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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팔레스타인의 고립을 풀 열쇠, 자유와 평등
[글로컬 오디세이] 팔레스타인의 고립을 풀 열쇠, 자유와 평등
  • 정진한
  • 승인 2023.11.17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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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정진한 한국외대 아랍어과 강사

이스라엘은 무슬림과 유대인 사이의 갈등으로 탄생한 나라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이천년을 유럽 땅에서 떠돌며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고립되고 차별받던 유대인들이 자신들만의 국가를 만들어 누구로부터도 간섭받지 않고 억압당하지 않을 자유를 찾고자 분투했던 노력의 최종 정착지이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의 유대인들로부터 고립된 채 살아온 팔레스타인인들은 “왜 우리가 유대인들이 겪은 역사적 피해의 희생양이 돼야 하냐”라고 호소한다. 

최근 급속도로 진척된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의 연쇄 수교는 애초부터 우려스러웠다. 1948년 건국을 선포한 이후 이스라엘은 거듭된 전면전 끝에 1979년 이집트와, 1994년 요르단과 수교할 수 있었지만 이후 26년간 20개 아랍국의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2020년 8월부터 불과 넉 달 만에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과 관계를 정상화했고, 이에 아랍을 비롯한 이슬람권 전체의 민심은 동요했다.

하마스의 자기 파괴적인 총력전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방치하거나 통제하는 것만으로는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존립이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진은 한국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진행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사진제공=정진한
하마스의 자기 파괴적인 총력전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방치하거나 통제하는 것만으로는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존립이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진은 한국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진행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사진제공=정진한

논란의 핵심은 역시 팔레스타인의 완전한 독립과 주권의 인정이었다. 수교가 한창이던 2020년 11월 아랍 센터 워싱턴 DC 조사에서 아랍인 88%는 자국의 이스라엘 인정을 반대했고 겨우 6%만이 수용했다. 이 수치는 알제리나 예멘처럼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국가들뿐 아니라 이집트와 요르단처럼 기수교국들을 포함했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이들 다수는 심적으로 이스라엘 땅 전체를 팔레스타인인들의 몫이라고 보지만, 현실적으로는 이스라엘을 독립국으로 인정할 테니 팔레스타인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고립과 팔레스타인의 지지라는 아랍의 연대는 2020년 이후 가시적으로 급속히 해체됐다. 팔레스타인은 이를 격렬하게 성토했고 특히 하마스는 수차례 공습을 가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처우를 개선해야만 하는 동인은 약해져 갔다. 분리 장벽과 아이언 돔 요격 시스템으로 방어력을 입증했고, 일부 아랍과의 관계도 개선했다. 특히 트럼프의 이란 고립정책은 아랍 국가들로 하여금 이스라엘과의 반이란 연대를 추진케했고, 이로써 이스라엘의 입지는 한 번 더 높아졌다.

결국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은 최고조에 달했고, 대규모 전면전을 제외한 선택지는 사라져갔다.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서는 유엔이 불법으로 지정한 정착촌이 지속적으로 확장됐지만, 이에 대한 팔레스타인 정부에 대한 대처는 무기력했다. 가자 지구에서 산발적 공습을 전개했지만 심대한 위협을 끼치지 못했다. 단지 본토와 양 점령지 모두에서 유대인들을 향한 테러 빈도가 급증했고 공습과 시위의 정도가 격렬해졌다.

마침내 하마스는 자기 파괴적인 총력전을 감행했다. 과감하고 입체적인 공세는 공습과 지상전에서 모두 전례 없는 전과를 획득했지만 무차별적인 민간인 납치로 도덕적 정당성을 무너뜨렸다. 또한 이스라엘의 총력 지상전으로 전국토에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하고 궤멸적인 시설 파괴를 입었다. 그럼에도 하마스의 이 위험한 결정은 거시적 관점에서 큰 변화를 야기했다.

먼저 팔레스타인 문제를 방치하거나 통제하는 것만으로는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존립이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다. 완성체로 자부해온 자국의 방어선이 전방위적으로 뚫리는 것을 전 세계가 목도했고, 이미 심각했던 안보 유지 부담이 폭증하고 있다.

뜨겁게 언론을 달군 유대인들의 영웅적인 귀국 뒤에는 병역 부담으로 인해 꾸준히 증가해온 이스라엘의 인구 유출이 있다. 징집을 피하려 많은 여성과 그 가족들은 이민을 택했고, 일부 남성들은 과거에 징집에서 면제됐던 하레디(초정통파 유대인)로 개종했다. 민과 군을 가리지 않고 무수한 사상자를 낸 이 전쟁은 일부에게 애국심을 고취했지만, 다른 이들이 정부가 팔레스타인과 적극적인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을 요구하거나 이스라엘을 떠나게 할 것이다.

전쟁은 추가적인 아랍과의 수교를 중단시켰다. 이미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는 요원해졌다. 이번 전쟁 직전 (아랍 청년 설문조사 Arab Youth Survey)는 사우디 청년의 98%가 이팔문제 해결 없는 이스라엘과의 수교에 부정적, 그 중 대다수는 강하게 부정적이라고 발표했다. 과거 국내 급진파들의 메카 대성원 점령, 911테러 주동 등을 겪은 사우디는 이팔 문제의 폭발력을 잘 알고 있다. 이 전쟁은 불가능에 가깝던 수교 노정에서 사우디가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는 출구가 됐다.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여론 역시 악화되고 있다. 10개의 비아랍계 이슬람 국가는 이스라엘과의 국교를 거부 중이고 그중 6개국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 왔다. 아랍과의 데탕트(긴장 완화)를 발판으로 이스라엘이 시도하던 이슬람권과의 관계 개선 역시 힘들어졌다. 

심지어 유대인을 축출한 역사적 부채로 인해 여지껏 이스라엘을 지지해온 유럽의 여론마저 찬반 양분 양상으로 돌아섰다. 과거 유럽 내 유대인들이 겪었던 고립을 오늘날 반복해서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스라엘이 이제는 억압 대신 수천 년간 꿈꿔왔던 평등과 자유를 팔레스타인에서 실현해 내길 기도해 본다.

 

정진한 한국외대 아랍어과 강사

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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