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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53] 효라는 가치는 지속될 수 있을까
[한민의 문화등반 53] 효라는 가치는 지속될 수 있을까
  • 한민
  • 승인 2023.02.01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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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 문화심리학자

나는 효자가 아니다. 언론에 뜰 정도의 불효막심한 자는 아니지만 어떤 면으로 봐도 효자라고는 할 수 없다. 멀리 산다는 핑계로,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자주 가 뵙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전화나 문자도 띄엄띄엄한데다가 어쩌다 통화를 해도 살가운 말 한마디 없는 아들이다. 괜찮다고 하시지만 마음 한켠이 불편한건 어쩔 수 없다.

효는 한국인들의 심성에 깊게 뿌리박힌 가치관이다. 유교가 이 땅에 전해진 후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가치가 효일 것이다. 어쩌면 그 이전부터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부모 자식 관계를 각별하게 생각했었는지 모른다. 마음에 뭔가 맞으니까 더 강조한 측면도 있을 법 하다.

문화심리학적으로 보자면, 특정 문화에서 강조하는 가치는 해당 사회의 생존 및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전근대 사회의 한국인들의 생존에 가장 중요했던 건 농사였다. 상업을 중시했던 시대가 없지 않았으나 한국인들에게 농사는 삶의 근간이었고 특히 조선은 농자천하지대본을 국시로 삼았다. 

그리고 효는 농사에 매우 적합한 가치관이다. 효를 실천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부모님께 잘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조상님께 잘 하는 것이다. 부모님께 잘 하려면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것은 물론 곁에서 식사와 이부자리를 챙겨드리고 편찮으시면 한겨울에 설산을 뒤져서라도 약을 구해 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부모님 곁에 살아야 한다.

조상님께 잘 하는 방법은 때가 되면 제사를 잘 모시는 것이니, 요즘은 웬만한 집 아니면 명절에 차례나 지내지만 과거에는 4대 봉사라 하여 위로 4대까지의 조상의 제사가 기본이고 장손이나 종손의 경우에는 일년에 수십 번씩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조상님들의 묘가 있는 선산 근처에 살아야 한다.

다시 말해, 효를 제대로 행하려면 어디 돌아다니는 직업을 갖기가 곤란하다는 뜻이다. 조선이 상업을 천시한 이유 중 하나다. 원행 장사라도 나갈라치면 몇 달씩 집을 비워야 하는데 어느 겨를에 부모님 잠자리를 챙겨드리고 제사에 참여하겠는가. 따라서 효라는 가치관은 사람들이 어디 돌아다니지 않고 집 앞의 들판에서 농사짓게 만드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현대사회가 된 이후로 한국사회는 농업이 아닌 다른 산업에서 살 길을 찾았다. 사람들은 조상님들이 누워계시고 부모님이 농사짓는 고향을 떠나 도시와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가족과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지만 깊게 뿌리내린 가치관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았다. 제사가 있으면 큰집에 모였고 명절이면 고향으로 내려가는 행렬이 도로를 메웠다. 

얼마 전까지 흔하게 볼 수 있었고 지금도 명절이면 접하게 되는 풍경이다. 삶의 형태는 바뀌었으나 과거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현대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삶을 사느라 더 이상 효를 행하지 못하지만 일년에 한두 번 뵙는 부모님과 명절에야 절을 올리는 차례상 앞에서 조상님께 죄스러움을 느낀다. 

이러한 모습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명절과 제사를 둔 갈등이 커지는 것은 우리의 삶의 방식이 이미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미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들이 많아졌고 명절은 겨울과 가을에 찾아오는 뜻밖의 휴가로 의미가 바뀌고 있다. 고향의 부모님들이 돌아가시고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이 사라진 뒤에도 효라는 가치는 지속될 수 있을까.

우리는 더 이상 농사짓는 사람들이 아니다. 과거에 비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종류는 아득히 많아졌고 그에 따른 삶의 형태도 천차만별이다. 과거의 효처럼 경제와 가족, 복지를 아우르는 가치관은 현대 사회에서는 존재하기 어렵다. 우리는 무엇에 우리의 삶을 의존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가치관은 무엇일까. 또는 무엇이어야 할까.

한국은 그동안 세계에서 가장 격렬한 변화를 겪어 왔다. 그간 거둬 온 적지 않은 성취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이제까지 숨 가쁜 변화에 적응하기에 급급했던 것이 사실이다. 고향에 계신 부모 세대들의 퇴장과 함께 지역 소멸과 인구 감소에 직면하게 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를 향한 좀더 길고 큰 그림이다. 이 글은 필자가 불효자라는 걸 합리화하려는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 아님을 밝힌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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