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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2.0, 중국의 사상실험 성공할까
유교 2.0, 중국의 사상실험 성공할까
  • 곽준혁
  • 승인 2023.09.14 08:2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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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⑫ 곽준혁 중국 중산대 교수(철학과)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5일 곽준혁 중국 중산대 교수(철학과)가 「유교 정치사상과 정치철학」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13강은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의 「동양 정치사상과 공공성」이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유교의 정치화를 주장하는 ‘정치 유교’ 학자들과 ‘신좌파’로 알려진 학자들 사이에 
‘반자유주의’와 ‘천박한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를 중심으로 끈끈한 연대가 형성되고, 이들의 연대를 통해 이전의 ‘유교’와 ‘사회주의’의 결합과는 다른 형태의

‘유교 사회주의’ 또는 ‘좌파 유교’의 출현을 목도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지식인들은 왜 ‘유교’를 비롯한 중국의 ‘전통 사상’으로 돌아가서 자기들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지와 관련된 생각을 전달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들이 왜 유교 정치사상으로 돌아가려고 하는지, 돌아가서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찾았는지, 그래서 이러한 전통사상으로의 ‘회귀’가 정치철학적으로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중국 지식인들의 ‘전통 사상’으로의 회귀는 서양에 의해 강요된 ‘근대화 과정’에 대한 반성, 또는 ‘근대성’에 잠재된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저항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나 역시 중국에서의 유교 정치사상의 화려한 부활의 이면에 ‘근대성의 극복’이라는 화두가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유교 정치사상의 부활을 ‘지역적 맥락’으로부터 ‘교차 문화적 맥락(cross-cultural context)’으로 끌어올려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에서의 유교 정치사상의 부활을 ‘근대성의 극복’ 또는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저항’이라는 화두로 단순화했을 때 보지 못했던 것, 즉 ‘철학적 회귀’를 통해 중국인들이 찾고자 하는 정치철학적 대안이 갖는 보편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무수한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근대성’의 극복 또는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저항’은 또 다른 형태의 ‘무의식적 오리엔탈리즘’, 즉 자기 문화에 대한 애착을 넘어 ‘자기 문화’를 중심으로 ‘서구’나 다른 주변의 문화를 ‘타자화’하고 ‘종속’시키려는 열정에 함몰되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중국에서의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를 이런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자국 중심의 대응 전략 또는 또 다른 형태의 민족주의 불러오기(interpellation)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자, 동아시아 각국의 유학자들이 너도나도 자기 나라가 이제 천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소중화(小中華)’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철학적으로 볼 때, 중국 지식인들이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를 통해 제시하는 중국이 나아가야 할 길, 또는 우리 모두가 나아갈 길은, 중국인들만이 경험한 독특한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넘어선다. 즉 중국 지식인들의 유교 정치사상으로 ‘돌아가기’는 중국만의 고유한 문제를 넘어 인류 보편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곽준혁 중국 중산대 교수(철학과)는 “서구 중심의 근대 정치철학이 초래한 정치사회적 문제를 고민해 볼 때, 중국 지식인들이 ‘유교 전통’으로 돌아가 오늘날의 문제를 성찰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라며 “자유주의가 곧 개인의 권리로 이해되는 지금, ‘개인성’의 발현을 위해서라도 ‘유교 정치사상’만의 독특한 견해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예를 들면, 다니엘 벨(1919∼2011)이 제시하는 ‘중국식 모델’이 기초하는 ‘현능주의’는 중국만의 독특한 경험을 통해서만 발견되는 생각이 결코 아니다. 자유주의도 ‘현능주의’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선거라고 하는 제도 자체가 이미 ‘저명’ 인사와 유권자를 구별하기 위해 존재하고, ‘제한된 합리성(bouded rationality)’이라는 이름 아래 ‘현능주의’ 또는 ‘능력주의’는 고대 서양 정치사상으로부터 현대 민주주의 이론까지 대표 또는 리더의 선발과 관련해서 자주 등장하는 견해이다. 

유교가 정치철학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중국이 2010년 통계로 일본을 제치고 GDP 규모 세계 2위로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됐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동아시아의 급속한 경제 성장을 설명하기 위해 공통된 문화적 토대의 하나로 유교가 부각됐고, 급속한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만든 문화적 자산들이 ‘유교적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그러나 이때 유교는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한 문화적 변수의 하나였을 뿐, 유교의 보편적 가치가 강조되거나 유교를 통한 새로운 형태의 제도 또는 새로운 형태의 세계 경제 질서를 수립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없었다. 물론 유교적 ‘공생’이나 ‘가족 제도’에 대한 관심은 컸다. 

그러나 유교 전통으로의 회귀를 주장하거나, 유교 자유주의자 치우펑(秋风, 본명 姚中秋)이 말하듯 ‘중국은 유가의 나라이며, 유교는 중국인의 가장 기본적 가치를 구성했을 뿐만 아니라 유교를 버리면 중국은 생명력을 잃게 된다’는 식의 주장은 거의 없었다.

