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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의식구조 만든 ‘공·사’의 문화 유전자
한국인 의식구조 만든 ‘공·사’의 문화 유전자
  • 최승우
  • 승인 2023.09.22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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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⑬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19일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가 「동양 정치사상과 공공성」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14강은 손열 연세대 교수(국제대학원)의 「21세기 일본의 국가 전략」이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公’에 대한 강조와 ‘私’에 대한 억압의 문화적 유전자는 한국이 근대 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기능과 부정적인 기능을 동시에 수행했다. 먼저 긍정적인 측면에서, 공정성·도의성을 의미하는 ‘公’ 개념이 다수의 의지를 의미하는 ‘共’과 더불어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서 민주화를 진전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간 적지 않은 평론가들이 “한국인에게 공·사 관념이 희박하다”라는 비판을 제기해왔다.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한국인에게 공·사 관념이 희박한 이유를 전통 시대에 지배 이념으로 군림해온 유교 문화(특히 성리학)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즉 가(家)와 국(國)을 연속선상에서 바라보고, 가정 내의 인륜적 규범과 국가의 정치 질서를 동일시하며, 법치 대신 인치와 덕치를 선호해온 유교 문화에서는 공·사의 구분이 희박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과 달리, 전통 시대 수많은 유학자들의 저작에서 우리는 ‘공’과 ‘사’의 엄격한 분리를 강조하는 주장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들에게 공·사 관념이 희박하게 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통적인 공·사관의 특징에 대한 엄밀한 규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서 이러한 문화적 특징이 문명 전환기의 현대인들에게 미쳤음직한 문화 유전자의 영향력에 대해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는 “국가 권력의 규범성과 공공성을 요구한 저항적 한국 지식인들의 견해가 꼭 서양으로부터 전해받은 근대 정치사상의 영향만은 아니다”라며 “정치권력의 규범성과 공동성을 강조했던 전통 사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유전자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성리학이 지배하던 시대에도 공·사를 구분하는 기준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으며, 만약 이러한 기준이 없었더라면 조선 왕조가 500여 년에 걸쳐 안정된 통치 질서를 유지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현대 한국인에게 공·사 관념이 희박하게 된 이유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통에서 물려받은 공·사 개념의 범주적 특성을 파악해 내고, 전통 공·사관의 문화적 특징이 근대 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착종·변용·왜곡됐는지의 과정을 짚어보는 일이 필요하고, 장차 건강한 공·사관의 정립을 위해 어떤 식의 노력이 필요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통 시대 동양(여기서 ‘동양’은 한자 문화권으로 한정한다)에서 사용해온 ‘公’ 개념은 영어의 public이라는 단어와 쉽게 환치될 수 없다. ‘공’과 public이라는 개념이 각기 고유한 역사적 맥락 안에서 탄생하고 자라 나오면서 의미 변천을 겪어온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서양어 ‘public’도 그러하지만, 동양의 ‘공’ 개념 역시 시대의 변천에 따라 새로운 의미가 첨가되거나 의미의 변화를 겪어왔으며, 한·중·일의 ‘공’ 개념은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서로 의미심장한 차
이를 보인다.

따라서 전통 동양의 ‘공’ 개념에 내포된 다양한 의미의 층차를 구분해 내고, 전통의 공·사관이 근대 국가로의 이행 과정에서 새로운 문명과 만나 그 의미 층차가 변해가는 과정을 살펴보는 일은 현대 한국의 정치 행태와 의식 구조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닌다. 

‘公’은 고대 문헌에서 일차적으로 정치적 지배자와 권력자, 그리고 공권력이 지배하는 지배 영역을 가리킨다. 후에 점차 정치 기구와 제도가 정비돼감에 따라 지배 권력 및 지배 기구로서의 ‘공’은 이러한 지배에서 벗어나 있는 영역인 사(私)와 대응 관계를 이루면서 공·사의 개념 짝이 정립하게 됐다.

동양의 고대 문헌에서 ‘공’ 개념은 지배 권력·지배 기구를 지칭하는 의미 이외에, 공정이나 공평과 같은 보편적 윤리적 원칙을 의미하기도 한다. 

동양에서 ‘공’은 지배 권력의 의미 그리고 보편적 윤리 원칙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공동성’ 또는 ‘공공성’을 의미하는 “더불 공(共)”의 의미로도 사용됐다. 공동성을 뜻하는 ‘공’ 개념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건 또는 공동으로 모이는 장소와 같은 고대 공동체 사회의 유습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동양 공·사관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하여 페이샤오퉁(費孝通)은 ‘동심원적 파문’이라는 비유를 동원한다. 동양 사회에서 개인은 원의 중심에 위치하며, 개인을 둘러싼 혈연·지연 등의 관계를 통해 구축된 인간관계가 동심원의 파문처럼 밖으로 확산된다.

이러한 관계망에서는 중심(개인)으로부터 가까울수록 인간관계 또한 가깝게 되며, 중심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인간관계 또한 멀어지게 된다. 이러한 동심원적 관계망에서 ‘공’과 ‘사’의 구분은 상대적이며 동시에 연속적이다. 

