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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인도 여성 정치의 유리천장, 할당제가 깨부술까
[글로컬 오디세이] 인도 여성 정치의 유리천장, 할당제가 깨부술까
  • 상연진
  • 승인 2023.11.03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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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상연진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HK연구교수

인도에서 할당제 시행은 카스트 제도로 인해 차별받는 하층 카스트에게 교육과 일자리, 그리고 정치적 대표성 면에서 성장의 기회를 주겠다는 의도로 처음 시작됐다. 이후 할당제는 기타 후진 계급·경제적 후진 계층 등에게까지 확장됐다. 그러나 인도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매우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할당제는 추진되기 어려웠다. 

세계 경제 포럼이 최근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는 185개 국가 중 141위를 기록했다. 특히, 인도 여성 정치 대표자들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하위권에 속하는데, 전 세계 입법 기관에서의 성 평등 순위에서도 바닥권에 머물고 있다. 550명의 하원 의원 수 중 82석인 15% 정도이며, 상원에서는 250석 중 31석을 차지해 12% 정도만이 여성 의원이다.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는 185개 국가 중 141위를 기록했다. 특히, 인도 여성 정치 대표자들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하위권에 속하는데, 전 세계 입법 기관에서의 성평등 순위에서도 바닥권에 머물고 있다. 사진은 인도의 유일무이한 여성 총리 인디라 간디. 사진=위키피디아

지방 자치기구인 판차야트에서는 이미 1993년부터 여성할당제가 시행돼 130만여 명의 여성들이 선출됐으며, 현재 최소 18개 주의 판차야트에서는 여성 대표 선출자가 50% 이상인 것으로 확인돼 여성할당제의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도 여성할당제를 추진하는 것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진행됐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9월, 인도 여성들의 정치적 평등권과 권위 향상을 위한 역사적 법안이 가결됐다. 중앙 하원과 주의회 의석 33%를 지정 카스트·지정 부족 여성들을 포함해 의무적으로 할당하는 개헌안이 통과한 것이다. 여성할당제가 제안된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은 이례적으로 상·하원 모두 거의 만장일치로 가결돼 대통령 승인까지 받은 상황이다. 

이 법안은 1996년 처음 안건으로 제안됐으나 더 이상 추진되지 못했다. 이후, 2010년 만모한 싱 정부의 인도 국민회의당(INC)이 이 법안을 상원에서 제안해 통과됐으나 하원에서 계류되면서 무효됐다. 이 당시 법안이 가결되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특히 남성 의원들이 자신들의 선거구를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선뜻 찬성표를 던지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여성할당제가 시행된다면 하원에서 여성 의원 수가 181명이 돼야 하므로 이에 대한 압박감이 남성들에게 크게 작용했다. 이러한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올해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인도인민당(BJP)이 이 법안을 다시 내놓아 양원을 통과하면서 여성할당제는 처음으로 의미있는 시행의 첫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올해의 법안은 1996년과 2010년과는 다르게 법안이 시행되기 위한 새로운 조건을 추가했다. 첫 번째 센서스 인구조사 발표에 근거한 선거구 획정법(delimitation Act)이 실시된 이후 여성할당제 법안이 효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할당제 법안이 올해 통과됐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그 시행이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시점은 2029년 이후로 전망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2021년 센서스 조사가 연기되면서 실질적인 조사는 2025년에 이뤄질 것이고, 조사 결과 발표에도 1~2년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2021년의 센서스는 2026년에나 결과를 알 수 있게 된다.

이 센서스 결과는 선거구 조정에 토대가 될 것이다. 현재 2002년 선거구 획정법에 따라 중앙과 각 주 의회의 지정 카스트 및 지정 부족의 할당제 좌석 수가 결정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통과된 여성할당제 법안을 위해 필요하다고 제안되는 선거구 획정법은 헌법 수정이 필요하며 법안 시행을 지체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어 야당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이를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성할당제 법안 시행을 위해 선거구 조정을 제안한 BJP의 정치적 의도가 의심되는 것도 사실이다. BJP는 두 가지를 의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첫 번째는 선거구 조정을 하게 되면 의회 의석 총수가 변경되므로 자신의 의석수를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할 남성 의원들을 안심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더 큰 의도는 헌법이 주 정부가 인구 비율에 따라 의석을 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에 따라 인구 통제 능력이 낮은 편인 북부 주가 하원 의석에서 더 많은 할당량을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이는 BJP가 장악하고 있는 북부 주들 의석수를 늘릴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BJP가 약세인 남부 주의 의석수는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여성할당제 시행과 선거구 조정을 굳이 연관시킬 필요가 없다는 반론이 나온다. 여성 권위 향상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시행에 목적을 두고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여성할당제가 실시되기를 인도 여성들은 30여 년이 넘게 기다려왔다. 더 큰 인도의 발전을 위해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확대를 위한 추진이 더 이상 지체되지 않기를 바란다. 

 

 

상연진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HK연구교수

인도 자와하랄 네루대에서 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인도의 계급, 젠더, 힌두민족주의이며 주요 연구로는 「힌두 획일화에 대한 달리트 개종자의 저항과 한계」(20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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