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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중동서 외면당한 '팍스 아메리카나', 몰락의 신호탄일까
[글로컬 오디세이] 중동서 외면당한 '팍스 아메리카나', 몰락의 신호탄일까
  • 정진한
  • 승인 2023.05.26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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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정진한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미국 민주당은 국제사회의 복귀를 도와주려 한 이란으로부터도, 민주주의 맹방인 이스라엘로부터도 배제되고 있다. 사진은 아랍 연맹 회담에 참석중인 바이든과 존 캐리. 사진=미 국무부 홈페이지      

중동에서 트럼프의 공화당 정권이 복귀하기를 희망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거 오바마 민주당 정권은 아랍의 봄 당시 혁명세력을 지지하고 아랍의 권위주의 정권들의 붕괴를 방관하거나 지원하면서 현재의 중동 지도자 다수에게서 신망을 잃었다.

이때 상실한 협력관계를 미국은 숱한 논란을 일으켰던 트럼프의 공화당 정권 동안 회복했다. 공화당 정부는 민주당이 추진해온 이란에 대한 제재 해제 프로세스를 중단시키고 이스라엘과 순니 아랍국들을 주축으로 한 반(反) 이란 고립 전선을 공고히 하는 한편, 20세기 후반 중동 국제질서의 헌법과도 같았던 반 시오니즘 연대를 해체했다. 트럼프 정부는 1993년 이후 근 30년간 불가능해 보였던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의 수교를 단숨에 4건이나 성사시켰다. 

기독교국 미국의 주선 아래 유대교 이스라엘과 이슬람 아랍국들이 협력한 ‘아브라함 협정’은 아프리카 서쪽 끝 모로코부터 아랍의 남쪽 끝 수단 및 아라비아 반도 동단의 UAE와 바레인까지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이어나갔다.

공화당 정부의 이처럼 거침없던 행보는 트럼프의 재선과 함께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수교를 달성시켜 서구와 이스라엘 대(對) 이슬람이라는 기존 대립구조를 순니·서구·이스라엘 대 이란·중국으로 전환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바이든 정부가 이란의 국제사회 복귀를 추진하면서 반이란전선 국가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이스라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을 통해 이란을 타격하겠다고 미국을 협박하다가, 결국 시리아의 알레포 공항을 비롯한 다수의 시설들을 해외 이란 비밀 군사기지로 의심된다는 명목으로 폭격하면서 이란과의 무력 충돌을 유도했다.

네탸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과거 트럼프와 합을 맞춰 아랍국들과의 수교와 이란의 고립이라는 숙원들을 성취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존 선거제를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형태로 개편하면서 바이든과 마찰을 겪고 있다. 그의 새 연립 내각에 참여한 극우 인사들은 정착촌의 합법화와 같이 팔레스타인에 적대적인 정책을 쏟아내어 팔레스타인의 극렬한 반발을 불렀고, 카디르 아드난이라는 한 운동가의 옥사를 계기로 양측은 전쟁에 돌입했다. 

바이든 정부는 네타냐후에게 민주질서의 유지와 팔레스타인인들의 기본적 인권보장을 요구하지만, 네타냐후는 자신의 지지층 결집을 위해 작금의 국제적 갈등이 필요하므로 자신의 정책을 지지하고 이란과 팔레스타인을 고립시켜줄 트럼프의 복귀를 선호한다. 

한편, 바이든은 이란의 복귀를 위해 지지가 필요한 사우디와도 척을 졌다.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의 배후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지목했고 그를 반민주·반인권 인사로 규정했다. 그는 사우디의 현 실권자를 배제한 채 국왕과의 협력만으로도 정책목표의 달성이 가능하리라 낙관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이 전략은 실패했다. 

폭등한 유가 조정을 위해 바이든 정부는 크게 체면을 구겨가며 왕세자에게 협조를 구했지만, 그는 노골적으로 이를 외면했다. 이란마저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에 협조하던 유럽마저 이란의 복귀 지지를 철회했다.

사우디가 중국을 끌어오며 스텝은 더 꼬였다. 엑스포부터 네옴 시티까지 초대형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려면 사우디는 이란발 불안정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이란의 지원을 받은 예멘의 반군은 사우디의 정유공장과 공항을 공격하며 사우디를 투자하기 불안한 대상으로 만들었다.

바이든의 도움만큼은 받고 싶지 않았던 사우디는 차라리 중국을 이란과의 중재자로 끌어들였다. 이란도 자신의 복귀와 제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미국 대신 중국의 개입을 환영했다. 이로써 중국은 미국을 대신해 중동에 개입할 공간을 확보했고, 대신 민주당은 밀려났다.

최근 내전 중인 수단 정부 역시 트럼프의 주선으로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지고 이스라엘과 수교한 인연이 있다. UAE도 마찬가지로 바이든이 추진한 이란의 복귀보다는 트럼프의 이란 고립책에서 더 큰 경제적 실익을 거둘 수 있다.

12년 만에 반인권의 대명사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을 복귀시킨 아랍연맹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미국 민주당이 부담스럽다. 바이든마저 단죄의 대상인 그의 복귀를 한탄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이 조치가 역내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인정했다. 

인류의 보편 가치로 민주화를 소프트파워로 내세운 민주당은 중동의 권위주의 정부들로부터 점점 더 외면받고 있다. 심지어 국제사회의 복귀를 도와주려 한 이란으로부터도, 민주주의 맹방인 이스라엘로부터도 배제되고 있다. 미 대선에 앞서 트럼프의 재판 결과가 더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정진한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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