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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독일이 병들면 극우세력 고개 든다
[글로컬 오디세이] 독일이 병들면 극우세력 고개 든다
  • 김일곤
  • 승인 2023.12.13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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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김일곤 한국외대 EU연구소 연구교수

독일이 심상찮다. 유럽연합(EU) 통계청인 유로스타트의 지난 10월 31일 발표에 따르면 유로존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독일의 3분기 경제 성장률이 –0.1%로 예측됐다. 반면에 지난해 10월 독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1년 만에 최고치인 10.4%를 기록했다. 여전히 불안정한 에너지 가격과 높은 식료품 가격으로 물가 오름세는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영향 탓에 독일이 ‘유럽의 병자’라는 오명을 다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경제 성장 둔화와 높은 물가 상승률의 부담이 독일 국민의 몫으로 오로지 전가되고 있는 점이다. 특히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는 가처분 가계소득 증가율은 중산층과 저소득층 가계를 더욱 궁지로 내몰고 있다. 

사민당·녹색당·자민당의 지지율이 동반 추락하면서 이들 정당의 지지율 하락의 공백을 독일의 대표적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채워가고 있다. 사진은 AfD의 당수인 프라우케 페트리. 사진=위키피디아

‘먹고사니즘’과 직결된 이러한 생활의 위기는 독일에서도 안전과 보호의 요구를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안전에도 질병안전·교통안전·산업안전 등의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의식주의 해결을 둘러싼 빈곤으로부터의 안전과 외부의 위기와 침략으로부터 보호받으며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는 국방의 안전이 아마도 가장 기본적인 최상의 안전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질병으로부터의 안전조차 지난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전염병 대처에서 보인 무능과 늦장 대응으로 다수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이미 의구심이 쌓인 지 오래다. 그에 더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영향을 받은 유럽을 비롯한 독일 사회 내부의 반이슬람주의와 반유대주의 세력 간의 갈등이 전이돼 분쟁에 준할 만큼 독일 사회를 파국으로 몰아갈 수 있음도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한편으로 이러한 위기 현상은 극단주의 세력이 영향력을 넓혀가는 틈새를 허용해 정치적 위기로까지 전이되고 있다. 그런데도 독일의 기성 정치집단은 위기에 대한 대응과 이렇다 할 처방을 제시하지 못하며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특히 집권 사민당(SPD)과 총리가 비난의 주된 표적이 되고 있다. 독일 국민의 안전과 보호의 직접적 책임이 이들에게 있는 탓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위기·물가 급등과 최근의 중동사태에 이르기까지 올라프 숄츠 총리가 충분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독일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비난의 주된 내용이다. 그 결과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취임 8개월 만에 20%대로 떨어졌고, 사민당·녹색당·자민당의 지지율이 동반 추락하면서 ‘신호등’ 연립정부의 존폐까지 거론되고 있다.

반대로 이들 정당의 지지율 하락의 공백을 독일의 대표적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채워가고 있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헤센주 선거에서 2위로, 바이에른주 선거에서는 5년 전보다 지지율을 끌어올려 3위로 올라섰다. 또한 몇몇 여론조사에 따르면 주 선거를 앞둔 일부 지역에서 기민당(CDU)도 제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독일에서 주 선거는 연방 선거를 예측하는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다음 연방 선거에서 그들의 약진이 더욱 눈부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극단주의 세력의 부상이 독일만의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독일을 위한 대안’의 약진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유럽통합의 역사에 놓인 또렷한 발자취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난 유로존 위기를 헤쳐 나오는 데 있어, 그리고 브렉시트 이후에도 유럽연합이 건재할 수 있는 배경에는 독일의 지대한 역할이 있다는 것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점에서 독일이 없는 유럽연합과 유로존 체제는 가히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독일을 위한 대안’은 반이민정서를 넘어 유로존 해체와 마르크 통화로의 복귀를 요구한 바 있고, 지금은 내년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유럽연합 해체를 주장하는 등 반(反)유럽연합 성향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약진에서 초래될 수 있는 독일 정치의 지형 변화에는 이민과 난민까지 보듬어 온 독일의 포용적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유럽연합과 통합의 장래까지 위협하는 폭발력이 담겨 있는 셈이다. 

선거의 시간이 우리에게도 다가오고 있다. 그럴수록 적과 우리를 가르는 ‘낙인찍기’와 포퓰리즘 성향의 극단적 주장이 난무하며 민심을 더욱 자극할 것이다. 현재 우리의 경우 독일과 유사한 생활의 위기 앞에서 수위를 높여가는 지정학적 위기까지 중첩돼 안전에 대한 희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선거가 민심의 풍향계라면, 민심의 향배와 이를 반영한 우리 정치의 방향성이 내년에 결판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앞으로도 ‘극단주의의 세계화’ 추세 밖에 있는 ‘무풍 혹은 미풍 지대’로 남아있게 될 것인가? 

 

 

김일곤 한국외대 EU연구소 연구교수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대의 정치외교학과와 독일어과에 출강하고 있다. 유럽 국가와 유럽연합의 정치경제 변동에 관한 논문과 저서를 출간했으며,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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