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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 등반⑦] 알아두면 쓸모있는 졸업의 의미
[한민의 문화 등반⑦] 알아두면 쓸모있는 졸업의 의미
  • 교수신문
  • 승인 2021.02.2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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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 문화심리학자.
한민 문화심리학자.

코로나 시국임에도 해는 바뀌고 삶은 계속된다. 어느덧 졸업시즌이다. 학부모들은 건물 밖에 서 있어야 하지만 꽃다발을 손에 든 학생들은 끝과 시작이 주는 홀가분함과 설렘에 간만에 행복한 모습이다. 

학창시절은 기승전결이 분명한 시기다. 뭔가 목표를 갖고 시작하여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견뎌내고 나름의 성취를 이루어 인생의 한 국면을 마무리 짓는다. 모험을 떠난 기사가 괴물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해 결혼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옛날이야기들은 “그래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대~”로 끝난다. 하지만 산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졸업 후에 취업이라는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목표를 설정한다. 그리고 그 목표만 이뤄내면 행복이 찾아올 거라 믿는다. 

 

인생의 본질은 유지와 지속

학생들은 졸업을 기다리고 졸업한 이들은 취업을 기다린다. 취업한 이들은 승진을, 결혼한 이들은 출산을, 집이 없는 이들은 내집 마련을 기다리며 현재를 견뎌낸다. 하지만 목표 달성이 지속적인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동화 속 결말은 사실상 기대하기 힘들다. 공주와 결혼한 기사는 이제부터 가사분담과 가족계획, 육아와 자녀 교육 등의 일상과 맞닥뜨려야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최고의 사랑 이야기일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사랑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졸업, 특히 대학을 졸업하는 이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삶은 생각보다 길다는 사실이다. 기대수명이 80세를 넘고 100세 시대가 눈앞이라는 사실을 굳이 들추지 않아도 인생은 짧지 않다. 25세에 졸업한다고 치면 55년에서 75년의 삶이 더 남아있는 셈이다.

따라서 인생의 본질은 목표의 달성이 아니라 유지와 지속이다. 목표 달성이 주는 짧은 행복감이 지나가고 나면 특별한 일 없이 반복되는 무수한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학창시절에 이 사실을 깨닫기 어려운 이유는 인생 초반에는 목표의 설정과 달성이 짧은 시간을 두고 반복되기 때문이다. 

3,4년이면 졸업을 할 수 있고 졸업하면 새로운 목표가 기다린다. 대학 졸업 후에도 취업과 결혼, 출산 등은 비교적 가까운 시일 안에 달성 가능한 목표다. 그러나 그런 류의 이벤트들은 대개 인생의 초반에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그러한 사건들이 한차례 마무리되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이르면 삶이 급격히 무의미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연령별 행복도가 3,40대에서 최저점을 찍는 것은 그때가 인생에 있어 가장 바쁘고 힘든 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즈음부터는 인생이 현상유지 국면으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주기적으로 찾아왔던 설렘과 즐거움을 주는 이벤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짧은 사이클에 익숙해져 있는 이들은 중노년의 삶이 지루하고 의미없어 보이기 쉽다. 모두가 똑같아 보이는 저런 삶을 사느니 나만의 특별하고 새로운, 하루하루가 설레는 삶을 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신선함은 익숙함이 되고 설렘은 가라앉는다. 사람들은 빠르게 상황에 적응하고 즐거움의 강도는 점점 줄어들게 마련이다. 행복연구에서는 ‘쾌락 적응’, 경제학에서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하는 그것이다. 인간의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더이상 내게 뭔가를 해줄 사람이 없다

관건은 생각보다 긴 내 삶을 지속해 나갈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냥 지속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기왕에 주어진 삶을 어떻게 의미있고 행복하게 살아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불행히도 학교는 그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애초에 학교는 삶의 의미를 찾아주거나 행복해지는 법을 가르치도록 만들어진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그때의 고민을 해결해주거나 위로해줄 수는 있어도 삶의 의미와 행복을 느끼는 지점은 사람마다 다른데 누가 어떻게 그걸 일일이 맞춰줄 수 있을까. 그래서 졸업이란 더 이상 내게 뭔가를 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날이기도 하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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