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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동거 한일 안보협력, 과거사 문제가 관건
불편한 동거 한일 안보협력, 과거사 문제가 관건
  • 최승우
  • 승인 2023.10.04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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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⑭ 손열 연세대 교수(국제대학원)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26일 손열 연세대 교수(국제대학원)가 「21세기 일본의 국가 전략」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15강은 박명림 연세대 교수(지역학협동과정)의 「한반도 문제의 연속성과 변화」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일본의 전략적 고민은 아태 공간으로 상징되는 미국 패권이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부상에 따른 세력 균형의 변화로 동요하고 있다는 점, 중국의 부상이 수정주의적 양태를 
띠고 있다는 점, 미일 동맹만으로 자국의 안정과 번영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 
미국의 안보 정책·경제 정책의 아시아 이동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이다.

일본은 대전략(grand strategy)을 가지고 있는가. 국가 대전략을 국가가 장기적인 국가 이익(목표)을 추구하기 위해 여러 수단을 배치하고 활용하는 통치술 혹은 책략(statecraft)이라 정의한다면, 이는 대체로 외교 대전략을 의미한다. 많은 국가가 대전략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책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실행에 옮기다가 커다란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도 과연 대전략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 여러 논란이 제기돼왔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른바 ‘병 마개(bottle cap)’론과 ‘달걀 껍질(egg shell)’론에서 나타나듯 일본은 군국주의 전통 속에서 대륙으로 팽창하려는 강력한 전략적 의지를 갖고 있다고 본다.

다만 미일 동맹과 주일미군이 이러한 열망을 제어하고 있거나 혹은 반대로 이를 촉성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일본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래 한반도로 진출하려는 전략적 의도를 끈질기게 표출해왔으며, 이러한 열망이 갑신정변 이래 수차례에 걸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으로 표현되고 실천된 결과가 바로 조선의 식민지화라고 본다.

손열 연세대 교수(국제대학원)는 “한일 양국이 마주할 보다 큰 딜레마는 대국들이 경제 안보 확보 경쟁에 나서면 마치 군사적으로 안보 딜레마가 걸리는 경우처럼 대국 간 경제적 안보 딜레마가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라며 “미국과 중국은 제재를 경쟁적으로 강화하고 상대의 약점을 공략할 기술과 산업 부문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손열 연세대 교수(국제대학원)는 “한일 양국이 마주할 보다 큰 딜레마는 대국들이 경제 안보 확보 경쟁에 나서면 마치 군사적으로 안보 딜레마가 걸리는 경우처럼 대국 간 경제적 안보 딜레마가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라며 “미국과 중국은 제재를 경쟁적으로 강화하고 상대의 약점을 공략할 기술과 산업 부문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이렇듯 서로 다른 서사가 경합하는 속에서 우리는 일본을 어느 일방으로 전체화해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끊임없이 대전략을 모색하고 실천하고자 했다. 다만 시대에 따라 대전략의 성패가 갈렸을 뿐이다. 예컨대, 일본을 단기간 대국의 반열로 이끈 메이지기의 부국강병 전략이 있었지만, 일본을 전쟁과 파멸로 이끈 동아신질서/대동아공영권 건설 전략도 있었다. 

지역 공간을 인도-태평양으로 부른다면 이는 태평양과 인도양이란 두 대양(大洋)이 연결된 ‘해양’이란 개념으로 규정된다. 이 경우 해양 세력인 미국과 일본‧호주‧인도 등은 자연스레 공간의 중심에 서고, 역사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에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는 주변적 지위에 놓이며, 대륙과 해양이 교차하는 반도와 해협의 한국과 동남아 국가 다수는 중간적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주도 세력은 공간 개념을 이용하여 자기의 정치적‧사회적 행위를 통제하고 타자를 구별하고자 하는 반면, 개념이 부여하는 위상이 주어진 현실 혹은 미래의 열망과 괴리가 있다고 느끼는 세력은 이에 저항하고 갈등을 조장하며 대안(=대항 개념)을 제시하려 한다. 중국은 인도-태평양 개념의 수용이 중국몽(中國夢)이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열망을 견제하는 기제로 작용한다고 비판하며 대항 개념을 찾고 있다.

21세기 일본은 인도-태평양 개념에 근거한 심상 지도를 가지고 있다. 과연 이 공간 개념은 어떠한 정책 목표와 수단을 정의하고 배열하고 있는가. 변화하는 국제 전략 환경과 국내 정치 과정은 일본이 추구하는 공간 개념과 정합적인가. 이 구도에서 한국과의 관계는 어떤 위상을 갖고 있는가. 한일 관계의 미래는 어떠한가.

일본의 20세기는 크게 보면 ‘태평양’이란 ‘주어진’ 공간에서 대전략을 모색하며 국력의 흥망성쇠를 경험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 세기말 ‘단극의 순간(unipolar moment)’과 미국의 일방주의가 일본에 기존 전략(=미국 추수 외교)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줬다면, 21세기에 들면서 지구적 규모로 전개된 세력 배분 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국가 대전략을 모색하는 결정적 동인이 됐다.

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추세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중국의 부상과 그에 따른 주변국의 불안감 확산이다. 둘째, 이러한 중국의 도전에 대항하는 미국의 상대적 쇠퇴다. 셋째, 변화는 인도의 등장이다. 일본의 전략적 고민은 아태 공간으로 상징되는 미국 패권이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부상에 따른 세력 균형의 변화로 동요하고 있다는 점, 중국의 부상이 수정주의적 양태를 띠고 있다는 점, 미일 동맹만으로 자국의 안정과 번영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 미국의 안보 정책 및 경제 정책의 아시아 이동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이다. 

