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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철학, 학술적 글쓰기 벗어나는 게 낫다”
“모든 철학, 학술적 글쓰기 벗어나는 게 낫다”
  • 권두현
  • 승인 2022.12.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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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에일리언 현상학』 이언 보고스트 지음 | 김효진 옮김 | 갈무리 | 304쪽

사변적 실천으로만 존재하는 객체들의 범주
이차원 평평함에서 점의 압축적 존재론으로

이언 보고스트(Ian Bogost)는 비디오게임의 비평가이자 고안자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이 관여하는 비디오게임을 비롯한 무생물을 통해 사물의 형이상학에 이르러, 객체들의 ‘이세계(異世界)’를 열고 여기에 진입하려는 용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객체들의 이세계는 주체들의 세계를 인식하는 눈으로 파악될 수 없다. 그래서 사변이 필요하다.

사변적 실천으로만 존재할 수 있고, 결코 성취되거나 검증 가능한 지식으로 존재할 수 없는 철학을 보고스트는 ‘에일리언 현상학(Alien Phenomology)’라고 명명한다. ‘에일리언’은 사변을 통해 현상하는 객체들의 범주다.

에일리언 현상학에서 “사물의 경험은 어떠한 것인가”를 알고자 하는 철학적 목표는 명확히 정의되기보다도, 끝내 영감을 주는 상태로 남겨진다. 이렇게 『에일리언 현상학』은 정의상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끝없이 가설을 세우도록 독자들을 객체들의 이세계로 초대한다.

 

『에일리언 현상학』에서 이언 보고스트는 게임 「E.T.」가 8킬로바이트에 해당하는 6천502개의 명령 코드와 오퍼랜드이다. 고주파 변조들의 흐름이며, 일종의 집적회로이자, 하나의 성형 플라스틱 카트리지, 하나의 소비재, 하나의 상호작용적 경험, 하나의 지적 재산권 품목, 하나의 수집품, 그리고 1983년 비디오게임 붕괴 사태를 둘러싼 환경을 묘사하는 하나의 기호라고 소개한다. 이들 종류의 존재자는 모두 서로 독립적이지만 동시에 현존한다. 이것이 게임 「E.T.」를 통해 그 지평을 드러내는 ‘평평한 존재론(flat ontology)’이다.

보고스트는 존재자들을 평평한 존재론의 이차원 ‘평면’에 걸쳐 분산시키는 대신에 모든 것이 전적으로 포함된 고밀도 덩어리의 ‘점’으로서 제시한다. 이 점은 작지만(tiny) 결코 사소하지 않고 오히려 거대하다. 이렇게 『에일리언 현상학』은 평평한 존재론을 포용하면서 ‘압축적 존재론(tiny ontology)’이라는 차이를 드러낸다. 이는 변별이라기보다 객체 지향 존재론들의 확장이자 압축이라 할 수 있다.

객체 지향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는 영어 ‘Object’, ‘Oriented’, ‘Ontology’의 알파벳 앞 글자를 따서 종종 약호 “OOO”로 통칭된다. 인간의 인식에 의해 알파벳이라고 포착되는 이 기호를 존재론적 형상으로서 유심히 들여다 볼 수 있다면, 동그라미 세 개가 나란히 늘어선 모양이 포착된다. 이와 함께 평평한 존재론의 지평이 현상한다.

아마도 이언 보고스트라면, 이 동그라미를 빈 점으로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비어있음으로 꽉 채워진 형상의 존재로 보았을 수도 있다. 보고스트가 보기에, 그 빈 점은 객체로 취급되었던 다양한 존재자들이 다층적으로 들어서면서 ‘존재론적 빅뱅’을 일으킬 수 있는 자리였을 것이다.

『에일리언 현상학』은 객체 지향 철학 그 자체가 아니라 객체 지향 방법론을 다루기 때문에 객체 지향 존재론에 대한 입문을 추구하는 사람들보다 이미 여기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유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조차 『에일리언 현상학』은 독특할 듯하다. 서면에 글로 기입된 철학의 형식을 서면을 통해 비판하면서 철학의 다른 존재 형식을 사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언 보고스트는 모든 철학이 학술적 글쓰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것이 세계를 표현하는 다른 방식보다 언어학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는 한, 객체 지향 존재론이 학계의 ‘기호학적 강박’에 의해 특히 불리하다고 주장한다.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에일리언 현상학』은 다이어그램과 사진을 비롯하여, 보사노바의 가사, 광센서 및 데이터 시각화 장치에 이르기까지, 사물의 관점을 조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객체들의 매혹적인 난장을 통해 압축적 존재론이 어떤 모습일지를 제 스스로 지도화한다. 이언 보고스트의 표현을 직접 빌리자면, 이는 철학적 방법으로서의 ‘공작’이다.

