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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58] 진정한 행복의 조건
[한민의 문화등반 58] 진정한 행복의 조건
  • 한민
  • 승인 2023.05.31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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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58

 

한민 문화심리학자

행복이란 무엇일까.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심리학에서는 행복을 상당히 쉽게 정의한다. 살면서 경험하는 긍정적 정서의 총합이라는 것이다. 너무 간단해서인지 삶의 의미라는 개념이 조금 덧붙여지긴 했지만. 그러나 긍정적 정서를 경험하는 원천은 사람마다 매우 다르다. 또한 부정적 정서라고 해서 긍정적인 구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삶의 의미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는 부족함 없는 사람이 있다. 건강도 좋고, 일도 잘 풀리고, 가족도 화목하다. 이 사람의 행복도는 매우 높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 사람은 사회에도 관심이 많다. 봉사활동에도 참여하고, 작지만 여러 기관에 후원도 하고 있다. 삶의 의미 또한 충분히 느끼고 있을 삶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가슴이 아프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불행한 사건이 가슴을 후벼판다. 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죽어가는 아이들, 자기 아이를 데리고 세상을 버리는 부모들, 경쟁에서 밀려나 도태되고 제도에서마저 소외된 이웃들을 생각하면 늘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이 사람은 행복할까 불행할까. 학술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행복의 정의(?)에 따르면 이 사람은 불행하다. 이 사람이 느끼고 있을 부정적 정서의 총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사람은 본인의 건강이나 직장에서의 성취, 가족의 화목에서 느껴지는 행복에서 죄책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 불행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행복을 느껴도 될까.

이 사실은 한국인의 낮은 행복도를 설명하는 하나의 요인이다. 한국인은 사회에 관심이 많다. 정치에도 관심이 많고, 경제와 사회구조, 그리고 복지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세상은 가슴 아프고, 속 썩일 일 천지다. 인구 5천만 명이 넘는 나라에서는 어디에선가 누군가에게 불행한 일은 끊이지 않고 일어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복지 사각지대에서 외롭게 죽어간 이웃에 슬퍼하고, 피어나지도 못한 어린 생명이 스러져 가는 것에 분노하며, 꿈을 펼쳐야 할 젊은이가 우울증에 빠져 있는 현실에 좌절한다. 때로는 수십 년 전에 돌아가신 분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불안과 초조에 빠지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이 ‘지금 그리고 여기’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또한 이런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이 중에는 본인의 삶에는 큰 부정적 요소가 없는 이가 태반이다. 행복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마음의 습관은 행복에 대단히 마이너스가 된다. 과연 우리는, 한국인은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이 땅에 불행한 이가 아무도 없어야 한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죽어가는 아이도, 생활고에 죽어가는 이웃도, 부당한 권력과 권위에 희생되는 이도 없어야만 한다. 청년이 살 집을 구하지 못하는 일도, 집 살 돈이 없어서 결혼을 포기하는 일도, 출산과 육아 때문에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는 일도 없어야만 한다.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라면 우리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종교의 믿음에서 존재하는 천국이 그런 곳일까. 적어도 인류 역사상 그런 사회 또한 존재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존재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에 구원과 영생, 천국을 약속하는 사이비 교단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

어쩌면 애초에 행복처럼 주관적 판단이 중요한 개념을 측정하고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일지도 모른다. 마음의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오늘도 우리는 이웃의 불행에 가슴 아파할 것이며, 바뀌지 않는 현실에 좌절할 것이고, 나와 이웃의 행복을 가로막는 모든 것에 분노할 것이다. 

한편, 오늘도 행복연구는 계속되고 한국인의 행복도가 세계 밑바닥 수준이라는 기사가 일간지의 지면을 장식한다. 그런 기사에는 역시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불행하다고 자조하는 댓글이 넘쳐날 것이고 사람들은 다시금 우리의 불행을 되새기며 다시 한번 불행의 늪에 빠져들 것이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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