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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 등반⑪] 시대의 욕망, 부동산
[한민의 문화 등반⑪] 시대의 욕망, 부동산
  • 한민
  • 승인 2021.04.29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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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 문화심리학자
한민 문화심리학자

오랫동안 집은 살기 위한 곳이었다. 나무 밑이나 바위 틈, 동굴 속에서 비바람과 맹수들을 피하던 인류는 집을 짓고 살면서 비로소 안정감을 얻었다. 네 개의 벽과 지붕이 주는 안정 아래서 사람들은 하루의 피로를 풀고 가족들과 정을 나누며 내일의 희망을 꿈꾸었을 것이다.      

집에 사고 판다는 의미가 붙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든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오고 쉽게 떠나는 곳에서 집은 사고 파는 대상이 되었다. 집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때그때 집을 지을 만한 땅도, 자재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집을 지어 파는 사람, 집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을 연결해 주는 사람도 나타났고, 집의 가치도 수요와 공급에 따라 오르고 내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집을 구하는 사람이 많으면 집값은 오르고 찾는 사람이 없으면 떨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집값은 이런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잘 들어맞지 않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집의 의미는 재산 그 이상이다. 6.25 전쟁 후, 돌아갈 집을 잃어버린 이들은 곳곳에 대규모 피란민 촌을 만들었고, 70년대 개발시대에는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이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이들에게 집이란 지친 몸을 눕히고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전쟁, 취업 등 여러 이유로 정든 고향, 살던 집을 떠나온 우리네 부모님들은 집 한 채 장만하는 것이 인생의 최우선 과제였다. 당시 정부는 많은 사람들에게 빨리 공급할 수 있는 규격화된 근대식 거주 모델이 필요했고 이에 도입된 것이 아파트였다. 군인 출신이었던 그때 그분의 성향답게 아파트는 마치 군사작전처럼 우리나라의 모습을 바꿔 나갔다.

국가 주도의 아파트 건설은 우리의 삶과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유럽 등지에서는 하층민들이나 사는 공동주택을 뜻하는 아파트는, 한국에서 근대화 및 도시화의 상징이 되었고 아파트 단지에서의 생활은 표준화된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아파트에 사는 것 자체가 선망의 대상이었던 시대였다.

그렇게 집을 산다는 것은 내 인생이 비로소 세상의 기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집(아파트)이 부의 증대 수단이 된 것은 그보다 조금 후의 일이다. 80년대 후반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분양되기 시작하면서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투기꾼을 포함, 집을 사고 팔아 부자가 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집에는 한 시대를 살아온 한국인들의 삶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 되어 버린 집은 어느새 우리의 삶을 잠식하고 있다. 집값 몇 푼 올리기 위해 이웃들에게 자행되는 일들로 피폐해져 가는 사회 분위기는 오히려 부차적인 일이다. 요즘 청년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집값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의 부모들은 알고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집은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재산을 증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며 계층간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단번에 팔자를 바꿔줄 사다리다.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등 도적들을 영웅시하며 오랫동안 부의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키워왔던 한국인들에게 집은 그들의 욕망을 실현시킬 마지막 도구인 셈이다. 

따라서 부동산을 통제하려는 국가의 시도는 거의 항상 실패로 귀결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다. 모두의 욕망을 무제한적으로 충족시킬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내 집은 싸게 사야 하고 일단 산 집값은 올라야 하며 그 와중에 전체적인 부동산 가격은 내려야 하는데 이같은 모순을 지적하는 사람은 좀처럼 없다. 

인간의 욕망은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을 무시하고 존속한 사회는 없었다. 그러나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라는 사실은 종종 잊혀진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치러야 할 댓가도 한창 욕망을 따르고 있을 때는 떠올리기 어렵다. 웃기는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떠도는 다음 띵언(명언)이 실현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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