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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의 성공담 한류, 문화 질서 만들다
비주류의 성공담 한류, 문화 질서 만들다
  • 최승우
  • 승인 2023.10.20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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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⑯ 홍석경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9일 홍석경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가 「한류의 특성과 미래」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17강은 정병기 영남대 교수(정치외교학과)의 「포퓰리즘의 등장과 확산」이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개도국 출신 선진국인 한국,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이라는 목표를 동시에 성공적으로 달성한 유일한 나라 한국은 더 나아가 매력적인 대중문화의 생산자가 됐다. 전 세계 대다수의 민중이 속한 개도국들에 한국은 닮고 싶고 닮을 수 있을 것 같은 하나의 모델이다. 한류로 인해 많은 청년들에게 한국은 매력적인 국가가 됐고, 
한류 창의 산업 또한 많은 창의적 해외 인력을 유인하고 있다.

한류는 20년 만에 누구나 언급하는 단어가 됐으나, 한류가 우리에게, 세계인에게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류를 연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몰려다니는 중고등 소녀들의 시끄러운 팬 현상을 보고 쯧쯧 혀를 차던 기억이 생생한데, 왜 지금은 똑같은 행동을 하는, 아니 그보다 더 심하게 BTS 팬덤 아미(Army)가 공연 며칠 전부터 공연 장소에서 야영을 하며 축제를 벌이는 것과 같은 훨씬 강력한 팬 활동들에 대해 긍정적인 보도를 하게 되었는가? 

한편에서는 근거 없는 ‘국뽕’이라고 조소의 눈초리를 던지던 사람들이 BTS와 「기생충」의 성공 이후 한국 대중문화와 한류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국내외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많은 해외 미디어의 대부분은 상당히 오랫동안 한류를 마치 2000년대 이후에 갑자기 발생한 것처럼 이해하고, 미디어와 정부발 몇몇 텍스트에 기초해 정부가 수출용으로 집중 투자하고 지원해서 만들어낸 문화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외국 엘리트들의 이러한 해석과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질문을 하는 이유는 그들이 한국 대중문화의 발전 역사와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영어로 된 연구서가 부재한다는 이유가 절대적이지만, 이어지는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정부 주도형 압축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이 문화 또한 그리했으리라는 편협하고도 오리엔탈리스트적 사고방식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류는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아시아 인접국에서 들리는 한국의 대중문화의 인기에 대한 좋은 소식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한류 관련 소식은 이제 전 세계에서 들려오지만 여전히 놀랍고 기쁜 소식이다. 

홍석경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는 “한류가 기획된 수출의 결과가 아니고, 동아시아에서의 한류 인기와 달리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여러 매개를 통해서 전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수용되고 있다”라며 “세계의 한류 수용자·시민에게 문화를 통한 상호 교류와 창조라는 제3의 가능성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홍석경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는 “한류가 기획된 수출의 결과가 아니고, 동아시아에서의 한류 인기와 달리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여러 매개를 통해서 전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수용되고 있다”라며 “세계의 한류 수용자·시민에게 문화를 통한 상호 교류와 창조라는 제3의 가능성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한류는 한국 대중문화의 해외에서의 인기 현상을 의미하고, 이 현상을 이 단어로 처음 언급한 것은 1990년대 말 중국 미디어였다. ‘한국으로부터 온 큰 물결’인 한류(Korean Wave)는 시각화하자면 해변에 찰랑이는 작은 물결이 아니라 위협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을 쓸어버릴 듯 덮치는 커다란 파도이다. 

한류란 말이 태어난 것은 2000년대를 맞이하는 즈음이었지만 「사랑이 뭐길래」(MBC, 1991), 「질투」(MBC, 1992) 등 한국 드라마의 중국에서의 인기는 1990년대를 통해 점증하고 있었다. 

2000년대 초 「대장금」과 「겨울연가」를 통한 중화권과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의 절대적 인기와 함께 한류 현상은 국내외 미디어와 시청률, 연예인의 인기를 통해 확인됐다.

우리는 왜 2023년 오늘에도 여전히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의 성공과 케이팝 스타들의 놀라운 해외 음반 판매, 세계 공연 투어의 성과에 놀라는가? 그것은 한류가 기획된 수출의 결과가 아니고, 동아시아에서의 한류 인기와 달리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여러 매개를 통해서 전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수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문화 수출의 경제적 이익에 대해 산업이 눈을 뜨면서 작은 한국 시장을 넘어서 해외 시장에 관심을 돌리게 됐다. 한류는 기획된 수출의 결과가 아니다. 한국인의 일상과 생활윤리, 가족관, 도시 생활과 인간관계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드라마야말로 동아시아 밖에서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은 당시 어떤 상상력이 뛰어난 프로듀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모든 역사적 사실이 우리에게 두 가지 핵심적 사실에 기대어 한류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첫째, 한류는 수용 현상이지 전파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류의 성공에서 정부의 역할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한국 대중문화 산업을 진흥하려 여러 정책적 실현을 했지만 그것이 외국에서 한류를 발생시킨 직접 원인은 아니다. 

