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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위협하는 ‘정부·정당·법’의 공격성
민주주의 위협하는 ‘정부·정당·법’의 공격성
  • 최승우
  • 승인 2023.11.03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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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⑱ 김비환 성균관대 교수(정치외교학과)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23일 김비환 성균관대 교수(정치외교학과)가 「현대 민주주의의 양상과 전개: 정부 형태, 정당 체제, 법의 지배」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19강은 권현지 서울대 교수(사회학과)의 「기술 발전과 직업·계층 구조의 변화」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한국 정치사에서 정치 행위를 도덕적 신념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적 행위로 인식·실천해 온 경향은 매우 뿌리 깊다. 이런 전통은 조선 시대 사림 정치에서 시작한 이래 굴곡된 역사를 거치며 다소 변형된 형태로 오늘날까지도 온존·강화돼 왔다. 현대 한국의 정치 지형은 이렇게 수백 년을 통해 이분법적인 정치 세계관에 의해 조성돼왔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위기를 맞이하는가? 이 질문은 많은 민주주의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져온 주제다. 신생 민주주의에서 쿠데타는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는 가장 흔한 방식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얼마 전 아프리카의 니제르와 가봉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 하지만 공고화된 민주주의에서는 이런 방식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더욱 교묘하고 은밀한 방식이 사용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트럼프와 같은 비자유주의적인 인물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등에 업고 정계에 진출해 민주주의를 훼손할 개연성을 우려했다. 『연방주의자 문서』에 실린 알렉산더 해밀턴의 주장에는 그런 우려가 나타나 있다. “공화국의 자유를 전복시킨 사람들 대다수는 국민에게 아첨하는 일로 시작했다. 대중 선동가로 시작한 그들은 결국 폭군으로 끝났다.”

미국의 선거인단은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고안됐다. 각 주의 대표로 뽑힌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절차는 선동적이고 음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치계에 진입하는 것을 걸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대통령제 민주주의에서는 대통령이 전 국민으로부터 직접 제왕적 권력을 위임받는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하는 모든 정책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한편, 반대자들 혹은 야당을 방해꾼 내지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반국가세력으로 매도하고 억압하는 태도를 보이기 쉽다.

즉, 뱅자맹 콩스탕의 표현을 빌리면, 대통령이 자신의 입장과 권력욕을 과시하기 위해 ‘국민의 이름’을 찬탈함으로써 비판적이거나 저항적인 야당과 시민사회 그리고 미디어를 탄압할 수 있다.

김비환 성균관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민주주의는 다수의 단합된 의지로 소수를 지배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힘을 빙자해 기존의 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법의 지배를 무력화할 수 있다”라며 “반면에 법의 지배는 법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민주적 다수의 의지를 제약할 수 있기때문에 민주주의와 충돌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사실 압도적인 다수의 찬성 투표로 대통령이 된 지도자도 100퍼센트 지지를 받지 않는 한 ‘국민의 이름’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찬탈행위에 가깝다. 이것이 국민주권 혹은 일반의지는 대표될 수 없다고 주장한 민주주의자 루소와, 프랑스 혁명 직후 (루소의 무제한적 인민주권 원칙을 거부한 한편으로) 기본권과 제한 정부의 중요성을 강조한 자유주의자 콩스탕의 입장이 묘하게 일치하는 지점이다.

대통령과 권력 기관들 사이의 결탁과 상호 지지, 즉 권력 카르텔은 흔하게 동원되는 방법이다. 이때 자유민주주의의 최후로 보루로 간주돼온 사법부는 민주적 제도로서 중요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헌법 관련 재판에서 최고의 권한을 행사하는 헌법재판소가 민주적 가치와 규범에 저촉되는 권력 카르텔의 희생자들을 보호해 주지 못할 경우, 사법부 또한 사실상 권력 카르텔의 일부로 흡수된다.

사실 공고화된 민주주의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대통령제에 내재하는 제도적 약점은 대통령 1인의 인격적·능력적 약점과 역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민주주의의 붕괴를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 오늘날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주주의 후퇴 현상은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19세기 중반 경부터 정당은 다양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며 민주주의 핵심적인 제도로 부상했다(정당 민주주의). 하지만 오늘날 정당은 민주적 제도로서의 권위와 신뢰를 크게 상실했다. 정당이 대중의 신뢰를 잃게 된 데에는 많은 요인이 있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본다면, 정당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공고화에 이바지하지 못하고 국가통합을 저해하는 경향이 있으며, 국민의 복지와 행복을 증진하지도 못한 채 국민의 세금만 축내는 ‘세금 도둑’으로 지목받고 있다. 정당은 더 이상 국민의 의사와 이익을 대변하는 공복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이름’을 찬탈하는 파벌이나 도당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데 전력을 다하기는커녕, 양극화한 여론을 이용·강화하는 분열 세력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양당제와 다당제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대 민주주의하에서 정당들은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트리는 당사자로 전락하고 있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주요 정당들이 서로 경쟁하면서도 협력 관계를 이뤄 시민사회의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대신, 사회야 어찌 됐건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는 비난이 높다. 정당 민주주의 이론에 따르면, 정당들은 좋은사회에 관한 독자적인 비전 또는 헤게모니 프로젝트를 구현하기 위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시민들을 동원하고 사회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정권을 창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현대의 정당들은 이와 같은 전통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대신, 점점 더 비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제 정당은 전통적인 문지기 역할을 포기하고, 선동적이고 권위주의적이지만 대중에게 인기가 있는 사람들을 영입해서라도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려 든다. 