반면 오늘날 중국의 지식인들은 ‘유가 전통으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다. 도가를 비롯해 다양한 중국 정치사상들이 재발견 또는 재해석되고 있기에 ‘중국 전통으로의 회귀’라는 말이 보다 적절하겠지만, 이러한 회귀를 이끌어 내는 주된 동력이 유학자들로부터 대두되고 있다는 점에서 ‘유가 전통으로의 회귀’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정치철학적 접근을 통해 볼 때,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는 일차적으로는 연구자가 지향하는 정치적 이념을 중심으로, 그리고 이념적 지향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제시된 ‘정치 모델’을 중심으로 범주화해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즉 유교 정치사상의 자유주의와의 접합, 사회주의와의 접합, 그리고 두 가지 정치 이데올로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유교 정치 모델로 범주화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유교 자유주의’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유교 정치사상은 ‘자기 부정’과 ‘강요된 순응’만 있을 뿐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독립된 판단에 무관심하고,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으로부터 인민의 배제를 전제하는 비민주적인 사고일 뿐이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유교 사회주의’다. 일면 ‘유교 사회주의’도 ‘유교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이상의 실현을 위해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유교의 정치화를 주장하는 ‘정치 유교’ 학자들과 ‘신좌파’로 알려진 학자들 사이에 ‘반자유주의’와 ‘천박한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를 중심으로 끈끈한 연대가 형성되고, 이들의 연대를 통해 이전의 ‘유교’와 ‘사회주의’의 결합과는 다른 형태의 ‘유교 사회주의’ 또는 ‘좌파 유교’의 출현을 목도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이러한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가 갖는 문제점을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는 중국의 경제 발전이 가져다준 정치사회적·문화적 자신감이고, 둘째는 근대 정치 이데올로기의 한계에 대한 불만이고, 셋째는 유교 정치사상의 보편성에 대한 확신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첫 번째 자각을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가 중국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든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고, 두 번째 자각은 동서양 정치사상을 막론하고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라는 측면에서 공감한다. 세 번째 자각에 대해서는 비교 정치철학적 입장에서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의 결과로 얻어진 정치적 구상들을 꼼꼼히 검토하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첫 번째 자각과 관련해서는 중국의 지난 70년 동안의 성공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은 경계의 대상이라고 지적하고자 한다. 중국이 세계 질서를 좌우하는 강대국으로 부상한 것이 유교 정치사상에 대한 지구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요인들 중 하나인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중국의 초강대국으로의 부상 그 자체가 유교 정치사상이 보편적 가치로 발돋움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은 결코 아니다. 

오늘날 서구 중심의 근대 정치철학이 초래한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고민해 볼 때, 중국 지식인들이 ‘유교 전통’으로 돌아가 오늘날의 문제들을 성찰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유주의가 곧 개인의 권리로 이해되는 지금, ‘개인성’의 발현을 위해서라도 ‘관계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요구하는 ‘유교 정치사상’만의 독특한 견해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서구 사회의 문제로부터 시작해 유교 정치사상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들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런 노력들은 중국 지식인들이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접근법이 요구된다. 

거듭 말하지만, 중국 지식인들의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와 비교할 때, 서구 정치철학자들이 유교 정치사상에서 발견한 역할 윤리는 중국인의 역사적 경험에서 벗어나 유교 정치사상이 갖는 보편성을 잘 보여주는 장점을 갖고 있다.

동시에 유교 전통에서 발전된 ‘다수’와 ‘소수’의 차이에 기초한 ‘현능주의’가 갖는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 관계성을 극복할 또 다른 유교 정치사상의 원칙을 제시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역할 윤리가 유교 정치사상이 갖고 있는 한계를 모두 극복한 것은 아니다. 특히 유교 정치사상이 갖는 자연주의적 낙관론이 초래하는 문제점을 똑같이 갖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역할 윤리학자들도 불공정하거나 불평등한 관계가 초래하는 갈등이 쉽게 해소될 수 있다는 낙관적 견해를 갖고 있다.

이런 자연주의적 낙관론은 가족 관계로부터 함양된 도덕적 인성이 공동체를 넘어 지구적 차원으로까지 손쉽게 확대될 수 있다는 견해를 통해 더 구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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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3-09-15 02:50:28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윤진한 2023-09-15 02:49:43
야사라는게 정설입니다.

유교,공자.은,주시대始原유교때 하느님.조상신숭배.세계사로보면 한나라때 공자님도제사,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성립,수천년전승.한국은殷후손 기자조선 기준왕의 서씨,한씨사용,三韓유교祭天의식. 국사에서 고려는 치국의道유교,수신의道불교.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고려 국자감은 고려말에 성균관이 되고, 조선 성균관, 해방후 성균관대로

윤진한 2023-09-15 02:45:55
동양은 제자백가가 경합하다가 유교가 세계종교, 서양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기독교)이 공존하다가, 로마가톨릭이 세계종교됨. 인도는 브라만에 항거해 일어난 부처의 불교가 주변국에 단순포교를 해, 한때 고대세계 세계종교였지만, 발원지 인도에서 천 몇백년동안 선발신앙인 브라만의 힌두교에 억눌려 탄압받으며 현재에 이름.

한국은 세계사의 정설로,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국으로 수천년 이어진 나라임.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때 외래종교 형태로 단순 포교되어, 줄곧 정규교육기관도 없이, 주변부 일부 신앙으로 이어지며 유교 밑에서 도교.불교가 혼합되어 이어짐. 단군신화는 고려 후기 중 일연이 국가에서 편찬한 정사인 삼국사기(유교사관)를 모방하여, 개인적으로 불교설화 형식으로 창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