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좋음’은 무엇인가
주체성 회복을 위한 질문들
익숙하지만 낯설다. 이 책이 기술과 교육을 다루면서 보여주는 두 모습이다. 익숙한 이유는, 세상이 ‘그렇다’와 ‘그렇지 않다’라는 이분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과 교육의 관계는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지저분하기도 하다.
기술이 교육에 가져다줄 수 있는 효율성이나 편의에 주목하여 단선적으로 어떤 주장을 하기 이전에 곰곰이 따져야 할 중요한 질문들이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대답하기 이전에 우리가 도모하려는 가치에 대하여 논의하고 접근하려는 일은 뒷전에 있었음을 환기하게 된다. 기술과 교육에 관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대해 ‘예’ 또는 ‘아니오’ 식의 단순한 대답으로 눙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곤란하다는 성찰을 주문한다.

낯선 이유는, 기술과 교육에 관하여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디지털 기술은 이제 교육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디지털 전환(DX), 인공지능 전환(AX)이 거스를 수 없는 ‘섭리’나 ‘시대적 사명’이라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계를 잘 표상한다. 기술이 지닌 잠재적 가치나 경제성에 관하여 기술 우위의 담론이 사회 전반을 지배할 때, 기술이 우리의 삶과 교육을 진정으로 유익하게 하느냐는 질문은 게으르거나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치부되기 쉽다. 곳곳에 난무하는 화려한 전망과 예측, 그리고 기술 낙관주의 앞에서 대중은 물론 정책결정자들은 잠시 멈추어 사유할 여유를 잃게 된다. 다행히도 닐 셀윈 호주 모나쉬대 교수(교육학부)는 그 속도에 숨 가쁘게 달려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어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며 공적 논의의 실마리를 꺼내고 있다. 근래 읽거나 듣기 드문 ‘낯선 통찰’이다.
셀윈 교수의 논의가 생생하게 읽히는 우리의 상황이 있다. 디지털과 인공지능을 둘러싼 교육정책 추진이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교육 분야에서 기술 도입의 시기와 속도, 효과에 대한 논의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분명 우리가 놓치고 있던 지점이 있다. 기술이 학교라는 제도적 공간을 어떻게 재구성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언제나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이다. 기술이 교육을 ‘좋게 만들 것’이라는 낙관론과 ‘망칠 것’이라는 비관론 사이에서, 제대로 된 공적 논쟁의 기회를 상실한 채 표류하는 듯하다. AI 디지털교과서라는 정책 실험도 같았다. 정작 기술이 교육의 목적·철학·가치를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지를 숙고할 시공간을 좀처럼 확보하지 못한 채, 그저 ‘논란’만을 남겼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작고 좁아진 공적 논의의 공간에서 “도대체 ‘좋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저자의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담은 문장이기도 하다. 인공지능과 디지털을 위시한 기술이 ‘좋은’ 교육을 만들 수 있고, ‘좋은’ 교육을 위해 그 기술을 활용하거나 가르쳐야 한다고 할 때, 도대체 ‘좋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하는 점이다. 저자는 거트 비에스타 아일랜드 메이누스대 교수(공교육 및 교육학 센터)를 인용하면서,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관점에서 기술을 평가할 때 자격 부여·사회화·주체화라는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좋은’ 교육은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지식, 기술, 이해력, 태도를 갖추게 하는가? 개인이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질서의 구성원이 되게 하고 문화와 전통을 지속시킬 수 있도록 하는가? 개인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을 형성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며 독립적ㆍ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하는가?

사실 원저가 출간된 지 10년이 지났다. 그사이 기술 환경은 더 빠르게 변했고, 인공지능을 둘러싼 열광은 마치 정점을 향해가고 있는 듯하다. 시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형식이 아니라 기술을 둘러싼 사회적 상상력을 돌아보라는 그의 요청은 한국 교육에 시사하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요컨대,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기술을 둘러싼 질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기술 낙관주의의 ‘희망고문’으로부터 한발이라도 벗어나야 한다는 주문도 놓지 않아야 한다. 기술을 더 잘 활용하게 할 것이 아니라 교육이 다루어야 하는 삶의 형식과 그에 관한 공부에 관하여 더 깊이 묻는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셀윈의 질문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정부가 내놓은 인공지능 교육의 종착지가 ‘AI 3강 도약’에 있고, 여느 정부와 다를 것 없이 교육과 인재(人材) 양성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고 있는 한, ‘교육’을 어떤 것의 수단쯤 되는 가치중립적 ‘행동공학’으로 대체하려는 지난 반세기의 모험이 좀 더 확정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로 진전되고 있는 듯하다.
기술이 교육을 구원하는가가 아니라, 기술 앞에서 교육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이 단순하지만 무거운 물음이야말로, 인공지능 전환과 디지털 전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다시 꺼내 들어야 할 질문이다. 이 책을 함께 읽고 ‘희망고문’으로부터 벗어나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함께 질문해 보는 것은 어떠한가?
김범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번역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