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와 여우_ 고영남 인제대 법학과 교수] 12.3 비상계엄이 터진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내란 혐의자들에 대한 재판은 지지부진하다. 특검법에 따라 수사와 기소가 이어졌고 여러 재판부에서 1심이 진행 중이지만 가장 빠른 한덕수 전 총리의 선고조차 내년 1월로 예정되어 있다. 아직도 내란의 근원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단죄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 2차 특검법 등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의지로써 내란 종식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는 여권과 지지자들의 주장이 정치권을 압도하지만, ‘비상계엄은 의회 폭

[고슴도치와 여우_ 박해남 계명대 사회학과 조교수] 이재명 정부의 핵심 대학정책이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것은 너무나 익숙하다. 지역 간 불균형, 지역 인재 유출, 대학 서열화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거점 국립대에 지원하는 예산을 대폭 증가시켜 국립대 전반의 상향평준화를 기하고, 이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이 정책의 핵심이다.정권의 출범과 더불어 해당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는 것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거점 국립대의 발전이 지역 불균형 문제의 해소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 지역 거점 국립

[고슴도치와 여우_ 유현미 서울과학기술대 강사] 나만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11월엔 학술대회가 많았다. 여기저기 학회에서 발표와 토론의 장이 열려, 연구하고 고민하는 것을 나눈다. 학부 고학년 때 처음 찾아간 학술대회는 어려운 말과 글이 난무해, 낯설고 대단해 보였다. 박사 n년차인 지금은 갖가지 실무와 기획노동, 발표문과 토론문 작성으로 숨가쁘다. 그래서 학술대회 당일에는 오히려 힘이 빠져, 이 순간이 별 탈 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멍때리고 있기도 하다. 얼마 전 전남 광주에서 열린 한국여성학회 추계 학술대회에도 비슷한 상태로, 긴 이동의 피로까지 얹혀 앉아 있었다.

[고슴도치와 여우_ 김귀옥 한성대 교양학부 교수] 캄보디아발, 비극적 뉴스가 날아온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고문을 당한 흔적과 함께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 심정지 된 상태로 확인된 한국 대학생의 시신 한 구가 캄보디아에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한국 언론에 9월 말에야 공식 보도되었다. 정부의 신속 대응으로 10월 18일에는 캄보디아에 억류됐던 한국인 64명이 귀국하게 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 혐의자여서 귀국 즉시 수사 대상으로 검거되었다. 또한 일시 캄보디아 여행 금지 및 제한 조치가 취해졌다. 교육부도 즉각적으로 전국 대학에 ‘캄보디아 여행&

[고슴도치와 여우_ 윤지관 대학문제연구소장] 지난 10월 한국은 극단적으로 상반된 두 장면을 거의 동시에 연출했다. 한편에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경제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캄보디아에서 수백 명의 한국 청년들이 취업 사기와 불법행위에 연루되어 체포되는 사건이 터졌다. 한 달 사이 벌어진 이 두 사건은 오늘의 한국이 ‘성공국가’의 이면에 ‘불안사회’라는 이중의 초상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APEC 회의는 한국이 더 이상 세계 체제의 변방이 아님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고슴도치와 여우_ 김명희 경상국립대 사회학과 교수] 2025년 9월 새 정부는 자살을 사회재난의 문제로 바라보는 새로운 자살예방정책 패러다임을 선언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새 패러다임에 따른 국가자살예방전략에 양극화·취업난, 괴롭힘·차별 등 자살자의 삶의 조건에 초점을 맞춘 해법이 포함된 것은 기왕의 자살예방정책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이는 자살을 사회적 사실로 정립한 사회학적 관점과 공명한다. 자살 현상을 사회적 사실로 바라본다는 것은, 개인적 요인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요인들을 초월하는 사회적 힘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이 맥락에서 에밀 뒤르케

[고슴도치와 여우_ 김강기명 한국외대 철학과 강사] 한국의 인문사회학술장은 극소수의 정규직을 제외한 대다수 연구자들에게 평생에 걸쳐 이번 모멸감에 다음 모멸감을 더하는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손발은 묶여 있는데, 동시에 항상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중구속의 상태에 놓여 있다.

