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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 잇고 분과학문 소통 이끈다
안과 밖 잇고 분과학문 소통 이끈다
  • 김재호
  • 승인 2023.06.05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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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좌담회

네이버 열린연단 시즌10 ‘오늘의 세계’가 닻을 올렸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 질서, 동아시아,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과 담론 등 총 6개 섹션, 54개 강연이 펼쳐진다. 탈냉전 이래 국제질서의 변화와 전개 양상부터 중국의 급부상과 세력확장으로 인한 혼란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의 현안, 비자유주의와 포퓰리즘, 디지털 매체의 발전과 사회·문화의 변화, 첨단과학과 기술의 영역에서 관찰되는 새로운 흐름, 철학과 윤리 분야에서 나타나는 최근의 사조와 경향을 살펴본다.

지난달 26일, ‘오늘의 세계’ 기획 배경과 전망 등에 대해 논의하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열린연단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와 자문위원인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는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정한 이유, 그간의 경과와 향후 방향에 대해 대담을 진행했다. 

지난달 26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와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가 네이버 열린연단 시즌10 ‘오늘의 세계’ 좌담회에서 대담을 나눴다. 사진=김재호

 

“이제 우리 스스로가 세계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할 때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는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우리 자신의 문제와 이념·가치·삶의 문제를 발견하고 탐색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장 해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동안 한국은 미국의 시야를 통해 세계를 이해해왔다. 하지만 이제 냉전이 해체되고, 중국의 부상으로 시작된 치열한 미중 경쟁과 다극체제라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대면하고 있다. 

최 교수는 세계적 차원에서 질문을 던졌다. 정치공동체로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민족문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미국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고, 일본 그리고 중국과는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냉전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질서에서 나타나는 실존적 고민이다. 최 교수는 “미국 중심에서 벗어나는 인식의 변화를 통해 한국인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제정치적 문제는 거시적 분야다. 이와 더불어 미시적 문제는 개인적 사유·예술·경험·실제적 삶의 영역 등이다. ‘오늘의 세계’에서 미시적 문제 영역에서는 철학이나 문화 등 인문학이 많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디지털 매체와 인공지능 등 첨단과학‧기술이 바꾸는 ‘오늘의 세계’도 살펴볼 예정이다.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는 지성계의 역할을 모색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현실상황을 차분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우리가 몸담고 사는 세계가 보다 평화롭고 조화로운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성계의 지혜와 고견을 모아보고자 한다”라며 “이러한 노력이 조금씩 축적될 때, 우리 사회와 지성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서서히 안갯속에서 윤곽을 드러내리라고 기대한다”라고 설명했다.

 

 

고전 텍스트 해석 중심에서 현실 경험으로

그동안 진행된 열린연단 강연 프로그램은 보편적 지식을 학습하는, 학술적 기반을 놓는 작업이었다고 평했다. 최 교수는 2014년부터 시작돼 10살을 맞이한 열린연단에 대해 “처음 시기엔 텍스트 중심으로 고전을 해석하고 청중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강의가 마련됐다”라며 “물론 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방식이 중심이었다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것이 첫 번째 단계라면, 두 번째 단계에서는 강의의 주제를 현실과 경험적인 문제로 많이 끌어내렸고, 학문 분야도 넓어졌다. 시즌9의 ‘자유와 이성’과 시즌10이 그런 시도에 해당한다. 

최 교수는 “이른바 문·사·철로 통칭되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자연과학 이렇게 세 분야로 강연범위가 넓어졌다”라며 “하나의 대주제를 설정했을 때, 인문·사회·자연과학 세 분야가 동시에 상호연관성을 유지하면서 하나의 종합적인 학문적 담론을 형성하게 되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열린연단을 통해 시청자·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효과는 뭘까? 이 교수는 두 가지 방향성을 언급했다. 첫째, ‘안’과 ‘밖’을 연계하는 문제다. 둘째, 인문·사회·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과학문 간의 대화와 소통을 이끌어내는 일이다. 이 교수는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이론과 지식이 ‘학계’라는 전문가 집단 안에서만 논의되고 소비되었을 뿐, ‘학계’라는 울타리 너머의 교양있는 일반시민에게까지 파급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시민의 지적 수준이 빠른속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이에 걸맞은 시민교양 프로그램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열린연단 강연이 더욱 빛을 발한다.

아울러, 이 교수는 “각 분과학문이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독단·편견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공통의 주제를 놓고 대화를 통해 거시적·종합적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그는 “열린연단이 추구하는 분과학문 간 소통은 세계 어떤 학술조직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선구적·도전적 시도”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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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大學) 사라지고 ‘소학’(小學)만 양성하는 교육정책

‘오늘의 세계’ 주제와 관련해, 대학 교육에 대한 쓴소리도 나왔다. 최 교수는 교수가 연구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과, 법대·의대에만 몰려드는 한국교육의 퇴행성을 비판했다. “살아남은 대학은 사실상 직업훈련 전문학교로 역할 변화를 통한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고 있고, 학과는 하루아침에 없어져 교수들은 자신의 전공과목과는 무관한 학과로 배치됐다.” 최 교수는 한국대학에서 학문의 자유와 기초 교양(liberal arts)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이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열린연단에 나선 강연자들이 자유롭게 얘기하고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이 더욱 소중하다.

이 교수 역시 “대학은 사라지고 소학만 양성하는 대학정책”을 지적했다. 그는 “전통적으로 대학에서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와 이념 가치를 교육했고, 소학에서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적 지식을 가르쳤다”라며 “지금은 대학에 그런 역할을 기대할 수 없고, 슬프면서도 역설적이지만 열린연단이 전통적 의미의 대학 역할을 해야 하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열린연단의 향후 방향에 대해 자문위원장인 최 교수는 “지금까지의 운영 방식을 넘어, 무엇이 더 한국사회에서의 지적·문화적·철학적·이론적 관심을 갖는 청중들에게 더 좋은 강의로 보답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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