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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사법주의가 위협한다
오늘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사법주의가 위협한다
  • 최승우
  • 승인 2023.01.27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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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㉝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교수(지역학협동과정)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 17일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교수(지역학협동과정)가 「헌법,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34강은 김경일 명예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의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제35강은 고세훈 고려대 명예교수(공공행정학부)의 「경제 발전과 자유주의의 문제」, 제36강은 신광영 중앙대 명예교수(사회학과)의 「능력주의, 사회적 아노미, 개인의 자유」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자유의 법적인 보호와 실현의 문제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발전되고, 또 보장하는 수준을 넘지 못한다. 자유에 관한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은 헌법과 법률이 아니라 정치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주제인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헌법의 한국에서의 상호 연결된 역사적 기원과 발전 문제에 관한 논의이다. 요컨대 외부로부터의 이식인가 또는 내부로부터의 진화인가 하는 문제이다.

전자는 이른바 외부로부터의 보편적인 관념과 제도의 확산과 디자인을 중시하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고, 후자는 내부의 계급구조나 저항운동, 또는 고유의 정치문화를 강조하는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교수(지역학협동과정)는 “소수의 엘리트 지배를 의미하는 사법통치와 법률가의 지배는 민중의 지배라는 민주주의 뜻에 원천적으로 위배된다”라며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점점 더 헌정주의의 강한 제약과 압박을 받는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좀 더 넓은 근대성의 문제를 포함해 이 문제는 오랫동안 세계와 현대 한국의 정치학과 역사학의 중심적인 논쟁점의 하나였다. 

자유와 민주주의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의 경우는 적어도 두 번의 외부 접촉과 도입의 계기를 갖는다. 1876년부터 1910년까지의 1차 시기와, 1945년부터 1948년 또는 1953년까지의 2차 시기가 그것들이다. 

이 두 시기의 외부 충격과 접촉이 없었을 경우를 상정할 때 한국에서 자유 관념의 도입, 확산, 정착 문제에 대한 현실적 진행경로에 대한 평가는 일단 결코 부정적일 수 없다. 즉 중동이 아니라 독일, 일본, 이탈리아의 경로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특히 2차 시기 동안 미국과 소련이 각각 점령했던 결정적 시기 이후의 한국과 북한을 비교할 때 이러한 해석은 더욱 더 설득력을 갖는다. 

두 번째는 자유와 헌법, 그리고 민주주의의 관계의 문제를 살펴보려 한다. 즉 한국에서 자유의 실현 문제에 관하여 선차적 요소나 조건이랄까 우선 요인을 규명하고 판별하는 것이다.

줄여말해 이 문제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발전 수준과 제도적 차원의 헌법 또는 법률의 발전 사이에 무엇이 더 자유의 증진과 정착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느냐 하는 문제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법치주의자들은 헌법과 법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민주주의자들은 정치와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때 여기서 말하는 헌법(과 법률)은 반드시 나라, 체제, 정부, 국가를 의미하던 고전적 이해나 근대 초기의 관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민주주의나 공화주의 이론들이 주장하듯 초기 민주제도나 민주공화국의 출발 시점, 또는 인치에서 법치, 법의 지배로의 전환 시점에서는 헌법과 법률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정한 제도적 요건을 갖춘 민주국가에서 이 문제는 또 다른 이해가 필요하다. 

요컨대 자유의 보장과 실현에 관한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사이의 길항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왜 자유에 관한 한 한 나라 안에서, 또는 다른 나라 사이에도 거의 똑같은 헌법 조항과 규정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실에서 자유의 실현과 향유의 수준에는 현저한 또는 정반대의 차이가 존재하느냐는 점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결론을 미리 말하면 자유의 법적인 보호와 실현의 문제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발전되고, 또 보장하는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자유에 관한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은 헌법과 법률이 아니라 정치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하나의 중요한 전거로써 한국에서 동일한 국가보안법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전과 이후의 자유의 성취와 실현의 정도에 있어 거의 완전히 다른 수준을 보여주는 것처럼 상징적인 것도 없다. 자유의 수준과 내용을 결정한 것은 민주주의였지 법률이 아니었던 것이다.

현행 헌법의 자유민주주의는 원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수용하면서 도입된 개념이었으나 유신체제와 전두환 체제를 거치면서 이러한 미묘한 헌법적 내용 및 그 삽입과정을 간과한 담론들의 확산에 힘입어 헌법의 제일 가치로 상승했다.

