔다.

개별 윤리를 강조하는 시대의 프로문학에 대하여

앞선 세대를 극복하기 위해 그 대극(對極)의 가치가 새로운 지향점으로 놓이는 것이 세대론의 일반적 성격이기도 한바, 프로문학 연구의 초점이 ‘조직 논리’에서 ‘개별 윤리’로 급격히 전환된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배들과 함께 취해보고 싶은 마음을 가졌으나 같은 모양으로 취하지 않는 후래자의 행보 역시 세대적인 것이다.

이때 개별 윤리에 대한 강조는 내용상 올바르고 논리적으로 매끈하며 문제의식의 측면에서는 세련됐지만, 어딘지 석연치 않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변혁을 향한 집단적 노력과 상상력을 낡은 것으로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프로문학을 연구함으로써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성찰의 지점일 수 있음에도 말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경향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화와 개인을 성과주체로 옭아매는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등장할 수 있었던 어떤 징후로 이해될 수도 있다.

후래자 이후의 연구자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각자도생을 당연한 삶의 방향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혁명을 꿈꾸고 그 가능성을 타진하는 프로문학은 낯선 것일 수밖에 없다. 선배들과 함께 술잔을 부딪쳐 보지 못했으므로 후래자삼배의 감각에 기대어 프로문학 연구의 내적 동인을 설명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왜 지금 프로문학을 연구하는지를 설명하기는 점점 더 요원해진다. 

후래자가 아닌, 후레자식 되기

그렇다면 새로운 프로문학 연구는 어느 지반 위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가. 나는 그 근본적인 답이 그동안 프로문학 연구사를 이끌어온 세대적 장력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앞선 세대와의 대결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방식과의 거리두기를 의미하는 한편, 시대적 산출물로서의 연구 경향성에 대한 자기객관화 작업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후래자가 아니라 그냥 후레자식이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볼 수 있겠다. 배운 것 없이 제풀에 막되게 자라난 사람을 일컫는 후레자식이라는 말의 뉘앙스처럼, 앞선 세대는 없었다는 듯 연구대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유독 프로문학 연구에 켜켜이 쌓여있는 세대적 자의식과 시대적 무의식으로부터 막되게 벗어남으로써 프로문학에 덧입혀진 의미의 하중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프로문학을 객관적 거리가 확보된 연구대상으로서 대면하는 것은 그로부터 가능해진다.

물론 ‘객관적 거리감’이 정치성의 탈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프로문학이 해방을 지향하고 혁명을 목적하는 활동의 결과물인 한, 프로문학의 본질에 대해 질문해나가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해방과 혁명에 닿아있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너무 낡아서 누구도 얘기하길 꺼려하는 계급과 민족 모순을 다시 중요한 화두로 삼는 것이 놓여 있다.

1925년 결성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구성원들이 함께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사진=구글

다시, 그러나 다르게 계급과 민족을 화두 삼는 길

계급과 민족은 식민지기의 사회주의를 설명하는 데 돌파하지 않을 수 없는 거대한 문제다. 그것을 우회해서는 프로문학이 던지는 핵심적 성찰의 지점을 놓치게 될 공산이 크다. 성찰은 현재를 타깃으로 이루어져야 하므로 성찰의 지점을 놓치게 되면 연구의 현재성도 의미를 잃게 된다. 얼마동안 프로문학 연구는 이를 직시하는 것을 피해왔고, 그 사이 프로문학 연구의 현재적 의의는 더 이상 질문되지 않았다. 

거듭하건대 계급과 민족의 문제는 철지난 거대 담론이 아니라 현재를 구속하는 구성물이다. 우리는 이 문제들을 화두 삼았던 100년 전의 프로문학을 통해 오늘날의 현실을 통찰할 수 있다는 점을 새겨야 한다. 

당연하게도 이는 과거 학술운동세대가 취했던 연구 경향으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충실한 계급 모순의 해석, 혹은 민족해방계에 의한 민족 모순의 해석은 모두 선험적 틀에 따른 것이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분석은 식민지 조선의 정치적·문화적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프로문학을 객관화하고 그 속에서 계급과 민족 문제가 교차되는 (내가 언젠가 ‘식민지 사회주의’라고 이름 붙이고자 하는) 특유한 사유의 방식들을 살피는 것으로까지 나아갈 수 없었다. 

계급과 민족을 비롯한 여타의 모순이 중첩되어 있는 식민지적 조건을 인식하고 그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다양한 사회적 집합의 교차성을 사유한 프로문학이 현재에 던지는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여러 모순들이 겹쳐지면서 수많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내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프로문학 연구는 바로 ‘지금-여기’의 혁명을 향한 역사적 검토다. 그 연구는 언제나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을 담아낼 그릇이다. 이것이 ‘혁명 없는 시대’에 여전히 혁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연구의 대상과 동기로서의 혁명을 모두 포기할 수 없는 후레자식의 감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나부터 후레자식 되기를 선언한다.

최은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올 여름 고려대에서 「식민지 조선 프롤레타리아 소설의 역사 인식과 주체」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식민지 조선의 프롤레타리아 소설이 공유하는 정신적 구조의 특질을 사회주의의 본질적 문제인 ‘역사 인식’과 ‘주체’에 초점을 맞추어 규명하고 그 식민지적 특성을 밝혀내려 한 논문이다. 조선의 프로소설이 단계론적 역사 발전을 전제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혁명의 핵심 주체로 설정하는 방식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만으로 온전히 수렴되지 않는 고유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음을 해명하고자 했다. 그러한 고유성은 서구의 주변부이자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사회주의 사상과 문학이 자기화 과정을 겪으며 수용되었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앞으로는 ‘식민지 사회주의’라는 개념의 외연과 내포를 만들어 가는 작업을 진행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주요 논문에는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문학적 형상화와 정치적 의미」(2022), 「‘운동가 코스모폴리타니즘’의 낭만성과 그 함의」(2022), 「민족과 혁명: 1920년대 초 사회주의 수용에서 러시아 혁명 인식의 문제」(2021), 「디스토피아의 유토피아: 신경향파 소설의 정치적 무의식」(2021), 「식민지 사회주의 농촌소설에서의 주체와 공동체」(2021), 「1920년대 초반 식민지 조선의 역사적 유물론 인식」(2021) 등이 있으며, 『혁명을 쓰다』(2018), 『흙흙청춘』(2016) 등의 단행본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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