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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가족국가 한반도, 억압과 탈주의 경계에서
거대한 가족국가 한반도, 억압과 탈주의 경계에서
  • 최승우
  • 승인 2023.03.08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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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㊳ 원용진 서강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부)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달 11일 원용진 서강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부)가 「한국 대중문화 속의 개인과 자유」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39강은 김흥수 목원대 명예교수(신학과)의 「한국에서 근대적 자유와 기독교」, 제40강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과)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위기: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부상」, 제41강은 박명림 연세대 교수(지역학협동과정)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역학 관계」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한국에서 개인은 가족으로부터 아직 자유롭지 않다.
물론 전과는 다른 가족관을 가지고 있으며 과거와는 다른 가족을
갖기를 꿈꾸지만 가족이라는 단위와 결코 결별한 적이 없다.

자유주의, 자유 개념을 정리하다 보면 여러 파생적 개념이 뒤따른다. 자유주의는 개인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삼는다. 대체로 인본주의적 자장 안에 자유주의는 존재한다. 개인이 천부인권을 지니고 행복을 추구하며 행복해지는 것을 자유주의는 최고 가치로 삼는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한 줄에 세우는 까닭이다. 개인이 내리는 결정을 존중하며 사회나 국가는 그 과정에서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모든 개인은 자유스러워야 하며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평등 개념도 자유에 뒤따른다. 나의 자유가 남의 자유를 제약하지 말아야 함을 의미한다. 무위해의 원칙(No Harm Principle)도 자유 논의에서 빠트릴 수 없는 부분이다.

자유, 자유주의 논의가 과거에는 정치경제적 자유로 한정되는 경향이 있었다. 정치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하는 일, 시장에서의 자유(혹은 규제)가 대표 논제인 것처럼 대접하던 때가 있었다. 자유, 자유주의 논의가 정치사상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는 까닭이다. 최근 들어 그 같은 경향에 변화가 생겼다. 정치적인 것의 의미가 엄청 바뀌었다. 인간 세상사 어느 일에든 정치적인 요소가 담기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의 참정권을 논의할 때만 하더라도 여성의 자유는 정치 영역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여성의 자유가 참정권에만 국한되는 일은 이미 까마득한 옛 일이다. 일상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임을 선언한 페미니즘의 영역에 들어서면 정치적이지 않은 것을 찾기란 어려운 형편이다. 그처럼 일상에서의 자유 논의가 늘고 있다.

개인이 자유를 누리며 자기 결정을 하고, 남의 자유도 인정하는 일은 저절로 이뤄지진 않는다. 그럴 수 있는 이성의 획득이라는 조건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성 획득은 계몽의 과정으로 인해 이뤄진다. 이성 획득과 계몽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이뤄지고 확산된 때를 두고 근대라고 부른다. 개인주의는 개인이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을 다스리고, 그에 기반해 자유롭게 행동하고 말하는 능력을 키워준다.

평등의 원칙을 전하며 모든 위계질서는 구성된 것임을 전한다. 위계를 통해 남을 구속할 수 없음도 교육한다. 독립의 원칙은 인간 각자에게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다. 그러므로 개인주의 안에는 권리, 책임, 인정이 담기고 계몽은 그를 전한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부)는 “근대, 계몽, 자유로운 개인은 신분제를 폐지한 1894년 갑오경장때 이뤄졌다”라며 “우리는 식민 지 시절 근대화를 통해 자유로운 개인으로 태어났다. 식민지였으나 근대성을 누렸고 봉건적 잔재들과 싸우는 과정을 거쳤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근대, 계몽, 자유로운 개인은 우리에게 함께 도달한 사건인 셈인데 한국의 경우는 그 시작점을 언제로 잡아야 할까. 표면적 사건사의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 사회 신분제의 폐지는 1894년 갑오경장때 이뤄진다. 당시 신분제 폐지의 법제적 조치가 있었다. 이 조치는 긴 시간 동안 신분철폐를 요구하는 백성들의 저항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조선 후기 실학파 또한 철폐에 기여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꼼꼼히 따져보면 그 개념의 형성이 완전 내재적인 것이라고만 할 순 없다. 조처가 있고 운동이 있었고, 사유 체계를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개념이나 정의는 외래적이라 하겠다.

우리는 식민지 시절 근대화를 통해 자유로운 개인으로 태어났다. 식민지였으나 근대성을 누렸고 그래서 봉건적 잔재들과 싸우는 과정을 거쳤다. 처음엔 연애 서사를 통해 그를 익혔다. 일본 제국의 식민 경영에 참여하면서 제국을 욕망하기도 했다. 그 욕망 충족을 위해 일본인이 되는 상상을 한 이들도 있고 그럼으로써 트라우마를 갖기도 했다.