즉 중심으로부터 바깥을 바라보면, 중심에 가까운 관계는 ‘사’로 인식되는 반면 바깥은 언제나 ‘공’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동심원적 파문에서 ‘공’과 ‘사’는 연속적이며 상대적이다. ‘공’이란 언제나 ‘작은 범위를 둘러싸고 있는 더 큰 범위’를 가리키는 개념이며, ‘사’란 ‘큰 범위 안에 있는 작은 범위’를 뜻하게 된다.

여기에는 고대 그리스에서 볼 수 있는 “공=국가=정치 영역 / 사=가정=경제 영역”이라는 배타적 이분법이 성립하지 않는다. 전통 한국의 공·사관 역시 ‘연속성’과 ‘상대성’의 특징을 보인다. 조선 시대에 ‘공’과 ‘사’는 확고하게 분리된 두 개의 영역이 아니라 항상 신축적으로 유동한다.

더 큰 범위의 관점에서 볼 때 작은 범주는 ‘사’가 되고, 작은 범위에서 보았을 때 더 큰 범위는 ‘공’이 된다. 조선 시대에 ‘공’은 정치적 지배 영역인 국가·국왕·국법·관청을 의미하거나 공정·공평과 같은 윤리 원칙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사’는 국가나 공법의 허락을 받지 않은 탈법의 의미, 그리고 윤리나 도의에서 벗어난 이기적이고 불공정한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됐다. 

예를 들어 사도(私屠)는 관청의 허가 없이 소나 돼지 등을 밀도살하는 일을 의미하고, 사시(私市)는 관청의 허가를 득하지 않은 사사로운 상행위를 지칭한다. 또한 ‘공’이 윤리적으로 공평하고 정당한 행위를 지칭하는 데 반해 ‘사’는 윤리적으로 불공정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뜻했다. 

즉 ‘공’이 지배 권력이 가지는 정당성을 의미한다면 ‘사’는 지배 권력에서 벗어난 일탈이나 불법 행위를 가리키고, ‘공’이 공정·공평과 같은 윤리 원칙을 의미한다면 ‘사’는 이에 위배되는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행위를 가리킨다.

또 ‘공’이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협동적 의지를 가리킨다면 ‘사’는 이에서 벗어난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욕망을 뜻한다.

‘공’에 대한 강조와 ‘사’에 대한 억압의 문화적 유전자는 한국이 근대 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기능과 부정적인 기능을 동시에 수행했다. 먼저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공정성·도의성을 의미하는 ‘공’ 개념은 다수의 의지를 의미하는 ‘공’과 더불어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서 민주화를 진전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국가 권력의 규범성과 공공성을 요구한 저항적 지식인들의 견해가 꼭 서양으로부터 전해 받은 근대 정치사상의 영향만은 아니며, 정치권력의 규범성과 공동성을 강조했던 전통 사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유전자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공’에 대한 강조와 ‘사’에 대한 억압은 한국 사회가 근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권위주의적 개발 드라이브와 성장 지상주의의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전통 공·사관이 내포하는 ‘공평성’의 이상과 ‘공공성’의 지향을 외면한 채 오로지 국가 권력에만 ‘공’으로서의 지위를 독점적으로 부여했다. 

‘공’이 국가주의적 종교처럼 강요되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나 공적 덕성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정책과 의사 결정이 과도하게 국가나 관 주도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건전한 사익에 대한 추구마저 공익을 해치는 것으로 치부되고, 모든 사익의 추구는 지하로 숨어들어 탈법적·비합리적인 것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사’를 ‘공’과 대립되는 비윤리적인 것으로 여겨온 전통문화의 관성 아래서, ‘공’을 배타적으로 독점해버린 국가 권력은 건전한 사익을 추구하는 자유주의의 목소리마저 움츠러들게 하기도 했다.

어둡던 권위주의 시대가 저물고 (형식적으로나마) 민주화가 이뤄졌지만, 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는 ‘사’의 목소리는 공공성 또는 공동성을 요구하는 ‘공’의 목소리와 갈등을 빚는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사익 추구가 긍정되는 자유주의 사회에서 사익과 공공성 사이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줄다리기 싸움이다. 

수월성 교육을 강조하는 입장과 공교육의 정상화를 외치는 입장 사이의 갈등, 표현의 자유를 갈구하는 목소리와 예술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입장 사이의 충돌, 영리 활동의 자유를 주장하는 목소리와 기업의 공공성(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목소리 사이의 충돌, 사유 재산의 불가침성을 강조하는 입장과 공공 개발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입장 사이의 갈등 등 수많은 영역에서 ‘공’과 ‘사’의 줄다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개인의 자유(사적 영역)와 공공성(공적 영역)의 경계를 한칼로 가를 수 있는 선험적인 기준이 없는 한, 사익과 공공성 사이의 갈등은 열린 공론장에서 시민들의 합리적 토론을 통해 풀어 나갈 수밖에 없다. 전통 ‘공’ 개념의 세 범주 가운데 공론, 공동성, 공화성을 의미하는 ‘공’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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