악의 축, 배신자, 빨갱이와 같은 언어의 난무로 특징화할 수 있는 정치 영역의 도덕화·종교화 현상은, 정치 세력 간 대화와 타협을 불가능하게 한다. 상대방은 악이고 악마이며, 우리 측은 선이고 천사라는 이분법적 관계에서는 협상과 타협이 진리와 정의에 대한 배신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경쟁자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만이 선과 진리를 구현하는 유일한 길로 간주된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사를 돌이켜보면, 정치의 도덕화로 인한 정치 공간의 변질이 비교적 쉽게 이뤄지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정치 행위를 도덕적 신념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적 행위로 인식·실천해 온 경향은 매우 뿌리 깊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은 조선 시대 사림 정치에서 시작한 이래 굴곡진 역사를 거치며 다소 변형된 형태로 오늘날까지도 온존·강화돼 왔다. 현대 한국의 정치 지형은 이렇게 수백 년을 통해 이분법적인 정치 세계관에 의해 조성돼왔다. 

한국에서 양당제는 이런 이분법적인 정치 세계관과 정치 의식에 부합하는 제도로, 소선거구제 다수 대표제와 함께,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익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오랫동안 활용해온 정당 체제이다.

이런 긴 역사적 흐름 속에서 한국의 양당 체제를 이해할 경우, 단순히 중대선거구제와 비례 대표를 강화해 다당제로의 변화를 꾀한다고 해서, 양당 체제와 이분법적인 정치 의식을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적대적 공생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양당 체제와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이분법적이고 적대적인 정치의식에 있다면, 그것을 개혁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헌정 민주주의(혹은 입헌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이상을 결합한 정치 체제이다. 이 헌정 민주주의 체제는 프랑스 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나치 전체주의와 소련의 전체주의 체제를 겪은 뒤 서구의 보편적인 정치 체제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런데 헌정 민주주의 체제가 보편적인 정치적 이상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사실은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사이에 전혀 긴장이나 충돌이 발생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예컨대, 민주주의는 다수의 단합된 의지로 소수를 지배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힘을 빙자해 기존의 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법의 지배를 무력화하고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이 권리들에는 소수자의 정치적 권리도 포함될 수 있다. 반면에 법의 지배는 법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민주적 다수의 의지를 제약할 수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충돌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예들은 법의 지배(헌정주의 포함)와 민주주의가 맺을 수 있는 관계들 중 일부이다.

좀 더 이론적인 수준에서 보면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에 조응하는 법의 지배 형태가 정해지며, 반대로 법의 지배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와 어울리는 민주주의 형태가 정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정치적 이상의 복잡한 관계는,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거나 내파되는 메커니즘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함의가 있다.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누리고 있는 보편적인 권위와 매력은 반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세력이 노골적으로 민주주의를 공격할 수 없게 만든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가 기득권을 방어하는 데 불리하다고 판단하는 세력들은 (상대적으로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법의 지배 측면을 이용하거나 왜곡함으로써 민주적 결과나 과정을 실질적으로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전략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법의 지배가 온전히 실현하기 어려운 정치적 이상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만큼 비자유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세력들이 법의 지배를 교묘히 조작·왜곡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트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민주 정치는 민주화 혁명을 겪은 수많은 시민들의 축적된 민주 역량과 의지에 의해 뒷받침된다. 하지만 복잡하고 까다로운 제도적 정치, 고도의 전문 지식, 그리고 특별한 자질을 필요로 하는 법의 지배는, 시민들의 이해와 관심 범위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권위주의적이며 엘리트주의적인 위정자들과 법조인들이 상대적으로 쉽게 조작하거나 왜곡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이것은 법의 지배가 절차적 민주주의와 함께 자동적으로 구현되는 정치적 이상이 아니라, 장기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확립해가야 할 이상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과정은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가 서로를 견제하고 보완하면서 성숙한 헌정 민주주의 체제로 발전해가는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 결국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는 모든 시민들을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존중해 줘야 한다는 원칙을 상이한 방식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상보적인 정치적 이상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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