『에일리언 현상학』은 에일리언 현상학적 공작물 그 자체다. 여기서의 공작은 객체가 아니라 ‘단위체(unit)’의 개념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언 보고스트가 소개하는 단위체는 물질적 구체성을 지닌 사물 너머의 존재까지를 폭넓게 아우른다. 보고스트는 그가 관여했던 비디오게임에 관한 통찰을 바탕으로, 인공적 아키텍처의 전산적 과정에서 감각의 입력이 어떻게 작동하고 처리되는지를 예시로 삼아 단위체를 개념화한다.

궁극적으로 보고스트는 평평한 존재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프랙탈적 ‘단위조작’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압축적 존재론 내의 단위조작을 다른 큰 단위체의 일부일 수 있는 별개의 단위체로 공식화한다. 그렇다면 『에일리언 현상학』은 단위체 개념의 기입을 통해 단위조작하는 단위체라고 바꾸어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단위체의 일은 이해되기에 앞서 지각되고 일종의 매혹(allure)과 함께 정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에일리언 현상학』은 ‘놀라움’에 관한 5장으로 마무리되는데, 이언 보고스트는 ‘놀라움’이라는 태도로부터 우리가 마침내 사물을 사물 그 자체로서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이와 같은 순간에 압축적 존재론과 함께 객체 지향 존재론은 (예컨대, 당구공이나 핵폐기물과 같은) 제작된 사물까지를 포함하는 심화된 버전의 생태학에 접근한 다문화주의의 새로운 형태 또는 광범위한 형태를 취한다.

윤리적 충동은 『네트워크의 군주』(김효진 옮김, 갈무리, 2019)의 저자 그레이엄 하먼(Graham Harman)이 칸트 철학의 전통에 대한 비판에 동원된 “형이상학의 히로시마”, “인간과 비인간에 대한 범죄”, 그리고 비인간에 대한 “글로벌 아파르트헤이트” 등의 표현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이와 같은 수사학은 에일리언 현상학을 비롯한 객체 지향 존재론이 칸트 철학, 더 나아가 ‘휴머니즘’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것이 철학적이기보다 다분히 윤리적임을 시사한다.

객체 지향 존재론이 윤리적 태도를 취하고자 한다면, 중요한 과제가 그 앞에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가 왜,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윤리적 확장 프로젝트에 착수해야 하는지 좀 더 명확하게 정당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윤리적 지위가 특권적 지위에서 모든 것에 보편적으로 부여되는 지위로 전환된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설명하는 만만치 않은 작업을 수반할 것이다.

모든 것이 여타의 것에 에일리언으로 존재함으로써 위계를 갖지 않는 사변의 세계는 위계구조화된 실제 세계 앞에서 정치적 실천의 근거로서 제공될 수 있다. ‘에일리언 현상학’이라는 사변이 남긴 과제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은 아닐지언정, 흥미롭게도, 사라 아메드(Sara Ahmed)는 ‘에일리언 어펙트(Alien Affect)’와 ‘퀴어 현상학(Queer Phenomenology)’이라는 개념과 이론을 통해 ‘에일리언’과 ‘현상학’을 보편성(universality)의 지평 너머로 데려간다. 어펙트 에일리언에 다름 아닌 퀴어는 ‘사물의 경험’을 넘어, ‘사물화된 경험’에 뒤얽힌 신체의 정동적 지향성을 지도화하면서 현상학적 퀴어링(queering)을 작동시키는 단위체로 볼 수 있다.

이언 보고스트가 “단위체들은 다른 단위체들의 내부에 갇힌 별개의 존재자들이며, 이들 단위체는 절대 중첩하지 않은 채로 불편하게 서로 어깨를 비벼댄다”고 말했듯이, 아메드의 현상학은 보고스트의 현상학과 중첩하지 않은 채로 서로 어깨를 비벼댄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단위체의 일이다. 독자적인 행위자로서 현상학적 단위체들은 이 순간, 철학의 ‘존재도학’을 그려내고 있는지 모른다. 그 압축적 지형을 확대하기 위한 철학적 실험 장비로서 『에일리언 현상학』은 충분히 풍부한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권두현
동아대 젠더·어펙트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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