[고슴도치와 여우_ 고영남 인제대 법학과 교수] 나는 중동에서의 평화 체제가 상호존중의 국가 승인으로 이어지지 않고서는 그 지역의 사람과 생태가 안녕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늘 갈등이 증폭되는 정세가 벌어지면 마치 내 고향이 파괴되고 있는 양 마음이 아팠고 수업 때마다 간단하게나마 이 뉴스들을 다뤘다. 특히 2년 동안 양측 약 7만 명 가까이 사망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휴전 협상이 진전되는 지금, 더 이상의 학살을 막고 평화 체제로의 이행과 회복을 보장하기 위한 첫걸음은 이른바 ‘두 국가 해법’, 즉 1993년 ‘오슬로 협정’에 따

[고슴도치와 여우_ 박해남 계명대 사회학과 조교수] 한국의 대학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할 일은 강의와 연구 외에도 무척이나 다양하다. 그 형태는 실로 다양하겠으나 아직은 신참이라 할 수 있는 필자는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맡고 있다. 독서 클럽, 토론 클럽, 학생 주도 프로젝트 같은 학교 차원의 프로그램에 더하여, 전공 학습에 흥미를 보이는 학생들과 함께 수행하는 프로젝트, 그리고 외국어에 흥미를 지닌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모임까지가 필자의 일이다. 이들을 소화하다 보면 한 학기는 금세 지나간다. 수업 시간에 육박하는 비교과 활동 시간이 다소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lsquo

[고슴도치와 여우_ 김귀옥 한성대 교수] 지난 겨울, 정치사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시기에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준 낭보는 단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국민적 기쁨도 있었지만, 한강의 노벨문학상은 문자를 업으로 살아가는 서생의 한 사람에게는 더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오래전 학부 시절 수강했던 한국현대문학 강좌 담당 교수는 미래 어느 시기 한국에서 수학이나 과학으로 노벨상을 받는 사람이 탄생할 수는 있겠지만 문학으로는 어려울 것이라 말했다. 수학은 만국 공용어이므로 가능하지만, 비유럽 언어권으로서 한글 사용자는 많아야 1억 명도 안 되는데, 한글 문학

[고슴도치와 여우_ 유현미 국립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2학기가 시작됐다. 분주해진 일정에 압박받지만, 새로운 수업을 꾸리는 설렘도 있다. 필자는 수년째 여성학 교양강의를 하고 있다. 이공계 중심 종합대학의 단 하나 있는 수업이다. 첫 시간에 수강 동기나 기대, 우려되는 점을 묻는 설문을 한다. 학생들은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았지만 제대로 공부해 볼 기회가 없었다고, SNS 등지에서 성별 갈등이 첨예하다고 느끼는데 어떻게 해야 통찰력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된다고 적었다. 토론에서 공격받을까 봐, 에세이 과제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걱정된다고 적은 학생도 있다.다른 수업도 마찬가지겠지만

[고슴도치와 여우_ 윤지관 대학문제연구소장] 첫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고 두 번째 후보자가 임명되기도 전에 부적절한 인사의 교육비서관 내정설로 교육계는 술렁였다. 이현 우리교육연구소장의 교육비서관 내정설이 불거지면서 이에 반대하고 항의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대통령실의 부인으로 하나의 해프닝으로 정리되는 듯 보이고 내정설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논란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부의 교육개혁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교육비서관은 대통령의 교육정책을 실무적으로 설계하고 추진하는 핵심 자리다. 이현 소장은 사교육 업계와 연관이 깊다는 것은 차

[고슴도치와 여우_ 고영남 인제대 법학과 교수] 사립대학 위기의 근본 원인을 학령인구의 급감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난 정부 이래 강조된 ‘지방시대’니 ‘경쟁력’ 담론은 오히려 고등교육의 공공성에 관한 국가의 책무를 은폐하고,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의 현실을 비가시화하고 있다. 이 현상을 대학에서, 그리고 지역에서 의제화하기 위해서는 특히 사학에서의 공공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민주적 협력과 결단이 필요하다.그런 시급함에도 비관적 전망을 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대학다운 대학의 몰락, 즉 대학 안에서의 민주주의가 급격하게 무너진 현실이

[고슴도치와 여우_ 김강기명 강원대 전임연구원] 지난 5월 ‘서울대 10개 만들기’ 구상이 이재명 정부의 핵심 교육공약으로 떠오르며 교육계가 들썩였다. 그런데 논쟁을 지켜보니 대부분이 엉뚱한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학령인구 급감기와 맞물리면서 이 정책이 마치 ‘지방대 100개 죽이기’인 양 오해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오해는 ‘대학’이 무엇보다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8세 학생들(1차 대학생)을 위한 공간이라는 오래된 인식에서 나온다. 1차 대학생들의 입결(입학성적)과 정원을 기준 삼은 사고에 갇혀 있다 보니

