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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기독교-이슬람 불편한 동거, 정치적 노림수 있었다
[글로컬 오디세이] 기독교-이슬람 불편한 동거, 정치적 노림수 있었다
  • 정진한
  • 승인 2023.05.03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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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 정진한 한국외대 아랍어과 강사
이집트 알시시 대통령이 기독교도들을 배려하고 이들과 협력하는 배경에는 
정치경제적 동기가 있다. 경제개발에 필요한 해외투자 및 대외원조 수급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사진=위키피디아

“부활절을 기념해 대통령께서는 수감자들에게 특별 면회의 기회를 제공한다.” 어느 기독교 국가의 보도 내용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구의 약 90%가 무슬림인 이집트 내무부의 발표다. 이집트는 헌법 2조에서 이슬람을 국가의 종교로, 아랍어를 국가의 공식어로, 이슬람 법인 샤리아를 입법의 주요 원천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집트 대통령 중 처음으로 교회 미사에 참여한 현 대통령 알시시는 올해도 어김없이 기독교 명절에 맞춰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군중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천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키고, 이슬람 원리주의 정당들을 해산시키고, 한 번에 백 명 이상의 무슬림 과격 분자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엄격한 독재자이다. 그런 그가 기독교도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자상한 무슬림 위정자이다. 다른 중동 군부 정권과 마찬가지로 이집트 정부는 이슬람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무슬림 대중들을 규합해 정권에 위협이 될 여지가 있는 여러 무슬림 단체들을 극렬하게 탄압해왔다.

대표적으로 5년 뒤 100주년을 맞는 유서 깊은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들의 대부 무슬림 형제당은 이집트 군사정권으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반면 기독교도들은 일시적인 갈등기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군사정권과 상호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현 알시시 정권이 기독교도들을 배려하고 이들과 협력하는 배경에는 정치경제적 동기가 있다. 2024년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알시시에게 경제개발에 필요한 해외투자와 대외원조 수급에 있어 국내외 기독교인들의 지지는 필수적이다.

잔인한 진압과 철권통치로 인권탄압 논란에 휩싸여 있는 그에게는 국제 사회의 지지와 협조를 획득하기 위해서 소수 종교 신자들 특히 기독교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정권 유지를 위해 인구의 약 10%를 차지하는 기독교인들로부터의 득표 역시 절실하다. 

한편, 왕정 종식 후 근 70년간 이어져 온 군부 정권의 몰락 후 요동쳤던 이집트의 민심은 기독교도들이 군정을 더욱 굳건히 지지하도록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11년 무바라크 대통령 하야부터 2013년 현 대통령의 쿠테타 사이의 짧은 기간 동안 기독교도들이 목격한 이집트 사회의 흐름은 무슬림 형제당 출신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집권과 이집트 내 이슬람주의 세력의 급격한 영향력 확대였다. 자신들에게 최악인 상황으로 흘러가는 것을 목도했던 이들은 결국 군정이 제공하는 안정과 보호를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정권과 기독교계 사이의 협력관계가 마냥 낙관적일 것으로 전망할 수는 없다. 

선의에 의한 행동이 늘 선한 결과로 돌아오지 않듯 무슬림 대통령들의 친기독교 행보는 종종 일부 무슬림들의 반기독교 정서를 초래했고, 때로는 기독교도들에 대한 테러를 유발하기도 했다.

최근 더 크게 불거진 관건은 경제문제다. 인류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듯, 이집트 역시 극심한 경제난으로 인해 적체된 사회 불만으로 다수 집단이 소수자들을 공격한 사례가 있다.

알시시 집권 전반기에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가던 이집트는 코로나로 인한 세계적 불경기와 함께 그 성장 속도가 주춤했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심한 타격을 입은 국가 중 하나가 돼버렸다.

세계 최대 밀 수입 국가인 이집트는 기록적인 식료품 가격 폭등에 허둥대다 닭고기 대신 닭발 소비를 장려하는 무리수를 펼치다 큰 반발만 불러일으켰다.

중앙은행이 거듭 금리를 대폭 인상했음에도 지난달 10일 이집트 중앙 통계청(CAPMAS)이 발표한 3월 이집트의 인플레이션이 연중 최고점인 33.9%를 찍었다. 

작년 12월부터 IMF의 구제금융 관리를 받는 와중에 최근 환율 급등까지 겹치면서 이집트의 경기 회복 시점은 요원해졌다. 거기에 급변하는 대외 정치 환경까지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달 15일 쿠테타를 일으킨 수단의 반군은 이집트 공군 교관과 전투기 등을 억류하며 정세 불안을 부추기고 있고, 최근 불거진 미국의 비밀자료 유출 스캔들 역시 악재로 발전할 잠재적 위험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슬림 대통령이 던지는 기독교 명절 축하 메시지는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이집트의 무슬림 이웃들은 이미 여러 차례 대중 소요로부터 기독교도들을 보호한 전례가 있다. 이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자신들이 라마단 월 한 달간 지키는 단식보다 더 긴 단식을 기독교도 이웃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같은 땅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기리며 함께 인내한 이들 모두에게 종교적 차이를 초월해 서로 화합하는 이집트인이 되자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모든 이들의 가슴에 와닿기를 기도한다.

 

정진한 한국외대 아랍어과 강사

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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