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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17] 비혼과 저출산의 심리적 요인
[한민의 문화등반 17] 비혼과 저출산의 심리적 요인
  • 한민
  • 승인 2021.07.19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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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17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문제일 것이다. 침체된 경제, 극심한 경쟁,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이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여유를 찾기는 어려울 테니. 그런데 비혼과 저출산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이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기에는 문화의 변화가 이유로 꼽힌다. 

가문과 혈통을 중시하던 시기에는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개인적 삶이 중요해진 현재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전세계적으로 나타난다. 베이비붐 세대 이후 각국의 출산률은 지속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려왔다. 그러나 한국의 비혼, 저출산은 세계적으로도 특출나다. 도시국가 한두 개를 제외하고 한국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구가 줄어가는 나라가 없다. 이유는 무엇일까. 

결혼과 출산, 육아에는 심층적인 인간의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 친애의 욕구, 애정의 욕구가 그것이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존재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손발이 잘린 것과 같은 고통을 유발한다. 

인간의 근본적 욕구마저 뒤로 해야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한국의 비혼 및 저출산의 이유가 한 세대 전의 부모-자녀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과 출산, 육아는 이성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성관계에 대한 생각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온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성인기의 이성관계는 남근기 부모와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는다. 이른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어떻게 경험하고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배우자와의 관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남근기(4~7세)의 아이들은 이성 부모(남자아이는 엄마, 여자아이는 아빠)에게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그 사랑은 동성 부모(남자아이는 아빠, 여자아이는 엄마)의 존재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들은 아이들에 비해 키도 크고 아는 것도 많고 힘도 세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동성부모를 극복하려 하지만 동시에 공포(거세공포)를 느끼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과의 동일시를 선택한다는 것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골자다.

조금 풀어 말하자면, 남근기의 남자아이가 엄마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하거나(여자아이가 아빠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하거나), 아빠에게 질투를 느끼고 아빠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동일시)을 먹지 않던가(여자아이가 엄마에게 질투를 느끼고 엄마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을 먹지 않던가) 하면 성인기의 이성관계에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한국의 가족은 수많은 난관을 겪었다. 가족이 죽고 끌려가는 일에서부터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는 일도 흔했고, 제사나 부모봉양 등 전통적 가치관과 현실이 부딪치는 등 가치관이 변하면서 생기는 갈등도 만만치 않았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이성관계에 대한 생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가족 내 성역할 변화다. 특히 여성들의 학력은 높아졌으나 사회진출의 기회는 많지 않았던 80년대에 출생한 이들에게 부모의 삶, 특히 가정에서의 성역할에 대한 부분은 자신의 삶에 모델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자식을 돌보며 주부로 살아가는 엄마를 보며 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일하는 여성이 흔치 않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좌절된 욕구는 부정적 연쇄를 낳는다. 부모의 갈등은 자녀의 불안이 되고 부모의 불안한 결혼을 지켜본 아이들이 불안한 결혼을 원할 가능성은 낮다. 결국 ‘나는 아빠처럼 살지 않고’, ‘나는 엄마처럼 되지 않겠다는’ 결정이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결과로 수렴한 것이 아닐까.

물론 필자는 이러한 일이 한국의 모든 가정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성인들이 어린 시절 느꼈을 불안이나 무의식적 욕구를 추정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비혼과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인 ‘가치관의 변화’에는 사회의 변화에 따른 심리적인 요인의 변화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또한 출산율 회복을 위해 경제적 지원을 하는 방식의 정책들이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도 심리적 요인에 보다 주목해야 할 이유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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