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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힌디어로 대동단결 외치는 모디 정권의 깊은 고민
[글로컬 오디세이] 힌디어로 대동단결 외치는 모디 정권의 깊은 고민
  • 이지현
  • 승인 2024.03.0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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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이지현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HK연구교수

인도 독립 이후 인도 제헌의회는 대개 이견이 없었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바로 언어였다. 의회에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북인도 의원들은 새롭게 시작되는 인도에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고 싶었다. 하지만, 비록 힌디어권보다 힘은 약해도 오랫동안 권위를 지켜온 벵갈이나 봄베이, 따밀은 쉽게 그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분열의 시간을 거듭하며 결국 힌디어는 영어와 함께 공용어에 위치하게 됐다.

힌디어를 인도의 단일 국어로 지정하려는 논쟁은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최근 모디 정권의 언어 정책으로 비힌디어권의 반발이 거세다. 모디 정권은 힌디어가 국어가 아닌 단지 교통어의 역할을 하는 것뿐이라고 설득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모양새다. 그러나 힌디어는 인도인들의 실생활 속에서 멀리 있지 않다. 

인도 벵갈루루의 한 관광 명소는 힌디어부터 타밀어, 영어, 유럽 언어 등으로 안내하고 있다. 힌디어를 인도의 단일 국어로 지정하려는 논쟁은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최근 모디 정권의 힌디어 우선 정책으로 비힌디어권의 반발이 거세다. 사진은 인도 내에서 힌디어 및 관련 방언(라자스탄어 포함)을 모어로 사용하는 인구의 비율(2011년). 사진=위키피디아 

1991년 자유화 이후 대중 매체가 번성하면서 힌디어는 인도 전역에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당시 영어로 된 슬로건을 제품판매하는 데 사용했지만, 1990년대 이후 영어 슬로건이 사라지면서 힌디어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미국의 펩시는 “Yehi hai right choice, baby”(이것이 올바른 선택이야)와 “Yeh dil maange more”(마음은 더 원해)라는 힌디어와 영어를 섞은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후자의 경우 너무나 영향력이 커서 1999년 카르길 전쟁(Kargil War) 동안 인도군의 전투 구호가 되기도 했다. 

그 결과 2001년 인구 조사에서 뻔자비어 원어민 중 힌디어를 사용할 수 있는 수는 49.9%이며, 이는 1991년 36.3%에서 증가한 수치이다. 마라티도 마찬가지이다. 힌디어를 할 수 있는 수는 25.8%에서 38.4%로 증가했다. 힌디어를 사용하는 소수의 민족조차도 10년 동안 급증했다. 힌디어를 구사할 수 있는 벵갈인의 비율은 6.6%에서 10.1%로 증가했고, 따밀인의 경우 그 숫자는 1.6%에서 2.1%로 증가했다. 

오늘날은 어떠할까? 전국구 미디어에서 영어와 힌디어를 자유롭게 혼합해 사용하고 있다. 종종 토론과 인터뷰는 힌디어로 진행되거나, 일부 힌디어 프로그램에서는 생방송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어 자막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2011년 인구 조사(인도의 인구조사는 10년 단위로 진행되며 2021년의 결과는 올해 하반기에 발표될 예정)에 따르면 힌디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인구 비율은 43.63%이지만 제2언어·제3언어로 그 수를 확장하면 57.1%에 달한다. 인도 인구의 절반 이상이 힌디어를 알고 있는 셈이다. 인도의 지역어는 모두 한 자리 수에 지나지 않으며, 제2·제3의 언어로 확장해도 10%를 넘지 않는다. 

2011년 인구 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힌두스탄 타임즈는 무작위로 두 명의 인도인이 만났을 경우 서로 대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 확률은 36%에 불과하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평균치이며, 두 사람의 출신지에 따라 그 확률이 달라진다. 만약 따밀나두 출신과 벵갈 출신일 경우 확률은 1.6%에 불과하지만, 웃따르쁘라데시 출신이고 웃뜨라칸드 출신이라면 약 95%까지 증가한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몇 가지 요인 중 하나로 인도의 다언어 인구 비율이 낮다는 점을 들었다. 

인도인 5명 중 1명만이 이중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모어가 힌디어인 화자 중 단 12%만이 다언어를 구사할 수 있으며, 인도에서 두 번째로 화자 수가 많은 벵갈어 사용자 중 18%만이 다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꽁까니어나 라다키와 같은 소규모 언어는 80% 이상이 다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힌디어의 사용 범위가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힌디어 사용자들은 굳이 다른 언어를 학습할 필요가 없다. 힌디어는 지리적으로 북인도의 대부분에 넓게 분포돼 있고, 언어학적으로도 북인도의 기타 지역어와 유사해 힌디어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비힌디어권에서는 공통 지배 언어가 없어 다언어 사용이 필수적이다.

다시 돌아가, 최근 모디 정권에서는 다양한 언어 관련 정책들을 발표했다. 지역어를 발전시키고 보호하는 다언어 국가임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정책으로는 다양성을 지키려면 힌디어로 통합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모디 정권이 내세우는 ‘Ek Bharat, Shreshta Bharat’(하나의 인도, 강력한 인도)와도 방향이 일치한다.

다양성은 소수 언어에 동등한 기회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실질적인 정책 외에도 소수 언어 사용자들의 힌디어에 대한 심리적인 접근 장벽을 허물 필요가 있다. 힌디어가 의사소통의 매개체가 아닌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고, 힌디어와 지역어 사이에 지배-피지배 관계가 만들어진다면 과연 이들이 말하는 '교통어'는 인도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일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이지현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HK연구교수 

인도 자와할랄 네루대에서 힌디어 번역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외대 글로벌 캠퍼스 인도학과에 출강하고 있다. 힌디어와 힌디어 문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인도의 수수께끼: 아미르 쿠스로(2019)』, 『인도 언어 지도(2020)』, 『인도 대전환의 실체와 도전: 신화와 현실(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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