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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탈냉전, 미중 헤게모니 전쟁에서 살아남기
포스트 탈냉전, 미중 헤게모니 전쟁에서 살아남기
  • 최승우
  • 승인 2023.06.15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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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①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를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부터 동아시아,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과 담론을 인문·사회·자연과학이 상호 연결성을 통해 새로운 학문적 담론 형성을 시도한다. 지난달 20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가 「총론: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2강은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국제정치경제)의 「탈냉전과 세계화 이후 국제 질서」이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오늘의 인도-태평양 지역은 기존 미국의 일극체제 헤게모니와 이 지역의 강국으로 
등장한 중국 간의 경쟁이 현실로 나타나는 현장이 되기에 이르렀다. 지역의 중간적 
국가들이 대응하면서 ‘이중의 위계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지역의 새로운 국제정치 
체제가 작동하는 방식이 만들어지고 있다.

냉전의 끝은 한 시대를 마감하는 것이었다.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이 전 세계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며 군림했던 것은 세계 역사상 최초의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탈냉전과 더불어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홀로 섰다. 2차 세계 대전이 종전에 가까워질 무렵부터 미국은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책임을 떠맡게 됐다. 그런 과제는 여전히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 공산주의는 죽었다.

그러나 끝난 것은 미국과 소련을 정점으로 한 냉전시기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갈등이지, 철학적·문화적·경제적 갈등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다. 탈냉전 시기 국제정치의 장에서 가장 새로운 것은 2차 대전 종전 이후 세계의 정치에서 확립된 미국의 헤게모니가 새로이 부상한 중국에 의해 도전받게 된 것이다.

미‧중의 경쟁적 관계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경쟁의 중심적인 장이 유럽이 아니라, 바로 태평양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최근에 이르러서는 그 연장선상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이라 부르기도 하는 곳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는 “탈냉전 시기 국제정치의 장에서 가장 새로운 것은 2차 대전 종전 이후 세계의 정치에서 확립된 미국의헤게모니가 새로이 부상한 중국에 의해 도전받는, 미-중 경쟁적 관계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라며 “이 경쟁의 중심적인 장이유럽이 아니라, 바로 태평양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는 “탈냉전 시기 국제정치의 장에서 가장 새로운 것은 2차 대전 종전 이후 세계의 정치에서 확립된 미국의 헤게모니가 새로이 부상한 중국에 의해 도전받는, 미-중 경쟁적 관계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라며 “이 경쟁의 중심적인 장이 유럽이 아니라, 바로 태평양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존 아이켄베리는 태평양을 장으로 하는 미중 간 경쟁을 “이중의 위계(dual hierarchy)”라고 규정한다. 그가 한 논문을 통해 그렇게 말했던 것은,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앞세운 중국의 급부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힘의 균형을 급격하게 변화시켜, 미국과 경쟁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간적 국가들은 안보는 미국에, 경제 교역은 중국에 의존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능의 공간이 만들어졌고, 이 지역에서 양자 강대국 운영 체계가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고 분석하면서 그렇게 전망했다.

7~8년 전 이 논문이 발표됐을 때만 하더라도, 이러한 상황이 순조롭게 작동할 수 있는 긍정적인 전망과 아울러 설명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컴퓨터사이언스‧우주‧군사‧과학기술 발전과 함께 빠르고도 지속적인 경제 및 산업 발전을 거듭해왔던 중국이 이제 곧 미국을 추월할 수도 있는 능력을 갖춘 세계의 최대 경제 대국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중국은 아이켄베리 논문이 말했던 것으로부터 불과 10년도 안 된 짧은 기간에 “일대일로(一帶一路)” 확대를 앞세워 아시아‧인도태평양 지역을 넘어서, 아프리카로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유럽을 넘어 라틴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정치‧군사‧외교적 영향력이 미치는 거의 모든 영역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국제정치학자 존 J. 미어샤이머처럼 사실/현실주의를 대표하는 국제정치학자는, 프란시스 후쿠야마나, 아이켄베리 같은 자유주의자들의 희망과는 달리, 미국과 중국 간의 전쟁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중간 전쟁 가능성을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말로 비유한 국제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전쟁의 가능성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여지를 남겨두지만, 양국 간의 전쟁 위험은 상당하고, 그럴 만큼 복합적이고,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의 지역은 셋으로 나누면 서유럽, 중동, 동아시아로 나눠 볼 수 있다. 인도‧태평양지역은 냉전의 시작과 더불어 그 구조와 특징이 형성되기 시작해서 197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경제 발전과 1980년대 말까지 민주주의를 이루어낸 곳이고, 중국의 개혁개방에 의한 발전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 지역이다.

