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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의 혁명아 4·19 세대, 자유주의 외치다
전복의 혁명아 4·19 세대, 자유주의 외치다
  • 최승우
  • 승인 2023.02.27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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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㊲ 정과리 연세대 교수(국어국문학과)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 4일 정과리 연세대 교수(국어국문학과)가 「한국 문학 속의 자유와 자유주의」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38강은 원용진 서강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부)의 「한국 대중문화 속의 개인과 자유」, 제39강은 김흥수 목원대 명예교수(신학과)의 「한국에서 근대적 자유와 기독교」, 제40강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과)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위기: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부상」이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한국의 정신사, 그리고 한국 문학사는 근대적 정신을 특이하게 굴절시키면서 진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의 조건은 서서히 축적되고 있었다. 그 조건은 4·19에 와서 온전히 충족된다.

정과리 연세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4·19 세대의 문학은 자유주의의 스펙트럼을 크게 넓히며 아주 다채롭고도 생동하는 실험들을 보 여준다”라며 “자유 지향은 민족 지향을 안으로 흡수하면서 세계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낳고 있는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한국 문학 속의 자유와 자유주의’는 두 가지 선결 과제를 제기한다. 하나는 ‘자유’와 ‘자유주의’ 속의 연관 관계 여부이다. ‘자유’는 ‘자유주의’ 속에서만 성취될 수 있는가?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가 세계사 내에서 흔히 거론되는 ‘자유주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이다.

첫째, ‘자유주의’를 ‘자유를 실행하고 자유도를 확장하려는 의지 및 그 실천’으로 정의함으로써 자유주의의 범주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정의에 입각하면, 자유는 자유주의 하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관점이 성립한다. 따라서 필자는 이 발표에서 ‘자유’에 대한 의지 혹은 주장과 자유주의를 하나로 합쳐서 다룰 것이다.

둘째, 오늘날 세계사와 세계 정치경제의 국면에서 자유주의라고 흔히 거론되는 운동이나 추세들은 자유주의의 논의에서 배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가령 자본의 세계화 속에서 발동한 ‘신자유주의’라든가, 반공 담론으로서 흔히 지명된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별도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런 구별이 필요한가? 무엇보다도 한국 문학에서의 자유주의란 ‘자유’의 쟁취라는 대의의 기나긴 역사적 과정 속에서 파악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한국인이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자각하고 자신의 존재 이유와 역능과 가능성을 탐구해간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그 과정을 제련해내는 것은 곧바로 ‘자유’의 이름으로 ‘자기 정립’을 해나간, 새로운 인간관을 향한 정신적 노정을 보겠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볼 때에만 한국 사회 및 한국인의 삶의 의미가 밝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 하필이면 ‘문학’인가? 이 물음은 ‘한국 문학’에서 ‘자유와 자유주의’가 실질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우리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으며, 그 까닭은 본문에서 밝혀질 것이다. 좀 더 부연한다면, 한국문학은 한국 사회에 ‘자유와 자유주의’가 인지되고 수용되고 제 것화되는 과정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근대는 바로 ‘자유’를 자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그것은 자신을 세상의 ‘척도’로서 간주하기 시작한 존재들이, 그 척도가 무한한 변신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은 상태의 시대인 것이다.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근대 문물이 생활 깊숙이 침투한 이후에도 ‘자유’의 순수한 뜻은 아주 오랫동안 이해되지도 수용되지도 않았다. 때문에 ‘근대(modernity)’라는 시대를 만든 서양에서 자유가 근대의 시원에 있었다면, 그 수용지에서도 ‘자유’가 근대적 환경의 핵심 속성으로서 들어왔어야 하는데, 하지만 아시아, 그리고 조선인들이 그것을 전적으로 수용하기에 큰 거북함을 느끼고 있었다면, 그것은 수용자들에 의해서 다른 용어로 대체될 가능성이 컸다고 짐작할 수 있다.

실제 한국 문학에서 스스로 자유의 의미를 자각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한 투신에 집중한 문인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소수의 선각자들의 존재와 몰이해의 늪에 빠뜨린 다수의 군중들(스스로를 ‘식자’로, 다시 말해 ‘안다고 자처하는 주체’로 여기는 사람들)이 여기에 포함되거니와 그 사이의 격차는 컸다. 그래서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근대적 개인의 형상을 선명하게 아로새겼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한국어와 한국 문학의 교과서들은 전통적 정한의 상징으로서 그것을 읽고 있는 것이며, 만해의 ‘님’ 역시 같은 비슷한 운명을 겪고 있으니, 1930년대에 이상(1910~1937)이 ‘오감도’를 연재하다가 중단당한 수난은 차라리 자유에 대한 집단적 각성을 위한 불가피한 스캔들이었다고 할 것이다.