[고슴도치와 여우_조형근] 지난 정권 때 육군사관학교가 교내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려다 큰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육사가 아니라 국방부 차원에서 추진한 일이었고, 사실은 정권의 의지가 투영된 사건이었다.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관련됐고,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따위의 핑계를 댔다. 역사학계와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셌다. 논란만 일으키다 정권이 붕괴하고 난 뒤 없던 일이 됐다.역사가 정치와 무관한 청정 구역일 수는 없지만, 역사 해석이 특정 진영의 정치적 목적에 종속되어서도 안 된다. 서로 거리와 긴장이 필요하다. 박근혜정부

[고슴도치와 여우_김귀옥 한성대 교수] 21세기 들어 대한민국이 부동의 제1위 자살공화국이 된 지 20년이 넘었다. 2003년 이래로 한국은 10만 명당 자살률 평균 28.3명인데 반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자살률은 12.7명이니, 두 배가 넘는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자살자 수가 대략 1만 4천439명으로 잠정 집계되어 13년 만에 최고치에 달했다고 한다. 1980·90년대 만해도 ‘자살’이라 하면 일본이나 복지국가를 가리켰다. 전후 일본은 한국전쟁의 전쟁특수로 부활하면서 고도성장을 이뤘다. 자본

[고슴도치와 여우_ 유현미 국립창원대 전임연구원] 여름방학이다. 방학 전, 강사들은 고난의 채점 주간을 건넌다. 출결 점검부터 과제 피드백, 시험지 채점, 강의개선 보고서 탑재까지, 할 일이 많다. 더구나 대부분 상대평가라 학생을 줄세우고, 성적 이의제기에 답하는 것에도 에너지가 많이 쓰인다. 최근 들어 신경 쓰이는 일이 하나 더 늘었다. 바로 AI를 활용한 글쓰기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다. 필자는 서평이나 조사보고서를 쓰는 과제를 내주는데, 강의 초반 AI를 활용하지 말라고 공지한다. 그럼에도 대부분 AI를 쓴 것이 분명한 과제를 냈고, 형식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으며 단어도

[고슴도치와 여우_ 윤지관 대학문제연구소장] 20세기 말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때 필자는 미국 UC 버클리에서 방문교수로 체류 중이었다.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문학 강좌 두 과목을 맡아서 강의하던 때였다. 그날은 아침부터 캠퍼스가 부산한 가운데 묘한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주가 소수인종에 대한 우대 특례를 규정한 미 연방정부의 적극적 시정조치(Affirmative Action)를 철폐한 데 항의하는 시위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회가 그날 하루 수업을 전면 거부하고 교정에서 연좌시위(sit-in)를 하기로 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수업 시간이 되자

[고슴도치와 여우_ 고영남 인제대 법학과 교수] 위헌·위법의 비상계엄, 그리고 이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이라는 긴박했던 여정이 6월 3일 치른 대통령선거로 일단 마무리되었다. 그 사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현직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치세력 중 일부가 체포영장을 가로막거나 법원 건물을 침탈했고 내란 피의자가 법원과 검찰에 의해 석방되는 등의 곡절을 겪기도 하였지만, 끝내 대선은 예정대로 치러졌다.6개월에 걸친 이런 정변의 와중에서 많은 국민은 비상계엄 조치를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내란으로 이해하였고, 이번

[고슴도치와 여우_ 김강기명] 철학 전공, 특히 성장 이후 삶의 형태를 고민하고, 민족국가와 인종, 성차, 계급 등 우리 시대의 견고한 정체성과 지배적 패러다임의 근거를 문제로 삼는 비판적 정치사회철학 분야의 연구자에게 “국가경쟁력” 같은 단어는 참 입에 붙지 않는 단어다. 하지만 오늘 한국의 인문학술생태계 전체가 마주한 멸종위기 앞에서는 그런 느낌이 드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진다. 한 사람이라도 더 설득해 보고자 오늘은 한번 민족주의자가 되어 질문해본다. 과연 인문학 분야의 국가경쟁력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대학 랭킹이나 한 국가의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