이러한 진술은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의 근본 원칙과 정신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억압해온 모순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동일 헌법 조항의 존속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전과 이후 실제의 자유의 보장에서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점도 강조돼야 한다. 

그것은 헌법상의 원리와 규정으로 제시되는 경제적 자유와 균등, 복지의 문제 역시 유사하지 않았나 싶다. 경제적 차원의 자유의 실현 역시, 헌법과 법률에서의 규정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의 경제적 발전과 평등의 달성 문제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일정한 발전 이후의 복지와 국가역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선택들은 가능하나, 애초의 빈곤과 궁핍 상태에서 사회 경제적 자유가 갖는 의미는 지극히 제한적이거나 거의 부자유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이미 빈곤과 궁핍을,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필요와 필연의 문제로 본 자유주의적 급진주의적 담론들에 의해 잘 논구된 바 있다. 

유신헌법은 냉전시대 한국에서 자유와 자유민주주의에 관한 가장 모순적인 동시에 특징적인 표상이 아닐 수 없다.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주권의 심대한 제약이었다. 헌법은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제1조 2항)고 해 대표 및 투표 이외의 주권행사 방식을 원천적으로 박탈했다. 국민주권조차 헌법에 의해 제약된 체제였던 것이다. 가공할 헌법조항이었다. 

이렇듯 현행 헌법의 자유민주주의는 원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수용하면서 도입된 개념이었으나 유신체제와 전두환 체제를 거치면서 이러한 미묘한 헌법적 내용 및 그 삽입과정을 간과한 담론들의 확산에 힘입어 헌법의 제일 가치로 상승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진술은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의 근본 원칙과 정신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억압해온 모순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동일 헌법 조항의 존속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전과 이후 실제의 자유의 보장에서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점도 강조돼야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못지않게 자유와 관련된 또 하나의 핵심조항은 경제조항들이다. 헌법조항의 변화로 인해 한국 자본주의체제와 한국인들의 경제활동의 자유와 제약을 둘러싼 근본성격과 원칙이 변화됐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나아가 경제 영역의 가치와 조문이 반드시 헌법에 상세히 규정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볼 때 자유의 발전과 보장 문제에 관한 한 결론적으로 헌법과 법치가 다수결과 민주주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선거와 대표를 통한 국민과 의회의 다수결과 민주주의가 헌법과 법치의 영역으로 확장돼야 한다. 헌정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헌정주의/민주적 법치가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결국 정치의 사법화나 사법통치사회를 초래해 거꾸로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87년 이전에 헌법과 제도는 자의적 권력의 장식물에 불과했다. 한국에서 헌정민주주의의 복원이 민주화와 동일시됐던 것은 그러한 조건의 반영이었다. 

그러나 민주화와 함께 병행된 법원·사법부의 과도한 역할증대 및 정치사회적 이슈의 사법적 처리의 급증은 한국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부정적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검찰·헌재·법원이 민주화 이후 사법적 판단을 넘어 주요 정치사회의제에 대한 정책결정자로 역할함으로써 핵심적인 정치행위자로 등장한 것이 가장 중요한 특성의 하나였다. 오늘날 그들은 정치적으로 상이한 견해다툼의 한 편을 선택하는 분명한 정치적 기구로 변전됐다. 

그러나 사법적 문제들 중 과연 민주주의 방식으로 풀 수 없어서 사법부의 전문성을 빌어 해결돼야만 했던 것이 몇 개나 있었는지 묻게 된다.

문제는 헌법과 법률의 영역이 아닌 민주주의와 정책, 정치 영역의 문제들마저 최종적으로는 사법 절차와 심사, 결정의 영역으로 넘어간다는 점으로서 한국 사회는 점차 매우 심각한 사법주의, 헌정주의 사회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민주사회를 넘는 사법통치사회가 되면서 아예 법의 지배를 넘어 소수 엘리트 법률가의 지배가 되려하고 있는 것이다. 

소수의 엘리트 지배를 의미하는 사법통치와 법률가의 지배는 민중의 지배라는 민주주의 뜻에 원천적으로 위배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점점 더 헌정주의의 강한 제약과 압박을 받는 상태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헌법화·제도화가 민주화와 유리됐던 한국 민주주의의 궤적으로부터 발원한다. 그리하여 오늘날 포퓰리즘 못지않게 한국에서 자유와 자유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는 사법주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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