중국의 거센 외교적·경제적·군사적 공세 속에서 일본 정치권에서 부상한 정치 세력이 우익 민족주의 세력이고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이들을 대표했다. 여기서 첫 번째 핵심 과제는 미일 동맹의 강화이다. 과거 패권적 동맹(hegemonic alliance), 다시 말해 일본의 외교 안보 정책을 통제하고 지역의 안정을 위해 미군 주둔을 유지하는 수단으로서의 동맹 대 일본 방어로서의 동맹을 탈피해 보다 상호적 동맹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미군 전력의 상대적 쇠퇴를 일본이 보완해 지역 내 군사력 균형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과거 영일 동맹의 일방적 파기(1924년)를 경험했듯이 미일 동맹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또한 미일 동맹의 일체화만으로 일본의 안정과 번영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다. 따라서 미일 동맹의 강화와 함께 주요 파트너국들과의 연계와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 그 핵심 파트너가 인도와 호주이고, 미국을 포함해 이를 
통칭하는 쿼드(Quad)다.

2012년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 수상은 중국의 주도권 장악을 견제하기 위해 또다시 인도와의 관계 강화에 나섰다. 인도 역시 일본을 핵심 파트너로 삼았다. 일본은 호주와의 관계도 신차원으로 격상하고 있다. 일본과 호주는 미국의 군사 동맹국으로서 태평양 패권 그리고 아시아-태평양 패권 공간의 핵심 협력자였다.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 협력체)의 주역으로서 경제 협력의 파트너일 뿐 아니라, 양국은 2010년대 점증하는 중국의 도전을 공통의 위협으로 인식하면서 군사적 협력도 강화했다. 

특히 중국 정부에 의한 내정 간섭 시비, 5G 통신 네트워크 구축에 화웨이 배제 조치, 코로나19의 발생과 감염 확산에 대한 국제 기구의 대(對)중국 독립적 조사 주장, 중국의 보복 조치 등으로 중국-호주 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과 호주 간 안보 협력 관계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런 속에서 미-일-호 안보 협력과 미-일-호-인 쿼드 안보 대화도 발전하고 있다.

일본의 21세기 국가 대전략의 성패는 크게 세 가지 변수에 달려 있다.

첫째, 중일 관계 변수다. 일본은 오랜 기간 중국을 안보 경쟁국으로 간주하지 않았지만 2010년과 2012년 센카쿠(혹은 다오위다오) 해역 충돌 이래 전력을 증가시키며 경
쟁 관계를 이루고 있다. 

둘째, 미중 관계 변수이다. 이는 중일 관계에 대한 결정적 변수이기도 하다. 미중 관계는 양국이 전략적 핵심 이익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전면적 대립으로 갈 수 있고, 건전한 경쟁과 협력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셋째, 일본의 경제력이다. 일찍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 장관이 “최선의 외교 정책은 경제 발전”이라 했듯이 경제가 받쳐줘야 대전략의 여러 수단들을 가동해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1990년대 미국 GDP의 70%에 육박하던 일본은 2010년 중국에 추월당해 세계 3위로 밀려났고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2030년에는 인도에 이어 세계 4위권으로 밀려날 것으로 전망되며, 1인당 GDP는 머지않아 대만과 한국에 따라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고령화율이 높고노동력 인구(경제 활동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로 인해 향후 10년간 실질 성장률이 1% 이하로 하락해 사회보장 제도의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위협 인식을 공유하는 데에서 안보 협력의 기반을 이루고 있고, 한반도와 지역의 비핵 안보, 핵 비확산, 대만 해협의 안정과 평화, 해상 수송로 보호 등 주요 사안에 대해서도 안보 이익이 일치하고 있다. 문제는 핵무력을 증강하는 북한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란 차원을 넘어서 중국에 대한 미일 간 통합 억제 전략이 구체화·정교화되는 경우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에 있다. 

한일 양국이 마주할 보다 큰 딜레마는 대국들이 경제 안보 확보 경쟁에 나서면 마치 군사적으로 안보 딜레마가 걸리는 경우처럼 대국 간 경제적 안보 딜레마가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은 상대가 경제 안보를 남용해 위협을 조장한다며 제재를 경쟁적으로 강화하고 상대의 약점을 공략할 기술과 산업 부문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대중 정책의 경우, 일본과 한국은 경제 분야에서는 협력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경제 안보적 고려가 요구되는 부문 즉, 군사 안보적 관련이 큰 첨단 기술 부문에서 중국과의 탈 동조화는 불가피할지라도 여타 부문에서 한일 양국은 경제적 상호 의존의 네트워크를 견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끝으로 역사 문제의 관리와 해결 과제이다. 아베 수상의 재집권 이래 지속되어온 자민당 우위 체제는 우경화된 정치 체제이다. 이 세력은 보편 가치를 외교의 중심축으로 내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편 가치와 원칙에 근거해 역사 문제를 다루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왔다. 

한일 역사 갈등의 과거 10년을 돌이켜보면 역사 문제 해결 노력과 기능적 협력의 투-트랙 접근이 유효하되, 양 측면의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함을 알 수 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역사와 정치, 기능적 협력 사안들을 아우르는 포괄적 협력 틀이었다면, 오늘의 한일 관계는 기능적 협력을 통해 역사 인식의 화해를 향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역사 문제 해결 노력의 진전이 기능적 협력을 확대, 심화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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