둘째, 한류는 미디어의 매개가 확산에 핵심적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 문화 현상이라는 것이다. 한류 현상 속 언어·뷰티·패션·여행 등 다른 소비 분야 모두 미디어의 재현을 통해 촉발된 소비 욕구들이다.

특히 세계적인 대학의 한국어 강의 지원자의 급속한 증가는 미디어 문화의 매개 결과이다. 케이 뷰티에 대한 관심은 한국인의 얼굴과 패션이 아름다워 보이고 닮고 싶어졌음을 말해준다. 

다년간 한류 연구자로서 세계의 한류 콘텐츠 소비자, 케이팝 팬들 인터뷰, 미디어 실천 관찰과 상황 분석을 통해 한류의 세계 속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세계의 수용자가 한류 콘텐츠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한류가 전하는 스토리가 비주류의 성공담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대륙과 해양 세력이 부딪히는 극동의 약소국으로 불행한 로컬 역사의 집단 경험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가 생산하는 콘텐츠는 그것이 무엇이든 스타일의 화려함 뒤에는 △식민 경험 △전쟁 △가난과 배고픔 △빈부 격차 △개발도상국 특유의 폭력적 일상 △군사 독재의 경험과 민주화 투쟁 등이 담겨 있다. 「오징의 게임」과 「기생충」류의 픽션만이 아니라, 화려한 케이팝과 아이돌의 현실도 이러한 흔적을 담고 있다.

케이팝의 새로운 대중문화 생산, 전파, 소비 시스템엔 한국 사회의 지적 재산권, 인권, 창의성, 기술을 대하는 태도와 현실 등이 녹아 있고, 아이돌로 성공하기 위한 과정은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의 경쟁에 임하는 개인성과 노력의 일상과 상흔이 담겨 있다. 

한류 성공의 또 다른 이유이며 의미 생산의 풍부한 배경은, 한류가 전 세계 청년들에게 젠더, 인종, 세대 정체성을 교섭할 수 있는 새로운 일차 자료들을 대거 제공한다는 점이다.

인종과 젠더는 계급 관계과 전일화되어 가시성을 상실한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체성 정치의 핵심적 차원이다. 한류 연구자들은 매우 일찍 한류의 수용자들 대다수가 여성이고, 한류가 여성들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꽃미남들의 보고이며, 케이팝이 여기서 더 나아가 백인 중산층 남성의 지배적 남성성에 대한 대안인 부드러운 남성성을 제공한다고 봤다.

이들이 동아시아인이고 동아시아인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또한 매우 새로운 인종과 젠더의 교차성을 발현한다. BTS는 어찌 보면 말을 하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첫 번째 동아시아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글에서 주장한 내용의 핵심을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류는 디지털 문화와 세계화 맥락 속 역사적인 수용 현상이며, 밑으로부터의 대안적인 세계화 현상이다. 동아시아의 한류는 제도적 매개자들이 있었지만, 전 지구적 한류 현상은 어떤 의도적인 주체의 초국적 문화 확산 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해외 수용자들의 자발적인 것으로 문화 수용의 힘을 통해 널리 확산된 풀뿌리 현상이다. 한국에서 디지털 문화의 얼리어댑터로서 환경적 도움을 얻었고 정부의 후속 지원이 있었지만, 이것은 한류 현상의 원인이 아닌 파생된 정책이라고 하겠다.

둘째, 한류 현상은 한국인이 세계인이 공감하고 관여를 느끼는 보편적 메시지의 발화자(speaker)가 되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한국인과 한국 사회가 끊임없는 노력과 실력으로 얻은 결과이지 우연과 지원의 결과가 아니다. 한국이 디지털 문화의 강자로서 지닌 매력을 통해 보편적인 공감 능력을 획득한 것이다.

셋째, 한국은 세계 대부분 국가와 식민·전쟁·가난·개도국 경험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 경쟁 사회의 험한 현실을 겪고 있다. 이런 과거와 현재의 흔적이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 속에 녹아 있고 한류 산업의 창작자들은 이런 내용을 높은 수준의 창작물 속에서 다룬다. 

세계는 제국주의 시절부터 생성된 부를 누리는 한 줌의 선진국과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해야 하는 대다수의 개발도상국으로 나뉜다. 개도국 출신 선진국인 한국,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이라는 목표를 동시에 성공적으로 달성한 유일한 나라 한국은 더 나아가 매력적인 대중문화의 생산자가 됐다. 

전 세계 대다수의 민중이 속한 개도국들에 한국은 닮고 싶고 닮을 수 있을 것 같은 하나의 모델이다. 한류로 인해 많은 청년들에게 한국은 매력적인 국가가 됐고, 한류 창의 산업 또한 많은 창의적 해외 인력을 유인하고 있다. 2023년 현재, 한류 문화는 더 이상 정치나 경제, 외교의 수단이 아니라 세계의 한류 수용자·시민에게 문화를 통한 상호 교류와 창조라는 제3의 가능성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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