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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미국이 중재하는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성공할까
[글로컬 오디세이] 미국이 중재하는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성공할까
  • 정진한
  • 승인 2023.07.14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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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정진한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의 수교를 추진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더 조급해졌다. 앞서 트럼프 정부가 오바마의 이란 제재 해제 시도를 무산시키는 대신이스라엘과 아랍 4개국을 수교시킨 ‘아브라함 협정’ 시리즈로 중동 정책에 성과를 이루었다. 바이든 정부도 집권 초 이란을 JCPOA(‘포괄적 공동행동 계획’, 일명 ‘이란 핵합의’)로 복귀시켜 비견할만한 실적을 내고자 노력했다.

사우디는 교과서에서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내용 대부분을 삭제했다. 하지만 ‘교과서 워싱’만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는 어렵다. 사진=브루킹스연구소
사우디는 교과서에서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내용 대부분을 삭제했다. 하지만 ‘교과서 워싱’만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는 어렵다. 사진=브루킹스연구소

하지만 러시아 전쟁과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의 불화 등으로 이란 경제제재 해제는 어그러졌고, 엉뚱하게도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를 주선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이에 미국 민주당 정부는 이를 만회할 승부수로 과거 공화당도 추진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이스라엘과 사우디 사이의 수교라도 성사시켜야 할 처지에 놓였다.

우선 이 구상의 주역인 이스라엘, 사우디, 미국이 수교를 추진해야 할 동기는 명백하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12월에 재집권했음에도 사법 개혁 문제로 인해 국내에서는 대규모 시위를 수습하지 못하고, 아직 백악관의 초청마저 못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사우디와의 수교를 통해 내치의 안정과 미국의 지지 획득이라는 돌파구를 마련해 내려고 한다.

또한, 사우디와의 수교는 지금껏 최대 적국 중 하나였던 사우디를 이란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창구이자 협력자로 전환시킬 수 있다. 사우디 역시 이스라엘과의 수교가 필요하다. 우선 당장 엑스포 등 국제 행사 유치와 VISION2030을 위한 네옴시티 투자 등을 위해 이란과 손을 잡긴 했지만, 핵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않은 이란이 복귀하는 현 상황이 부담스럽다.

이미 여러 차례 바이든 정부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낸 만큼, 이제는 다시 협력의 장으로 돌아와야 할 지금 시점에, 미국 측이 먼저 제안한 수교안을 받아들고 자리에 앉는 모양새는 나쁘지 않다. 마침 총선을 앞둔 바이든에게도 이스라엘-사우디 수교를 성사시키는 것 외에는 지난 중동 정책의 총체적 실패를 만회할 묘수가 잘 보이지 않는다.

3국은 수교를 위한 포석을 상당히 깔아뒀지만, 실질적인 수교까지는 넘어야 할 파고가 만만치 않다. 먼저 미국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에 힘을 발휘할수록 중동 내 미국을 향한 민심은 악화될 것이다. 지난달 28일 사우디 젯다의 영사관은 또 한차례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큰 피해는 없었다지만 미국 당국으로서는 성지 순례 기간에 벌어진 이 공격과 관련해 민심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하필 같은 날 스웨덴에서 벌어진 꾸란 소각 시위와 이를 ‘표현의 자유’이기에 승인했다는 스웨덴 정부의 공식 발표는 아랍뿐 아니라 이슬람권 전체의 정부와 민중의 민심을 들끓게 만들었다. 이는 팔레스타인과 마찰 중인 이스라엘과 사우디 사이의 중재를 주선하고 있는 미국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의 상황 역시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각종 비리 의혹과 사법 개혁 추진에 대한 민중 저항에 이어 지난달에는 요르단강 서안 제닌의 난민촌 테러 용의자 체포 작전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하필 이번 사태는 이스라엘 군인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조직원들뿐 아니라 유대인 정착촌 주민과 팔레스타인 주민이 직접 총기를 난사하고 방화를 벌이고, 가자가 아닌 서안에서 로켓까지 발사될 정도로 매우 이례적으로 심각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5천600채 이상의 정착촌 주거지 확장으로 응수함으로써 이슬람권 전체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아랍 국가와의 새로운 평화 구상을 공개를 더 망설이게 만들었다. 사우디 역시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사우디는 이스라엘에게 우라늄 농축 기술과 핵연료 생산 시스템 개발을 도와줄 것을 요구했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 요구가 관철되기 어렵다고 전망한다. 

더 큰 문제는 민심이다. 아스다가 지난 3~4월 사우디의 18~24세 남녀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우디 청년층은 단 2%만이 이스라엘과의 수교에 찬성했고 무려 98%가 반대했다. 그중 절대다수는 강하게 반대했다. 이 같은 수치는 같은 조사에서 앞서 이스라엘과 수교한 UAE의 75%, 모로코의 50%, 바레인의 30%라는 찬성 수치보다 매우 낮을 뿐 아니라, 조사대상인 19개 아랍국가 중에서도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사우디는 2022~2023 교과서에서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내용의 대부분을 삭제하고, 이-팔 분쟁 등에 대한 표현 역시 완화하거나 삭제했다. 하지만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연구자들이 지적하듯 ‘교과서 워싱’만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는 어렵다. 오늘도 사우디인은 교과서 밖에서 각종 미디어와 개인적 활동을 통해 팔레스타인과 여타지역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접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진한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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