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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전쟁·참사의 상흔을 넘어, 새 시대의 성찰이 필요할 때
[글로컬 오디세이] 전쟁·참사의 상흔을 넘어, 새 시대의 성찰이 필요할 때
  • 오승희
  • 승인 2023.11.23 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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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오승희 서울대 일본연구소 HK연구교수

올해는 1923년 관동대지진 100년, 1945년 일본에서 전쟁이 끝난 지 78년,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 70년, 동일본 대지진 발생 12년, 그리고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1년이 되는 해다. 지난 3년간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쟁과도 같은 상황 속에서 안전을 위해 자유가 제한된 삶을 살았다. 

팬데믹 이후 국제질서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전쟁이 발발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이후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대다수의 전후 태어난 사람들은 동시대의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지난 전쟁과 재난으로 인한 참혹한 인권침해와 피해자들의 고통을 돌아보고,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개인의 자유와 생명, 그리고 인권의 가치가 지켜지는 일상의 소중함,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겨야 할 때다.

필자는 올해 8월 히로시마(広島)와 나가사키(長崎)를 방문해 지난 전쟁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기억과 망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1945년 전쟁이 끝날 때 히로시마에는 1945년 8월 6일, 나가사키에서는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 ‘리틀보이’와 ‘팻맨’이 각각 투하됐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일본인은 물론 조선인들도 중국인들도 피폭당했다. 일본은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피해국’으로서 이후 핵을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제시했다. 매년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서 열리는 평화기념식전에는 전 세계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핵의 위험성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외친다. 

히로시마 공원에 위치한 평화기념 자료관은 피폭자의 목소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피폭당한 사람, 피폭 당시의 물건들, 처참한 풍경,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감정을 만날 수 있도록 드라마틱한 전시 공간을 구축해놓았다.

보다 주목한 것은 핵폭탄 투하를 결정했던 미국의 관련 문서들을 소개하고 있는 공간이다. 전쟁의 비참함을 각인시키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잔인한 인간의 범죄행위였으며, 전쟁과 핵무기 사용을 지양해 평화롭고 안전한 일본과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적극 발신하고 있다. 

올해 8월 15일 한국에서 개봉해서 약 32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인기를 얻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일본에서는 개봉되지 않았다. 맨하탄 프로젝트와 폭탄 투하라는 사실을 아직 직면하기 힘들기 때문일까? 

 

 매년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서 열리는 평화기념식전에
는 전 세계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핵의 위험성과 생명의 소중
함에 대해 외친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필자 촬영. 
제공=오승희

그 당시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영화는 은퇴를 선언했던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의 10년 만의 작품 「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였다. 일본에서는 7월 14일 개봉했고, 한국에서는 지난달 25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한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진다.

전쟁기에 유년 시절을 보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미래 세대가 과거 세대를 ‘기억’하고, 주변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면서, 나아가 이전의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무엇을 기억하고자 하며, 무엇을 기억하지 않으려 하는가? 히로시마의 시계는 1945년 8월 6일에 멈춰있다. “왜 원자폭탄이 투하되게 됐는가?”, “왜 많은 조선인들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었는가?”라는 질문은 전시되지 않고 있었다.

핵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는 히로시마이지만, 후쿠시마 오염수·처리수 문제에 대한 논의는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히로시마 정상회담에 참가한 G7 국가들이 핵보유국으로서 핵 억지력에 대한 입장을 가진 것과 미국 핵우산 속에서 일본 정부가 핵무기금지 조약(TPNW)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모순이라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핵·생명·인권·평화를 향한 외침 속에 핵무기와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이중적 인식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기록하며 이를 미래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노력에는 언급되지 않는 것, 망각되고 있는 것에 대한 목소리 내기가 필요하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동일본대지진·이태원 참사 등 각종 지리적·사회적 재해 재난과 빈번해지는 기후 문제 속에서, 피폭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치유와 트라우마 극복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여러 가지 재해와 재난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 그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들, 이를 전달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치유라는 집단적 과제는 앞으로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전쟁보다 평화를 지켜나갈 수 있는 방법, 사회적 치유와 사회적 집단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고뇌가 필요한 시점이다. 

 

오승희 서울대 일본연구소 HK연구교수

이화여대에서 정치학과 동아시아학을 공부하고,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게이오대, 대만 국립정치대, 일본 히로시마평화연구소 등에서 방문연구를 수행했다. 전공분야는 중일관계, 일본 외교정책이며, 주요 연구로 『동아시아 인정투쟁』(2023), 「일본의 가치지향 외교 네트워크」(2022), 「한일국교정상화와 중일국교정상화의 외교전략」(2022), 「과거사를 둘러싼 인정투쟁」(2021), 『전후 중일관계 70년』(공저,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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