이상의 자유가 ‘강제된 계약’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기본항 바깥으로 어떻게 펼져질 것인지는 순전히 이상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본다. 그리고 이것은 이상식 자유의 심층을 들여다보기 위한 아주 흥미진진한 모험을 촉발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의 주제는 이 모험을 자제시킨다. 일단 그것은 천재 이상의 관할 영역이다. 그런데 일반 독자는 박제된 이상만을 본다. 이상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고민이 ‘자살이냐 아니냐’에 대한 일말의 의심도 없는 거대한 군중(자연)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가에 대해 절망한다. 그의 수필은 “불쾌와 고통의 연속”인 현실에 대한 쓰디쓴 인식으로 끝난다.

성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공간에서 성인됨은 개인의 사항에 속하지만, 소년이 대다수를 이루는 공간에서 성인됨은 아주 중요한 일반의 문제에 속한다. 그것은 모두가 외눈박이인 세상에서 양눈 가진 ‘하나의’ 존재가 기인이나 괴물 대우를 받는 것과 같다. 양눈을 가진 게 정상으로 인정되려면 외눈박이들이 모두 양눈을 가질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천재 이상은 ‘성인’과 관련이 없다.

한국의 정신사, 그리고 한국 문학사는 근대적 정신을 특이하게 굴절시키면서 진화했다. 자주와 자유의 차이를 유념하면 그것을 금세 이해할 수 있다. 민족주의는 일찍 시작됐고 오래 지속한다. 반면 자유주의는 늦게 출발하고 여전히 소수자의 지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조건은 서서히 축적되고 있었다. 그 조건은 4·19에 와서 온전히 충족된다.

왜냐하면 4·19는 한국인이 ‘인물’의 자격으로 세계에 도전해 그걸 전복시킨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자유는 ‘마음이나 의지에 귀속되는 게 아니라 존재에 귀속된다’고 말했는데, 그 존재들이 정말 출현한 걸 보여준 게 4·19였다. 그 사건의 자연 발생적 참여자였던 4·19세대는, 이후 한국의 정신사회를 주도하는 중심 집단으로 ‘성장’하게 된다.

한국 문학에서 김수영과 최인훈을 자유주의의 묘상을 형성한 두 개의 씨앗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관점이다. ‘묘상’을 이룬다 함은 그들에 의해서, 자유라는 이름 안에 하나 둘 정신적 원소들이 들어서게 됐다는 말이다. 김수영의 최초이자 최종적 관심이 ‘자유’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것은 김수영에 의해서 자주 발언된 것이기도 하다. 요컨대 그는 자유의 수호를 “세계사적 가치”에까지 격상시킨다. 그것은 그가 자유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 점에서 이상으로부터 한 걸음 진화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이상과 마찬가지로 자유의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하고 있었다. 김수영의 상황 인식에 대한 좋은 참고 자료는 김수영과 이어령의 논쟁이다. 그 논쟁의 핵심은 이어령이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문인들의 두려움을 엄살이라고 치부한 데 비해, 김수영은 문인들을 소시민으로 몰고 가는 사회적 조건의 억암성을 문제삼았다는 데에 있다. 김수영은 이 사회적 조건을 ‘죽음’으로 보았다. 그러나 김수영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적 조건의 도저한 부정성이 아니라, 이 부정성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이 신념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기술을 요구하는데, 그것이 이상과 달라지는 지점이다. 이상도 죽음 속에 신생이 있으리라고 여겼다.

그는 죽기 2년 전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를 발견하면서, 그로부터 평범한 것을 그려 비범한 세계를 환기시키는 또 하나의 방법론을 개발한다. 즉 진부함에서 혁신을, 일상에서 신생을 촉발하는 기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은 실로 혁신적인 방법론으로써 2년 후 그가 교통사고로 타계하지 않았다면, 아주 중요한 미학적이면서도 삶 그 자체에 관계하는 원리로 발전했을 것이다. 실로 4·19 세대의 문학은 자유주의의 스펙트럼을 크게 넓히며 아주 다채롭고도 생동하는 실험들을 보여준다. 한국 지식인의 지형도를 민족주의의 다수성과 자유주의의 소수성 간의 길항으로 볼 수 있다면, 희한하게도 대중문화의 판에서는 ‘자유’에 대한 욕망이 기세등등하게 팽대하는 양상으로 나아갔다.

1990년대의 어린이 인권 투쟁 이후, 전국민이 자유 시민으로서의 신체적 형질을 갖추게 된 이래 자유 지향은 민족 지향을 안으로 흡수하면서 세계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낳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의 성과가 지적 성찰과 맞물릴 수 있는가의 문제는 아직 미완의 과제로 남겨 두고 있는 게 현재의 실정이다. 정서적 성향과 흩어져 사라지는 이성 사이에는, 어느 쪽이 더 의미 있는가라는 물음은 무의미하다는 단서를 깔고 말하자면,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식장의 움직임과 문화장의 움직임의 이 상위성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를 순전히 흥미로운 물음으로서 관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건, 한국 문화와 한국 문학을 위해 바람직하지않다. 오히려 적극적인 연관을 모색하고 그 매개 장치들을 발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미래의 한국사회의 ‘존재 의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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