자유스러운 개인이 된다는 것은 근대적 욕망을 취하는 것이 되면서(즉 자유스럽지 않게 되면서) 자기 분열이 발생한다. 만주의 경험이 그런 예이고 실제 한국 사회를 20여 년간 철권 통치를 했던 박정희가 바로 그 경험의 소유자다. 해방과 전쟁 이후 한국은 미국에 매료돼 있었다. 그들이 펴는 모든 것은 신선하고 배울 대상이 됐다. 심지어 춤바람까지 그랬다. 

1950년대의 여성들의 외출은 자유를 구가하는 것이 아닌 방종으로 이해됐다. 방종한 여성에겐 징벌이 따랐다. 하지만 그 징벌과 비윤리성이라는 이름으로 한번 구가된 자유를 침묵하게 만들 순 없었다. 잠시 집으로 돌아간 것은 같은 여성들은 가정 근방에서 새로운 자유를 추구하고 또 새로운 자유의 메뉴를 찾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1970년대 김수현의 홈드라마나 멜로드라마에서 일상에서의 자유로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1950년대 구체적으로 조우하게 된 미국을 보다 본격적으로 소비하게 된 것은 1960년대다. 스탠더드 팝이 등장하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포크, 록 음악을 수용하면서 직접 미국문화를 소비하게 된다. 기타를 통한 변주도 가능했고, 그들의 노래를 번안해 부르고, 미8군 무대를 기반으로 커버하면서 일정 거리를 둔 주체와 객체가 아닌 하나가 되기에 이른다. 과도한 일체라며 브레이크를 거는 측이 있었고 그 일체에 민족주의의 양념을 치는 움직임도 있었다. 아마 그런 작용과 반작용으로 미국화는 혼종적인 색채를 띠게 됐을 것이다.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는 숨막힐 정도로 제한되고 있었다. 공적 사안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숨죽여가고 있었지만 일상에서의 자유는 억압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크고 있었다. 물적 토대가 과거와 달라졌고 쇄국을 할 수도 없는 입장에서 그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1960년대의 영미 팝의 수용, 1970년대 청년문화의 경험, 1970-80년대 젊음의 기운을 챙겨낼 사회 전반의 컬러 변화는 정치적인 암울함에도 불구하고 자유 신장에 큰 역할을 한다.

이른바 장르의 계층화론을 무너트릴 수 있을 만큼의 변화였다. 1980년대에 ‘땡전 뉴스’라는 용어가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 소식을 시보와 함께 전한 것에 대한 조롱이었다. 뉴스는 전두환을 찬양하고 있었지만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전두환을 닮은 코미디언이 주름을 잡고 있었다. 그의 우스꽝스러움 자체로 수용자들은 폭력적인 대통령을 떠올리며 그를 텔레비전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했다.

코미디가 뉴스보다 훨씬 더 유용한 경험을 한 것이다. 장르의 위계를 무너뜨리는 순간이었다. 정치적 자유는 한정됐으나 문화적 자유는 그런 식으로 그 사이즈를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성장은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지고 나서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1990년대의 대중문화판이 환해지고, 신세대론이 등장하며 그 수많은 장르가 쏟아져 나왔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자유의 구가엔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가 그 영웅일 수도 있다. 2020년대 들어서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전 세계에서 방영되고 환영을 받고 있다.

연출의 솜씨, 연기의 솜씨도 있겠지만 신파성과 같은 요소가 아직 그에 담겨 있고 그럼으로써 독특함을 선사하고 있음을 잊진 말아야겠다. 「오징어 게임」에서 주인공이 어머니의 당뇨병 치료를 위해 목숨을 건 도박에 참여하고, 북한에 남겨둔 부모를 모시기 위해 탈북한 어린 소녀도 그 게임에 참여한다는 설정은 『장한몽』에서 읽었던 감수성과 엄청날 정도로 거리를 두고 있진 않다.

대중문화의 전통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감수성에 관한 것이다. 가족으로부터 한국의 근대적 개인은 아직 자유스럽지 않다. 물론 전과는 다른 가족관을 가지고 있으며 과거와는 다른 가족을 갖기를 꿈꾸지만 가족이라는 단위와 결코 결별한 적이 없는 경험을 갖고 있다. 그 가족은 식구들로 구성된 가족일 수도 있지만 국가나 민족의 은유일 수도 있다. 가족으로부터 자유스러워져 보이다가도 가족은 굴레가 되거나 동기가 돼 늘 되돌아온다. 돈 있어야 최대한 자유를 누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르면 가족은 참으로 다양한 얼굴을 한다. 과거 평범했던 가족의 자격은 상위 계급만 누릴 뿐이고, 영업 공동체, 생존 공동체 등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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