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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46] 대통령과 드라마
[한민의 문화등반 46] 대통령과 드라마
  • 한민
  • 승인 2022.10.1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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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46

 

한민 문화심리학자

멍하니 TV를 보다보니 뭔가 기시감이 든다. 주인공들의 직업군이다. 사실 드라마 주인공으로 인기 있는 직업군이 있다. 재벌 2세, CEO, 사장님, 실땅님 등 재벌 및 경영진 계열과 의사로 대표되는 의료계, 판검사, 변호사 등 법조계가 그것이다. 시대의 욕구를 반영하는 문화컨텐츠는 사람들이 되고 싶고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은 겹쳐도 너무 겹친다. 바로 법조계 히어로들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끌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 방영중이거나 막 방영을 끝낸 드라마만 해도 「천원짜리 변호사」, 「법대로 사랑하라」, 「디 엠파이어: 법의 제국」, 「닥터 로이어」, 「아다마스」, 「왜 오수재인가」, 「빅마우스」 등 많아도 너무 많은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법조계 히어로의 유행은 5~6년경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는데, <법률신문> 2015년 6월 기사에 따르면 2015년을 전후해서 변호사와 로펌 등 법조계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드라마화되기 시작한 듯하다. 잠깐만 검색해봐도 「풍문으로 들었소」, 「이혼 변호사는 연애중」, 「무법변호사」, 「슈츠」, 「개과천선」, 「굿와이프」, 「동네변호사 조들호」, 「미스 함무라비」, 「검법남녀」, 「피고인」, 「마녀의 법정」, 「검사내전」, 「로스쿨」 등 일일이 주워섬기기조차 힘들다. 

문화컨텐츠가 흥행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다. 사람들의 관심과 공감이다. 공감은 상품성 있는 재료와 인지도 있는 배우, 천문학적 제작비로도 쉽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조 드라마 전성시대의 이유는 우선 시청자들의 욕구에 있을 것이다. 판검사, 변호사는 전통의 재벌가 사람들을 대체한다. 오랫동안 드라마 주인공 자리를 꿰차왔던 재벌들에게 시청자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화려한 재벌의 삶은 눈요깃거리와 약간의 만족감을 주지만 드라마가 끝나면 더 큰 허탈감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재벌은 나와는 태생 자체가 다른 사람들이므로. 상대적으로 의사나 판검사, 변호사는 서민들도 노력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지위다. 재벌 전성시대가 끝나고 의사나 법조계 주인공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이유가 있다.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거나 부당한 사건을 해결하고 억울한 이들을 구해주니 스토리 라인도 풍부할 뿐만 아니라, 죄 지은 자가 벌 받지 않고 부정하게 법망을 피해가며 제 배를 불리는 이들이 잘 사는 세상에서 수트빨마저 죽이는(?) 주인공들이 법정에서 벌이는 화려한 액션은 이른바 ‘사이다’의 쾌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드라마가 제작되는 이유가 시청자의 요구만은 아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예술은 때때로 어떤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일례로 조선을 창건한 시조들의 업적을 노래한 용비어천가는 정치적 의도를 담은 노골적인 선전요 그 자체다. 왕권의 정당성을 전파해야 했던 왕조시대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일비재 했던 일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도 이런 일들이 있을까?

필자는 예전에 ‘대통령과 드라마’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역대 대통령의 집권 시기와 그 시기 유행했던 드라마들의 연관성에 대한 주제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당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평가되는 드라마 「야망의 세월」과 「영웅시대」, 대북 정책을 강조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기 많이 제작되던 「태조 왕건」, 「대조영」, 「주몽」 등의 대형 북방 사극들은 문화컨텐츠들이 단지 시청률만을 목적으로 제작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전후에 유난히 많던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사극(「천추태후」>, 「선덕여왕」, 「기황후」, 「사임당, 빛의 일기」 등)과 「1987」, 「변호인」, 「택시운전사」 등 민주화투쟁을 재조명하는 영화들이 문재인 전 대통령 집권기에 많이 개봉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권 차원에서 제작비를 지원하는 일까지야 없었겠지만, 어떤 시대의 드라마 트렌드는 최소한 정권의 방향성과 일정 정도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유행하는 법조 드라마들도 다른 관점에서 한번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불공정한 사회와 모순에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영웅을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귀족과 재벌의 대체재로서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그들이 되고 싶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판검사, 변호사들을 그런 존재로 봐주길 원하는 누군가라도 있는 것일까.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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