2001~2018년 사이, 미국을 제외한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국내 총생산의 합은 무려 두 배나 성장해 미국 경제의 규모를 능가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같은 기간 이 지역에서의 군사비 지출은 2.5배나 증가했다. 특히 경제적 자유주의의 수용을 통해, 또는 그와 병행해 한국과 대만은 정치적 자유주의를 주도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경제 발전에 관한 한 한국과 대만, 중국은 그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중국은 빠른 경제 성장에 힘입어 국방비 예산을 증액해온 결과, 최근에는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국방비 지출 총합의 절반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은 이 지역의 어떤 나라에도 군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국방비 예산에 힘입어, 또한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현대적인 군사력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중국 사회주의는 세 국면으로 발전해왔다고 말한다. “마오의 지도력에 의해 중국은 일어섰고, 덩의 리더십에 힘입어 부유한 나라로 성장했고, 시 정부하에서 중국은 강하게 될 것이다”라고.

오늘날 중국은 여러 면에서 마르크시즘-레니니즘보다는, 레니니즘을 신성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공산당은 분명 스스로를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전위로 규정하면서 사회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예비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목적은 자본주의를 전복시키는 데 있지 않았다. 그보다 당은 자본주의를 수용하고 끌어안아 그것을 그 자신의 목적, 즉 당의 항구적인 존립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삼는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오늘날 당은 자본주의를 마르크시스트 이상으로의 회귀를 강조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시진핑이 강조하고 있듯이 근검절약과 겸양이라는 공산당의 가치이고, 그것이 또한 중국 경제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최근에 이르러 세계는 강대국으로 빠르게 등장한 중국을 대면하게 되면서, 그것이 지닌 국제정치에 대한 영향과 그 변화가 불러올 결과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다. 국제정치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은 그것이 갖는 지정학적 함의와 나아가서는 중국의 등장과 유사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전쟁의 위험성과 같은 문제에 대한 많은 연구 결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늘의 인도‧태평양 지역은 여러 차원과 여러 방식에서 기존의 미국의 헤게모니와 이 지역의 강국으로 등장한 중국 간의 경쟁이 현실로 나타나는 현장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에 이 지역의 중간적 국가들이 대응하면서 나타나는 경향은 “이중의 위계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지역의 국제정치 체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냉전 시기 한국민은 국제정치 체제에 대해 얼마나 잘 이해했을까에 대해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다. 분단과 더불어 냉전하에서 살았던 한국민은 대체로 미국의 눈을 통해 바깥의 세계를 이해하고, 판단하고, 전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날 한국의 외교와 안보는 한미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냉전 시기를 통해 21세기 초 최근에 이르는 긴 시기 절대강자로서 세계 질서를 운영하고 유지해 왔던 미국 일국 지배 시대가 이제 이미 끝났거나 끝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탈냉전 시기 국제정치 환경하에서 한국민은 스스로 국제정치 환경과 조건을 냉정하게 이해해야 하고, 우리 앞에 등장한 새로운 국제정치 질서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정확하게 파악하면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으로 내던져졌다. 그로 인해 한국은 이제 자체의 외교 능력과 안보 전략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러므로 국가의 국제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전략(statecraft)을 발전시켜야 할 어려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 

오늘날 한국의 국내 정치는 통제되지 않은 의견, 갈등의 강도가 지극히 높은 이익의 분출, 제어되지 않은 열정과 가치들이 문지기(gatekeeping)없는 민주주의 제도 내로 폭발적으로 인풋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건강한 작동과는 거리가 먼, 포퓰리즘적 위기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 중요한 원인이자 결과는 국내 정치적 이슈, 이익 갈등 만이 아니라, 민족 문제를 둘러싼 이념 갈등의 확대 증폭 현상을 불러들인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진보‧보수 간 정치 양극화를 확대 심화하면서 갈등의 위험스러운 극대화를 통한 정치적‧사회적 균열의 심화 양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의 출현을 두려워하면서, 오늘날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국제정치적 조건에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다음 세 가지 문제를 말하고자 한다.

첫째는 한국의 외교안보를 위한 정책 방향에 있어 북한과의 평화 지향적, 평화 공존적 정책 방향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으로 삼았으면 한다. 

둘째, 냉전 시기 한국 외교 관계의 중심축이던 미국과의 관계를 탈냉전 시기에서도 그대로 유지한다. 그와 동시에 일본과의 관계도 가장 중요한 인접 국가와의 관계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셋째, 국내의 이념 갈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나, 민족 문제를 위한 정책에 있어서나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놓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 정치, 의회에서의 협력과 타협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또한 민족 문제를 위한 정책의 연속성을 위한 정치 제도와 규범이 요구되기도 한다. 그 경험적 사례로서 냉전 시기 독일이 “동방정책(Ostpolitik)”을 추진했던 사례가 훌륭한 모델로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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